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노자와 21세기, 31장 - 전승(戰勝)하면 상례(喪禮)로 처리해야 한다 본문

고전/노자

노자와 21세기, 31장 - 전승(戰勝)하면 상례(喪禮)로 처리해야 한다

건방진방랑자 2021. 5. 10. 11:15
728x90
반응형

 31

 

 

夫佳兵者,
부가병자,
대저 아무리 훌륭한 병기라도
不祥之器.
불상지기.
그것은 상서롭지 못한 기물일 뿐이다.
物或惡之,
물혹오지,
만물은 모두 그것을 혐오할 뿐이니,
故有道者不處.
고유도자불처.
그러므로 도있는 자는 그것에 처하지 않는다.
君子居則貴左,
군자거즉귀좌,
군자는 평상시에는 왼쪽을 귀하게 여기고
用兵則貴右.
용병즉귀우.
전쟁시에는 오른쪽을 귀하게 여긴다.
兵者, 不祥之器,
병자, 불상지기,
무기란 것은 도무지 상서롭지 못한 기물이며,
非君子之器,
비군자지기,
군자의 기물이 아니다.
不得已而用之, 부득이해서 그것을 쓸 뿐이니,
恬淡爲上.
염담위상.
초연하고 담담한 자세가 제일 좋은 것이다.
勝而不美,
승이불미,
개가를 올려도 그것을 아름답게 생각하지 않는다.
而美之者,
이미지자,
승리를 아름답게 여기는 자는
是樂殺人.
시락살인.
곧 살인을 즐기는 것이다.
夫樂殺人者,
부락살인자,
대저 살인을 즐기는 자가
則不可以得志於天下矣. 어떻게 천하에 뜻을 얻을 수 있겠는가?
吉事尙左,
길사상좌,
길사 때에는 왼쪽을 높은 자리로 하고
凶事尙右.
흉사상우.
흉사 때에는 오른쪽을 높은 자리로 하는 법이다.
偏將軍居左,
편장군거좌,
그러므로 부관장군은 왼쪽에 자리잡고
上將軍居右,
상장군거우,
최고 상장군은 오른쪽에 자리잡는다.
言以喪禮處之.
언이상례처지.
이것은 곧 전쟁에는 상례로써 처하라는 말이다.
殺人之衆,
살인지중,
사람을 그다지도 많이 죽였으면
以哀悲泣之.
이애비읍지.
애통과 자비의 마음으로 읍해야 할 것이다.
戰勝.
전승,
전쟁에 승리를 거두어도
以喪禮處之.
이상례처지.
반드시 상례로써 처할 것이다.

 

 

1. 노자에서 왕필의 주조차 없어 미운오리 새끼였던 장

 

이 장은 언뜻 보아 알 수 있듯이 그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고, 심오하거나 추상적 내용이 없을 뿐더러 완전히 병가의 어떤 법규를 적어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노자여든 한 개의 장 중에서 좀 이질적인 냄새가 나며, 특기할 사실은 왕필이 단 한 글자의 주도 달지 않은 유일한 장이라는 것이다. 왕필이 이 장을 완전히 팽개쳐버린 듯한 느낌을 준다.

 

여태까지 많은 노자의 주석가들이, 왕필의 영향도 크겠지만, 이런 저런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이 장은 노자의 원텍스트에 속하지 않는 이단의 장으로 도외시해왔다. 그 내용이 천근(淺近)하고 비루(鄙陋)하여 도무지 철학적인 노자텍스트의 내용일 수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어떤 이는 주()에 지나지 않았던 부분이 본문(本文)으로 오인되어 올라왔다고 주장했고, 어떤 이는 후대에 병서(兵書)의 일부분이 찬입(竄入)되어 들어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많은 이들이 노자안에 이 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매우 불쾌하게 생각했고 또 이 장에 대해 많은 주석가들이 멸시감을 표현하는 것에 대해서 아무도 감히 이의를 달지 못했다. 31장이야말로 한마디로 도덕경미운 오리새끼였던 것이다.

 

그런데 우선 백서(帛書)의 발견은 이러한 구박에 대한 편견을 일단 불식시켰다. 백서(帛書)에 이 장이 고스란히 거의 왕본(王本)과 동일한 모습으로 그 자태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서(帛書)의 권위도 이 미운 오리새끼의 신세를 변화시키는 결정적 역할은 할 수 없었다. 백서(帛書) 그 자체가 왕본(王本)에 대하여 어떠한 대단한 우위의 권위를 확보할 수 있는 텍스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2. 미운오리새끼 날다(夫佳兵者, 不祥之器, 物或惡之, 故有道者不處)

 

