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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하권 75. 정두경을 보는 두 가지 시선 본문

연재/한문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하권 75. 정두경을 보는 두 가지 시선

건방진방랑자 2021. 10. 29.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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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경을 보는 두 가지 시선

 

 

소화시평권하 75에서 홍만종은 정두경의 문학적 자질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만약 이 글만 먼저 읽게 됐다면 홍만종의 시선에 따라 정두경을 엄청 대단한 인물로 기억하게 됐을 것이다.

 

하지만 작년 11월에 했던 김형술 교수의 한시 특강에서 정두경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었다. 홍만종 이후에 나오는 김창협, 김창흡 형제를 위시한 백악시단의 천기(天機)를 중시하는 학자들에겐 비판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김창흡은 아예 정두경의 시는 한결 같이 웅장하기만 하다고 비판한다. 즉 기존에 중국학자들이 썼던 풍을 그대로 흉내내어 모작을 하는 정도이지, 직접적인 실상을 담아내진 않는다는 뜻이다. 그건 마치 지리산에 가보지 않고서도 시를 지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가보지 않아도 산세가 삐쭉삐쭉 할 거라는 것, 그리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기상이 남다를 거라는 것은 누구라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니 지리산이나 금강산에 가보지 않고도 우뚝한 기상이나 깎아지른 산세를 담아낸다면 마치 그곳에 가본 것 같은 뉘앙스를 충분히 풍길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정두경의 시엔 이미 굳어진 이미지만 담겨져 있지, 그곳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실상은 담겨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후대 학자들은 정두경은 복고파라고 비판하며 그의 시를 웅장하기만 한 시라고 평가한 것이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홍만종은 전혀 다른 시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정두경이야말로 1000년이 없다고 볼 정도로 과거의 것을 답습하지 않았으며 독자적인 시각으로 독자적인 문학성을 드러낸 사람이라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아예 강도 높게 시험 삼아 우리나라 고금의 시인을 살펴봐라 감히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던가[試看吾東古今詩人, 怎敢道得如此語麽]?’라고 말할 수 있었으리라. 홍만종이 볼 때 정두경은 타고난 기세로 어떤 것에도 휩쓸리지 않고 시를 써내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의 시를 보면 세상에나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탁월한 시재를 뽐내는 선배들이 있었구나라고 감탄을 하게 됐던 것이다. 그래서 홍만종은 아예 자신의 생각을 굳히기 위해 계곡의 평가를 끌어온다. “나의 문장은 비유하면 좋은 말과 같아서 걷고자 하면 걸을 수 있고 달리고자 하면 달릴 수 있지만, 오히려 말이 됨을 벗어나질 못하네. 군평과 같은 경우에 이르면 차라리 도마뱀이어도 용의 무리가 됨을 잃지 않았다[余之文譬如良馬, 欲步能步, 欲走能走, 猶不免爲馬. 至如君平, 則寧蜥蜴, 不失爲龍之類也].”

 

이 말은 곧 애초에 정두경은 타고난 기상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약간 부족한 부분이 있다 할지라도 자기와는 급이 다른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자신은 아무리 애써봐야 지상을 달리는 말 정도의 기세를 뽐내는 반면에 군평은 용의 무리에서 놀 정도의 기세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홍만종은 이토록 정두경을 추앙하게 됐는지 무척 궁금하긴 하다. 이에 대해서 교수님은 강서시파의 기괴하고 난삽한 시구들이 맹위를 떨치던 시기가 지나 복고파가 득세하는 시기가 왔기 때문에 그런 측면에서 보면 복고파 정두경의 시는 좋아 보일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런 말을 종합해보면 누구나 자기 시대의 관점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게 된다는 점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어찌 보면 나 또한 누군가를 평가할 때 이 시대적 관점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할 테다.

 

앞선 논의에서 김만덕을 예로 들며 사람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를 보았듯이 우리도 이 두 가지 시선을 모두 흡수하여 정두경을 어떻게 보고 이해해야 할 것인지 생각해보는 게 필요하다. 그래야 홍만종이 정두경에게 찬사를 표한 부분과 김창협 형제가 복고파를 비판하게 된 부분의 격차를 알게 되며 나의 시선을 갖게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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