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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노자와 21세기, 30장 - 무력으로 일어난 자 무력으로 망하리 본문

고전/노자

노자와 21세기, 30장 - 무력으로 일어난 자 무력으로 망하리

건방진방랑자 2021. 5. 10.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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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以道佐人主者,
이도좌인주자,
도로써 사람의 주인을 잘 보좌하는 사람은
不以兵强天下.
불이병강천하.
무력으로 천하를 강하게 하지 않는다.
其事好還.
기사호환.
무력의 댓가는
반드시 자기에게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師之所處,
사지소처,
군대가 처한 곳에는
荊棘生焉.
형극생언.
가시덤불이 생겨나고,
大軍之後,
대군지후,
대군이 일어난 후에는
必有凶年.
필유흉년.
반드시 흉년이 따른다.
善有果而已,
선유과이이,
부득이 해서 난을 구해줄 뿐
不敢以取强.
불감이취강.
무력으로 세상을 억누르지 않는다.
果而勿矜,
과이물긍,
좋은 성과가 있어도 뽐내지 아니하며,
果而勿伐,
과이물벌,
좋은 성과가 있어도 으시대지 아니하며,
果而勿驕.
과이물교.
좋은 성과가 있어도 교만치 아니한다.
果而不得己,
과이부득이,
성과가 있었던 것도
단지 부득이 해서 그리된 것일 뿐이니,
果而勿强.
과이물강.
좋은 성과를 올렸다 해서
강함을 과시하려 하지마라.
物壯則老,
물장즉노,
모든 사물은 강장하면 할수록 일찍 늙는 것이니,
是謂不道,
시위부도.
이것을 일컬어 도답지 아니하다고 한다.
不道早已.
부도조이.
도답지 아니하면 일찍 끝나버릴 뿐이다.

 

 

1. 부끄러운 과거는 침묵하지 강변하지 말자

 

이 장은 백본(帛本)에도 있지만 간본(簡本)에도 있다. 왕본(王本)과 타본(他本)을 비교해보면 문구의 차이는 있으나 그리 중요한 의미상의 변

화는 논할 만한 것이 없다. 타본(他本)은 왕본(王本)의 애매한 부분을 명료하게 만들어줄 뿐이다.

 

간본에는 물장즉노 시위부도 부도조이(物壯則老, 是謂不道, 不道早已).’라고 한 마지막 총결부분이 없다. 전체의 문맥으로 보아 이 부분은 나중에 삽입된 파편임이 확실하다. ‘이도좌인주자(以道佐人主者)’로 시작하여 과이물강(果而勿强)’으로 끝나는 부분은 매우 구체적인 당시의 상황적 주제를 일관되게 다루고 있으나, 마지막의 총결부분은 매우 추상적이고, 또 진행되어오던 구체적 주제로부터의 비약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미론적인 연속성은 충분히 확보된다. 그러나 우리는 간본(簡本)의 성격에 비추어 오늘 우리가 보는 노자텍스트는 이와 같이 다른 전승의 독립된 파편들이 연합된 결과임을 명료하게 알 수 있다. 백본(帛本)에는 이미 마지막 총결부분이 왕본(王本)과 같은 형태로 삽입되어 있다.

 