자아! 그럼 죽간본(竹簡本)에 이 31장이 있을까? 없을까? 노자의 전문가라고 자처한 나의 솔직한 심정은 어떠했을까? 나 자신 이 31장에 대한 편견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나 자신 이 31장을 좀 불쾌하게 여겨왔던 것이다. 무엇인가 노자도덕경전체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이단적인 텍스트라고 생각했다. 나의 죽간본(竹簡本)에 대한 선입견은 어떠했을까? 물론 나 역시 이 31장이 고본(古本)죽간본(竹簡本)에 들어있으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변이 발생했다! 31장은 그 내용이 간본(簡本) 병조(丙組) 마지막 부분에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사실은 많은 노자전문가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31장은 최소한 BC 4세기의 노자고본 텍스트에 엄연히 존재하는 위대한 노자의 사상체계였던 것이다. 물론 죽간본(竹簡本)에는 거의 전체 문장이 ()’ ‘시이(是以)’ 등의 연접사(連接詞)로 연결되어 있어, 이것이 당대에 이미 존재하던 다른 텍스트의 인용이라든가, 그렇지 않으면 병사(兵事)와 관련된 당대의 통념을 반영하는 어떤 잠언의 인용인 듯한 느낌을 준다. 왕본(王本)은 이러한 연접사를 일체 없애버렸다. 그러나 이 31장은 분명,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를 말하는 1이나 상덕부덕(上德不德)’을 말하는 38 보다도 오히려 더 고층대에 속하는 확실한 노자의 파편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분명 충격이다! 노자 사상에 대한 우리의 본질적인 선입견을 깨버릴 수 있는 소중한 계기를 마련해주는 충격적 사건이었던 것이다. 왕본(王本), 백본(帛本), 간본(簡本) 간의 텍스트 비교문제는 별 중요한 의미가 없다. 기본적으로 정확하게 동일한 내용을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 31장이 고스란히 간본(簡本) 텍스트에 존재한다는 그 사실 자체인 것이다. 이 사실 자체를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우선 텍스트 얘기를 좀 하자면, 간본에는 대저 아무리 훌륭한 병기라도 그은 상서롭지 못한 기물일 뿐이다. 만물은 모두 그것을 혐오할 뿐이니, 그러므로 도있는 자는 그것에 처하지 않는다[夫佳兵者, 不祥之器, 物或惡之, 故有道者不處].’라고 하는 서두(緒頭) 부분이 없다. 그러나 백서(帛書)에는 존()한다. 이것은 앞의 30장의 마지막 부분이 간본에 빠져 있는 것과 동일한 암시를 제공한다. 즉 앞부분의 총괄적인 얘기는 후대에(帛書시대까지) 텍스트를 만드는 사람이, 문장흐름의 호흡을 여유있게 하기 위하여 그 내용을 보다 추상적으로 종합할 수 있는 어떤 경구를 만들어 삽입했거나, 돌아다니는 병가(兵家)의 속담이 그 내용과 잘 부합된다고 생각되어 결합시킨 것이 분명하다. 간본(簡本)君子居則貴左, 用兵則貴右로 시작하여 以喪禮居之로 끝나고 있는데 그 내용은 거의 왕본(王本)과 동일하다.

 

 

3. 아름다운 무기야말로 상스럽지 못한 기물이다

 

다음으로 이 서론부분에 있어 왕본(王本)백서본(帛書本)은 두 곳이 차이를 보이고 있다.

 

 

竹簡本 ()
帛書甲 夫兵者, 不祥之器也. 物或惡之, 故有欲者弗居.
王弼本 夫佳兵者, 不祥之器, 物或惡之, 故有道者不處.

 

 

첫번째 차이는 왕본(王本)부가병자(夫佳兵者)’에서 백본(帛本)의 경우 ()’가 빠져있다는 것이다. ()좋다.’ ‘훌륭하다.’ ‘아름답다는 뜻이다. ()무기를 가리킨다. 무기면 그냥 무기지, 뭐가 또 아름답다고 할 수식어가 붙을 이유는 뭐냐? 그래서 많은 고증가들이 가병(佳兵)’은 어색한 말이며 그것은 오사(誤寫)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는 추()와 자형이 비슷한 데서 발생한 오류며, ()는 유()의 고자(古字)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가병자(夫佳兵者)’부유병자(夫唯兵者)’가 될 것이며 이는 노자텍스트의 수많은 다른 용례와 일치한다는 것이다.(8夫唯不爭,’ 15夫唯不可識,’ ‘夫唯不盈’, 22夫唯不爭등의 용례), 참으로 기발한 고증이라 할 수 있고, 또 원텍스트는 백서(帛書)처럼 분명히 ()’자가 빠진 그냥 부병자(夫兵者)’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왕본(王本)부가병자(夫佳兵者)’를 구태여 부유병자(夫唯兵者)’의 오사(誤寫)로 볼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무기는 불상지기(不祥之器)일 뿐이라는 주장에, 의미상의 콘트라스트를 강화하기 위하여 (, 훌륭한)’라는 형용사를 일부러 삽입한 아이러니칼(ironical, 반어적인)한 표현으로 그냥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기는 무기일 뿐이며, 노자(老子)의 반전(反戰, Anti-War)사상에서 보면 그것은 다 불상지기(不祥之器)일 뿐이다. 무기는 본질적으로 아름다울 수 없는 것이다. 아팟치 헬기(AH-64)면 어떻고, 스텔스 전투기(F-117)면 어떻고, 토마호크 미사일이면 어쩌자는 것이냐? 이런 정교하고 아름답고 훌륭한 무기[佳兵]인들, 그것이 다 불상지기가 아니드냐? 여기 노자의 의미맥락에는 이러한 아름다운 무기야말로 불상스러운 기물일 뿐이라는 아이러니의 톤을 깔고 있는 것이다. ()앞에 가()를 삽입한 사람의 의도를 우리는 읽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어떤 의미맥락의 생동감을 살려냈다면 그것 또한 하나의 판본으로서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4. 백서본보다 왕본이 이 부분은 맞다

