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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논어한글역주, 술이 제칠 - 14. 백이숙제의 예시로 공자의 의중을 떠보다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술이 제칠 - 14. 백이숙제의 예시로 공자의 의중을 떠보다

건방진방랑자 2021. 6. 26.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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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백이숙제의 예시로 공자의 의중을 떠보다

 

 

7-14. 공자께서 위나라에 계실 때 염유가 말하였다: “부자께서 위나라 군주 첩(, , Zhe)을 도우실까?” 자공이 말하였다: “글쎄, 내가 한번 여쭈어볼께.”
7-14. 冉有曰: “夫子爲衛君乎?” 子貢曰: “. 吾將問之.”
 
자공은 공자 방으로 들어가서 여쭈었다. “백이와 숙제는 어떤 사람입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시었다: “옛날 현자들이지.”
, : “伯夷, 叔齊何人也?” : “古之賢人也.”
 
자공이 다시 여쭈었다: “후회했을까요?” 공자께서 다시 대답하시었다: “후회하긴, 인을 구해서 인을 얻었는데 또 뭘 후회해?”
: “怨乎?” : “求仁而得仁, 又何怨.”
 
자공이 공자 방에서 나오면서 말하였다: “공자께선 아무도 돕지 않으실 것이다.”
, : “夫子不爲也.”

 

이 대화의 배경에 관해서는 이미 충분히 설명하였다. 영공의 손자로서 일단 위나라 군주가 된 첩과 망명중인 첩의 아버지 괴외(蒯聵)와의 왕권을 둘러싼 더러운 싸움은 서막에서 상설하였고, 고죽국(孤竹國)의 두 왕자 백이와 숙제에 관하여서는 5-22에서 진설하였다. 영공이 죽은 것은 BC 493, 공자 나이 59세 때요, 괴외가 아들 첩을 몰아내고 쿠데타에 성공한 것은 BC 480, 공자의 귀로 후 72세 때였다. 그러니까 이 부자간의 16년에 걸치는 지루한 싸움은 거의 공자의 망명시기와 일치한다괴외가 엄마 남자를 죽이려다 실패하고 망명한 것은 BC 496년이다. 그러므로 이 두 부자간의 싸움은 BC 496~480, 16년간 지속된 셈이다. 공자는 망명생활을 위나라를 거점으로 했기 때문에 이 부자의 싸움은 공자 인생과 항상 걸려 있었다. 공자가 위나라에 체류하고 있을 때, 유능한 지식인이며 정치가인 공자가 누구의 편을 들까 하는 것은 많은 사람의 관심사였을 것이다.

 

우선, 자기 엄마 남자(南子)를 살해하려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도망친 괴외는 정통성이 없다. 남자가 영공이 세상을 떠나려 할 때, 괴외의 아들 첩의 군위계승을 영공으로부터 허락받았기 때문에 첩은 일단 정통성이 있는 군주이다그가 바로 출공(出公)이다. 그러나 결국 아버지의 왕위계승을 막았다는 측면에서는 첩은 도덕성이 없다. 더구나 그 모든 것이 음탕한 남자의 모략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에 자공이 공자의 의중을 떠보기 위하여 백이와 숙제의 고사를 들먹인 것은 매우 현명하다. 우리는 그 고사의 핵심적 의미와 비유의 대상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문제를 적당히 얼버무린다. 이름 그대로 백이(伯夷)가 형이고, 숙제(叔齊)가 동생이다. 그런데 고죽국의 왕은 왕위를 영민한 동생 숙제에게 물려주려고 하였다. 그런데 왕이 죽은 후 동생 숙제는 형에게 왕위를 양보하였다. 그러자 형 백이는 아버지의 명령이다[父命也], 내 어찌 너로부터 왕위를 받겠느냐하고 아예 도망가버렸다. 그러자 동생 숙제도 형을 생각하면서 왕위에 오르지 않고 또 도망가버렸다. 그러자 국인들은 공석이 되어버 린 왕위를 그대로 둘 수 없어, 그 가운데 아들[中子]을 왕으로 옹립한다백이와 숙제 사이에 고국군의 아들 하나가 더 있었던 모양이다.

 

여기서 국외로 도망친 괴외(蒯聵)가 곧 백이에 해당되고, 형과의 의리를 생각해서 또 다시 도망친 숙제가 첩에 해당된다. 그러나 형제지간의 백이와 숙제는 서로 왕위를 양보하려고 했고, 부자지간의 괴외와 첩은 서로 왕위를 뺏으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괴외와 첩, 모두에게 아무런 도덕적 정당성이 없는 것이다. ‘백이와 숙제는 수양산에서 굶어죽었을지언정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 서로 왕 위를 양보하는 도덕적인 행위로써 천추만세에 모범을 남겼다. 그 만분의 일이라도 도덕성이 있다면 어찌 첩과 괴외가 저렇게 더럽게 싸울 수가 있겠는가? 서로 양보하면 서로 잘 될 일을!’