우리는 사실 요즈음 좋은 세월을 살고 있다. 언제 이 평화가 다시 깨질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하루하루의 생활이, 찾아보면 그는 죄악상이 도사리고 있겠지만, 전란과 같은 재해는 없다. 그러나 또년 전하지만 해도 우리의 삶은 이 (, militarism)’이라고 하는 문제로 크게 시달렸다. 김대중후보나 김지하시인이 옥생활을 하고, 인혁당 사람들이 처참한 고문 속에 뭉그러져 갔던 그 세월 그 세월을 살았던 우리들은 언제나 이 끔찍한 압제가 끝날 것인가 하고, 하고 많은 날들을 한숨 쉬며 기다려야만 했던 것을 생각하면 여기서 말하는 ()’이나 ()’이라고 하는 주제들은 먼 나라의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제발 그 시대의 압제의 주역노릇을 했던 사람들, 지금 비록 백주를 활보하며 또 다시 정치일선에서 자신의 자랑스러운 과거를 강변(强辯)하고 있지 단 한번 다소곳이 양심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 과연 그 시대의 불행이 불가피한 것이었을지언정, 그러한 밀리타리즘의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할 길이 있겠는가? 이러한 부끄러운 과거를 침묵할지언정 강변은 하지말자! 과거의 죄악을 경제적 부의 성취나 역사적 발전을 핑계삼아 합리화하는 그런 어리석은 것은 하지말자! 천하(天下)는 본시 신기(神器)래서 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대들의 독재가 경제를 부흥시키고 역사를 발전시켰다고 생각하는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그 근본에서 파기시켜라! 경제는 항상 파탄으로 되돌아 갈 수 있는 것이요, 역사는 본시 발전한다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나만해도 육이오전란의 기억이 있는 최후세대일 것이다. 피난길을 두 발로 걸어야 했던 마지막 세대일 것이다. 여기 30장에서 말하는 언어들은 철학적 사유의 논술이라기보다는, 전국(戰國)시대라고 하는 처참한 전란의 황폐한 시대! 그 시대의 피비린내 나는 민중의 설움과 원망과 갈망이 담겨진, 생동치는 외침이라 해야 할 것이다.

 

 

2. 임금을 보좌하는 사람은 무력으로 강압하지 않는다(以道佐人主者, 不以兵强天下)

 

인주(人主)’는 앞서 왕필이 25 주에서 왕시인지주야(王是人之主也)’라 한 것을 기억하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인주(人主)는 왕()이요, 인군(人君)이요, 천하(天下)의 리더다. ()로써 인주(人主)를 잘 보좌하는 사람은 병()으로써 천하(天下)를 강()하게 하지 않는다! 이에 대한 왕필의 주를 보자!

 

 

도로써 인주를 보좌하는 사람도 오히려 무력으로 천하에 강제할 수가 없거늘, 하물며 도를 몸에 구현한 인주 자신에게 있어서랴!

以道佐人主, 尙不可以兵强於天下, 況人主躬於道者乎?

 

 

여기 왕필주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텍스트 인용에 해당되는 부분이 불가이병강어천하(不可以兵强於天下)’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왕필주는 왕필이 실제로 사용했던 노자텍스트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상황이 많다. 현재 왕본(王本)불이병강천하(不以兵强天下)’로 되어 있으나, 백본(帛本)불이병강어천하(不以兵强於天下)’로 되어 있고 간본(簡本) 또한 그렇게 되어 있다.

 

 

王本 以道佐人主者, 不以兵强天下.
帛本 甲乙 以道佐人主者, 不以兵强於天下.
簡本 以道佐人主者, 不欲以兵强於天下.

 

 

강어천하(强於天下)’하면 천하(天下)에 강압적으로 군림한다의 뜻이 되고, ‘강천하(强天下)’라 하면 천하(天下)를 강하게 한다의 뜻이 된다. ‘강어천하(强於天下)’가 원의에 가깝다고 보여지지만, ‘강천하(强天下)’ 또한 그 맛이 간결하고 강력하다.

 

 

3. 대학교에 군인이 탱크를 몰고 쳐들어오다

 

19711015, 나는 기나긴 대학생활의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었다. 나는 이날 아침 평일과 똑같이 수업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첫 수업이 끝난 10시경, 어느 학생이 헐레벌떡 창백한 얼굴을 하면서 교실로 뛰어들어 왔다. 박정희대통령의 특별 담화문이 발표되었다는 것이다. 그 내용인즉 군인이 문교ㆍ내무 및 지방장관의 요청에 따라 학원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학원내로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군부대가 탱크를 가지고 고려대학교로 쳐들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도무지 호들갑을 떨고 있는 그 학생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 학생들은 아마도 대학이라는 것에 대해 아무런 신성한(sacred) 느낌을 가지고 있질 않기 때문에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를 것이다. 우리 때만 해도 대학이라는 것은 신성한 배움의 상징이었고 대학교 교정이라는 것은 그 어느 누구도 무력적으로 침입할 수 없는 소도(蘇塗)와도 같은 성소였다. 우리 때는 경찰 한 명도 대학에 특별허락이 없이는 들어올 수가 없었다. 일제 강점기 때도 일본경찰조차 대학교정에는 들어온 적이 없다는 것이 항상 불문률로 통하고 있었다. 대학은 사회로부터 격리된, 어떤 특권이 보장된 솟터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대학캠퍼스에 경찰도 아닌 군인이 탱크를 가지고 쳐들어온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상상을 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몇 분 지나자,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우르르릉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천지를 진동케하는 소음과 함께 뽀이얀 진운이 교정을 휘덮기 시작했다.