 

두번째 차이는 백서본(帛書本)과 왕본(王本)의 의미체계가 완벽하게 상반되는 불상사를 노출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백본(帛本)에 따르면 끝 구절인 유욕자불거(有欲者弗居)’는 그러한 불상지기(不祥之器)욕심있는 자들은 거()하지 않는다라고 해석될 수밖에 없다. 욕심있는 자들은 분명 전쟁을 좋아하고 가병(佳兵)을 좋아할 것이다. 불거(弗居)한다니 그 무슨 말인가?

 

왕본(王本)은 그 부분이 유욕자(有欲者)’가 아닌 유도자(有道者)’로 되어있다. 물론 왕본의 의미는 정확하게 전체문맥과 일치한다. ‘도가 있는 자들은 불상지기에 처하지 아니한다.’

 

 

帛書 有欲者弗居
王弼本 有道者不處

 

 

왕본(王本)을 따라야 할까? 백본(帛本)을 따라야 할까? 문제는 고증가들에게 백본(帛本)의 권위는 왕본(王本)에 대해서 절대적이라는 데 있다. 왕본(王本)이 맞고 백본(帛本)이 틀리다고 일축해 버릴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고명(高明)과 같은 고명한 고증가는 유욕자(有欲者)’의 욕()()’의 가차자(假借字)이며, ‘()’의 의미는 ()’와 상통한다고 보았다(廣雅釋詁: ‘, 道也’)

 

물론 이러한 고증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하게 아전인수격의 고증에 불과하다. 나의 결론은 간단하다. 이 부분에 관한 한 백본(帛本)이 엉터리인 것이다. 베끼던 사람이 잠깐 깜박 졸았든지, 잘못 초사(抄寫)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현행의 왕본(王本)백본(帛本)의 오사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정도의 권위 있는 다른 전승의 판본이라는 사실을 담백하게 받아들이면 끝나버리는 문제인 것이다. 이 부분에 관한 한, 왕본(王本)이 옳고 백본(帛本)이 틀린 것이다.

 

 

5. 전쟁에는 승리가 없다

 

다음으로, 우리가 고찰해봐야 할 것은 이 31장의 전체의미와 간본(簡本)에 이 장이 출현했다는 사실 그 자체에 관한 충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일 것이다. 사실 우리가 여태까지 고찰해온 노자사상의 맥락을 잘 살펴보면, 31장은 앞의 30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30장과 31장은 분명히 동일한 병가(兵家)의 사상을 표현하고 있는 연속적인 맥락선상에서 이해될 수밖에 없다. 31장은 30장의 ()’의 사상, 다시 말해서 과(, 전쟁의 유리한 결과, 즉 승리)는 부득이(不得已)함에서 오는 피치 못할 결과일 뿐이며, 그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나의 강()함의 과시가 될 수가 없다[果而勿强]고 하는 근원적인 패시피즘(radical pacifism)의 보다 구체적인 설명이며, 그것을 병가(兵家)의 예법(禮法)의 한 실례로써 표현한 것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전쟁은 오직 부득이한 것일 뿐이며, 그것 자체가 필요악이기 때문에, 전쟁에는 진정한 의미에서 절대적인 승리와 절대적인 패배가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승리도 결국 패배일 수 있는 것이요, 패배도 결국 승리일 수 있는 것이다. ‘전승(戰勝)’이라고 하는 상식적 가치 판단의 근원적인 불성립(不成立)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30장의 주제가 병으로써는 천하를 강하게 할 수 없다[不以兵强天下].’라 한다면, 31장의 주제는 전쟁에는 승리가 없다라는 주장이다.

