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합과 비지팅 허스밴드
‘야합(野合)’이란 표현은 내가 생각키로 요즈음의 인류학 용어를 빌리면, 아마도 ‘비지팅 허스밴드 매리지(visiting husband marriage)’ 형태를 취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숙량흘은 첫 부인ㆍ둘째 부인과 이미 일가(一家)를 이루고 있고, 셋째 부인인 안징재는 그와는 별도로 니구산(尼丘山) 산자락에 일가(一家)를 이루고 있어, 숙량흘은 안징재가 있었던 그곳으로 가끔 통근을 했을 것이다【이런 제도를 인류학에서는 방혼(訪婚) 혹은 통혼(通婚)이라고 부른다】. 안징재라는 무녀가 왜 니구산 산자락에 살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우리나라의 무녀들이 삼각산과 같은 성산(聖山) 밑 바위자락에 촛불 켜고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것과 같은 형태의 어떤 가옥형태였을 것이다. 그러나 안씨녀의 본가(本家)는 곡부 성내(城內)에 있었다. 방혼(訪婚)의 의미는 공자의 탄생이 전혀 숙량흘 본가에서는 인정이 안 된 문자 그대로의 야합의 사건이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공구(孔丘)와 안씨녀 모자는 완전히 부계에서는 버림받은 모자였다.
니구 산자락 무녀오두막집에서 쌔큰거리는 아기공자의 울음은 태산(泰山, 타이산, Tai-shan) 대원(大原)의 정적을 깨뜨리고 멀리멀리 퍼져나갔다. 희미한 호롱불 밑에 아기모습을 들여다보고 있는 늙은 장수 숙량흘, 자손을 잇게 되었다는 안도감과 자부감에 흐뭇한 얼굴을 지었을 숙량흘, 그 옆의 꽃다운 여인 안징재는 늠름하고 비범한 기상의 짱구대가리 아기보고 곱게곱게 자라나라고 빌고 또 빌었을 것이다. 니구 자락의 이들 삼인의 모습을 생각하면 눈물스럽게 화평한 정경이 떠오른다. 그러나 이러한 만년의 행복을 산신은 더 받아주지를 않았다. 삼 년 후에 숙량흘은 이승을 떴다.
공자가 17세 때 엄마도 세상을 떴다. 사마천은 공자가 엄마를 아버지 묘에 합장하려 했으나, 아버지의 묘가 어디 있는지를 알지 못해 합장할 수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곧 엄마가 생전에 공자에게 아비의 묘를 아르켜주지 않았다는 의미가 된다. 숙량흘의 죽음과 관련된 많은 사연이 있어, 안씨녀가 숙량흘의 묘지를 아르켜주기를 꺼려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결국 우리는 방혼(訪婚)의 의미와 관련지어 안씨녀는 남편의 상례로부터 완벽하게 차단되어 있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안징재 자신이 남편의 상례에 참여할 수 없었고 따라서 남편의 묘지를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공자는 엄마를 우선 오보지구(五父之衢)에 빈소를 차렸다가, 만보(輓父, 완후우, Wan-fu)의 어머니를 만나 아버지의 묘소가 방산(防山)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리로 합장한다. 만보의 엄마는 아마도 숙량흘의 상례에 직접 참여했던 숙량흘 본가계열의 사람이었을 것이다. 숙량홀과 안씨녀의 사별은 그렇게 비극적인 것이었다. 이것은 곧 어린이 공자의 운명은 전적으로 어머니의 슬하에 맡겨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맹모삼천(孟母三遷)’이라는 맹자(孟子) 어머니의 고사는 후대의 『열녀전(列女傳)』과 같은 문헌에 나오는 것으로써 실제상황이라기 보다는 후대에 어떤 현녀상(賢女像)의 패턴에 의하여 날조된 것이다. 그러나 진실로 공자의 엄마 안씨녀의 보살핌이야말로 극진하고 또 극진한 것이었을 것이다. 안씨녀는 공자가 17세의 나이로 장성할 때까지 살았다. 그때까지 공자는 안씨 가통 속에서 사물을 인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가?
▲ 균천강성(鈞天降聖)
공자를 낳을 때 공자의 모친이 방에서 천상의 음악 소리를 들음.
孔子出生時, 顔氏在房中聽到天上的音樂聲.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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