 

19711111일 휴교 27일만에 개강을 하게 되었는데, 그날 아침 10시 고려대학생 전원이 모인 가운데 김상협 총장은 개강담화를 읽어 내려갔다.

 

 

나를 위시한 우리 교직원 일동은 지난 의 날 1015일에 우리 고려대학교 66년 사상(史上) 전무후무한 최악의 그 날에, 바로 우리 캠퍼스 안에서 벌어진 일련의 불행한 사태에 관하여 그 세부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차마 볼 수 없고, 사람의 말로는 차마 옮길 수 없는 그 비참한 광경들, 그리고 학생 제군들이 그 속에서 불의에 당한 모진 곤욕들에 대해서 우리는 아무리 애써 보아도 도저히 망각의 미덕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나 역시 오늘 이 순간까지 그 날 당한 나의 곤욕에 대하여 도저히 망각의 미덕을 발휘할 수가 없다. 이것이 박정희정권이 우리 역사를 다스려간 방식이다. 이 날의 사건을 위수령이라고 부르는데, 우리민족의 대학과 지성의 권위는 이날부터 나락으로 떨어지고만 것이었다.

 

 

4. 칼로 대제국을 수립한 이들은 자취도 없이 스러져 갔다

 

이 즈음 나는 고려대학교 학생운동의 회오리의 중심에 있었다. 그때 내가 썼던 수없는 선언문들, 지금 한쪽이라도 있으면 공개하고 싶건만, 유학을 떠나면서 꼼꼼히 싸둔 대학시절의 보따리가 이사통에 분실되어 하나도 찾을 길이 없다. 위수령이 발동되기 전, 그리고 그후 나는 교정에 다음과 같은 포스터를 만들어 붙이고 다녔다. 시간이 나면 인촌동상 뒤로 있는 본관 꼭대기 다락방에 자리잡고 있는 서예반에 올라가 붓글씨로 다음과 같이 써서 양동이에 풀을 쑤어 벽에 바르고 다녔다. 누가 이해하는 말든! 내가 잡혀죽든 말든! 우리때만 해도 고전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살아 있었다. 바로 그 한 구절이 바로 본 장의 서두를 장식하는 노자의 절규였다.

 

不以兵强天下!

 

어떠한 경우에도 무력으로 천하를 강하게 할 수는 없다. 총칼로 금남로의 인민들을 죽일 수는 있었겠지만 결코 그 총칼은 강낭콩 꽃잎보다 더 붉은 그들의 피를 지울 수는 없었다. 쥴리어스 씨이저! 알렉산더 대왕! 징기스 칸! 히틀러의 나의 투쟁! 이들은 분명 칼로써 대제국을 수립한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들의 대제국은 저 황야의 신기루의 환영처럼 자취없이 스러져 갔을 뿐이다. 화이트헤드는 그의 명저, 과학과 근대세계의 마지막을 다음과 같은 함축적 언어로 장식하고 있다.

 

 

알렉산더로부터 씨이저에 이르는, 그리고 씨이저로부터 나폴레옹에 이르는 위대한 무력적 정복자들은 향후의 사람들의 삶에 더할나위 없는 깊은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이러한 영향의 전체를 합해보아도, 탈레스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기나긴 대열을 형성하는 사상가들이 산출한 인간 사유화 습관의 변혁의 전체에 비교한다면, 그것은 너무도 초라한 무의미한 한 줌의 잿더미가 되어버리고 만다. 인간은 한 개인으로서는 아무런 힘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는 궁극적으로 이 세계의 참다운 주인이다.