 

 

6. 노자의 사상은 31장의 병가적 지혜로부터 1장의 추상적 지혜로 발전했다

 

그런데 우리의 주목을 끄는 사실은 외견상 같은 맥락의 한 덩어리처럼 보이는 3031장이 간본(簡本)에서 각기 다른 조()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30은 갑조(甲組)4번째 장에 있고, 31장은 병조(丙組)4번째 장에 들어 있는 것이다. 많은 학자들이 간본(簡本)의 갑()ㆍ을()ㆍ병조(丙組)가 제각기 특징 있는 주제를 중심으로 묶인 유기적 체계라는 주장을 해왔다. 그러나 간본(簡本)의 연구를 깊게 해보면 해볼수록 우리는 갑()ㆍ을()ㆍ병조(丙組)가 각기 제나름대로 독자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 일관적 체계라는 생각을 하기에는 너무도 잡다하고 예외적인 상황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3031장이 같이 병조(丙組)에 묶여 있다고 한다면, 병조(丙組)간본(簡本) 내용은 병가(兵家)적 지혜를 중심으로 편집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갑조(甲組)와 병조(丙組)의 다른 전승에 분산되어 있다는 사실은 그러한 추측을 불허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일반적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 병가적(兵家的) 지혜는 노자사상의 원초적 형성에 작용한 그 기저라 말할 수 있다.

 

이 말은 곧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의 통념은 노자의 사상은 원래 심오하고 추상적인 우주론ㆍ가치론의 체계며, 그러한 우주론적 추상체계로부터 중국의 병가적(兵家的) 지혜가 응용되어 발전해 나왔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31장의 문제는 이러한 우리의 통념을 산산이 부셔버리는 것이다. 이는 곧 우리의 노자이해가 얼마나 왕필의 현학적(玄學的) 선입견에 의하여 규정되어왔냐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는 것이다.

 

아주 단적으로 말하자면, 1道可道非常道에서 佳兵者, 不祥之器를 운운하는 31장이 연역되어 나온 것이 아니라, 31장의 병가적 지혜로부터 1장과 같은 노자 사상의 추상적 가치 체계가 형성되어 나갔다는 그 역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지혜의 형성이, 인간의 길지도 않은 언어의 역사 속에서, 과연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관해 매우 본질적인 통찰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인간의 지혜는 전쟁(War)을 떠나서 논의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전쟁과 더불어 시작하여 전쟁으로 끝날지도 모를 일이다. 석기시대의 유적지들이 대부분 끄슬린 흔적을 남기고 있다. 그것은 거개(擧皆)가 모두 전쟁의 폐허였던 것이다.

 

 

7. 서양의 폴리스와 중국의 전국시대의 공통점

 

사랑, 전쟁, 종교! 이런 것들은 인간세의 비합리적 측면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것들이다. 그러나 전쟁처럼 파괴적이고 일시적이며 대량적이며, 또 압도적인 정열과 근원적인 회의를 강요하는 것은 없다. 인간의 역사는 바로 이 전쟁이라고 하는 인간의 극단적 탐욕에 대한 비극적 성찰, 대비, 극복의 역사였던 것이다. 인간세의 역사란 전쟁과 평화의 리듬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희랍철학이라는 인류의 희유의 지혜의 결정이 모두 폴리스라고 하는 공동체의 삶의 기반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폴리스(Polis)라고 하는 것은, 가장 그 적나라한 현실의 모습으로 논의하자면, 그것은 전쟁국가(warring states)였다. 다시 말해서 그 궁극적 존재의의가 전쟁의 성공적 수행을 위한 것이라는 데 있었다. 폴리스에서 전쟁이라고 하는 전제를 제거하면 실제로 남는 것이 없다. 기실 우리가 우리 문명의 선구적 업적으로서 찬양하는 모든 폴리스의 문화가 바로 전쟁이라는 가치에 종속되는 것이다. 노자철학이 탄생된 배경을 이루는 고대중국의 전국(戰國, chan-kuo)’이라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는 폴리스와 큰 차이가 없다. 지정학적 조건 때문에 그 나라의 스케일이 폴리스보다 더 컸을 뿐이다(플라톤이 두 살 이었을 때[425 B.C.] 아테네의 인구는 시민 116천명, 거류민 21천명, 노예 8만명, 도합 217천명 정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플라톤(Platon: BC 427~347)이 말하는 이데아(idea)라는 것도 순수 사변적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현상(appearence)과 실재(reality)의 파르메니데스(Parmenides)적인 엄격한 2분 위에 성립한 고도의 인식론의 소산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데아라는 형상의 실제적 의미는 다름아닌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어떤 기준 즉 본(paradeigma)으로서 제시된 것이다. 그 삶은 폴리스적인 삶이다. 폴리스적인 삶이란 곧 어떻게 성공적으로 전쟁을 수행하느냐에 관한 전사(warrior) 혹은 수호자(guardian)로서의 삶이다. 이 폴리스적인 삶의 본은 곧 그 삶의 공동체적인 폴리스의 본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어떻게 좋은국가의 본이 제시됨으로써 그 성원들의 좋은삶이 보장되느냐 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이 좋음이란 궁극적으로 전쟁의 승리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전쟁을 항상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삶이란, 우선 감각적인(aisthésis) , 즉 욕정에 이끌리는 삶이 될 수가 없다. 우리가 훌륭한 사관생도의 절제된 모습을 쳐다보면 연상될 수 있듯이, 폴리스의 수호자들의 모습은 고도로 절제된 삶의 모습이며, 이 절제는 적도(適度, to metrion)’균형(to symmetron)’을 의미한다. 이렇게 과ㆍ불급이 없는 인간의 행위를 플라톤(Platon: BC 427~347)은 중용(to meson) 이라고 일컫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중용을 실천하는 삶의 좋음(, to agathon)’, 그 좋음의 이데아에 대한 앎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배움이며, 이것이야말로 폴리스의 수호자들이 반드시 익히고 따라야 할 원리(arché)인 것이다.

