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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논어한글역주, 위정 제이 - 18. 자장이 녹봉을 구하는 방법을 공자에게 묻다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위정 제이 - 18. 자장이 녹봉을 구하는 방법을 공자에게 묻다

건방진방랑자 2021. 5. 27. 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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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자장이 녹봉을 구하는 방법을 공자에게 묻다

 

 

2-18. 자장이 공자에게 녹을 구하는 법을 배우려 하였다.
2-18. 子張學干祿.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많이 듣되 의심나는 것은 빼버리고 그 나머지를 삼가서 말하면 허물이 적어진다. 많이 보되 위태로운 것은 빼버리고 그 나머지를 삼가서 행하면 후회가 적어진다. 말에 허물이 적고 행동에 후회가 적으면, 녹이 바로 그 가운데 있는 것이다.”
子曰: “多聞闕疑, 愼言其餘, 則寡尤; 多見闕殆, 愼行其餘, 則寡悔. 言寡尤, 行寡悔, 祿在其中矣.”

 

121314장이 군자의 덕성, 군자됨의 기준을 말하고 있다면, 15161718장이 모두 학문하는 방법, 다시 말해서 배움의 길에 있어서 우리는 어떠한 방식으로 지식을 획득해야 할 것인가라는 매우 인식론적인 과제를 풀어나 가고 있다. 공자의 학문이 인식론을 거부하는 듯이 보이면서도 매우 인식론적 성찰이 있다. 헬레니즘시대의 에피큐리아니즘이나 스토이시즘과 같은 사조가 매우 윤리적인 과제상황을 말하면서도 매우 인식론적인 성찰을 배면에 깔고 있는 것과도 비슷하다. 군자는 학문을 해야하는 인간이다. 군자의 덕성을 이야기한 후에 학문하는 방법을 말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12~14어군과 15~18어 군은 그렇게 연관되어 있다.

 

여기 나오는 자장(子張, 쯔장, Zi-zhang)은 본시 진()나라 양성(陽城)지금 하남성(河南省) 등봉(登封), 낙양의 동남쪽에 있다 사람으로 그 성이 전손(顓孫)이요 이름이 사()이다. 자장(子張)은 자(). 공자보다 48세 연하라는 기록은 열전제자해가 일치한다. 자하(子夏), 자유(子游)와 함께 공자말년 교단의 가장 강력 한 세 인물로 꼽히는 것은, 전술한 바와 같다. 그러나 이 세 사람 중에서는 가장 아웃사이더적인 성격의 인물이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한비자(韓非子)』 「현학(顯學)편에서 유가 8파중에 으뜸으로 꼽힐 정도로 그 성세가 있었다. 선진(先進)2사과십철(四科十哲) 속에도 자장은 명함을 들이밀지 못했다. 논어19편이 자장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지만, 자장(子張)편에서도 그의 위치는 자하(子夏)나 자유(子游)에 비해 미미하다. 자장3에는 친구사귐[]’에 대한 자하(子夏)와 자장(子張)의 견해차이가 소개되어 있다. 그런데 이 장 속에서 자장(子張), 자하(子夏)가 인간을 단순하게 평가하여 시비, 가불가(可不可)를 박절하게 가리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보다 포용적인 관용과 자성의 자세를 요구하는 매우 어른스러운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사실 자하(子夏)와 자장(子張)의 인간됨됨이를 종합적으로 평가해 볼때, 반드시 자장의 인격이 자하에 비해 그렇게 우위의 가치를 점한다고만 평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자장(子張)3의 기술은 자하학파와 자장 학파간의 모종의 갈등을 자장학파의 입장에서 평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역사적으로 보면 자장은 충성[]과 신의[]을 강조한 인물로 그려지며 실천을 통하여 품덕을 수양할 것을 중시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순자는 자장학파를 겉을 꾸미는데 너무 치중하고 있다고 비판하지만 실제로 자장은 소절(小節)에 구애됨이 없었고 외관에 신경을 쓰지 않았으며 절용(節用)의 정신은 오히려 묵가와 상통한다고 본다. 대대례기(大戴禮記)』 「천승(千乘)편은 자장학파의 문헌으로 평가되고 있다. 곽말약도 십비판서(十批判書)속에서 자장지유(子張之儒)에게는 박애용중(博愛容衆), 엄기관인(嚴己寬人)의 특징이 있으며, 대체로 묵가의 사상은 자장학파의 영향 속에서 발전한 것으로 보았다.

