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정치적 입장
공자가 계씨의 ‘팔일무’를 놓고 통탄하는 모습에서, 많은 학자들이 공자의 입장을 시대착오적 복고주의라고 비판했다. 천자의 예일지라도, 일개 소국의 대부가 사정(私庭)에서 춤추어 무방하다면, 그런 예를 충분히 행할 수 있는 패권의 시대로 이미 진입한 것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계씨가 시대적 흐름을 타고 가는 진보세력이고, 그것을 탄(歎)하는 공자야말로 수구세력이라는 것이다. 이런 식의 비판이 ‘비림비공(批林批孔)’【1973년 8월 7일, 『인민일보』에 실린 ‘공자 - 완고하게 노예제를 옹호한 사상가’라는 문장으로 시작된 문화대혁명 후기의 정치운동】시대의 일반적 논리였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야말로 시대착오적인 오류에 불과하다. 오늘의 관념을 과거에 덮어씌우는 폭력 이상의 그 아무 것도 아니다. 노국(魯國)의 현실에서 삼환(三桓)의 세력은 당시 역사의 진행을 봉쇄하는 가장 보수적인 봉건세력이었다. 다시 말해서 성읍국가적(城邑國家的) 사유(私有)방식으로 인민대중을 착취하는 전형적인 봉건제적 구습의 타락형태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인민에 대한 보편주의적 지향점이 전무했고, 팔일무(八佾舞)를 춘다고 하는 것도 타락한 인간들의 쾌락적 행태의 과시 이상의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공자는 팔일무(八佾舞)가 천자(天子)에게만 전유되어야 한다고 하는 좁은 명분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 아니다. 젊은 공자는 아사노(淺野裕一)씨의 빗나간 주장처럼, 그 자신이 천자가 될 수 있다고 하는 동키호테식의 꿈을 꾸고 있었던 사람일지도 모른다. 공자의 관심은 그러한 명분없는 짓을 저지르고 있는 타락한 삼환(三桓)세력을 어떻게 근원적으로 분쇄시키고 무기력화 시키느냐에 있었다. 공자는 봉건적 구질서의 옹호자가 아니라, 오히려 봉건적 위계질서를 넘어서는 어떤 보편적인 횡적 민의 질서를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공자의 정치제도적 사유의 틀 속에는 오늘날의 의회민주제도나, 선거제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군권(君權)의 강화를 통한 보편적 민의 질서를 구상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한 민의 질서의 담당자는 개방적 외연을 갖는 사(士)일 수밖에 없었다. 공자집단의 정치적 성격은 매우 진보적인 것이었다.
그가 실제로 소정묘(少正卯, 사오정 마오, Shao-zheng Mao)를 죽였다고 한다면 ‘법령으로 이끌고 형벌로써 가지런히 하면, 백성들이 모면키만 할 뿐이요 부끄러움이 없다[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라고 하는 그의 도덕주의적 입장과는 다른 매우 법가적 엄형주의의 행위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공자에게는 이러한 법가적, 변법적(變法的) 보편성과 과단성이 있었다. 그러한 무단적(武斷的) 측면도 있는 사람이었다. 따라서 그의 ‘삼가무장해제’나 ‘소정묘주살’과 같은 일련의 조치는 그의 정치적 입장을 단순히 맹자류의 도덕주의적 왕도(王道)주의자로 해석하기 어려운 복합적 측면을 내포한다.
공문그룹은 정치적으로 매우 진보적인 사람들이었다. 춘추시대의 폐습에 종언을 고하고 제국의 제민지배체제를 향한 새로운 질서의 태동에 근원적인 보조를 맞출 수 있는 매우 유동적인 인간들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한 정치적 입장만으로는 공자를 해석할 수가 없다. 그가 말하는 정치는 제도의 효율성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다웁게 만드는 인간성의 회복에 그 궁극적 소이연이 있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정치는 곧 인간을 인간다움게 만드는 인간해방이요, 그것이 곧 인(仁)의 길이었다. ‘삼년상(三年喪)’을 둘러싼 재아(宰我)와의 논쟁에서도(「陽貨」 21) 공리주의적인 재아의 합리론에 끝까지 양보할 수 없었던 공자의 고집이 엿보인다. 공자는 매우 진보적인 정치적 입장을 취했지만, 그러한 진보적 입장을 묶을 수 있는 인간학의 상위질서가 항상 그에게는 ‘예악’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다. 아마도 이러한 공자의 고집은 은문화와 주문화를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 융회시킨 우리 동양사회의 깊이와 보수성, 그리고 진보성의 다면적 심층을 대변하는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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