 

 

8. 플라톤의 유토피아는 전쟁의 가치를 위해 통제된 사회였다

 

이렇게 절제된 삶은 감각적인 것을 넘어선, 눈으로 보이지 않는 어떤 영원한 것, ‘언제나 똑같은 방식으로 한결같은 상태로 있는 것’, 즉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 위에서 성립하는 것이다. 그것은 감각에 의해 지각할 수 있는 것들(ta aisthéta) 속에서는 이루어질 수가 없다. 그것은 오직 지성(nous)에 의하여만 알 수 있는 것들(ta noéta)과의 관계에서만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플라톤(Platon: BC 427~347)의 이데아론도 바로 이러한 국가론의 틀 속에서 성립한 것이며, 그 국가론의 궁극적 이데아는 곧 전쟁의 승리라는 이데아인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가 제시하는 이상적 국가(유토피아)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모든 감각적ㆍ상식적ㆍ현상적 구도를 모조리 파괴시킨다. 가족ㆍ사유재산ㆍ예술…… 그 모두가 파괴된다. 부인의 공유는 곧 남편의 공유를 의미하며, 이는 곧 아들, , 아버지, 엄마와 같은 사적 언어와 그에 담긴 모든 가치관의 파괴를 의미한다. 아이들은 우생학적 기준에 의하여 선별되고 도태되며, 남녀는 전쟁수행을 위하여 완벽하게 동등하게 교육된다. 음악도 리디아ㆍ이오니아 음악과 같은 감상적 선율은 금지되고, 용기를 길러주는 도리아의 음악이나 인내를 북돋아 주는 프리기아의 군악적 선율만이 허락된다. 드라마나 시 같은 것도 추방되고, 매우 엄격한 체육훈련 속에서만 교육되는 것이다.

 

플라톤(Platon: BC 427~347)이 말하는 유토피아(Utopia)는 한마디로 모든 것이 전쟁이라는 가치를 위하여 통제된 엄격한 규율의 사회다. 그것은 사실 20세기에 히틀러가 건설하려 했던 유토피아(Utopia)의 모습과 거의 유사한 것이다. 실제로 플라톤이 생각한 모델은 스파르타(Sparta)라고 하는 매우 성공적인 전쟁국가의 역사적 현실태와 그 신화였다. 그 신화는 후대에 플루타크에 의하여 조장되었다. 그는 이러한 신화를, 그가 존경한 스승 소크라테스의 억울한 죽음의 충격 때문에 전폭적으로, 의심할 바 없는 선으로 받아들였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플라톤에게 있어서는 데모크라시(민주정)의 패배를 의미할 뿐이었다. 플라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극단적인 집체주의적 사상가(a radical totalitarian thinker)라고 생각해도 그리 불온한 판단은 아니다. 그것은 그가 살았던 시대적 환경속에서는 최선의 패러다임이라고 그는 믿었기 때문이었다.

 

 

9. 폴리스의 협소함과 광활한 대륙이 낳은 전쟁시대의 철학 차이

 

우리는 여기서 희랍철학과 중국철학이 엇갈리는 그 갈림길의 핵심을 발견하게 된다.

 

희랍의 사상가들은 인간의 지혜(Wisdom)의 기준을 전쟁이라는 대전제의 틀 속에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지성의 쾌거로 바라보았다. 그래서 지성과 이성감각욕망에 대비시켰고, 그 사이에 넘나들 수 없는 깊은 도랑을 개입시켰다. 전자는 보이지 않는 가사세계(可思世界, kosmos noētos)가 되어 관념의 대상이 되어 버렸고, 후자는 보이는 가시세계(可視世界, kosmos horatos)가 되어 감관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이분법의 설정이 어떤 의미에서 전쟁이라고 하는 구체적 역사적 상황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분법의 설정 속에서만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이성적 인간을 제작할 수 있다(dēmiourgia, 데미우르고스, 만드는 자)는 것이, 플라톤(Platon: BC 427~347)의 신념의 요체였다(플라톤의 이상국가론[폴리테이아]에 관한 논의 중 플라톤 원전에 관한 부분은 박종현 역주의 국가ㆍ政體를 참조하였다).

