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왕국의 모순
조선의 2대왕 정종은 고려의 2대왕인 혜종과 같은 처지다. 서열상 맏이인 덕택에 왕위를 물려받기는 했으나 오랜 기간 왕좌에 머물 수 없다는 것은 누구보다 그 자신이 잘 안다. 더구나 그에게는 후사도 없다(아들은 있었지만 정비正妃 소생이 아니었으므로 방번, 방석 형제까지 서자로 취급된 판에 왕위계승권을 바랄 수는 없다). 그래도 시한부 삶을 조금이나마 연장해보기 위해 그는 즉위한 직후 개경으로 천도해서 한양의 악몽을 떨쳐내려 하지만 그가 물러나야 하는 상황은 예상보다 일찍 닥친다. 2라운드의 시작이다.
서열에 따르자면 다음 왕위계승권은 셋째인 이방의(李芳毅, ?~1404)에게 있으나 그는 일찌감치 왕위를 포기하고 다섯째인 방원을 밀고 있다. 그로서는 현명한 선택이지만 두번째 분쟁은 바로 여기서 싹튼다. 당연히 넷째 이방간(李芳幹, ?~1421)은 둘째(정종)와 셋째(방의) 형들이 아우인 방원을 지원하는 게 불만이다. 게다가 그는 여전히 사병 조직을 거느리고 있다. 목표(왕위)가 있고 수단(군대)이 있고 열정(방원에 대한 시기심)도 있으니 반란의 삼박자가 구비된 셈이다.
아우의 의도를 알게 된 정종이 만류하지만, 방간은 마침내 1399년에 병력을 일으켜 방원에게 도전한다. 정종은 아버지 이성계가 그랬듯이 어느 누구의 편도 들지 못하고 두 아우의 대결을 그냥 두고 볼 수밖에 없다. 개경 시내 한복판에서 두 형제가 사력을 다해 치열한 시가전을 벌인 결과 승자는 방원으로 정해졌다.
결승전에서 승리했다는 여유일까? 아니면 더 이상 형제의 목숨을 빼앗는 데 부담을 느낀 걸까? 아무튼 방원은 형 방간의 목숨만 살려주고 그의 부하들은 모두 죽여 버렸다. 이제 대권후보가 단일화되었으니 정종이 갈 길도 결정된 셈이다. 정종은 이듬해 2월 ‘무서운 아우’ 방원을 세자가 아닌 세제(世弟)로 삼고 그 해 말에 왕위를 양보한다. 친형제의 대결로 벌어진 2라운드는 결국 애초부터 집요하게 왕권을 노린 방원의 승리로 끝났다.
혈투 끝에 왕위에 오른 방원, 즉 태종(太宗, 재위 1400~18)은 고려의 4대왕인 광종(光宗)과 여러모로 닮은꼴이다. 건국자의 아들로서 치열한 왕위계승전의 최종 승자라는 점에서도 그렇고 정상적인 재위 기간을 회복한 것도 그렇다. 또 이후 왕실의 적통이 그에게서 비롯된다는 점도 닮았다. 그러나 그것들보다 더 크게 닮은 점은 제2차 건국사업을 주도했다는 사실이다. 고려의 광종이 노비안검법(奴婢按檢法)과 과거제(科擧制)를 도입하고 관제를 개편하고 중국과의 관계를 설정했듯이 조선의 태종도 그간 권력 승계의 문제 때문에 미뤄졌던 여러 가지 건국사업을 마무리한다【권력다툼의 측면만 보면 조선의 태종과 비슷한 인물은 고려의 광종(光宗)보다는 800년 전 중국 당나라의 2대 황제인 태종이다. 당의 건국자였던 이연(李淵)은 조선의 이성계처럼 살아 생전에 두 아들이 한 아들에게 죽는 비극을 겪고 제위마저 내준다. 그의 둘째 아들인 이세민은 황태자였던 형 이건성과 아우인 이원길을 살해하고 아버지의 양위를 받아 태종으로 즉위했다. 당의 황실과 조선의 왕실 성씨가 모두 이씨였던 점도 흥미로운 일치이며, 이세민과 이방원은 공교롭게도 ‘태종’ 이라는 묘호마저 같다. 피비린내 나는 골육상잔 끝에 즉위한 것과는 반대로 당 태종 이세민과 조선 태종 이방원은 재위 시절 뛰어난 치적을 보였는데, 정치에 관한 한 수단과 목적은 별개인 모양이다】.
조선 왕조 전체로 볼 때 이방원이 대권을 승계한 것은 단순한 파워 게임만이 아니다. 마치 무협영화처럼 전개된 그 사건의 이면에는 중대한 의미가 숨어 있다. 단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조선 왕조가 당당한 ‘왕국’ 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사실이다. 조선이 왕국이라는 건 당연한 일인데 왜 그게 중요할까? 물론 형식상으로 보면 조선은 왕국으로 출발했고 20세기 초에 멸망할 때까지 내내 왕국으로 존속했다.
