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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종횡무진 동양사, 섞임 - 7장 중국의 화려한 시작과 비참한 종말, 역사상 가장 강했던 제국: 몽골이 서쪽으로 간 까닭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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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동양사, 섞임 - 7장 중국의 화려한 시작과 비참한 종말, 역사상 가장 강했던 제국: 몽골이 서쪽으로 간 까닭은?

건방진방랑자 2021. 6. 7.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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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이 서쪽으로 간 까닭은?

 

 

한편 헝가리로 진입한 남쪽의 몽골군도 헝가리의 반격을 무찌르고 수도 부다페스트를 폐허로 만들었다. 폴란드와 헝가리의 함락으로 동유럽이 몽골의 손에 들어가자 이제 서유럽마저도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운명이 되었다. 더욱이 당시 유럽 세계는 십자군의 실패로 로마 교황의 권위가 실추되어 분열 상태에 있는 데다 몽골의 진격을 막아내기란 불가능했다. 몽골군은 서유럽까지 정복할 계획이었는데, 만약 계획대로 실행되었다면 이후 세계사는 크게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최소한 오늘날 우리가 서유럽의 아름다운 성이나 문화재를 구경하기는 어려웠을 게다. 몽골군은 곳곳에서 닥치는 대로 약탈과 파괴를 일삼았으니까고려를 정복할 때 몽골군은 신라시대에 건립된 고찰인 황룡사와 동양 최대의 목탑인 황룡사탑을 불태워버렸다(지금은 넓은 탑의 터만 황량하게 남아 있다). 고려는 몽골의 침입을 불심으로 막기 위해 대장경을 만들었는데, 그것은 지금까지 전한다(그 이전의 거란 침략 때 제작한 대장경은 몽골 침략으로 소실되었다). 외적의 침략으로 한 가지 문화유산을 잃고 한 가지 문화유산을 만든 셈이다. 남아 있는 터로 미루어볼 때 높이가 80미터는 되었을 황룡사탑이 불타 없어졌기 때문에, 비슷한 시기에 세워진 일본의 35미터짜리 호류지 목탑이 현재 동양 최대의 목탑이라는 영예를 누리고 있다.

 

서유럽의 구세주는 몽골 제국의 내분이었다. 희대의 정복 군주 오고타이가 사망한 것이다. 칸위의 계승을 둘러싸고 세력 다툼이 일어나자 바투의 유럽 원정군은 헝가리에서 회군해 1244년 카라코룸에 개선했다(바투는 주치의 아들로 황족이었으므로 후임 칸을 선정하는 문제에 큰 발언권을 가지고 있었다). 몽골의 황실에서는 몇 년 동안 치열한 권력투쟁이 벌어지다가 1251년 바투의 지지를 등에 업은 툴루이의 아들 몽케 칸이 즉위하는 것으로 사태가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오고타이와 차가타이 가문이 불만을 품고 자기 영지에서 제각기 독립함으로써 몽골 제국은 분열의 위기를 맞았다.

 

 

기동성의 차이 왼쪽은 몽골군의 군장이고, 오른쪽은 유럽군의 군장이다. 몽골 병사는 말을 타고 활만 지닌 경장 차림인 데 비해, 유럽의 병사는 얼굴은 물론 손가락에까지 갑옷으로 중무장하고 말의 몸도 쇠로 둘렀다. 자신을 보호하는 데는 좋았을지 모르지만 이 차림으로는 몽골군의 뛰어난 기동성을 감당할 없었다. 장거리 원정군치고는 비교적 소수였던 몽골군에 대해 유럽인들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했다고 기록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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