The great conquerors, from Alexander to Caesar, and from Caesar to Napoleon, influenced profoundly the lives of subsequent generations. But the total effect of this influence shrinks to insignificance, if compared to the entire transformation of human habits and human mentality produced by the long line of men of thought from Thales to the present day, men individually powerless, but ultimately the rulers of the world.

 

 

5. 무력을 통해 일어선 자 그 무력에 당하리라(其事好還)

 

이 구절은, 간본(簡本)의 경우 과이불강(果而不屈)’이란 마지막 구절의 뒤로 붙어 있다. ‘기사호(其事好)’로만 끝나고 있는데 기사호환(其事好還)’의 혼()이 탈락된 불완전한 텍스트일 것이다. 백서(帛書)의 경우는 왕본(王本)과 같은 자리에 이 구절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유신의 종말은 궁정동의 총성이었다. 다시 말해서 무력적 지배는 반드시 그 대가가 그 본인에게 되돌아온다는 말이다. 그런데 왕필은 이 구절을 추상적으로 그리고 긍정적으로 무위의 맥락에서 해석했다.

 

 

자기가 먼저 앞서 무엇을 주관하려 하는 자는 공을 세우기를 좋아하고 생색내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도가 있는 자는 항상 그 근본으로 되돌아가 무위를 한다. 그러므로 그 일에 있어서는 근원으로 돌아가기를 좋아한다라고 말한 것이다.

言師凶害之物也. 無有所濟, 必有所傷, 賊害人民, 殘荒田畝, 故曰荊棘生焉.

 

 

그러나 역시 기사호환(其事好還)’은 무력의 비극적 대가를 말하는 것으로, 문맥상 불이병강천하(不以兵强天下)’에 붙여 해석하는 것이 더 합당할 것이다. 소철(蘇轍)이 주석한 바대로, ‘무력은 비록 이길지는 몰라도 반드시 그 화가 나에게 되돌아오는 것이다[雖或能勝, 其禍必還報之].’와 같은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6. 농병일치시대에 병사를 모집한다는 것(師之所處, 荊棘生焉. 大軍之後, 必有凶年)

 

이 구절은 노자라는 텍스트의 형성에 관하여 그것이 작은 파편들의 모임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는 가설의 한 구체적인 물증을 제공하는 재미있는 실례중의 하나이다. ‘師之所處, 荊棘生焉大軍之後, 必有凶年은 정확한 대련을 형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구를 이루고 있다. 다시 말해서 大軍之後, 必有凶年師之所處, 荊棘生焉이라는 앞구절의 의미를 짝지어 강화시켜 준다. 그런데 이에 대한 왕필주를 한번 보자!

 

 

이 구절은 군대라고 하는 것이 흉하고 해로운 것임을 역설한 것이다. 군대는 인민의 삶을 구원하는 바는 없고 반드시 상처를 주는 일만 하게 된다. 인민의 목숨을 빼앗고 농토를 황폐하게 만들 뿐이다. 그래서 가시덤불이 생겨난다라고 말한 것이다.

言師凶害之物也. 無有所濟, 必有所傷, 賊害人民, 殘荒田畝, 故曰荊棘生焉.

 

 

이 왕필주에서 중요한 사실은 앞의 구문 즉 師之所處, 荊棘生焉에 대한 해석만 했지, 그 후의 대구인 大軍之後, 必有凶年은 주 속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왕필이 본 텍스트에는 후속의 대구가 없었을 수도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런데 백서(帛書)의 발견으로 이러한 추측은 정확한 것으로 드러났다. 백서(帛書)에는 앞의 구문만 있고, 뒤의 구문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사실은 요번에 발견된 죽간본(竹簡本)에는 백서(帛書)의 이 앞 구문조차 싹 빠져있는 것이다. ‘뷸욕이병강어천하(不欲以兵强於天下)’에서 곧바로 선자과이이(善者果而已)’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확실한 추론을 할 수 있다. ‘師之所處, 荊棘生焉; 大軍之後, 必有凶年BC 4세기경의 노자텍스트에는 들어 있지 않았다. 그 후로 어떤 사람에 의해 師之所處, 荊棘生焉이라는 구문이 첨가되었는데, 아마도 이것은 당대 전국중기 이후의 민간 속담과도 같은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왕본(王本)을 초사(抄寫)하는 사람들이 그 뜻을 강화하기 위해서 후의 대구를 짜맞추어 집어넣었을 것이다.

