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이자가 말하는 성인
사마천의 『사기(史記)』 「세가」에, 공자가 17세 때, 노나라의 대부인 맹이자(孟釐子, 멍 리쯔, Meng Li-zi)【맹희자(孟僖子)와 동일인임】가 병으로 죽게 되어, 그의 후계자인 맹의자(孟懿子, 멍 이쯔, Meng Yi-zi)에게 훈계하는 장면이 실려 있다. 공자 17세 때라면 소공 7년인데 그때는 맹의자는 태어나 있지도 않았다. 맹이자(釐子)가 죽은 것은 소공 24년, 공자 34세 때의 일이었다.
이와 같이 「공자세가(孔子世家)」의 기록은 역사적 사실과 부합되지 않는 이벤트들이 시공을 초월하여 꼴라쥬 되어있다. 그런데 여기 우리의 주목을 끄는 사실은 그 훈계의 내용이다. 이 훈계의 내용은 내가 죽은 후에 공자를 스승으로 모시라고 당부하는 것으로, 후계자인 맹의자에게 17세의 공자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사마천이 어떠한 역사적 사실을, 「누가복음」의 저자가 아우구스투스의 호구조사를 날조하는 방식으로, 조립하였다 할지라도 어쨌든 이 메시지의 내용은 17세의 공자의 모습을 전하려는 것이다. 그 첫마디가 다음과 같다.
구(丘)라는 아이는 성인의 후예다.
그 가계는 송(宋)나라에서 망하여 노(魯)나라로 옮긴 집안이다.
孔丘, 聖人之後, 滅於宋.
구(丘)는 애명이다. 따라서 맹이자(희자)가 구라 부른 것은 친근하게 말한 것이다. 그런데 ‘공구(孔丘)는 성인지후(聖人之後)’라는 말은 도무지 우리의 범상한 의미론의 맥락으로는 이해되기가 어려운 표현이다. 우선 성인이라는 표현의 대상이 된 사람은, 공자의 7대조인 정고보(正考父, 정카오후우, Zheng-kao-fu)라는 인물이다. 그런데 공자는 나이 17세, 전혀 알려지지도 않은 평민이었다. 그리고 그때의 공자는 우리가 통상 말하는 의미에서의 ‘성인(Sage)’이라는 의미맥락과는 전혀 무관한 평범한 사람이었다. 공짱구(丘)는 성인이라고 지칭되기에는 아직 어린 소년이었다. 그런데 그의 7대조를 가리켜 ‘성인’이라 표현한 것도 참으로 이상하다. 그것은 분명 어떤 사람의 직업이나 관직이나 특징을 지칭하는 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자시대에 ‘성인’이라는 말이 과연 우리가 쓰는 의미에서의 ‘도덕적 인격을 완성한 지고의 문화인’이라는 말로서 통용되고 있었고, 그러한 맥락에서 ‘성인의 자손’이라고 말함으로써 공자를 성인과 같은 위치로 높이려 했는지는 지극히 의심스러운 것이다. 여기서 성인이라는 말은 그러한 특수한 의미부여의 맥락이라기보다는, 공구라는 청년의 할아버지의 단순한 직업을 표현하는 말일 수밖에 없다. ‘공구 성인지후(孔丘, 聖人之後)’라는 표현은 “공구 걔말야, ‘성인’집 자손이야!”라는 친근한 표현 이상의 어떤 의미도 부여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성인이란 무엇인가?