 

여기 자장의 질문은 간록(干祿, 녹을 구함)’이라는 주제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자장의 관심이 현세적 출세나 세속적인 성공에 쏠려 있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자장은 매우 현실적인 인간으로서 논어에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안연20에 자장이 공자에게 ()가 어떻게 해야 달()했다 이를 수 있습니까하고 묻는 말에, 공자가 네가 말하는 달()이라는 게 무엇이냐고 물은 즉, 자장이 나라에 있어서도 반드시 소문이 나며, 가문에 있어서도 반드시 소문이 나는 것입니다[在邦必聞, 在家必聞].”라고 대답한다. 그의 인식구조가 현세적 성향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예시한다. 공자는 그것을 광정(匡正)해주려 하였다. 사마천은 자장의 전기를 구성함에 있어서 간단한 출신과 명자(名字)와 연령 이외에는 모두 논어의 구절을 몽따쥬하여 편집해 넣었다. 그러나 칠십이제자해(七十二弟子解)2는 사마천이 생략한 매우 중요한 정보를 그대로 솔직하게 기술하고 있다.

 

 

그 사람됨이 풍채도 좋고 자질이 훌륭하였다. 관대하고 겸손하여 모든 사람들을 넓게 교제하였다. 그리고 여유롭게 자기 할 일만을 힘썼다. 그러나 그는 평소 인의의 행동에 서는 것은 힘쓰지 않았다. 그러기 때문에 공자의 문인들이 그와 벗하는 것은 좋아했지만 그를 존경하지는 않았다.

爲人有容貌資質. 寬沖博接, 從容自務. 居不務立于仁義之行, 孔子門人友之而弗敬.

 

 

역시 자장(子張)이라는 인간의 현실지향적 인격의 구조는 마지막 구절에서 여실하게 드러난다. 자장은 판단력이 정확한 사람이었으며 인간관계형성이 매우 포용적인 사람이었다. 공자 문인들이 그와 벗하기는 좋아했지만 그를 존경하지 않았다고 표현한 대목도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 그 앞에 인의지행(仁義之行)‘에서는 것을 힘쓰지 않았다고 한 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너무 외면적 소절(小節)에 구애되지 않고, 너무 도덕적 엄격주의에 빠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기 때문에 문인들이 허물없이 그와 벗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증자와 매우 대조적인 성격의 인품을 나타내준다. 순자가 그를 비판한 대목도 이 제자해의 기술과 관련하여 좀 복합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액면 그대로 그를 천유(賤儒)라 볼 수는 없다.

 

 

머리에 관은 나지막하게 내려쓰고, 입에서 나오는 말은 담박하고 심오한 듯하며, 천천히 걸을 때는 우임금처럼 하고 빠르게 종종걸음 칠 때에는 순 임금처럼 하여 겉으로 보기엔 성인을 방불케 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공자의 제자 자장류의 천유의 모습이다.

命佗其冠, 种禫其辭, 禹行而舜趨, 是子張氏之賤儒也.

 

 

공자(孔子)가 자장(子張)과 자하(子夏)를 대비적으로 논평한 대목이 선진(先進)15에 실려 있는데 아마 이것이 자장에 대한 가장 리얼한 평가일 것이다.

 

 

자장은 지나치고 자하는 모자란다.

師也過, 商也不及.

