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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한글역주, 옹야 제육 - 10. 하려는 의지도 없이 아예 선을 그어버리다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옹야 제육 - 10. 하려는 의지도 없이 아예 선을 그어버리다

건방진방랑자 2021. 6. 2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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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하려는 의지도 없이 아예 선을 그어버리다

 

 

6-10. 염구가 말하였다: “저는 선생님의 도()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힘이 딸릴 뿐입니다.”
6-10. 冉求曰: “非不說子之道, 力不足也.”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참으로 힘이 딸리는 자는 중도라도 그만 둘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 너는 스스로 한계를 긋고 있을 뿐이니라.”
子曰: “力不足者, 中道而廢. 今女劃

 

인간의 나태에 관한 통렬한 비판이다. 앞서 말했듯이, 염구는 철저한 현실주의자였고, 실무형 관료였다. 이렇게 실무에 밝은 자들이 항상 삶의 지혜로 삼는 것은, 스스로의 가능성에 관하여,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여건에 관하여 한계를 긋고 살아가는 것이다. 현명하고 또 슬기롭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런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인간의 행태로부터는 문명의 돌파가 있을 수 없고 인간 삶의 본질적 개선이 이루어질 수 없다. 본장의 맥락 속에서의 중도이폐(中道而廢)’라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항력적인 사태를 말한다. 힘이 딸리면 무거운 것을 못 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생의 추상적 사태에 있어서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스스로 자신의 가능성을 제약시키고 있는 것이다. 지금 불가능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반드시 가능하게 될 수가 있는 것이다. 중용(中庸)11에서 공자는 말한다: ‘군자가 도를 따라 행하다가 중도에 그만두는 상황이 많다. 허나 나는 중도에 그만둘 수가 없노라[君子道而行, 半塗而廢, 吾弗能已矣].’

 

그리고 또 20에서 이와 같이 말한다: ‘배우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일단 배울진대 능하지 못하면 중도에 그만둘 수가 없는 것이다. 묻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일단 물었을진대 답을 얻지 못하면 중도에 그만둘 수가 없는 것이다[有弗學, 學之. 弗能, 弗措也. 有弗問, 問之, 弗知, 弗措也].’

 

율곡의 언해는 다음과 같다.

염구ᄀᆞᆯ오ᄃᆡ ᄌᆞ의도ᄅᆞᆯ 열티아니미 아니언마ᄂᆞᆫ 힘이죡디몯호이다

ᄌᆞᄀᆞᄅᆞ샤ᄂᆞᆫ 힘이죡디몯ᄒᆞᆫ쟈ᄂᆞᆫ 듕도애 폐ᄒᆞᄂᆞ니 이제 너ᄂᆞᆫ 획호미니라

 

 

()’이라 발음한다. ‘()’라 발음한다. 역부족(力不足)’이라고 하는 것은 나아가려고 노력하는데 도저히 나아갈 수 없는 것이다. ‘()’이라는 것은 나 아갈 수가 있는데 나아가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소위 ()’이라고 하는 것은 땅에 선을 긋고 그 속에서만 살려고 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 音悅. , 音汝. 力不足者, 欲進而不能. 畫者, 能進而不欲. 謂之畫者, 如畫地以自限也.

 

 

역부족의 차이에 관한 설명이 명료하다. ‘이란 자기의 보 금자리를 설정해놓고 그 속에서 안주하는 것이다.’

 

 

호인이 말하였다: “부자께서 안회가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않는다고 칭찬하시니까, 염구가 그 말씀을 듣고 자기도 이 말을 한 것이다. 그러나 만약 염구가 부자의 도를 좋아하는 것을 진실로 맛있는 고기요리 좋아하듯이 했다면, 반드시 있는 힘을 다해 추구했을 것이니, 어찌 힘이 딸린다는 걱정을 했겠는가? 한계를 긋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날로 쪼그라들 뿐이다. 이 때문에 염구의 인간적 가능성이 기예[]에 국한되어 버리고만 것이다(6-6 참조).”

胡氏曰: “夫子稱顔回不改其樂, 冉求聞之, 故有是言. 然使求說夫子之道, 誠如口之說芻豢, 則必將盡力以求之, 何患力之不足哉? 畫而不進, 則日退而已矣, 此冉求之所以局於藝也.”

 

 

호인(胡寅)6-106-9와 관련시켜 논한 것은 재미있는 간법(看法)이다. 최소한 편집자들은 그런 효과를 노렸을 것이다. 그리고 호인의 말 중에서 획이부진(畵而不進), 즉일퇴이이의(則日退而已矣)’라는 말은 꼭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일정한 한계를 자각하고 그 속에서 안주하는 것이 매우 현명한 것인 양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렇게 한계짓는 삶은 그 한계성이 유지가 되지 않는다는 데 근원적 아이러니가 있다. 우리나라 경제도 한계를 그으면 적당히 돌아갈 것 같지만 새로운 개척을 계속 시도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인풋을 제공하지 않으면 현상(現狀) 자체가 유지가 되지 않고 날로 퇴보하고 날로 쪼그라든다는 데 문제 가 있는 것이다. ‘부진즉일퇴(不進則日退)’라는 말은 우리 국민이 꼭 새겨들어야 한다. 우리 경제는 경제적 논리로써만은 해결이 되지 않는다. 그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끊임없는 세계경영, 바른 주체적 외교, 간단(間斷)없는 에너지 확보, 그리고 남북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통한 한민족의 단합력 과시 등등의 제반여건을 소리없이 조성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의 질곡으로, 종교적 독선으로, 실용주의적 노선을 취하지도 못하고, 자기의 한계만 긋고 고집하는 자들이여! 그대들이 바로 그대들의 실존을 붕괴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이 민족의 국체를 상실시키고 있나니!

 

 

 

 

인용

목차 / 전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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