오늘날 발달된 문자학(文字學)의 연구는 ‘성(聖)’이라는 글자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요소는 귀(耳)라는 부수(部首)에 있는 것임을 말해준다. 재미있게도 최근에 발굴된 백서(帛書) 『노자(老子)』에 의하면, 보다 고본(古本)인 갑본(甲本)은 성인을 ‘聲人’으로 표기하고 있고, 을본(乙本)은 ‘𦔻人’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리고 또 성(聖)자는 청(聽)자와도 통한다. 이 모두 소리[聲]를 귀[耳]로 듣는다[聽]는 뜻이다. 여기서 ‘소리’란 곧 ‘신의 소리’다. 성(聖)이란 곧 ‘신의 소리를 들음’이다. 성인(聖人)이란 곧 신탁의 소리를 듣는 ‘무당’이란 뜻인 것이다. 옛날 무당 중에는 장님의 악사가 많았다. 청각이 비상하게 발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춘추좌씨전』 양공(襄公) 18년조(條)에 진(晉)과 초(楚)가 서로 싸우는데 진나라의 눈먼 악사인 사광(師曠, 스 쿠앙, Shi Kuang)이 바람소리를 듣고 전쟁의 승패를 점치는 장면이 나온다. ‘남쪽의 바람(노래)은 흥이 나질 않고, 죽은 소리가 많습니다. 초나라는 반드시 패할 것입니다[南風不競, 多死聲, 楚必無功].’ 바람타고 들려오는 소리, 그것은 곧 신의 소리였다. 이 소리를 듣는 자들을 예로부터 ‘성인(聖人 혹은 聲人)’이라 불렀던 것이다.
공자가 성인(聖人)의 후예라는 말은 곧 ‘무당집 자손’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나의 논증은 사마천이 「공자세가(孔子世家)」에서 기록하고 있는 맹이자의 훈계 자체의 논리에서 명료해진다. 맹이자는 다시 이 ‘성인’의 뜻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듣기로, 성인 집안자식들은 비록 세상에서 대접은 못 받는다 할지라도 반드시 사리에 통달한 자들이 있다고 한다.
지금 공구라는 아이는 아직 나이가 어리지만 예(禮)를 좋아한다. 예를 좋아한다는 것, 그것이 곧 통달한 자의 증표가 아니겠느냐??
내가 죽으면 곧 너는 반드시 그를 스승으로 모시거라.
吾聞聖人之後, 雖不當世, 必有達者.
今孔丘年少好禮, 其達者歟? 吾卽沒, 若必師之.
여기 의미맥락에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들을 도출해낼 수 있다.
1) 성인의 자식들은 세상에서 대접받지 못한다[不當世].
2) 성인의 자식들은 통달(通達)한 자들이 많다.
3) 호례(好禮)가 바로 그 통달함의 증표이다.
여기서 성인의 의미맥락은 매우 명백해진다. 성인이란 ‘예의 달인’인 것이다. 그렇다면 예란 무엇인가? 공자의 부계를 성인으로 간주한다면 무인 숙량흘 계보 속에도 이미 무속의 핏줄을 읽어낼 수 있다. 거시적으로 본다면 공자의 계보가 송인(宋人)의 계보라는 사실은 은(殷)의 문화를 계승했다는 것을 뜻한다. 은의 문화는 종교적 문화였다. 이러한 부계의 문화전승을 전제하지 않는다면, 이 맹이자의 언명은 곧 안씨(氏) 가풍에 대한 인상을 전이시킨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공자는 안씨녀 당골 슬하에서 컸다. 사마천은 안씨녀 슬하에서 성장하는 소년 공자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공자는 어릴 때 소꼽장난하기를 좋아했는데, 항상 도마와 목기 등의 제사 그릇을 벌려놓고, 예에 맞는 복장을 입고 놀았다.
孔子爲兒嬉戱, 常陳姐豆, 設禮容.
이것은 우리가 당골네집 자식들의 소꼽장난을 생각하면 쉽게 연상이 간다. 여기서 말하는 예라는 것은 바로 ‘시킴굿’과도 같은 굿거리를 말하는 것이다. 즉 공자는 어려서부터 굿(=예)의 달인으로 컸다는 것이다. 니구 산자락의 당골네의 아들로서 이런 굿을 접한다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환경의 소산이었다. 여기 ‘예에 맞는 복장’이라고 번역한 ‘예용(禮容)’의 문제는 순자(荀子)의 유자비판에 이르기까지 집요한 테마 중의 하나이다. 은(殷)인 계열의 독특한 복장을 입었다는 것이다.
▲ 조두예용(俎豆禮容)
孔子爲兒嬉戱, 常陳俎豆設禮容.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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