 

 

자장은 항상 조급하고 앞서갔다. 그러나 자장은 항상 깊게 생각하고 배우기를 좋아했으며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공자와 토론하기를 좋아했다. 논어에 나이가 가장 어린 제자에 속함에도 불구하고증자보다도 두 살 어리다 그토록 많은 대화의 주인공으로 실린 것은 주목할 만하다. 공자의 많은 담론을 이끌어 내었 던 것이다. 논어의 마지막 장인 요왈(堯曰)에는 자장의 이름만이 실려 있다. 이것 은 자장이 공문(孔門)제자들 중에서도 아주 후대에까지 중요한 캐릭터로서 기억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자장은 훌륭한 질문자(agood questioner)였다. 많은 질문을 통해 공자의 좋은 대답을 우리에게 제공해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장은 열심히 공부하는 인간이었다. 스승의 말씀을 잊지 않기 위해 그것을 허리띠에 적는 자장의 모습이 위령공5에 실려 있는데 이것은 공자의 말씀이 문자로 기록된 실제정황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생생한 장면의 기록이다. 자장과 같은 부지런한 말년제자들에 의하여 논어는 출발되었던 것이다.

 

공자와 자장의 나이 차이를 48세로 시인한다면, 이 대화의 장면은 70여 세의 공자에게 스물을 갓 넘은 파릇파릇한 청년이 세속적 성공의 방법을 묻는 장면이다. ‘간록(干祿)’이란 표현은 이미 시경대아(大雅)한록(旱麓)녹을 구함이 화락하도다[간록기제(干祿豈弟)]’, 또 같은 대아(大雅)가락(假樂)녹을 구하여 백복을 얻었네[간록백복(干祿百福)]’라는 구절에 나타나고 있는데, 이때의 (祿)’은 보다 넓은 의미의 추상적인 행복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자장의 질문은 좁은 의미의 벼슬자리를 얻는 방법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인간 삶의 행복의 획득에 관한 공자의 지혜를 규탐하는 질문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장의 행복의 내용은 어디까지나 구체적으로 경제적인 것이며, 현세적인 것이다. 누가 나에게 찾아와 대회사 사장이 되는 방법이나 장관자리를 얻는 길을 묻는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 것인가?

 

이런 질문에 대한 공자의 대답은 역시 탁월하다. 위정(爲政)편에서 드러나고 있는 인간공자의 인격구조와 일관된 맥락 속에서 대답되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는 현세적이고 경제적인 질문의 맥락을 윤리적인 맥락으로 회전시켜 대답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참으로 우리 삶의 자세에 어떤 본질적 회전을 요구하는 것이다. 공자는 말한다.

 

먼저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듣고 보아라! 경제적ㆍ정치적 성공의 추구 이전에 그러한 목표를 달성키 위해서 인간이 실천해야 할 과제상황은 문견(聞見)’이라고 공자는 갈파한다. 먼저 많이 들어라! 여기서 말하는 다문(多聞)’이란 다양한 가치관이나 다양한 체험의 수용이다. 그러나 여기에 조건이 있다. 의심이 나는 것은 빼놓으라는 것이다. 여기 빼놓다에 해당되는 ()’이라는 글자의 의미는 서양철학에서 말하는 에포케(epokē)’와도 같은 것이다. ‘빼놓음은 삭제나 무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의 중지를 의미하는 것이다. 불안한 사태에 대해서 우리가 행하여야 할 것은 그에 대한 일체의 가치판단을 보류하는 것이다. 그것을 당분간 괄호속에 집어넣는 것이다. 그 괄호 속에 집어넣고 남은 것, 다시 말해서 의심스럽지 아니한 것만을 조심스럽게 말하면 곧 허물이 적을 것이다. 많이 보아라! 많이 체험하라! 단 위태로운 것을 괄호에 집어넣어라! 그리고 위태롭지 아니한 나머지를 신중하게 행하면, 후회가 적을 것이다.

 

이렇게 말에 허물이 적고, 행동에 후회가 적다면 세속적 성공은 바로 그 속에 있는 것이 아닌가? 훗설은 현상학적 환원(phänomenologische Reduktion)을 이야기했지만, 공자는 인간의 문견(聞見)에 대한 도덕적 환원(moralistic reduction)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도덕적 환원이란 곧 의태(疑殆)로운 사태에 대하여 우리의 판단을 중지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회(尤悔, 허물과 후회)를 최소화시키는 것이다. 공자는 문견(聞見, 감관을 통한 인식)의 어떠한 사태에 대해서도 확연한 가치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공자는 모든 도그마를 배격한다. 공자에게 있어서 상식이란 판단의 보류. 공자는 종교에 대해서도, 이단에 대해서도, 귀신에 대해서도, 괴력난신(怪力亂神)에 대해서도 판단의 보류를 요청한다. 판단의 보류는 결국 독단에 의한 허물과 후회를 최소화시킨다. 그러한 보류의 여 백을 통해 우리의 상식은 틀지워져 가는 것이다. 최종적 진리는 없다. 사실 공자의 이 짧은 한마디는 훗설의 현상학적 환원이 궁극적으로 소기하는 바의 모 든 인간학적 의미를 실현시켜주고 있다.

