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기본이 갖춰진 후에 글을 배워라
1-6.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젊은이들이여! 들어가서는 효성스럽게 하고, 나와서는 다정하게 하시오. 말은 삼가하되 믿음 있는 말만 하시오. 많은 사람을 널리 사랑하되 인한 자를 가까이 하시오. 이 모든 것을 실천하고 남음이 있으면 곧 문자를 배우시오.” 1-6. 子曰: “弟子入則孝, 出則弟, 謹而信, 汎愛衆, 而親仁. 行有餘力, 則以學文.” |
제자 뿐만 아닌 전체에 대한 메시지
앞 장의 전체해석에서 말했듯이 이 장은 특칭(特稱)적 대상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공문에 몰려오는 젊은이들을 향한 공자의 학훈(學訓)과도 같은 것이다. 군자가 되기 위해서 최소한 지켜야 할 덕목과 그 차서가 정중하게 진술되고 있다. 이 6장의 내용은 「학이(學而)」편 속에서 제14장과 짝을 이룬다고 말할 수 있다. ‘식무구포(食無求飽)’하고 ‘거무구안(居無求安)’하면서 ‘호학(好學)’하는 자세를 제시하는 공자의 말과 같이 생각해보면 내용이 더욱 풍요롭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제자(弟子)’는 자기 문하의 학생을 가리킬 적도 있지만, 그냥 일반적으 로 손하의 ‘젊은이’들을 가리킬 적도 있다. 여기서의 제자는 ‘young fellows’ 정도의 느낌이 드는 말이다. 따라서 이 말은 나이 먹은 공자가 오로지 당대의 젊은이들을 향하여 외친 말로서 해석되어야 한다【유보남(劉寶楠) 설】. 공자의 궁극적 인식체계 속에서는 공문 내의 젊은이들에게만 국한시킨 메시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주요 내용 정리
여기서의 ‘입(入)’과 ‘출(出)’은 중국의 가옥구조상 각기 독립된 의미가 있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양백준(楊伯峻) 설】. 『예기』 「내칙(內則)」 편에 보면 ‘유명사이상(由命士以上), 부자개이궁(父子皆異宮).’이라는 말이 있다. 즉 명사(命士: 관직에 있는 선비) 이상이 되면 반드시 아버지와 아들이 집이 다르다는 것이다. 즉 ‘입(入)’은 아버지 처소로 들어간다는 의미고, ‘출(出)’은 자기 집을 나선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그러나 공자시대에 모든 사(士)가 이렇게 궁(宮)을 달리해서 살 수 있는 형편이 되었을 리 만무하므로 나는 별 의미가 없는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가옥구조는 대부분 부자(父子)가 한집에서 살았으므로 입출(入出)이 동일한 집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해석되었을 것이다. 즉 우리 과거 유생들이 그렇게 해석하였어도 결코 틀린 해석이 아니다.
‘제(弟)’는 반드시 친 형제간의 관계에만 귀속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황본, 정평본 모두 ‘弟’가 ‘悌’로 되어 있다】. ‘효(孝)’를 수직적 관계의 덕목이라고 한다면 ‘제(弟)’는 수평적 관계의 덕목을 개칭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그 출발은 형제간의 우애다.
‘근(謹)’은 말을 삼가는 것이다. ‘신(信)’은 평소 말을 삼가되 말을 일단 하면 반드시 신험이 있어야 한다【경험적으로 입증되어야 한다, 인과관계가 확실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친(親)’은 ‘근(近, 가까이 한다)’의 뜻이다. 인(仁)은 추상명사가 아니라, ‘인을 체화한 사람’의 뜻이다. 인(仁)은 곧 인인(仁人)이요, 인자(仁者)다.
문자를 익힌 소이를 생각하라
이 장에서 가장 핵심에 놓인 말은 ‘행유여력(行有餘力), 즉이학문(則以學文)’이라는 마지막 구문이다. 이 한마디를 위하여 앞의 모든 교훈이 존재한 것이다. ‘행유여력(行有餘力), 즉(則) …’이라는 구문을 반드시 ‘행하고 나서 여유가 생기면’이라는 시간의 단계적 선후를 말하는 것으로 풀면 안 된다. 이것은 인간의 행위의 단계적 절차를 지적한 것이 아니라 학문과 일상적 덕목의 실천사이에서, 즉 학(學)과 행(行) 사이에서 ‘행(行)’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강조하기 위한 일종의 이디엄(idiom, 둘 이상의 단어들이 연결되어 그 단어들이 가지는 제 뜻 이외의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말)적인 표현일 뿐이다. 여기서 ‘문(文)’은 막연한 ‘글’이나 ‘문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문자’다. ‘문(文)’의 고용례(古用例)의 뜻은 형성자(形聲字)나 회의자(會意字)가 아닌, 상형(象形)ㆍ지사(指事)와 같은 가장 단순한 유니트(unit)의 글자(初文)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문(文)’의 복문(卜文)ㆍ금문(金文)의 자형(字形)은 사람의 정면형(正面形)의 흉부에 문신(文身)의 문양을 새겨넣은 모습이다. 그것은 종교적 제식에 있어서의 성스러운 기호였다.
