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자로 공자를 존경하는 마음에 거짓을 행하다
9-11. 공자께서 병이 걸리셨는데 위중한 상태에 이르렀다. 자로(子路)가 문인(門人)들을 가신(家臣)으로 삼아 대부의 장례체제를 준비하였다. 9-11. 子疾病, 子路使門人爲臣. 병에 차도가 있자, 공자께서 기운을 차리시고 말씀하시었다: “버릇이 길구나, 유(由)야, 왜 또 거짓을 행하려느뇨? 나는 본시 가신이 없는 사람, 가신을 두다니, 내 누구를 속 일 것이냐? 세인의 이목을 속일 수 없으니 하늘까지 속이려느뇨? 나는 가신의 허세 속에서 죽기보다는 차라리 평생 정든 너희들 손에 죽으련다. 어마어마한 장례는 얻지 못한다 해도 내 설마 길거리에서 죽기야 하겠느냐?” 病閒, 曰: “久矣哉! 由之行詐也, 無臣而爲有臣. 吾誰欺? 欺天乎? 且予與其死於臣之手也, 無寧死於二三子之手乎? 且予縱不得大葬, 予死於道路乎?” |
7-34와 동일한 장면에서 일어난 삽화일 것이다. 애처로운 자로의 힘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사람들이 흔히 지나치는 문제가 ‘자로사문인위신(子路使門人爲臣)’에서 ‘문인(門人)’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관한 것이다. 문인은 분명 공자의 문하생들이며, 결국 ‘너희들[二三子]’과 같은 사람들이 되고 만다. 전혀 모르는 외부사람들을 데려다 ‘가신(家臣)’으로 삼는 것처럼 보통 해석하고 넘어가는데 문인을 가신으로 삼는다면 사실 우리 감각에는 별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어떤 주석은 ‘문인’을 공자의 문인이 아닌, ‘자로의 문인’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마찬가지다. 좀 낯설고 가깝고의 차이일 뿐이다.
결국 문제는 문인들을 가신으로 삼았다는 것(결국 장례의 역할분담일 수도 있다) 그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전 장례를 대부(大夫)의 장례체제로 꾸미려하고 있었다는 데 ‘참월(僭越)’의 문제가 개재되는 것이다. 그냥 있는 그대로 소박하게 죽게 해다오! 허세를 싫어하는 공자의 인품, 계씨의 팔일무를 비난했던 그 비판정신을 자신의 죽음에까지 일관되게 적용시키는 도덕적 일관성, 이런 진실이 공자를 우리 마음속에서 깊게 존경하고 싶은 성인으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 ‘여기(與其) … 무녕(無寧) …’은 ‘무(無)’글자가 없는 3-4, 7-35의 용법과 같다. 마지막 문장에 ‘여(予)’가 반복되고 있는 것은 공자의 실제 말의 어기(語氣)를 잘 살려내고 있다.
부자께서는 이때에 이미 벼슬길에서 떠나 있었으므로 가신(家臣)이 있을 수 없었다. 자로가 가신 체제로써 상(喪)을 치르고자 했으니, 그 진의인즉 실로 성인을 높이고자 한 것이나, 어떻게 높여야 하는지를 잘 몰랐던 것이다.
夫子時已去位, 無家臣. 子路欲以家臣治其喪, 其意實尊聖人, 而未知所以尊也.
‘간(間)’은 보통 읽는 그대로 읽는다. ○ ‘병간(病間)’은 병이 조금 차도가 있는 것이다. 병이 위중할 때는 몰랐다가 차도가 있은 다음에야 그 일을 아시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내가 가신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어 속일 수 없는 것이어늘 가신을 두었으니 이는 하늘을 속이는 것일 뿐이라고 하신 것이다. 사람이 되어 하느님을 속이는 것은 더없이 큰 죄인데, 이를 끌어다가 자신을 책망하셨으니, 자로를 꾸짖으심이 깊은 것이다.
閒, 如字. ○ 病閒, 少差也. 病時不知, 旣差乃知其事, 故言我之不當有家臣, 人皆知之, 不可欺也. 而爲有臣, 則是欺天而已. 人而欺天, 莫大之罪. 引以自歸, 其責子路深矣.
‘무녕(無寧)’은 ‘무(無)’자가 없는 ‘녕(寧)’과 같다. ‘대장(大葬)’은 군신(君臣)의 예를 갖춘 장례이다【沃案. 공자는 군도 아니고, 신도 아니다】. ‘사어도로(死於道路)’는 시신 이 길거리에 내버려져서 장례를 아예 치르지 않는 것을 일컫는 것이니, 반드시 그럴 수는 없다는 것을 또 제자들에게 깨닫게 해주신 것이다【沃案. 주희의 엉터리 주석이다. 표현의 문제이지 정말 내버리지는 말라고 당부한 것은 아니다. 송유들이 신경을 쓰는 구석이 너무 옹졸하다】.
無寧, 寧也. 大葬, 謂君臣禮葬. 死於道路, 謂棄而不葬. 又曉之以不必然之故.
범순부가 말하였다: “증자가 죽으려할 때에 일어나서 잘못 깔려있던 대부의 화문석을 바꾸어 깔고 말하기를, ‘내가 바름 을 얻고 죽으면, 그것으로 만족할 뿐이다’라고 말하였다(『예기』 「단궁」상), 그런데 자로는 공자를 높이고자 하여 신하를 둘 수 있는 위(位)가 없는 사람이 신하를 둘 수는 없다는 것을 생각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거짓을 행함에 빠지게 되었고 죄가 하느님을 속이는 데 이르렀으니, 군자는 언동(言動)에 있어 미세한 것이라도 근신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부자께서 자로를 깊게 징계하심은 실로 배우는 후학들을 경계하려 하심이다.”
○ 范氏曰: “曾子將死, 起而易簀. 曰: ‘吾得正而斃焉, 斯已矣.’ 子路欲尊夫子, 而不知無臣之不可爲有臣, 是以陷於行詐, 罪至欺天. 君子之於言動, 雖微不可不謹. 夫子深懲子路, 所以警學者也.”
양시가 말하였다: “삶이 지극하고 뜻이 성실한 자가 아니면, 지혜를 사용함이 자사(自私: 이기적이고 제멋대로)하여 무사(無事)한 것을 행할 줄을 몰라【沃案. 일이 없으면 없는 대로 넘어가야지, 인위적으로 꾸며 일을 만들면 안 된다는 뜻】, 왕왕 거짓을 행하고 하늘을 속이는 데 빠지면서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것은 아마도 자로에게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楊氏曰: “非知至而意誠, 則用智自私, 不知行其所無事, 往往自陷於行詐欺天而莫之知也. 其子路之謂乎?”
자로를 너무 폄하하면 안 된다. 자로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순수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공자가 자로를 심하게 야단친다는 것 자체가 공자의 자로에 대한 인간적 믿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자로에 대한 공자의 사랑은 끈끈하다. 공자는 자로에 대한 심한 언사를 통해 마음 편하게 주변 사람들을 교육시키고 있는 것이다. 자로는 위대한 인간이었다. 외면적 논리에 구애되어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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