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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4부 범람하는 유머 열정의 패러독스 - 3장 “문명은 기왓조각과 똥거름에 있다”, 문명과 똥 본문

문집/열하일기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4부 범람하는 유머 열정의 패러독스 - 3장 “문명은 기왓조각과 똥거름에 있다”, 문명과 똥

건방진방랑자 2021. 7. 10.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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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문명은 기왓조각과 똥거름에 있다

 

 

문명과 똥

 

 

똥과 문명의 함수아니면 똥의 역사를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개똥같은 소리냐 싶겠지만, 이건 정말 진지한 담론적 이슈다. 똥이야말로 문명의 배치를 바꾸는 데 있어 결정적인 요소였던바, 어찌 보면 똥의 역사야말로 태초 이래 인류의 궤적을 한눈에 집약한다고도 말할 수 있는 까닭이다.

 

요즘 사람들의 똥에는 파리가 들끓지 않는다고 한다. 너무 독성이 강해서 파리떼도 기피한다는 것이다. 이러다간 똥파리라는 종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똥파리 없는 똥’,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런데 바로 이 사실만큼 인류가 현재 처한 상황을 잘 말해주는 것도 없지 않은가? 생태계의 파괴, 이성의 경계, 타자성 등, 지금 소위 포스트 모던철학이 씨름하고 있는 문제들이 모두 그 안에 있다.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을 기억하는지. 연암의 초기작인 방경각외전(放璚閣外傳)에 속한 작품이다. 그 글의 주인공 엄항수(嚴行首)는 똥을 져다 나르는 분뇨장수다. 그는 사람똥은 말할 것도 없고, 말똥, 쇠똥, 닭ㆍ개. 거위 똥까지 알뜰히 취하되 마치 주옥처럼 귀중히 여겼다고 한다. 연암은 그의 고결한 인품에 매료되어 스승이라 이를지언정 감히 벗이라 이르지 못하겠노라며 예덕선생이란 호를 지어 바친다. 이처럼 똥에 대한 연암의 애정(?)은 젊은 날부터 남다른 바가 있었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지난 뒤, 연암이 세계제국 청문명의 정수를 본 것도 바로 에서였다. “청문명의 핵심은 기왓조각과 똥부스러기에 있다[瓦礫糞壤 都是壯觀]”. 이 명제만큼 연암의 사유가 농축되어 있는 문장도 드물다. 대개는 이 명제를 그저 이용후생의 차원에서 이해하고 말지만, 그건 너무 싱거운 해석이다. 이 명제 안에는 연암 특유의 패러독스 그 전복적 여정이 생생하게 농축되어 있는 까닭이다.

 

일신수필(馹汛隨筆)에서 그는 우리나라 선비들의 북경 유람을 이렇게 분류한다. 소위 일류 선비(上士, 상등으로 인정받는 선비)는 황제 이하 모두 머리를 깎았기 때문에 되놈이고 되놈은 곧 짐승이라 볼 것이 없다고 하고, 소위 이류 선비(中士, 중등으로 인정받는 선비)는 장성의 시설 및 무장 상태를 눈여겨보고서는, “진실로 10만 대군을 얻어 산해관으로 쳐들어 가서, 만주족 오랑캐들을 소탕한 뒤라야 비로소 장관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誠得十萬之衆 長驅入關 掃淸凾夏 然後壯觀可論].”라고 한다. 그에 대해 연암은 이는 춘추를 제대로 읽은 사람의 말[此善讀春秋者也]”이라며 조선이 명나라를 섬기는 연유에 대한 충분한 공감을 표명한다. 그러나 그는 이 중화주의적 영토 위에서 탈영토화하는 선분을 중첩시킨다.