공자 당대의 누구든지 사람이라면 말은 할 줄을 알았다. 공자교단의 특징은 ‘문맹 퇴치’인 것이다. 당대의 사람들은 요즈음과는 달리 거개가 문맹이었다. 식자율(literacy rate)이 총인구의 1%도 안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문자를 익힌다는 것은 대단한 특권이었다. 물론 공자에게 있어서 문자를 익힌다는 것은 구체적으로는 『시』와 『서』를 익힌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특권을 향한 갈망이 공자 당시의 젊은이들에게는 강렬했을 것이다. 이들에게 공자는 야단을 치고 있는 것이다. 공자의 어투는 상당히 반주지주의적(anti-intellectualistic)이다. 그것은 교언영색(巧言令色)에 대한 혐오감과 상통하는 것이다. 요즈음의 젊은이들에게 똑같은 말을 하고 싶다: “제자들이여! 인터넷 채팅이 문자를 익힌 소이가 아니라오. 먼저 들어가서는 효성스럽고 나와서는 공손한 인간이 되십시오!”
‘제자(弟子)’의 ‘제(弟)’는 상성(上聲)이다. ‘즉제(則弟)’의 ‘제(弟)’는 거성(去聲)이다.
弟子之弟, 上聲. 則弟之弟, 去聲.
○ ‘근(謹)’이라고 하는 것은 행동거지에 항상됨이 있는 것이다. ‘신(信)’이라는 것은 말에 실증성이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범(汎)’이란 ‘널리’의 뜻이다. ‘중(衆)’이란 ‘뭇사람’을 일컫는다. ‘친(親)’이란 ‘가깝게 한다’는 뜻이다. ‘인(仁)’이란 ‘인한 사람’이다. ‘여력(餘力)’이란 ‘가일(暇日: 한가한 시간)’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以)’라는 표현은 ‘…써[用]’에 해당된다. ‘문(文)’은 시(詩)ㆍ서(書), 육예(六藝)의 문자를 일컫는다.
○ 謹者, 行之有常也. 信者, 言之有實也. 汎, 廣也. 衆, 謂衆人. 親, 近也. 仁, 謂仁者. 餘力, 猶言暇日. 以, 用也. 文, 謂詩書六藝之文.
공자에게 있어서 육예란 시ㆍ서ㆍ예ㆍ악ㆍ역ㆍ춘추를 말하기도 하는데, 문서로서의 역ㆍ춘추는 공자가 살아있던 당시의 학단 내에 커리큘럼으로서 존재했는지의 여부는 참으로 가늠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그리고 예ㆍ악은 대체적으로 매우 중요한 커리큘럼 내용이지만 추상명사로 더 의미를 지닌다. 예ㆍ악은 직접 그 상황 그 상황에서 가르치는 주제였지 문서를 통해 가르치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도 피아노나 노래는 음악학원에서 선생에게 직접 배우는 것이 더 중 요하다. 공자시대에 문서로서 가장 확실했던 것은 『시』와 『서』였다. 현존하는 『시경』과 『서경』의 조형에 해당되는 그 무엇이 확실하게 있었을 것이다. 『시경』은 거의 공자가 편찬한 것과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대차가 없다고 사료되고 있다.
○ 정이천이 말하였다: “제자로서의 직분을 다하고 힘에 남음이 있으면 문자를 배워라. 그 본분을 닦지도 않으면서 먼저 문자를 배우는 것은 진정한 자기를 위한 배움이 아니다.”
윤언명(尹彦明)이 말하였다: “덕행(德行)이 근본이요, 문예(文藝)는 말초적인 것이다. 본말(本末)을 잘 헤아려 그 선후(先後)를 잘 알면 입덕(入德)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程子曰: “爲弟子之職, 力有餘則學文, 不修其職而先文, 非爲己之學也.”
홍씨가 말하였다: “여력이 있기도 전에 문자를 배우면 문(文)이 질(質)을 멸(滅)해버린다. 여력이 있는데도 문자를 배우지 않으면, 질(質)이 승(勝)하여 사람이 야(野)하게 된다.”
尹氏曰: “德行, 本也. 文藝, 末也. 窮其本末, 知所先後, 可以入德矣.”
나 주희가 말한다. 역행(力行)만을 힘쓰고 문자를 배우지 않는다면 성현의 성법(成法)을 고구할 수도 없고, 사리의 당연(當然)을 인식할 수도 없다. 뿐만 아니라 행동하는 바가 사의(私意)에서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니, 단지 야(野)하게 되는 것보다 더 나빠질 수도 있다.
洪氏曰: “未有餘力而學文, 則文滅其質; 有餘力而不學文, 則質勝而野.” 愚謂力行而不學文, 則無以考聖賢之成法, 識事理之當然, 而所行或出於私意, 非但失之於野而已.
주자는 문자를 익히는 것의 정당성을 역설한다. 역시 주지주의적인 송 학의 분위기를 강력히 반영한다. ‘위기지학(爲己之學)’은 ‘위인지학(爲人之學)’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송학의 주요개념 중의 하나이다.
홍씨는 양송의 사람 홍흥조(洪興祖, 홍 싱쭈, Hong Xing-zu, 1090~1155)를 가리킨다. 자는 경선(慶善), 혹은 경희(慶喜), 강소성 진강(鎭江) 단양(丹陽) 출신이다. 비서성정자(祕書省正字)ㆍ태상박사(太上博士)가 된 후, 지방관을 역임하면서 백성의 곤피(困疲)한 상황을 고발하고 선정을 베풀었으나 진회에게 처벌되어 소주(昭州)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죽었다. 인정(仁政)의 실천을 강조하는 경세치용학파의 선구적 인물이다. 『초사(楚辭)』에도 일가견이 있다. 저술에 『노장본지(老莊本旨)』, 『주역통의(周易通義)』, 『계사요지(繫辭要旨)』 등이 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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