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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논어한글역주, 위정 제이 - 21. 꼭 벼슬을 해야지만 정치인가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위정 제이 - 21. 꼭 벼슬을 해야지만 정치인가

건방진방랑자 2021. 5. 27.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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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꼭 벼슬을 해야지만 정치인가

 

 

2-21. 어떤 사람이 공자에게 일러 말하기를 선생님께서는 어찌하여 정치를 하지 않으십니까?” 하자,
2-21. 或謂孔子曰: “子奚不爲政?”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서경효성스럽도다, 효성스럽도다. 형제간에 우애가 깊도다. 이를 정치에 베풀도다라고 하였으니, 이 또한 정치함이 아니겠는가? 어찌 내가 직접정치를 하는 것만이 정치라 할 수 있겠는가?”
子曰: “書云: 孝乎, 惟孝, 友于兄弟, 施於有政. 是亦爲政, 奚其爲爲政?”

 

혹위공자왈(或謂孔子曰)’이란 표현은 우선 우리의 주목을 끈다. 공자에게 질문을 던진 자가 누군지를 모르는 상황이란, 이 기록이 질문이 오간 당장(當場)의 현장기록이라고 한다면 있기 어려운 상황이다. 누군가 공자에게 질문하였다라는 식의 표현은 이 장의 기자에게 그 문답의 내용만 소문으로 전달되었을 뿐, 전혀 어떤 정황에서 누가 질문을 했는지를 모르는 상황이었음을 말해준다. 이것은 이 기록이 후대의 날조라는 식의 추론보다는 오히려 당대의 근거 있 는 풍문의 기록이라는 역설을 가능케 한다. 후대의 날조라고 한다면 문자(問者)의 캐릭터를 날조하지 않을 까닭이 없다.

 

그런데 보다 핵심적인 문제는, 이 대화가 실제적으로 공자의 삶의 어느 시기에 이루어진 것인가 하는 사실에 관한 추론의 문제이다. 질문의 성격이 매우 날카로운 비꼼의 냄새를 짙게 풍기고 있기 때문이다. 공자는 평생 정치를 지향하였고, 정치적 삶을 실천했을 뿐 아니라, 자기의 모든 예악(禮樂)의 이상이 정치적으로 실현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가 주공(周公)을 항상 꿈에 그리고 살았다는 사실 자체가, 그의 삶의 모델이 항상 정치적 실현을 구현하는 패러곤을 이상으로 삼고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러한 공자에게 왜 당신은 정치를 하지 않으십니까[子奚不爲政]?”라고 던지는 질문은, 매우 비맥락적이고 엉뚱한 질문이며, 우리를 당혹케 하는 질문이다.

 

주자는 이러한 당혹감을 해소하기 위해 이 질문이 공자가 벼슬을 하지 못했을 때 초년병 시절에 행하여진 질문으로 풀고 있는 것이다.

 

 

정공 즉위 초년에 공자는 벼슬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왜 정치를 하지 않냐고 물은 것이다.

定公初年, 孔子不仕. 故或人疑其不爲政也.

 

 

정공(定公) 초년(初年)이라면 공자의 나이 43, BC509년의 일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공자가 아직 사회적으로 알려지지도 않았을 그 상황, 벼슬하고 싶은데 아직 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그 상황에서, 전혀 사회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발휘하고 있지 못한 공자에게, 그대는 왜 정치를 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이 과연 가능할 것이며 의미있는 질문일 것인가? 나는 이 대화는 공자의 젊은 시절에 이루어진 것일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단순히 논리적으로 무의미한 질문일 뿐이다.

 

이 질문은 공자가 대사구를 지내고 14년간의 유랑을 마치고 노()나라에 되돌아왔을 때 이루어진 것이다. 이때 공자는 이미 정치의 무상함을 깨달았으며, 자기의 삶의 이상적 가치가 반드시 정치적 실현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깊게 통찰한 성인의 경지에 들어와 있었다. 이러한 상황이었기에 당신은 왜 정치를 하지 않으십니까?’라는 질문은 더욱더 아이러니칼한 어떤 비꼼의 색조를 짙게 깔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질문은 보다 통렬하게 들리게 되며, 문자(問者)의 아이덴티티가 가려질 수밖에 없는 어떤 스릴을 감지케 되는 것이다. 이 질문 자체가 매우 공자의 삶 전반에 대한 괴로운 자기변호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그대는 정치꾼이다. 정치를 위해 목숨을 걸었고 정치를 위해 유랑하였고, 정치적 지위와 권세의 획득을 위해 삼환(三桓)과 대립하였고, 소정묘(少正卯)를 주살(誅殺)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투쟁하였던 인물이다. 그대는 이제 정치권의 한낱 퇴물에 불과한 인물이지 아니한가? 왜 정치를 하고 있지 않은가? 끝까지 정치나 한다고 껍쩍거리다 죽을 것이지 …… 왜 정치를 하지 않는단 말인가?

