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제의 허구, 발전사관의 허구
샹폴리옹(Jean-Fransçois Champollion, 1790~1832)이 로제타 스톤(Rosetta Stone)을 해독한 1822년 이래 진행되어 온 집중적인 고고학적 연구성과는 고왕조의 피라미드나 신왕조의 왕들의 계곡 네크로폴리스를 건설한 사람들이 노예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확증짓는다. 우선 이집트는 잉여가치가 풍요로운 사회였다. 그리고 민중과 통치자 사이에 비록 신화적 세계관이긴 해도 삶의 가치관에 관한 일체감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일년에 아케트 범람기 4.5개월 동안에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다. 이러한 휴식기는 나일강의 수위가 높아 석재를 배로 나르기에 편했고 건축지 가까운 곳에 접안이 용이했다. 따라서 아케트시기에는 자발적 인력동원이 수월했다. 이들의 상당수가 높은 수준의 보수를 지급 받는 전문 기술자들이었다. 거대 공사 주변에는 이들의 집단주거지가 있었으며 이들의 보수에 관한 명세자료도 다양하게 발견되었다. 대피라미드 주변에는 이들 공사기술자들의 무덤도 발견되었는데, 귀족이나 고관처럼 그들도 영생을 위한 자신들의 무덤까지 함께 건설하였던 것이다. 그만큼 그들은 동등한 권리를 대접받는 존재였다. 이집트 사람들에게 노동(εργασία)이란 개념은 평범한 인간들뿐 아니라, 동물, 신, 왕이 같이 참여하는 개념이었다. 이집트사회에는 ‘노예’라는 유전적 신분개념이 명료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고등한 성직자들도 신의 노예였다. 그러니까 ‘노예(slave)’라는 개념보다는 ‘종(servant)’이라는 상식적 개념이 더 어울린다. 중요한 사실은 문헌상 전혀 ‘노예판매’의 기록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전쟁에서 얻은 외국의 포로들은 ‘왕의 노예(king's slave)’가 되었지만은 이들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했으며 응분의 보상을 받았다. 노예의 학대는 매우 수치스러운 일로 여겨졌다.
기자의 대피라미드를 멀리서 보면 정확한 정사각뿔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6면체의 돌을 쌓아올린 것이기 때문에 들쑥날쑥한 계단처럼 모든 면이 되어있다. 그러나 피라미드가 완성되었을 당시에는 최외각에는 그 톱니같은 계단면을 아주 정교하게 돌로 끼어맞추어, 광택나는 매끄러운 평면으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4개의 정삼각형이 만나는 꼭대기 일정부분은 금도금이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그것이 완성되었을 당시(BC 2580년경)에는 거대한 수정사각뿔처럼 찬란하게 빛났을 것이다. 금도금된 부분으로부터 찬란하게 비쳐내리는 모습은 태양이 만물을 비추는 것을 형상화 한 것이다. 태양신에게 바치는 인류 최고(最高)의, 최상(最上)의 심볼리즘이었다.
인간은 흘러가는 시간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흘러가는 시간은 저기 저 우뚝 서 있는 피라미드를 두려워했다. 이러한 지교(至巧)한 정성이 과연 포악한 파라오의 채찍 아래서 신음하는 노예들의 작품일 수 있겠는가? 우리는 칼 맑스의 노예제사회를 연상할 수는 없다. 노예제사회를 찾으려 한다면 고대 이집트사회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의료혜택도 없이, 영주권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비참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맨하탄의 뒷골목에서 찾든가, 전 인류를 상대로 자신들도 먹기를 꺼려하는 식품을 타국민들에게 퍼멕임으로써 경제적 이득을 유지하고자 하는, 도덕성을 상실한 병적인 미국의 일부 자본주의 행태에서 찾는 것이 훨씬 리얼할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새카즘(Sarcasms, 비아냥)이 아니다. 인류의 고대문명에 관한 우리의 인식을 근원적으로 혁명하지 않는 한 『논어』와 같은 고전을 공부할 하등의 이유가 없어지고 만다. 맑스의 단계발전사관이 역사발전의 경제사적 시각을 제공하고, 또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정당화하기 위한 형이상학적 장치로서 기능했다는 맥락에서는 나름대로 의미를 지닐 수도 있겠지만, 인류사를 전관(全觀)하는 새로운 틀이 되기는 어렵다. 알고보면 그러한 발전사관의 다양한 형태들이 모두 기독교의 섭리사관(攝理史觀)의 세속적 표현일 뿐이다.
우리의 논지는 매우 명료하다. 인류고대문명의 4대 발상지가 모두 나일강역과 아시아대륙에 속하는 것이며, 서양이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문명세계로부터 소외되어 있던 미개지역이라는 것이다. 인류문명의 근원을 그레코ㆍ로만 중심으로 생각하는 모든 역사기술은 기독교를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편협한 편견의 소산일 뿐이다. 인류문명의 주축은 어디까지나 아시아대륙이다. 서양의 근대를 생각하고 그 이전의 중세를 생각하고 그 이전의 로마문명을 생각하고 그 이전의 희랍문명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만큼 세월의 문명축적의 총량이 그 이전에 이미 이집트ㆍ아시아대륙에 선재했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정당하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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