 

간록(干祿)’은 자장의 질문의 목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자체로 절대적 삶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인간의 삶에서 목적과 수단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 그 자체가, 달성되기까지 삶의 목적이 될 수도 있는 것이요, 또 목적 그 자체가 삶의 과정을 위한 한 방편적 수단일 수도 있는 것이다. 간록(干祿)이라는 목적을 생각하기 전에 우리가 항상 실천해야 할 것은 문견(聞見)의 바른 태도인 것이다. 이러한 문견(聞見)의 바른 태도의 결과로서 녹(祿)은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이다. (干祿)을 말하는 자장에게 다짜고짜 문견(聞見)의 바른 자세를 설파하는 공자의 언변이야말로 삶의 본질을 간파한 대인의 선어(禪語)가 아니고 그 무엇이랴!

 

 

행과(行寡)’()’은 거성이다. 자장은 공자의 제자이다. 성이 전손()이고 명은 사()이다. ‘()’이라는 것은 구한다는 뜻이다. ‘()’이라는 것은 벼슬하는 자의 봉록이다.

行寡之行, 去聲. 子張, 孔子弟子, 姓顓孫, 名師. , 求也. , 仕者之奉也.

 

여씨가 말하였다: “‘()’라는 것은 아직 믿지 못하는 바가 있다는 것이요, ‘()’라는 것은 아직 편안히 느끼지 못하는 바가 있다는 것이다.”

呂氏曰: “疑者所未信, 殆者所未安.”

 

정이천은 말하였다: “‘()’는 죄가 밖에서부터 이르는 것이요, ‘()’는 이치가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것이다.”

程子曰: “, 罪自外至者也. , 理自內出者也.”

 

나 주희는 말한다. 많이 듣고 많이 보는 것은 배움의 넓음이다. 의심나고 위태로운 것을 빼 버리는 것은 선택의 정미함이다. 말과 행동을 삼가는 것은 지킴의 간약(簡約)함이다. 대저 재기중(在其中)’이라고 말하는 것은, 모두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른다는 말이니, 공자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심으로써 자장의 단점을 바로잡아 앞으로 나아가게 하려 하심이라.

愚謂多聞見者學之博, 闕疑殆者擇之精, 愼言行者守之約. 凡言在其中者, 皆不求而自至之辭. 言此以救子張之失而進之也.

 

정이천이 말하였다: “천작(天爵: 하늘이 준 훌륭한 품성)을 닦으면 인작(人爵: 사람이 주는 작위)이 이르는 법이니, 군자가 언행을 삼가는 것은 녹을 얻는 첩경이다. 자장이 녹을 구하는 방법을 배우려고 하였으므로 공자께서는 이런 말로써 효유하여 그 마음을 안정시켜, 이록(利錄)에 동요됨이 없게 하려 하셨다. 만약 안자(顔子)나 민자건(閔子騫)이라면 이런 질문은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혹자는 공자의 이런 말씀에 대하여 공자 말씀대로 해도 작록은 따라붙지 않을 수 있다고 의심한다. 그래서 공자께서는 아예 이와 같이 말씀하신 적이 있다: ‘농부가 밭을 가는 것은 밥을 먹기 위한 것이나 반드시 밥을 먹으리라는 보장은 없다(굶주림이 그 가운데에 있다).’ 사람은 이치상 해야 할 일이라면 할 뿐이다.”

程子曰: “修天爵則人爵至, 君子言行能謹, 得祿之道也. 子張學干祿, 故告之以此, 使定其心而不爲利祿動, 若顔閔則無此問矣. 或疑如此亦有不得祿者, 孔子蓋曰: ‘耕也餒在其中,’ 惟理可爲者爲之而已矣.”