 

그런데 반하여 전국(戰國)시대에 형성된 중국인의 지혜는 바로 그 전쟁이라고 하는 인간의 비극적 상황을 근원적으로 어떻게 초월할 수 있느냐에 관한 것이다. 전쟁의 승리에 집착하여 모든 국가와 인간의 가치관을 조작해 나간들, 그 결과는 곧 전쟁의 일시적인 승리는 획득할 수 있을지 모르나 결국 인간성의 본질적 파괴를 초래할 뿐이며, 결국 인간이 왜 사냐고 하는 문제에 대한 아무런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플라톤의 이상국가 속에서 인간은 먹고 살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전쟁이 닥치면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어쩌자는 것이냐? 아마도 희랍철학이 인간의 위대성과 어리석음을 동시에 과시하게 된 가장 근원적 상황은 그 지정학적 편협성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고대 중국의 광활한 대륙에서는 한 나라의 흥망성쇠가 인간이 궁극적으로 집착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종국적 상황이 아니었다. 무한히 개간할 수 있는 대지와 자유로운 인구의 이동이 가능한 정치 상황, 그리고 제후국들간의 종횡무진한 판도의 변화는 인간의 삶과 우주에 대한 보다 자유로운 사색을 허락하는 것이었다.

 

 

10. 원자폭탄이 떨어진 날 절망에 빠진 물리학자들

 

1945년 우리가 일제로부터 해방의 기쁨을 맞이할 즈음, 영국의 대학도시 케임브릿지로부터 약 40킬로미터 떨어진 한적한 시골 고드만체스타(Godmanchester)의 팜 홀(Farm Hall)이라는 저택 속에는 우라늄 클럽에서 연구를 하고 있었던 한 그룹의 독일과학자들이 전쟁포로가 되어 억류되어 있었다. 그 중에는 바로 원자폭탄제조의 결정적 계기가 된 우라늄 핵분열의 원리를 발견한 오토 한(Otto Hahn), 막스 폰 라우에(Max von Laue), 발터 게를라하(Walter Gerlach), 이론 물리학자이며 철학자인 칼 프리드리히 폰 바이츠재커(Carl Friedrich von Weizsäcker), 칼 비르츠(Karl Wirtz), 그리고 불확정성 원리(Uncertainty Principle)를 발견하여 양자역학의 새로운 해석을 도입하고, 원자물리학의 선구적 작업을 이룩한 위대한 이론 물리학자 하이젠베르그(Werner Heisenberg)가 끼어 있었다.

 

194586일 오후 칼 비르츠는 하이젠베르그에게 히로시마라는 일본의 도시에 미군에 의하여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다는 소식을 전한다. 처음에 하이젠베르그는 그 보도를 믿지 않는다. 하이젠베르그는 미국의 과학자 동료들이 그렇게 빨리 실용가능한 원자폭탄을 제조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을 전혀 배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날 밤, 원폭에 소요되었던 막대한 기술출자에 대한 뉴스해설자의 설명을 듣고 비로소, 그가 지난 25년간 심혈을 기울여 왔던 원자물리학의 발전이 순식간에 10만명을 훨씬 넘는 인간을 죽음으로 휘몰았다는 엄연한 사실에 대면하게 된다.

 

어둠이 깔린 그날 밤, 괌 홀 뒤에 있는 잔디밭에 앉아있는 칼 프리드리히 폰 바이츠재커와 하이젠베르그 사이에서는, 자결을 할 듯이 보이는 낙망속에 문을 꼭 닫고 있는 오토 한에 대한 심려와 더불어, 기나긴 격정의 토론이 벌어진다. 그 토론의 내용이 하이젠베르그의 자서전적 명저, 부분과 전체(Der Teil und das Ganze, Gespräche in Umkreis der Atomphysik)16장에 상세히 수록되어 있다(김용준 역). 아마도 그날 밤, 오토 한, 하이젠베르그, 닐스 보아, 그리고 질량이 곧 에너지라고 하는 유명한 상대성법칙을 발견한 아인슈타인, 이들 모두 어떠한 비통한 심정에서 고통의 심연을 헤매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의 반전사상가 노자(老子) 또한 이들의 고통에 참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유추하지 않으면 아니될 것이다.

 

정의(to dikaion, 올바른 것)란 더 강한 자(ho kreittōn)의 편익(to sympheron)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국가, 338c’라는 트라시마코스(Thrasymachos)의 적나라한 윤리적 발언이 결코 인간세에서 정당하게 논박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연상한다면, 일본의 끔찍한 남경대학살 만행극이나 미국의 히로시마 원폭투하는 너무나 당연한 강자간의 인과응보적 사태로 이해될 수 있다. 한 발자국 더 나아가서, 일본군의 총부리에 쓰러져 간 무고한 중국ㆍ조선의 인민 그리고 동남아시아 전 인민의 희생자수가 히로시마 원폭에 희생된 일본인민의 수보다 몇 십배, 몇 백배, 아니 그 몇 만배에 달한다고 한다면 히로시마 원폭 그것이야말로 더 큰 살상을 중지시키는 평화의 상징일 수 있을 뿐 아니라, 더 큰 죄악을 방지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 위대한 도덕성을 확보할