 

이에 공자는 자기 삶의 역정에 대한 구구한 변호를 하지 않는다. 그는 담담히 ()의 구절을 인용한다. 그가 ()를 인용한 내용은 대체적으로 인간의 삶의 본질에 관한 것이다. 부모에게 효성스럽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는 것, 바로 이러한 가정도덕의 실천이야말로 그것이 확장되면 곧 바른 정치의 실현일 뿐이라는, ()와 국()의 연대성에 대한 그의 신념을 토로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의 인용의 의미맥락을 정확히 알 길이 없다. 왜냐하면 현존(現存)하는 금문 서경29편 중에는 이 구절이 포함되어 있지를 않기 때문이다. 34세기에 출현한 위고문상서(僞古文尙書)군진(君陳)편에 이와 비슷한 구문이 있지만, 이것은 오히려 논어의 이 구절을 역으로 삽입한 것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기 때문에,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의 결정적 단서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군진편의 문장은 이와같다: ‘惟爾令德, 孝恭惟孝, 友于兄弟, 克施有政.’

 

먼저 ()의 인용이 어디까지나는 문제에 대한 의논도 분분하다. ()의 인용은 효호유효(孝乎惟孝), 우우형제(友于兄弟)’까지라는 것이 포신언(包愼言)을 비롯한 몇몇 청유(淸儒)들의 설이다. 그러나 보통 효호유효(孝乎惟孝), 우우형제(友于兄弟), 시어유정(施於有政)’까지를 ()의 인용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마지막의 해기위위정(奚其爲爲政)’의 해석도 난해하다. 여기서는 분명 위정(爲政)’이 하나의 독립된 의미단위로 떨어진다. 그리고 그 위정(爲政)’이 또다시 위()라는 동사의 목적이 되어 있다. 직역하면 어찌 하필 (내가) 정치함을 해야 한단 말인가?’ 정도가 될 것이다.

 

정치의 궁극적 목적이 무엇인가? 그것은 정치함에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의 삶의 정치에의 참여, 그것만이 위정(爲政)의 유일한 길은 아니다. 공자는 말한다. 나는 살고 있다. 나는 제자들에게 부모님께 효도함을 가르치며, 형제간에 우애함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내가 그러한 삶을 실천하고 있다. 이러한 나의 삶, 이것이 바로 정치가 아닌가? 하필 내가 벼슬길에 또 오르는 것만이 정치를 행함일까? 이것은 분명 말년의 공자의 삶에 대한 괴로운 변명이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동아시아 문명권의 뜻있는 선비들에게 정치에 초연하여 문화적 가치에 삶을 헌신할 수 있게 만든 위대한 초탈의 언사였던 것이다. 문화적 가치는 국적이나 지역을 초월하여 인류의 사고 그 자체를 개선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정공 초년에는 공자는 벼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정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아히 생각한 것이다. ‘()’는 주서(周書) 군진(君陳)편을 말하는 것이다. ‘서운효호(書云孝乎)’라고 하는 것은 서경에서 효를 말한 것이 이와 같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형제에게 잘하는 것을 ()’라고 말한다. 에 말하였다. ‘군진(君陳)! 어버이께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고, 또 이러한 마음을 능히 미루어 넓혀가면 한 집안의 정사를 이룰 수 있다.’ 공자는 바로 이것을 인용하여, 이와 같이 한다면 이것이 또한 정치를 행하는 것[是亦爲政]이니, 어찌 하필 작위에 거하여서만 위정을 한다 하겠느뇨, 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대저 공자가 벼슬하지 않은 것에 관하여 물은 사람에게 모두 시원하게 대답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이 의 말에 의탁하여 고()한 것이다. 그러나 그 요체를 말하면 지극한 이치는 여기서 벗어남이 없다.

定公初年, 孔子不仕, 故或人疑其不爲政也. , 周書君陳. 書云孝乎者, 言書之言孝如此也. 善兄弟曰友. 書言君陳能孝於親, 友於兄弟, 又能推廣此心, 以爲一家之政. 孔子引之, 言如此, 則是亦爲政矣, 何必居位乃爲爲政乎? 蓋孔子之不仕, 有難以語或人者, 故託此以告之, 要之至理亦不外是.

 

 

군진(君陳)은 사람의 이름이다. 주공이 죽은 후에 주공이 하던 일을 대 신 맡아 한 신하라고 한다. 성왕(成王)이 군진에게 주공 역할을 대신케 할 적에 훈계한 내용이라 한다.

 

 

 

 

인용

목차 / 전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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