 

요시카와가 역시 공자는 첩보다는 괴외쪽으로 기울었다고 주해를 단 것은 생각이 못 미친 것이다先代君主意志という形式的事柄よりも, 長者する自然愛情尊敬とを, より重要としたのである. 결국 양편 모두에게 조력할 수 없 었던 공자는 위나라를 떠나고 만다.

 

자공의 9)’은 긍정과 의문을 동시에 포함하는 말이며, 영어로 말하면, ‘well’ 정도의 느낌이 드는 말이다.

 

 

()’는 거성이다. ()’는 돕는다는 뜻이다. ‘위군(衛君)’은 출공(出公) ()이다. 영공(靈公)이 세자 괴외(蒯聵)를 내쫓았다. 영공이 훙거하자, 국인들이 괴외의 아들인 첩을 옹립하였다. 이에 옆의 대국 진나라는 괴외를 들이밀었다. 그러나 첩이 완강히 저지시켰다. 바로 이때에 공자가 위나라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위 나라 사람들은 과외가 아버지 영공에게 죄를 지었고, 첩이 그 적손이므로 왕위에 서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염유는 이런 상황을 참작하여 혹시나 하고 질문을 던진 것이다. ‘()’은 응답의 말이다.

, 去聲. , 猶助也. 衛君, 出公輒也. 靈公逐其世子蒯聵. 公薨, 而國人立蒯聵之子輒. 於是晉納蒯聵而輒拒之. 時孔子居衛, 衛人以蒯聵得罪於父, 而輒嫡孫當立, 故冉有疑而問之. , 應辭也.

 

백이와 숙제는 고죽군(孤竹君)의 두 아들이다. 그 아버지 고죽군이 죽으려 할 때 숙제를 왕으로 세우라는 명()을 남겼다. 왕이 죽으니, 숙제가 형 백이에게 왕위를 양보하였다. 백이가 말하기를, “아버지의 명령이다. 들을 수 없다하고 결국 도망가버렸다. 숙제가 또한 형과의 의리를 생각해 왕위에 오르지 않고 또 도망가버렸다. 국인들이 그 가운데 아들을 왕으로 옹립하였다. 그 후에 무왕이 주()를 정벌할 때에도 백이와 숙제는 정벌하러 가는 말 고삐를 잡고 간()하였고, 무왕이 상()나라를 멸망시키자, 주나라의 녹을 먹는 것을 수치라 여기고 수양산에 들어가 숨어 살다가 끝내 굶어죽었다.

伯夷叔齊, 孤竹君之二子. 其父將死, 遺命立叔齊. 父卒, 叔齊遜伯夷. 伯夷曰: “父命也”, 遂逃去. 叔齊亦不立而逃之, 國人立其中子. 其後武王伐紂, 齊扣馬而諫. 武王滅商, 齊恥食周粟, 去隱于首陽山, 遂餓而死.

 

()’은 이 맥락에서는 후회한다와 같다. 군자는 한 나라에 기식하여 살 때에는 그 나라의 대부도 비난하는 법이 아니다. 하물며 군주이랴! 그러므로 자공은 위군(衛君)을 대놓고 까지는 못하고, 백이숙제를 비유 삼아 질문을 던진 것이다. 부자께서 이에 이와 같이 응답하시니, 위군을 돕지 않으실 것임을 안 것이다. 대저 백이는 아버지의 명령을 존엄하게 생각하였고 숙제는 천륜을 중시하여 나라를 양보하였다. 모든 천리의 바름에 합하고 인심의 편안함에 즉()하기를 구한 것이다. 이미 두 사람이 각각 자기의 뜻을 얻었으니, 나라를 돌아보지 않는 것을 헌신짝처럼 여긴 것이다. 무슨 후회가 있으리오? 위나라의 첩이 위나라를 점거하고 아버지를 막아서 행여 왕위를 잃을까 걱정하는 따위의 행동은 한 자리에 놓고 비교할 수도 없는 것임이 너무도 자명하다기불가동년이어(其不可同年而語)’는 가의(賈宜)과진론(過秦論)에 출전이 있다.

, 猶悔也. 君子居是邦, 不非其大夫, 況其君乎? 故子貢不斥衛君, 而以夷齊爲問. 夫子告之如此, 則其不爲衛君可知矣. 蓋伯夷以父命爲尊, 叔齊以天倫爲重. 其遜國也, 皆求所以合乎天理之正, 而卽乎人心之安. 旣而各得其志焉, 則視棄其國猶敝蹝爾, 何怨之有? 若衛輒之據國拒父而惟恐失之, 其不可同年而語明矣.

 

정이천이 말하였다: “백이와 숙제는 나라를 사양하다가 도망하였고, 정벌을 막으려다 굶주려 죽었으나 끝내 후회가 없었다. 그러나 공자께서는 이들을 현인으로 여기셨으니 위나라의 첩을 돕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안 것이다.”

程子曰: “伯夷叔齊遜國而逃, 諫伐而餓, 終無怨悔, 夫子以爲賢, 故知其不與輒也.”

 

 

 

 

인용

목차 / 전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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