수도 있다. 오만한 왜놈의 콧대를 꺾어주는 양키 아저씨의 정의로운 손길로 이해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사태였을 것이다. 몽양 여운형에게나 춘원 이광수에게나, 백범 김구에게나 미당 서정주에게나 그것은 분명 바빌론의 포로 생활에 해방의 멧세지를 안겨주는 메데스(Medes)와 바사(Persians)제국의 제왕 고레스(Cyrus)의 복음과도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이제, 너희는 기뻐 뛰며 길을 떠나 안내를 받으며 탈없이 돌아 가리라. 너희를 맞아 산과 언덕들은 환성을 터뜨리고 들의 나무가 모두 손뼉을 치리라. 가시나무 섰던 자리에 전나무가 돋아나고 쐐기풀이 있던 자리에 소귀나무가 올라오리라. 이사야55 : 12~13

 

 

그들은 원폭의 굉음과 함께, 저기 저 새 예루살렘, 시온성과도 같은 한양도성의 새모습을 찬양하는 노래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광풍에 시달려 고생하여도 위로해주는 이 없는 도성아, 이제 나는 너의 돌들을 홍옥 위에 쌓아 올리고 청옥 위에 성의 주추를 놓으리라. 루비로 요새의 뾰죽탑을 만들고 수정으로 성문들을 만들며 성 둘레를 보석으로 쌓으리라. 이사야54 : 11~12

 

 

나는 이러한 해방과 새 희망의 복음을 전하는 히로시마 원폭과 관련되어, ‘세계인류평화운운하는 모든 논의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오직 일본이 자신의 만행에 대한 자성의 깊이가 부족한 소치이거나, 일본의 끔찍한 죄악상의 인식 부족에서 오는 서양인의 낭만주의로 밖에 달리 이해될 방도가 없었다. 나는 하이젠베르그와 폰 바이츠재커의 대화에 참여하는 그 순간 비로소 거대한 세계사의 흐름에 참여하는 그들의 웅혼한 고민의 정체를 알 수 있었고, 그 순간 비로소 노자의 3031장의 의미를 깨우칠 수 있었다.

 

 

11. 히로시마 원자폭탄이 터지며 새로운 패도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여기 하이젠베르그가 개탄하는 것은 원폭이 일본의 죄악을 저지시키기 위하여 활용되었다는 그 사실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러한 일본의 죄악으로부터 해방되는 조선의 인민의 기쁨을 외면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의 문제의식은 전쟁이라는 것 그 자체, 그리고 전쟁을 바라보는 미국이라는 세계사적 전위의 도덕성에 관한 것이다.

 

여기 우리는 세계의 지성이 미국이라는 인류사의 새로운 프론티어(frontier)를 바라보는 눈을 상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미국은 미국 인민자체의 노력에 의하여 형성된 역사가 아니다. 미국에는 미국국민이라는 고정된 실체가 없다. 미국은 아메리칸 인디언을 제외한다면 모두가 이민이다. 와스프(WASP, 백색 앵글로색슨계)도 이민이요, 로스앤젤레스의 코리안도 이민이다. 단지 조만(早晩)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가 이민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아메리카 합중국의 탄생은 유럽의 지성에게 있어서는 자기들의 역사가 구현할 수 없었던 어떠한 갈망, 자유라든가 정의라든가 진리라든가 평등이라든가 하는 새로운 가치를 구현하는 희망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뉴욕 맨하탄의 하버에 우뚝 서있는, 프랑스의 인민들이 기증한 자유의 여신상(Statue of Liberty)도 곧 이러한 세계인의 갈망을 표현하는 도덕성의 상징이었다. 미국의 헌법은 존 록크로부터 시작된 계몽주의적 자유주의 정신의 구현이었다. 그것은 드볼작(Dvořak)이 표현한대로 신세계교향곡의 프렐루드(prelude)였다. 나치의 압제에서 신음하던 유럽인들이 대서양의 풍랑을 건너고 건너서 우뚝 솟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함께 치솟은 자유의 여신상의 횃불을 쳐다봤을 때 흘린 눈물을 한번 연상해보라! 미국은 곧 세계의 양심이 도와 만든 인류근대사의 도덕적 구현체였던 것이다. 미국은 발랄했고 생기 넘치며 모든 사람이 각자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자유로운 생계가 보장되는 그야말로 인류사 미증유의 풍요로운 신세계였다.

 

그런데 이러한 미국이 우라늄 핵분열의 연쇄반응원리를 이용하여 사람을 죽이는 무기를 개발하는데 앞장섰을 뿐아니라, 그 개발된 무기를, 이미 패전이 확정된 일본인들의 머리 위에 성급하게 투하시켰다는 사실은, 정치역학적 효용을 운운키 전에, 이미 미국이라는 세계사의 도덕성에 하나의 거대한 치욕적 전환을 가져온 사건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의미하는 것이다. 세계의 지성이 키워온 신세계의 꿈을 배반하는 사건인 동시에, 바로 미국이 왕도(王道)’의 길에서 패도(覇道)’의 길로 그 역사의 노정을 선회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곧 미국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사 전체의 문제인 것이다. 즉 인류사 전체가 이제는 제국주의의 힘의 역학의 장으로 빠져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히로시마 원폭은 세계 2차대전의 종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패도의 시대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히로시마 원폭은 병()으로는 천하(天下)를 강()하게 할 수 없다는 노자의 충언을 근원적으로 위배하는 사건이며, 바로 과이부득이(果而不得已)’의 행위가 아닌 취강(取强)’의 자기현시에 불과한 미제국주의의 신호였던 것이다.

