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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시대 서사시, 현실주의의 발전과 서사한시 - 5. 조선왕조의 체제적 모순의 심화와 서사시의 출현②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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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시대 서사시, 현실주의의 발전과 서사한시 - 5. 조선왕조의 체제적 모순의 심화와 서사시의 출현②

건방진방랑자 2021. 8. 7.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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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조선왕조의 체제적 모순의 심화와 서사시의 출현

 

 

조선왕조는 ()’을 기반으로 성립된 국가였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란 말이 의미하는 대로, 인민의 농업 생산이 국가의 물적 토대였을 뿐 아니라, 민력(民力)을 부역의 방식으로 동원하여 국가의 안위와 관인의 체모를 유지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을 인식해서 나라는 에 의존한다고 설파한 학자도 있거니와, 김시습은 나라는 의 나라다[國者民之國]”라고 인민의 정치적 위상을 강조하였다.

 

봉건 체제 하에서 이란 피지배층 일반을 가리키는 개념이므로 농민 또는 인민이나 민중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 특히 국가적 기반으로서의 이라고 말할 때 은 대체로 양민(良民=良人=常民)에 해당했던 것 같다. 양민이야말로 양역(良役)의 부담을 지던 봉건국가의 공민(公民)이었던 셈이다.

 

따라서 이들 에 대한 보호책은 국가적 입장에서도 필요한 사항이다. 국가적 기반을 공고히 하는 데도 제일의 방도가 아니겠는가. 바로 이런 현실적 요망사항을 담은 통치술이 이른바 인정(仁政)이요, 애민(愛民)의 정치학이다. 조선왕조의 국가 이념, 유교는 그 논리를 제공한 것이다.

 

애민의 정치학에서 인민의 존재는 어디까지나 보호의 대상일 뿐이다. 덧붙이자면, 인민은 실상 수취(收取)의 대상이니, 애민이란 수취의 대상을 보호한다는 뜻이다. ‘의 이상적인 존재 형태는 땅에 엎드려 부지런히 농사짓고 고분고분 사역에 응하는 그런 모습이다. 이 모양으로 민생의 안정이 이루어진 위에 국가의 안정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참으로 중세의 이상적 국가상ㆍ사회상이다.

 

이조 국가는 그의 초창기에 애민의 정치를 어느 정도 추구했다고 본다. 무제한적 수탈을 지양한 취민유도(取民有度)의 원칙을 제도화하려 했던 바, 과전법(科田法)은 그 중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백성을 무지몽매(無知蒙昧)한 상태로 방치하지 않고 가르치고 깨우치려는 노력도 기울여졌던바,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한 뜻이다. 그러나 거기에 결국 해결하기 어려운 모순이 개재되어 있다. 상반되는 이해관계를 적정선에서 조절하기란 원래 지난한 노릇이다.

 

김종직(金宗直, 1431~1492)가흥참(可興站)이란 시에서 북쪽 사람들은 호화를 다투는데 남쪽 사람들은 고혈을 짜는 구나[北人鬪豪華, 南人脂血甘]”라고 중앙 관인과 지방 농민 사이의 모순 관계를 극명하게 드러낸 바 있다. 당시의 저급한 생산력으로 지배 계급의 물질적 욕구를 자제시키기는 거의 기대할 수 없거니와, 권력의 부패와 문란으로 인정이니 애민이니 하는 말은 공염불로 되고 말았다. 저 훈민정음이 어리석은 백성들의 의사소통의 수단으로서, 극히 제한적이었던 훈민의 기능마저 발휘하지 못했던 것은 애민의 정치가 허위화된 사실과 상관관계가 있다고 본다.

 

인민이 가렴주구(苛斂誅求)로 인해서 삶이 파탄에 이르고 유리방랑하게 되는 정황은 체제의 기본 모순이며, 그 자체가 체제의 중대한 위기다. 이석형(李石亨, 1415~1477)호야가(呼耶歌), 김종직(金宗直)낙동요(洛東謠)에서 부역의 괴로움과 수탈의 무거움, 그리고 지배층의 물질적 향락의 지나침이 심각하게 제시된 한편, 어무적(魚無迹, 연산군 때 시인)유민탄(流民歎)에서는 춥고 배고픈 유민으로 시선이 돌려지게 된다. 이러한 애민시ㆍ사회시의 일환으로 서사시가 씌어진 것이다.

 

이들 서사시는 구체적 모순으로 인해 찢기고 병드는 인민의 삶이 서술되는바, 구체적 인물이 등장해서 사건이 진행되는 특징을 갖추고 있다. 가령 어무적의 유민탄(流民歎)에서 창생들의 어려움이여! 흉년에 너희는 먹을 것이 없구나…… 창생들의 괴로움이여! 추위에 너희는 이불도 없구나[蒼生難. 年貧爾無食. 蒼生苦. 天寒爾無衾]”라고 유민들의 어렵고 괴로운 사정이 절실히 드러났지만, 실은 일반적 정황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런데 성간의 아부행(餓婦行)을 보면 떠돌이 신세의 여자가 자기 아기를 길에 버려 호랑이 밥이 되게 만든 기막힌 삶의 사연이 엮어지고 또 송순의 문개가(聞丐歌를 보면 한 거지 노인이 재산과 처자를 잃고 유랑하는 괴롭고 쓸쓸한 인생 경로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 밖에, 김시습의 기농부어(記農夫語에서는 한 자영농민의 몰락과정을 그 자신의 목소리로 듣게 되며, 성간의 노인행(老人行에서는 군역의 임무를 마치고서 늙어빠진 육신을 끌고 고향으로 돌아온 노인을 만나며, 조신(曺伸)제심원(題深院은 원부(院夫, 원주민)의 특수한 사정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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