 

 

簡本
()
帛甲本
師之所處, 荊棘生焉
王本 師之所處, 荊棘生焉; 大軍之後, 必有凶年,

 

 

()’는 여기서 요새 우리말의 사단(師團)’이라는 단어가 그 뜻을 보존하고 있듯이 군대(army)를 의미한다.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은 여기서 말하는 군대란 농병일치시대의 군대라는 것이다. 기병(起兵)’이라는 것은 농민군대를 모집하여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그 후유증은 심각한 것이다. ‘형극(荊棘, 가시덤불)’이나 흉년(凶年)’ 등의 표현은 모두 농사와 관련되어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육이오동란 이후의 몇 년 동안의 한국의 농촌 현황을 연상해도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7. 선유(善有)는 선자(善者)를 잘못 베낀 것이다(善有果而已, 不敢以取强)

 

善有果而已라는 구문은 실제로 해석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우선 왕필의 주를 보자!

 

 

라는 것은 구제한다는 뜻이다. 군대를 잘 활용하는 사람은 군대를 일으켜 가서, 그 어려운 상황 즉 난을 구하기만 할 뿐이다 라고 하는 것을 이 구문은 기술한 것이다. 군대의 힘을 빙자하여 천하에 강함을 과시하려 하는 것이 아니다.

, 猶濟也. 言善用師者, 趣以濟難而已矣, 不以兵力取强於天下也.

 

 

왕필은 ()’제난(濟難, 난을 구한다)’ 즉 도탄에 빠진 백성의 어려움을 구제해 준다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런데 본동사인 ()’를 그렇게 해석해도 왕본(王本)의 구문은 석연치 않다. ‘선유과이이(善有果而已)’난을 구함이 잘 있을 뿐이다라는 의미가 되어 문의가 명료하지 않다.

 

그런데 왕필주를 잘 뜯어보면 선()과 관련된 부분이 선용사자(善用師者)’로 되어 있다. 선유(善有, 잘 있다)’라는 표현에 뭔가 오사(誤寫)가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백서(帛書) 갑을(甲乙)의 모습은 이러한 오류를 명명백백하게 시정해주고 있다. ‘서유과이이(善有果而已)’서유과이이의(善者果而已矣)’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간본(簡本) 또한 백서(帛書本)과 동일하다.

 

 

王本 善有果而已,
帛書 甲乙 善者果而已矣,
簡本 善者果而已,

 

 

여기서 선자(善者)’는 물론 왕필주의 의미대로 선용사자(善用師者, 군대를 잘 쓰는 사람)’일 것이다. 왕본(王本)의 원래 모습도 그 주()에 비추어 생각하면 ()’였을 것이다. ‘()’()’를 놓고 잘 비교해보면, 그 자형(字形)의 유사함때문에 그러한 오사(誤寫)가 발생했다는 것은 쉽게 추측이 가능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텍스트의 모습들이 이러한 식으로 변해서 이루어진 것임을 알게 해주는 좋은 한 예일 것이다. 그러면 그 뜻은 이렇게 된다. ‘선자(善者)는 과()할 뿐이다.’ 여기서 선자(善者)’는 도로써 인주(人主)를 잘 보좌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군대를 잘 쓰는 명장일 수도 있고, 도를 체득한 인군(人君) 자신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란 과연 무슨 뜻인가?

