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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논어한글역주, 자한 제구 - 10. 안연이 밝힌 공자 도의 위대함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자한 제구 - 10. 안연이 밝힌 공자 도의 위대함

건방진방랑자 2021. 6. 27.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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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안연이 밝힌 공자 도의 위대함

 

 

9-10. 안연이 한숨쉬며 크게 탄식하여 가로되: “우리 스승의 도는 우러러볼수록 높아만지고, 뚫고 또 뚫어보아도 더욱 견고할 뿐. 바라보니 앞에 계시더니, 홀연히 뒤에 계시네. 스승님께서는 그토록 차근차근 사람을 잘 이끌어 앞으로 나아가게 하시는도다. 나를 문()으로 넓혀주셨고, 나를 예()로 집약시켜주셨도다. 공부를 그만두자하여도 그만둘 수 없어 나의 있는 재능을 다하고자 하나, 스승님은 어느샌가 또 새롭게 우뚝 서 계시는도다! ~ 스승님을 따르고자 하나 어디서 그 실마리를 잡아야할꼬. ~ 나의 스승님!”
9-10. 顔淵喟然歎曰: “仰之彌高, 鑽之彌堅; 瞻之在前, 忽焉在後. 夫子循循然善誘人, 博我以文, 約我以禮. 欲罷不能, 旣竭吾才, 如有所立卓爾. 雖欲從之, 末由也已.”

 

이 장은 우리에게 친숙하다. 노산() 이은상(李殷相, 1903~1982)스승의 은혜라는 노래 속에 이 장의 일절을 썼기 때문이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박아이문(博我以文), 약아이례(約我以禮)’6-25에 공자의 말로서 한 번 나왔다. ‘여유소립탁이(如有所立卓爾)’는 끊임없이 새로운 경지를 정립하여 우뚝 서 있다는 뜻이다. 정체(亭滯)를 모르는 공자의 호학(好學)정신을 나타내고 있다. ‘말유야이(末由也已)’()’()’와 같은 부정사, ‘()’의지할 바’, ‘말미암을 곳’, ‘방법’, ‘연고의 뜻이다.

 

 

는 고위(苦位) 반이다. ‘은 조관(祖官) 반이다. ()’는 탄식하는 소리이다. ‘앙미고(仰彌高)’는 미칠 없음을 말한 것이다. ‘찬미견(鑽彌堅)’는 뚫고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재전재후(在前在後)’는 홀황하여 그 형상을 포착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沃案, ‘황홀은 우리말이 너무 변형된 의미가 강해서 홀황으로 번역했는데, 원래 노자14에 나오는 말이다. 공자의 자유자재로운 경지를 나타내는 표현들이다. 이것은 안연이 부자의 도가 무궁무진하고, 모서리진 실체가 잡히지 않는다는 것을 깊게 깨닫고 감탄한 것이다.

, 苦位反. , 祖官反. , 歎聲. 仰彌高, 不可及. 鑽彌堅, 不可入. 在前在後, 恍惚不可爲象. 此顔淵深知夫子之道, 無窮盡, 無方體, 而歎之也.

 

순순(循循)’은 차서가 있는 모양이다. ‘()’는 잘 이끌어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박문약례(博文約禮)’는 가르치심의 차례이다. 부자의 도가 비록 드높고 오묘하지만 사람을 가르치는 데는 매우 구체적인 방법과 순서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

循循, 有次序貌. , 引進也. 博文約禮, 敎之序也. 言夫子道雖高妙, 而敎人有序也.

 

후사성(侯師聖, 6-8에서 해설)이 말하였다: “‘박아이문(博我以文)’은 치지(致知)와 격물(格物)의 단계이고, ‘약아이례(約我以禮)’는 극기복례(克己復禮)의 단계이다.”

侯氏曰: “博我以文, 致知格物也. 約我以禮, 克己復禮也.”

 

정이천이 말하였다: “이것은 안자(顔子)가 성인을 가장 적절하고 합당하게 일컬은 대목이다. 성인께서 사람을 가르치시는 것은 오직 이 두 가지일 뿐이다.”

程子曰: “此顔子稱聖人最切當處, 聖人敎人, 惟此二事而已.”

 

()’은 우뚝 서있는 모습이다. ‘()’은 부정사 무()와도 같다. 이것은 안자가 자신의 배움이 이르는 경지를 스스로 고백한 것이다. 대저 배움의 희열이 깊고, 힘쓰기를 최선을 다하여 도에 아주 친하게 되었지만 또한 그 힘을 쓸 바를 잘 모르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沃案. 경지가 높아질수록 어려워진다는 뜻.

