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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한글역주, 술이 제칠 - 5. 꿈에서라도 주공을 뵙고 싶던 공자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술이 제칠 - 5. 꿈에서라도 주공을 뵙고 싶던 공자

건방진방랑자 2021. 6. 25.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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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꿈에서라도 주공을 뵙고 싶던 공자

 

 

7-5.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심하도다, 스러져가는 나의 몸이여! 오래되었구나, 꿈에서 주공(周公)을 다시 보지 못한 지가!”
7-5. 子曰: “甚矣吾衰也! 久矣吾不復夢見周公.”

 

위대한 문학이라 할 수밖에 없다. 공자와 주공의 시간격차가 600년은 된다. 그렇다면 공자가 주공을 만났을 리도 없고, 그 모습을 그릴 방도도 없었다. 그러나 공자는 젊었을 때 꿈에서 수없이 수없이 주공을 만난 모양이다. 주공은 역사적 존재라기보다, 공자에게 있어서는 자기가 구현하고자 하는 이상적 가치의 한 아이디알(ideal) 타입이었다. 공자의 삶의 동경의 전부였다. 그리고 그것은 꿈에 나타날 정도로 리얼한 그 무엇이었다. 그런데 이제 노경의 공자에게 그 꿈마저 스러져가고 있다. 공자의 이상이 스러져가는 것은 아닐 텐데! 인간의 몸의 한계를 절감하는 공자의 탄식은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

 

나도 젊었을 때는 꿈에서조차 엄마를 무척 많이 만난 것 같다. 그런데 돌아가 신 후로 단 한 번도 꿈에 나타나신 적이 없다. 보고 싶은데, 보고 싶은데, 꿈에서라도 한 번 뵙고 싶은데! 나타나지 않는 엄마의 환영에 대한 나의 안타까움 만큼, 공자에게 주공의 환영은 절실하고도 안타까웠던 그 무엇이었나 보다.

 

 

는 부우(扶又) 반이다. 공자가 젊고 왕성할 때에는 그 뜻이 주공(周公)의 도를 실천하고자 하는 데 있었다. 그러므로 꿈 속에서도 주공을 만났을 수도 있다. 그러나 노경에 이르러서는 주공의 도를 실천할 수 없게 되자, 다시 그러한 마음도 없어지고, 다시 꿈도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로 인하여 자신의 쇠함이 극심함을 스스로 개탄하신 것이다.

, 扶又反. 孔子盛時, 志欲行周公之道, 故夢寐之間, 如或見之. 至其老而不能行也, 則無復是心, 而亦無復是夢矣, 故因此而自歎其衰之甚也.

 

 

여기서 주공을 꿈에 보지 못한다는 것을 주공의 도를 실천하고자 하는 마음도 없어지니까 주공이 꿈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주희가 주석을 단 것은 극심한 오류에 속한다. ‘무부시심(無復是心)’이라고 못을 박아 말한 것은 성인(공자)을 모독한 것이다. 아무리 늙었다 할지라도 젊을 때의 이상과 그 이상을 실천하고자 하는 의욕이 상실되면 그것은 변절이며, 성인의 자격이 없다. 쇠한 것은 몸이 쇠한 것이지 주공을 사모하는, 주공의 도를 실천하고자 하는 마음이 쇠하거나 사라진 것은 아니다. 공자가 노년에 포기한 것은 정치적 실현의 꿈을 포기한 것이지, 주공의 도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주공을 꿈에 보지 못한 지 오래되었다는 주공을 꿈에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다는 단순한 그리움의 탄식이다. 그리고 그러한 명제는 몸이 쇠해가고 있는 공자에게 있어서는 너무도 사실적인 명제라는 데, 이 로기온자료의 진실성이 있는 것이다. 주희는 이 점에 있어서 생각이 크게 못 미쳤다.

 

 

정이천이 말하였다: “공자가 젊고 왕성했을 때에는 자나깨나 항상 주공의 도를 실천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늘그막에 이르러서는 의욕과 사려가 쇠하여져서 그런 상태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대저 도()를 존()하는 것은 마음[]이니, 마음에는 늙음과 젊음과 차이가 없다. 그러나 도를 실천하는 것은 몸[]이니, 몸은 늙으면 쇠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程子曰: “孔子盛時, 寤寐常存行周公之道; 及其老也, 則志慮衰而不可以有爲矣. 蓋存道者心, 無老少之異; 而行道者身, 老則衰也.”

 

 

 

 

인용

목차 / 전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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