 

 

8. ()에 대한 다양한 견해

 

물론 ()’를 왕필의 말대로 제난(濟難, 난을 구한다)’의 뜻의 동사로 새길 수도 있다. 그러나 왕필의 해석은 ()’의 의미를 너무 에둘러 자의적으로 해석한 냄새가 난다.

 

()’의 일차적 의미는 보통 과실(果實)’, ‘결과(結果)’, ‘과감(果敢)’, ‘과단(果斷)’ 등의 우리 상투어에 그 의미가 보존되어 있듯이, ‘맺는다.’ ‘감히 한다.’ ‘결단한다.’ ‘날래다등의 뜻으로 새겨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사마광(司馬光)은 이를 주해하여 말하기를, “‘라는 것은 이룬다는 뜻이다. 대저 폭동을 막고, 난을 제거시키는 일은 단지 일이 끝나고 공이 이루어지면 곧 손을 떼는 것이다[, 猶成也. 大抵禁暴除亂, 不過事濟功成則止].”라고 하였다. 사마광(司馬光)의 주가 왕필의 주보다는 더 구체적인 ()’의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할 것이다.

 

왕안석(王安石)()’()’으로 풀었다. 이는 곧 이기면 곧 그친다는 뜻이다.

 

하상공(河上公)()’과감(果敢)’으로 풀었다. 선병자(善兵者, 을 잘 다루는 사람)는 과감해야 한다는 뜻이다.

 

소철(蘇轍)은 또 ()’()’로 풀었다. 전쟁을 일으키는 자는 그 판단력이 빨라야 하며 무엇이든 결행(決行)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모든 의미에는 어떤 공통된 고대중국의 병가적(兵家的) 지혜가 함장되어 있다.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말에 졸속(出速)’이라는 말이 있다. 졸속이라는 말은 어떠한 경우에도 긍정적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아마도 졸속하면 무너진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을 쉽게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 졸속한 행정, 졸속한 시공, 졸속한 행동, 이 모든 것이 좋은 의미로 해석될 길은 없다.

 

그러나 병가(兵家)에서는 졸속이라는 말은 나쁜 의미가 아니라 좋은 의미로 쓰이고 있다. 그러니까 소극적 의미가 아니라 적극적 의미로 쓰인다는 말이다.

 

 

9. 전쟁을 하려는 이여 졸속하게 하라

 

병가(兵家)의 바이블이라 할 손자(孫子)작전편(作戰篇)에 이 졸속(拙速)’이라는 말은 교구(巧久)’라는 의미와 짝지어 쓰이고 있다. 졸속은 엉성하며 빠르다는 의미다. ‘교구정교하며 오래간다는 의미다. 물론 우리 일상감각으로는 교구졸속보다 더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나 병가(兵家)의 논리는 정반대다.

 

 

손자는 말한다. 무릇 전쟁을 수행하는 방법으로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꼭 유념해야 한다. 달리는 사두마의 전차 일천 대, 물자수송차량 일천 수레, 갑옷을 입은 무장군인 십만 명을 갖추고 천리의 원방에 까지 식량을 수송하려면, 국내외의 비용, 외교사절에 드는 비용, 그리고 작게는 군시설 유지비용, 크게는 전차ㆍ갑옷등의 공급비용을 포함하여, 하루에 일천금이라고 하는 거대한 금액이 소요되는 것이다. 이런 금액이 갖추고 난 후에 비로소 십만의 대군을 움직이는 것이 가능해진다.

孫子曰: “凡用兵之法, 馳車千駟, 革車千乘, 帶甲十萬, 千里饋糧, 則內外之費, 賓客之用, 膠漆之材, 車甲之奉, 日費千金, 然後十萬之師擧矣.”

 

 

손자(孫子)』 「작전편(作戰篇)은 바로 십만대군을 일으킨다 하는 것이 거저 말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엄청난 경제적 뒷받침이 없이는 하루도 지탱할 수 없는 사태임을 실감나게 역설한다.

 

이러한 역설에 연이어 그는 바로 그러기 때문에 승구(勝久)’란 패배를 의미하는 것임을 말한다. ‘승구(勝久)’란 비록 싸움에 이긴다 할지라도, 그 승리가 오랜 싸움을 거쳐 얻은 승리라면 그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국력의 소모일 뿐이며, 군대의 사기의 저하일 뿐이며, 제후들의 내란의 빌미를 줄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작전편(作戰篇)에서 말한다.