, 立貌. , 無也. 此顔子自言其學之所至也. 蓋悅之深而力之盡, 所見益親, 而又無所用其力也.

 

오역이 말하였다: “‘탁이(卓爾)’라고 말한 것은 그 탁월함이 일용행사지간(日用行事之間: 일상성)에 있는 것이지 오묘하고 어둡고 혼돈스럽고 침묵함에 있는 것은 아니다.”沃案, 공자는 어디까지나 일상성 속의 성인이었다.

吳氏曰: “所謂卓爾, 亦在乎日用行事之間, 非所謂窈冥昏黙者.”

 

정이천이 말하였다: “이러한 정도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공부가 특별히 더욱 어렵고 벼랑길에서 절벽을 쳐다보는 것 같아, 대단하게 힘을 내도 달성키 어려운 느낌이 들 것이다.”

程子曰: “到此地位, 功夫尤難, 直是峻絶, 又大段著力不得.”

 

양중립이 말하였다: “욕심낼 만한 선()의 경지로부터 쌓아올려 충실하여 빛나는 대()의 경지에 이르는 것은 인간의 노력의 쌓임에 의하여 가능한 것이 다沃案, 맹자』 「진심 25에 맹자는 인간의 고양의 경지를 선() () () () ()()의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대()로부터 화()하여 성()에 이르는 것은 단순히 인간의 노력의 쌓임에 의하여 미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니, 이는 안자가 공자로부터 한 칸이 모자라는 이유이다.”

楊氏曰: “自可欲之謂善, 充而至於大, 力行之積也. 大而化之, 則非力行所及矣, 此顔子所以未達一閒也.”

 

정이천이 말하였다: “이것은 안자가 진실로 공자를 깊게 알고 또 잘 배운 연유를 말해주고 있다.”

程子曰: “此顔子所以爲深知孔子而善學之者也.”

 

호인()이 말하였다: “앞에 아무 일도 없이 갑자기 위연(喟然)’한 탄식으로 시작한 것은, 안자의 배움이 이미 터득한 바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서, 그 배움의 어려움을 앞세우고 깨달음의 실마리를 뒤로 하여 자신의 배움의 공을 다 스승님께 돌리고 있는 것이다. 높고 견고하고, 앞에 있다가 홀연히 뒤에 있다고 한 것은 도체(道體)를 말한 것이다. 우러러보고, 뚫어보고, 바라보고, 홀연히 사라지고 한 것은 그 요체(要諦)를 요령있게 파악하지 못 한 상태를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대저 부자께서는 순순하게 차곡차곡 사람들을 잘 인도하여 주시고, 먼저 박아이문(博我以文)’해주시니, 나로 하여금 고금의 역사적 사건과 변화를 통달케 하여주셨다. 그런 뒤에 약아이례(約我以禮)’하여 주시니, 나로 하여금 들은 바를 존중하고 아는 바를 실천하게 하여 주셨다. 이는 마치 길 가는 자가 집에 도달하려는 것과도 같고, 밥먹는 자가 배부름을 구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이 때문에 공부를 그만두고자 하여도 그만둘 수 없었고, 마음을 다하고[盡心] 힘을 다할 뿐[盡力], 잠시도 쉬거나 폐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 후에나 겨우 부자의 서 계신 모습의 우뚝함을 볼 수 있었으니, 부자의 경지를 따라가고자 하나 또 그 실마리를 잡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따르는 것에 게으름이 없이 반드시 공자의 우뚝 서있는 경지에 도달하고자 한 안자의 노력이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 안자의 탄식은 안연에 나오는 청사사어(請事斯語), 이 말씀을 따르겠나이다뒤에 연이어 한 말이거나, 옹야 5삼월불위(三月不違) 마음이 삼 개월 동안 인에서 어긋남이 없었다라고 했을 때 즈음 한 말일 것이다.”

胡氏曰: “無上事而喟然歎, 此顔子學旣有得, 故述其先難之故, 後得之由, 而歸功於聖人也. 高堅前後, 語道體也. 仰鑽瞻忽, 未領其要也. 惟夫子循循善誘, 先博我以文, 使我知古今, 達事變; 然後約我以禮, 使我尊所聞, 行所知. 如行者之赴家, 食者之求飽, 是以欲罷而不能, 盡心盡力, 不少休廢. 然後見夫子所立之卓然, 雖欲從之, 末由也已. 是蓋不怠所從, 必欲至乎卓立之地也. 抑斯歎也, 其在請事斯語之後, 三月不違之時乎?”

 

 

불필요하게 긴 주석이다.

 

 

 

 

인용

목차 / 전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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