 

 

공자 말씀의 인용은 위령공31에 있다. ‘천작을 닦으면 인작이 이른 다본래는 맹자의 말. 고자16. 언행을 삼가는 것은 녹을 얻는 첩경이다. 이치상 해야 할 일이라면 할 뿐이다.’ 이와 같은 금언은 비록 도학의 도덕주의에서 나온 말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참으로 지켜나가야 할 가치라고 생각한다. 후학들은 소홀히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여기 여씨는 여대림(呂大臨, 뤼 따린, Lü Da-lin, 1042~1092)이다. 북송 섬서성 남전(藍田) 사람이다. 대림의 형 여대방(呂大防), 여대충(呂大忠), 여대균(呂大鈞)이 모두 등과하였으나 대림만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다대충, 대균, 대림을 삼려(三呂)라 부른다. 대림은 자가 여숙(與叔)이고 호가 남전(藍田)이다. 처음에는 장횡거 밑에서 수학하였으나 재가 졸()하자, 동쪽으로 와서 이정문하에 들어가 제자의 예를 갖추었다. 그래서 양시(楊時)ㆍ사량좌(謝良佐)ㆍ유작(游酢)과 함께 정문사선생(程門四先生)’으로 꼽힌다. 특히 여대림은 장재의 웅혼한 기일원론사상과 이정 중에서도 특히 형 정호의 호방한 기상을 이어 후대 양명심학으로까지 연결되는 어떤 사상맥락의 중요한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경세치용(經世致用)의 실제(實濟: 구체적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한다)를 강조하여 송학의 내용을 풍부하게 하였고 또한 금석학에도 조예가 깊어 중국 최초의 고기물(古器物) 도록(圖錄)이라고 할 수 있는 고고도(考古圖)를 편찬하기도 하였다.

 

대림의 학문은 나예장(나종언), 이통을 거쳐 주희에게도 계승되었다. 대림은 육경(六經)에 박통(博通)하였으며 특히 삼례(三禮)에 밝았다. 이러한 예의 강조가 그에게는 현실적 감각을 부여하였던 것이다. 그는 특히 고금의 선거(選擧)제도를 고구하여 인재등용의 제도를 체계적으로 개선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그리고 중용(中庸)을 특히 추숭(推崇)하였으며 존천리(存天理), 거인욕(去人欲)’을 주장하였다. 그는 적자지심(赤子之心)’이 곧 양심(良心)’이라고 말하였으며, 희노애락이 미발한 마음이라는 것은 곧 적자지심(어린아기의 마음)일 뿐이라 말하였다. 양심이 발하는 것이 다 도()이다. 내 안에 있는 측은ㆍ수오ㆍ사양ㆍ시비의 마음이 다 도(), 내 밖에 있는 군신ㆍ부자ㆍ부부ㆍ형제ㆍ붕우의 사귐이 다 도이다. 피아의 구분이 없어지는 내외합일의 경지를 추구해야 한다. 인성(人性)은 본래 동일(同一)한 것이나, 유행(流行)하면서 비로소 강유혼명(剛柔昏明)의 구별이 생겨날 뿐이다. 존천리(存天理)라는 것은 결국 성()을 실천하는 것인데, 성은 리지실(理之實)이다. ()과 리()가 둘이 아니니 결국 성()과 리()가 둘이 아니다. 그 몸[] 오염되지 않았으면 리의 본체가 오염되지 않은 것이다. 행동에 틈이 없으면[無間] 지성불식(至誠不息)한 것이다. 존천리의 방법은 후 천적인 잘못의 교정보다는 적자지심인 양심의 근본을 규명하고 그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하였다. 일상생활에서 청소하고 응대하는 것으로 부터 천도(天道) 성명(性命)에 상달(上達)하는 일까지 성인은 갈력(竭力)하여 교인(敎人)하지 않은 바 없건마는 사람들이 생겨먹고 깨닫는 바가 천심(淺深)이 있어 얻는 바도 대소부동(大小不同)이 있다. 이러한 문제는 성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요, 인간 개개인이 힘을 다하여 향상 노력을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인용

목차 / 전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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