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다스리려는 사람이여, 자신이 먼저 실천하라
2-20. 계강자가 여쭈었다: “백성으로 하여금 경건하고 충직하여 스스로 권면하게 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좋겠습니까?” 2-20. 季康子問: “使民敬, 忠以勸, 如之何?”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자신을 장엄케 하여 사람을 대하면 백성이 경건하게 되고, 자신이 효성스러움과 자비로움을 실천하면 백성이 충직하게 되고, 능력있는 자들을 등용하고 능력이 부족한 자들을 잘 교화시키면 백성들이 스스로 권면하게 될 것이요.” 子曰: “臨之以莊, 則敬; 孝慈, 則忠; 擧善而敎不能, 則勸.” |
계강자(季康子, 지 캉쯔, Ji Kang-zi)는 대부 계씨가문의 7대 영주, 이름은 비(肥), 강(康)은 추증된 이름이다. 그의 아버지, 6대 영주 계환자(季桓子)는 공자 가 노의 내각에 있을 때, 공자의 동료였다. 계환자(季桓子)가 죽고 그 뒤를 이은 것이 애공 3년 가을, BC 492년, 공자 나이 60세였다. 공자의 문인 염구(冉求)ㆍ자공(子貢)ㆍ자로(子路)ㆍ번지(樊遲) 등을 임용(任用)한 것도 바로 이 계강자였고, 염구(冉求)의 주선으로 유랑에 종지부를 찍고 공자를 노(魯)나라에 돌아오게 만든 장본인도 바로 계강자였다. 이 장의 대화는 공자가 노나라에 돌아온 후에 이루어진 말년 대화이며, 이때 이미 계강자는 10여년 정치수업을 쌓았다. 아들 같은 계강자에게 공자는 타이르고 있는 것이다. 계강자는 공자를 퍽 따른 듯, 정치에 관해 공자에게 질문하는 장면이 4번 『논어』에 실려있다. ‘정치란 바로 잡는다는 뜻이다[정자(政者), 정야(正也)]’라는 유명한 공자의 정치관도 바로 계강자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발설된 것이다(「안연(顔淵)」 17).
계강자의 질문은 어떻게 하면 인민(人民)들이 경건하게 되고 충직해져서 활발하게 자발적으로 자기 일에 충실하게 될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이에 대한 공자의 대답은 항상 그러하듯이 그 주어를 이동시키고 있다. 맹무백(孟武伯)이 효(孝)를 물었을 때도 그 효의 주체는 자식이므로, 그 대답의 주어는 통상적으로 자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 자식이라면 모름지기 …… 해야 하는 것이다라는 식의 대답을 기대했을 것이다. 이 때, 공자는 주어를 자식에서 부모로 이동시킨다. 효(孝)를 묻는데 부모의 마음이란 …… 것이다라고 우회적으로 대답하는 것이다(「위정(爲政)」6).
여기 계강자의 질문은 민(民)을 주어로 하는 것이다. 민(民)이 경(敬)하고 충(忠)하여 권(勸)하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연히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의 주체는 민(民)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공자는 역습을 감행한다. 민(民)이 경충이권(敬忠以勸)할 수 있는 것은 민(民)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질문을 던지고 있는 바로 그대의 마음자세, 바로 그대의 삶의 자세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민(民)의 경충(敬忠)에 대하여 그 주어를 민(民)에서 군(君)으로 이동시키고 있는 것이다.
민(民)이 경(敬)하게 되려면 바로 그대 자신이 위엄있는 경건한 삶의 자세로 써 민(民)을 대하면 될 것이다. 뭘 백성에게 따로 바랄 게 있는고! 민(民)이 충직하게 되기를 원한다면, 바로 그대 자신이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고, 바로 그대 자신이 아랫사람에게 자애로운 덕성을 보이면 될 것이다. 뭘 따로 바랄 게 있는가? 백성들이 자기 일에 충실하게 권면하기를 바란다면, 능력있는 자를 등용하고 능력이 부족한 자를 교화시키면 될 것이다. 뭔 딴 방법이 있겠는가?
여기 마지막 구절의 ‘거선이교불능즉권(擧善而敎不能則勸)’은 또 하나의 해석이 가능하다. 그것을 인재등용에 관한 이원적인 대립의 구문으로 보지 않고 백성에 대한 군주(君主)의 마음자세로서 일관되게 해석하는 것이다. ‘백성들의 잘하는 면을 들어서 (칭찬하여) 그들이 못하는 면을 가르쳐주면’이라는 식의 권면의 맥락으로 풀이하는 것이다.
백성이 바르게 되기를 원하고자 한다면 다스리는 자 그대 스스로가 먼저 바르게 되시오! 라는 공자의 준엄한 타이름은 항상 들어도 끊임없이 우리의 가슴 옷깃을 여미게 만든다. 타인에게 바름을 원한다면 내가 먼저 바르게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공자의 이상주의는 당시의 냉혹한 노나라의 현실에는 참으로 어울리기 힘든 말들이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공자는 자신을 굽히지 않고 현실과 타협함이 없이, 보다 고원한 인간의 도덕과 이상을 토로했다는 데 시공을 초월하는 그의 가치가 존하는 것이다.
계강자는 노나라의 대부 계손씨(季孫氏)이다. 이름은 비(肥, 훼이, Fei)이다. ‘장(莊)’이란 용모가 단정하고 근엄한 것을 일컫는 것이다. 백성에게 단정하고 근엄하게 대하면 백성들은 군주에게 경의를 표할 것이다. 자신이 부모에게 효도하고 뭇사람에게 자애로우면, 백성들은 군주에게 충성을 표시할 것이다. 선한 자를 등용하고, 잘하지 못하는 자는 가르치면, 백성들이 스스로 권면하는 바가 있을 것이요 즐겁게 선을 행하게 될 것이다.
季康子, 魯大夫季孫氏, 名肥. 莊, 謂容貌端嚴也. 臨民以莊, 則民敬於己. 孝於親, 慈於衆, 則民忠於己. 善者擧之而不能者敎之, 則民有所勸而樂於爲善.
○ 장경부(張敬夫, 1133~1180)가 말하였다: “이것은 모두 군주 자신에 있어서 마땅히 해야 할 바요, 백성으로 하여금 공경케 하고 충직하여 스스로 권면케하기 위하여 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군주 자신이 이와 같이 한다면, 그 백성의 감응이란 그러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러하게 될 것이다.”
○ 張敬夫曰: “此皆在我所當爲, 非爲欲使民敬忠以勸而爲之也. 然能如是, 則其應蓋有不期然而然者矣.”
장경부의 멘트가 핵심을 얻고 있다. 장경부는 장식(張栻), 남헌선생(南 軒先生)이다. 전술하였다(1-10). ‘장씨’라고 할 때 장횡거를 가리키기도 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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