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문명과 한문
본 서의 모두(冒頭)에서 이야기했듯이 고전이란 고(古)에만 있는 것이 아니요, 금(今)에도 있는 것이다. 나는 이 땅에서 자라나는 나의 후학들이 옛 고전 만을 공부할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2000년 후에도 읽힐 수 있는 고전을 남겨줄 것을 희망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 한 갑자를 돌고난 인생을 회고해 보면서, 나는 갑자기 나의 학문세계의 초라한 모습을 깨닫게 되었다. 나 자신의 고전을 만들기에는 나의 학문세계가 너무도 소천(疎淺)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라도 어서 확고한 뿌리를 내려야겠다는 사명감이 마음속에 자리잡게 되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중국의 고경인 13경 전체에 대한 주석이다. 중국역사를 통해서도 한 사람이 13경 전체를 주석한 예는 거의 없다. 그러나 시대의 진보에 따라 막대한 정보의 양이 효율적으로 소통될 수 있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작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모한 듯이 보이는 이 작업을 기획하게 된 이유는 우리민족이 세종대왕이라는 걸출한 지도자 덕분에 한글이라는 자기 언어의 시각적 표현방법을 획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전, 그 이후를 통틀어 민족문화의 자산이 대부분 한문을 매개로 이루어져왔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그런데 이 한문이라는 언어는 13경이라는 고전을 기초적 어휘로 삼는 언어이다. 한문이 불행하게도 표음문자(表音文字)가 아니라 표어문자(標語文字)라는 사실이 더욱 고전에의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 우리나라 학문의 기본은 인문학이 될 수밖에 없고, 인문학의 기본은 국학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국학자료의 대부분이 한문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82년도 하바드대학에서 학업을 마치고 귀국한 이래 ‘번역의 중요성’을 줄기차게 강조하였고 ‘한문해석학’이라는 새로운 치학(治學) 방법을 제창하였다. 그리고 그것의 제도적 실현을 역설하였다. 예를 들면, 서구학계와 미국학계에서 고전학이 발달하는 이유는 곧 치열한 고전번역 작업을 박사학위 논문으로 인정해주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우리나라 대학에서도 국학고전자료의 초역작업을 박사학위논문의 주종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역설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주장은 전혀 인정되지를 않았다. 학계가 이러한 나의 주장을 외면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학계의 주도권을 이끌어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가 말하는 ‘번역’을 할 수 있는 실력이 없기 때문에, 표절에 가까운 천박한 논문쓰기로 한평생을 보낸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논문이란 해석 안 되는 부분은 슬쩍 넘어가면 되고, 여기 저기 관계 서적들을 참고하면 어떻게든 외장을 갖출 수 있지만, 번역이란 한 줄 한 줄, 한 글자 한 글자에 소략함이 있을 수 없고, 더 중요한 것은 고전의 창출자에 대한 생평이나 시대배경을 철저히 조사하지 않고서는 적당한 논설이 불가능하다. 번역이야말로 가장 오리지날하고 가장 창조적인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번역이란 ‘왜놈들이나 하는 천박한 짓’이라는 식으로 폄하하여 온 것이 우리나라 학계의 현실이었다. 기실 그들이야말로 ‘왜놈’을 베껴먹으면서 살아온 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말하는 ‘왜놈’이야말로 자신의 수치를 은폐하기 위한 역설적인 단어였다. 일본학계야말로 번역을 중시하는, 세계인들의 존경을 받는 학문의 장인 것이다.
그러나 내가 20여 년을 줄기차게 소리쳐온 덕분일까, 최근부터 한국학계에서도 나의 진실을 수용하기 시작했고 고전번역을 학위논문으로 인정하는 사례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외롭게 한국고전의 국역을 담당해왔던 민족문화추진회도 한국고전번역원이라는 국가기관으로 승격되기에 이르렀다. 퍽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학계도 이제는 일제의 연장선상에 서있던 관료주의적 허위의식이 사라져가고 진정한 인문학을 태동시키려는 소장학자들의 노력이 돋보이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행보에 발맞추어 이 땅의 후학들을 위하여 한학의 기초어휘를 바르게 정립해주어야만 하겠다는 발원이 내 마음속에서 일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위인지학(爲人之學)이 아니요 위기지학(爲己之學)이다. 나 자신이 진정한 학문의 대로에 진입하기 위한, 나 자신이 스스로 진정한 호학(好學)의 길을 대성하기 위한 고심의 결단인 것이다. 남은 생명의 가치를 이 작업을 위하여 유감없이 불사르기로 각오한 것이다.
이러한 대업의 실천에는 많은 문제가 뒤따른다. 우선 이러한 작업이 성공리에 수행되기 위하여서는 모든 사회적 활동을 중단하고 오로지 이 작업에만 매달릴 수 있는 환경의 조성이 필요하다. 이러한 환경의 조성을 위하여 최소한의 기금마련은 불가피했다. 그러나 나와 같이 일정한 제도에 속하지 않은 사람에게 그러한 지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념적으로나 인상론적으로는 지원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나 기관도 막상 나에게 그러한 혜택을 베푸는 것을 꺼려했다. 일본의 경우 세계인문학의 역사를 뒤바꿔놓은 희대의 걸작, 모로하시 테쯔지(諸橋轍次) 선생 일인의 노력의 결실인 『대한화사전(大漢和辭典)』 13권의 웅혼한 모습이 타이슈우칸(大修館) 서점 대표 한 사람의 34년간에 걸친 눈물겨운 지원으로 이루어진 사례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런 진실을 기대한다는 것은 필자나 지원자 상호간에 어려운 일이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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