 

 

12. 전승하면 상례로 처리해야 한다(吉事尙左, 凶事尙右. 偏將軍居左, 上將軍居右, 言以喪禮處之. 殺人之衆, 以哀悲泣之. 戰勝. 以喪禮處之)

 

31장의 주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무어라 말해야 좋을까? 그의 궁극적 통찰은 전쟁에는 승리가 없다(There is no victory in war)’라는 것이다. 전승(戰勝)은 반드시 상례(喪禮)로 처하라는 것이다. 전쟁의 승리란 승리가 아니요, 무수한 인명의 살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전쟁의 승리는 기쁨으로 맞이할 것이 아니라 애비(哀悲)로 읍()하라는 것이다.

 

경복궁 근정전에 앉으면 남산(南山)이 보인다. 이것을 남면(南面)이라고

한다. 이것은 곧 인주(人主)의 자리다. 근정전에 앉아 보면 나의 왼팔쪽이 동대문이 될 것이요, 나의 오른팔쪽은 서대문이 될 것이다. ()이란 태양이 떠오르는 자리요, 만물이 소생하는 봄바람[春風]의 방향이니, 밝음과 생명을 의미한다. (西)란 태양이 지는 자리요, 만물이 조락(凋落)하는 싸늘한 가을바람[秋風]의 방향이니, 그것은 어둠과 죽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예로부터 남좌여우(男左女右)’란 말이 있으니 곧 동()이 양이요, (西)가 음이라는 뜻이다. 예로부터 새 기운의 소생과 계승을 상징하는 태자를 일컬어 동궁(東宮)이라 부른 것도 이런 이치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니 군자(君子)는 일상생활에서는 생명의 자리인 좌()를 귀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좌()쪽의 자리가 상석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상례(喪禮)에서는 좌()쪽의 자리가 상석이 될 수가 없다. 전쟁은 죽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전쟁에서 승리를 했어도 그 편성대열은 흉사(凶事)의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장군(上將軍)이 왼쪽에 앉지 않고, 오른쪽에 앉으며, 부관인 편장군(偏將軍)이 오히려 왼쪽에 앉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곧 길사상좌 흉사상우(吉事尙左, 凶事尙右)’의 뜻이다.

 

 

13. 이기게 해달라 하나님께 기도하는 축구감독를 TV에 노출시키는 행태에 대해

 

나는 얼마 전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축구감독이 항상 전승(戰勝)을 빌며 틈나는 대로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을 공적인 자리에서 계속 비추이는 것을 보고, 그러한 행동은 공인으로서 삼가하는 것이 좋겠다는 충언을 선학(先學)으로서 모 일간지에 쓴 것이 도화선이 되어 엄청난 사회적 논의가 일어났던 것을 많은 독자들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에게도 그 나름대로 이유가 없을리야 없겠지만, 그가 노자31장의 전승이상례처지(戰勝以喪禮處之)’라고 하는 이 한마디만 기억했더라도 그렇게 경솔한 행동은 반복적으로(의도적으로)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싸움에는 결국 승리가 없다. 승리를 비는 마음이야말로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간절한 호소인 것을 누가 모르랴마는, 그러한 편당적 가치를 빌어야 할 자리가 하나님의 자리는 아닌 것이다. 나로 인해 승리가 온다면, 패배를 맛봐야 하는 자들에게도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은 같이 내려야 하는 것이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아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 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마태5 : 44~45

 

 

하나님의 햇빛은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 똑같이 내려 쬐며, 하나님의 비는 의로운 자에게나 의롭지 못한 자에게나 똑같이 내려 적시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무분별심을 발견한다. 여기서 우리는 전승(戰勝)을 상례(喪禮)로 대하라는 노자의 정언명령의 궁극적 존재론적 근거를 발견하는 것이다. ()과 패()는 결국 인간의 조작이요. 께임이요 유희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축복의 가치 기준은 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태5 : 48

 

 

지혜는 삶의 기술의 증진이 아니다. 지혜는 구체적인 지식이나 분별이나 편가름을 넘어서는 보다 일반적인 가치에의 발돋음이다. 지혜는 곧 승()과 패()와도 같은 분별적 지식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온전하심에 도달하는 것이다. 기독교도들은 대부분이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배반하는 삶의 똘똘함이나 명석함을 지혜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이 노자를 읽고 새로운 각성을 얻기를 갈망하는 것이다.

 

 

 

 

인용

목차 / 서향 / 지도

노자 / 전문 / 31 / 노자한비열전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