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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논어한글역주, 옹야 제육 - 9. 한 대나무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의 즐거움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옹야 제육 - 9. 한 대나무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의 즐거움

건방진방랑자 2021. 6. 24.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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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한 대나무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의 즐거움

 

 

6-9.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훌륭하도다! 안회는 한 소쿠리의 밥과 한 표주박의 청수로 누추한 골목에서 산다. 사람들은 그 근심을 견디지 못하건만, 안회여! 그는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않는도다. 훌륭하도다! 안회는.”
6-9. 子曰: “賢哉, 回也! 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 回也!”

 

한 인간에 대한 이 이상의 찬사는 없을 것이다. 제자에 대한 사랑이 너무도 감동적으로 듬뿍 실려있다. 이 장의 감상 포인트는 그 근심[其憂]’그 즐거움[其樂]’이다. ‘()’라는 말에 강조가 놓여있다. 바로 그 근심, 그 누추함에서 그 즐거움을 발견할 줄 아는 지혜, 그 현명함[賢哉!]을 상찬하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의 지혜문학에도, 인도인의 지혜문학에도 이집트인의 지혜문학에도 이러한 삶의 자세는 깃들어있다. 안회는 장자가 말하는 현세적 가치의 초월이라는 측면에서 이미 선구적인 삶을 실천한 인물이었다. 장자인간세(人間世)에서 중니가 안회에게 심재(心齋)를 설파하고, 대종사(大宗師)15에서는 안회가 중니에게 좌망(坐忘)을 가르치는 그 모든 이야기의 원형이 실제적으로 역사적 안회(Historical Yan Hui)의 삶 속에 깃들어있다고 할 것이다.

 

 

()’라 발음한다. ‘이라 발음한다. ()’은 대로 엮어 만든 밥그릇이다. ‘()’는 밥이다. ‘()’는 표주박을 반으로 쪼개 만든 바가지이다. 안자 의 청빈함이 이와 같았는데, 그에 처함이 너무 태연하였고, 그 즐거움을 해함이 없었다. 그러므로 부자께서 현재(賢哉)! 회야(回也)’를 두 번씩이나 말씀하시고 깊은 탄미의 성을 발하신 것이다.

, 音嗣. , 音洛. , 竹器. , 飯也. , 瓠也. 顔子之貧如此, 而處之泰然, 不以害其樂, 故夫子再言賢哉回也以深歎美之.

 

정이천(정명도일 수도 있다)이 말하였다: “안자의 즐거움이란 단지 단표누항(簞瓢陋巷)을 즐기는 데 있는 것은 아니다. 그 가난함으로 인하여 마음이 꼬질꼬질하게 얽매여지거나 낙빈을 변하려 애쓰는 그런 자세가 없는 데 있다. 그러므로 부자께서 그 어짊을 칭찬하신 것이다.”

程子曰: “顔子之樂, 非樂簞瓢陋巷也, 不以貧窶累其心而改其所樂也, 故夫子稱其賢.”

 

또 말하였다: “단표누항(簞瓢陋巷)은 실상 즐거운 것은 아니다. 대저 즐거움이란 스스로 딴 곳에 있는 것이다. ‘()’라는 글자를 잘 완미()해야 한다. 스스로 깊은 뜻이 우러나올 것이다.”

又曰: “簞瓢陋巷非可樂, 蓋自有其樂爾. 其字當玩味, 自有深意.”

 

또 말하였다: “내가 주무숙(주렴계) 선생께 수학할 때에, 매번 중니와 안자가 즐거워한 바를 찾아보라고 명령하셨다. 과연 그 즐거워한 바가 무엇이었을까?”

又曰: “昔受學於周茂叔, 每令尋仲尼顔子樂處, 所樂何事?”

 

나 주희가 생각한다. 정자의 말은 시위만 당기고 화살은 나가지 않았다(문제만 제기하고 대답은 주지 않았다). 이는 배우는 자들로 하여금 깊게 생각하고 스스로 터득하게 하려 함이다. 지금 내가 감히 함부로 논설하기가 뭣하다. 배우는 자는 박문약례(博文約禮)의 가르침에 마땅히 종사하여, 도중에 그만두고자 하여도 그만둘 수 없는 정도로 그 재능을 다하는 데 이른다면 거의 터득함이 있을 것이다.

愚按: 程子之言, 引而不發, 蓋欲學者深思而自得之, 今亦不敢妄爲之說. 學者但當從事於博文約禮之誨, 以至於欲罷不能而竭其才, 則庶乎有以得之矣.

 

 

 

 

인용

목차 / 전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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