 

 

그러므로 병가에서는 졸속(拙速)’이라는 말은 있어도 교구(巧久)’라는 말은 있을 수가 없다. 대저 전쟁이 오래 지속되고 나라가 이득을 보는 예는 있어본 적이 없는 것이다.

故兵聞拙速, 未睹巧之久也. 夫兵久而國利者, 未之有也.

 

 

바로 졸속이라는 말의 정당성에는 전쟁 그 자체가 이미 불선(不善)의 가치행위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이다. 전쟁 그 자체가 불선(不善)한 것이라면 그것은 졸속(拙速)’ 할수록 좋은 것이라는 아이러니가 성립한다. 즉 속전속결(速戰速決)이 최상의 방편인 것이다. 바로 노자의 평화주의(Pacifism)는 전쟁이라는 인간의 죄악의 현실태 위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라는 한마디 속에는 과감(果敢), 과결(果決), 성과(成果) 등의 모든 병가적 지혜가 함축되어 있다. (, 군대)가 처()하는 곳에는 형극(荊棘, 가시덤불)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최선의 방법은 병()으로써 천하(天下)에 군림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지만 병()을 부득이(不得已) 해서 일으킨다면 우리는 병()의 피해를 최소화시키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그 지혜를 노자는 ()’라는 이 한마디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과단성 있는 속전속결이요, 난만 제거된다면 하루속히 그쳐야 하는 것이다.

 

()’졸속의 다른 표현이다. 전쟁의 모든 것은 악이다. 그러므로 전쟁의 승리 또한 악의 승리다. 그것은 자랑할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승리를 나의 강함의 과시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은 없다. 승리 그 자체가 패배자들의 비참한 현장 위에 서있는 것이다. 승리 그 자체가 하나의 악이다. 그것은 결코 강()의 과시가 되어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노자가 말하는 과감이취강(不敢以取强)’의 뜻이다.

 

 

10. 이겼다 할지라도 으스대서는 안 되는 이유(果而勿矜, 果而勿伐, 果而勿驕, 果而不得已, 果而勿强. 物壯則老, 是謂不道, 不道早已.)

 

그러므로 이겼다 할지라도 뽐내지[] 말 것이며, 이겼다 할지라도 으스대지[] 말 것이며, 이겼다 할지라도 교만치[] 말 것이다. 이겼다 하는 것은 단지 부득이해서 한 것의 결과일 뿐이니까. 어떠한 경우에도 싸움의 승리는 나의 강함의 과시가 되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강함을 과시해본들 뭣하겠나? 사물이란 본시 장성해지면 곧 늙어버리는 것, 내가 강성하다고 하는 것은 곧 내가 이제 더 빨리 늙는다고 하는 것의 과시일 뿐일세! 여보게! 그런 걸 뭐라고 부르는 줄 아는가? 그걸 부도(不道)’라고 하지 ! ()답지 못하다는 말일세. ()답지 못하면 결국 빨리 끝나버리는 거야. 인생의 패배가 빨리 다가올 뿐이지. 내 일찍 말하지 않았는가? 회오리 바람은 한 아침을 마칠 수 없고, 거센 소나기 한 나절을 마칠 수 없다고[飄風不終朝, 驟雨不終日]!

 

물장즉로(物壯則老)’에서 장()과 노()의 순환적 논리는 스스로 그러한 자연의 이치일 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질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이란 곧 강성함의 인위적 과시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부자연스러운 ()’이다. 그것을 노자는 부도(不道)’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부도(不道)는 곧 조이(早已)를 의미할 뿐이다. 이 장에서 우리는 노자의 반전사상과 평화주의가 그의 자연(自然)사상에 뿌리박고 있다는 심층의 논리를 파악해야 할 것이다.

 

 

 

 

인용

목차 / 서향 / 지도

노자 / 전문 / 30 / 노자한비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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