그러나 내용적으로 보면 다르다. 조선은 이성계가 왕국으로서 세운 나라지만, 건국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사람은 앞에서 보았듯이 정도전을 중심으로 한 개국공신, 즉 고려 말의 신진사대부들이다. 그들은 사실상 새 왕조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서 조선을 사대부 국가로 만들고자 노력했다. 바로 여기에 유교왕국의 모순이 놓여 있다.
앞서 말했듯이 무릇 유교왕국이라면 국왕은 상징적인 존재로 군림하고 실제의 정치와 행정은 사대부가 담당하는 체제를 가리킨다. 여기에 가장 충실했던 것은 바로 이성계가 재위하던 시절의 조선이다. 이성계는 조선의 건국자이자 시공자로서, 또 정도전(鄭道傳)은 조선의 기획자이자 설계자로서 서로 조화로운 분업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기형적인 ‘이원집정부제’가 언제까지나 제대로 기능하리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 서열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는 국왕의 권위가 언제까지나 권력으로 바뀌지 않은 채 사대부들이 원하는 것처럼 상징으로만 남아 있을 수 있을까?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유교왕국은 늘 중앙권력의 불안정에 시달려온 게 역사적 사실이다. 중국의 역사를 참고해보면 이 점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처음으로 유학을 공식 이데올로기로 채택했던 중국의 한나라는 사대부들의 힘이 미약했기 때문에 황실의 외척과 환관들이 정치를 좌지우지했고, 당나라는 과거제(科擧制)를 채택했음에도 불구하고 귀족과 변방의 절도사들이 사실상의 권력을 장악하고 전횡을 일삼았다. 그 뒤를 이은 송나라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사대부들은 꿈에 그리던 권력을 잡았으나, 밖으로는 강성한 북방 이민족 왕조들에게 시달리고 안으로는 사대부들 간의 치열한 당쟁으로 국력을 소모할 수밖에 없었다【한반도의 경우는 중국보다 시기적으로 한 왕조씩 뒤처진다. 즉 통일신라시대에 유학이 공식 이데올로기로 채택되었고(중국의 한 무제처럼 그것을 분명히 선언한 것은 아니지만) 고려시대에 귀족과 호족들이 중앙정치를 주물렀으니, 이는 각각 중국의 한나라와 당나라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조선은 중국의 송나라와 비교할 수 있겠는데, 이후에 보겠지만 과연 건국 초기를 넘어서면서 조선은 본격적인 사대부 왕국으로 탈바꿈되어 당쟁으로 치닫게 된다】.
그런데 1천 년이 넘는 그 기나긴 과정에서 중국식 제국이 가장 강성하고 가장 크게 번영했던 시기는 바로 강력한 황제가 재위하던 시절이었다. 한 무제, 당 태종, 송 태조가 제국을 다스리던 중앙집권의 시대가 바로 그런 시기들이다. 사대부들에게는 악몽 같은 시절이었겠지만.
송나라가 온몸으로 보여주었듯이 가장 완벽한 유교제국이 가장 부실한 체제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바로 유교국가의 근본적 모순이다. 정도전(鄭道傳)은 그 점을 미처 알지 못했기에 조선을 유교왕국으로 만드는 것을 역사적 사명으로 알았지만, 실은 그의 실험이 실패한 게 신생국 조선으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실력으로 왕좌를 차지한 태종대에 이르러 조선 왕조는 비로소 진짜 왕국으로 발돋움하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도약과 번영의 시대를 맞는다.
▲ 심지백 개국원종공신녹권(沈之伯 開國原從功臣錄券): 공신녹권은 왕조의 창업이나 국가적 중대사에 직·간접으로 공을 세운 신하들에게 발급된 공신증명서이다. 개국원종공신이란 개국 의거에 직접 참여하지 못했으나 잠저 때부터 신변을 지켜주고 대업을 적극 권고한 공로가 있는 신하를 말한다. 개국원종공신녹권은 태조 원년(1392) 10월부터 6년(1397) 12월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1,400여 명에게 발급하였고, 그 중 하나가 이 심지백 개국원종공신녹권이다. 심지백 개국원종공신녹권은 태조 6년 10월 공신도감에서 전 조봉대부 사재부령 심지백에게 발급한 것으로 이 녹권에는 심지백을 포함하여 모두 75명의 원종공신의 이름이 쓰여 있고, 이들 각 공신에게 전 15결을 상으로 내린 것을 알 수 있다. 아울러 부모와 처에게 벼슬을 내리고, 자손에게는 음직을 내렸다고 전한다. 이러한 사실은 태조실록에도 기록되지 않아 이 녹권을 통해 비로소 확인할 수 있다. 현전하는 대부분의 개국원종공신녹권은 필사본인데 비해 심지백 개국원종공신녹권은 목활자인쇄본이라 인쇄문화사적으로도 가치가 높다.
개국공신의 양면성 이성계가 어느 개국공신에게 토지와 노비를 하사한다는 내용을 담은 문서다. 조선이 정상적인 왕국으로 출범했더라면 개국공신들은 자연스럽게 국왕을 보좌하는 관료 세력을 이루어야 했다. 그러나 정도전(鄭道傳)이 그 행정을 비틀어 국왕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사대부가 실권을 쥐는 체제를 만들려 했기에 왕자의 난이라는 권력투쟁이 일어난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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