 

 

대개 천하를 위하여 일하는 자는, 진실로 백성에게 이롭고 나라에 도움이 될 일이라면 그 법이 비록 오랑캐에게서 나온 것일지라도 마땅히 이를 수용하여 본받아야만 한다. 더구나 삼대(三代) 이후의 성스럽고 현명한 제왕들과 한ㆍ당ㆍ송ㆍ명 등 여러 왕조들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고유한 원칙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성인이 춘추를 지으실 제, 물론 중화를 높이고 오랑캐를 물리치려고 하셨으나, 그렇다고 오랑캐가 중화를 어지럽히는 데 분개하여 중화의 훌륭한 문물제도까지 물리치셨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일신수필(馹汛隨筆)

而况三代以降聖帝明王漢唐宋明固有之故常哉 聖人之作春秋 固爲尊華而攘夷 然未聞憤夷狄之猾夏 並與中華可尊之實而攘之也

 

 

천하의 이로움, 성인의 뜻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서두를 열고 있다. 누가 이런 논지에 반대를 표하겠는가.

 

 

다음, “그러므로 이제 사람들이 정말 오랑캐를 물리치려면 중화의 전해오는 법을 모조리 배워서 먼저 우리나라의 유치한 습속부터 바꿔야 할 것이다. 밭갈기, 누에치기, 그릇굽기, 풀무불기부터 공업, 상업 등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다 배워야 한다. 다른 사람이 열을 배우면 우리는 백을 배워 백성을 이롭게 해야 한다. 우리 백성들이 몽둥이를 만들어두었다가 저들의 견고한 갑옷과 날카로운 무기를 두들길 수 있게 된 다음에야 중국에는 볼 만한 것이 없다고 장담할 수 있을 것이다[故今之人誠欲攘夷也 莫如盡學中華之遺法 先變我俗之椎魯 自耕蠶陶冶 以至通工惠商 莫不學焉 人十己百 先利吾民 使吾民制梃 而足以撻彼之堅甲利兵 然後謂中國無可觀可也]”. 오랑캐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인민을 이롭게 하는 일을 두루 마스터하는 일이 급선무고, 그 이후에야 무력으로써 오랑캐를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중화주의의 명분은 하나도 건드리지 않은 채, 슬그머니 논점을 이용후생으로 옮겨놓았다.

 

이쯤 되면, 중화주의의 명분을 뚫고 나오는 새로운 담론의 속살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에 대해 반론을 펴기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여전히 중화주의라는 단단한 껍질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정쩡하게 머뭇거리는 동안 완전히 판이 바뀌게 된다. “나는 비록 삼류 선비[下士]지만 감히 말하리라. ‘중국의 제일장관은 저 기왓조각에 있고, 저 똥덩어리에 있다[余下士也 曰壯觀在瓦礫 曰壯觀在糞壤].’” ―― 클라이맥스이자 대단원,

 

흥분을 가라앉히고, 그의 말을 좀더 들어보자. 저 기왓조각은 천하에 버리는 물건이지만 이를 둘씩 포개면 물결무늬가 되고, 넷씩포개면 둥근 고리모양이 되니 천하의 아름다운 무늬가 이에서 나온다. 똥은 지극히 더러운 물건이지만 이를 밭에 내기 위해서는 아끼기를 금싸라기처럼 여기어 말똥을 줍는 자가 삼태기를 들고 말 뒤를 따라 다닌다. 이를 정성껏 주워모으되 네모반듯하게 쌓고, 혹은 여덟 모로 혹은 여섯 모로 하여 누각이나 돈대의 모양을 이루니, 이는 곧 똥무더기를 모아 모든 규모가 세워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 하필 성지(城池), 궁실(宮室), 누대(樓臺), 목축(牧畜) 따위만을 중국의 장관이라 할 것인가.

 

여기에 이르면 중화주의라는 거대담론은 흔적도 없이 실종된다. 아니, 있다 한들 무슨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 게다가 기와와 똥무더기의 관점에서 다시 저 일류 선비, 이류 선비들의 통념을 보노라면, 너무나 우스꽝스러워서 포복절도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의 패러독스는 이렇듯 신랄하다. 명분과 실리의 사이, 내부와 외부의 사이에서 교묘하게 줄타기를 하고, 그 줄타기를 음미하다 보면 어느덧 사뿐히 외부에 착지하게 된다. 심연으로 거슬러 올라가 지반을 뒤흔들거나 아니면 돌연 지금, 여기의 표면으로 솟구쳐 표면장력을 일으키거나.

 

참고로, 똥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하나 덧붙이면, 구한말 갑신정변의 풍운아 김옥균이 남긴 글 가운데 치도약론(治道略論)이라는 텍스트가 있다. 근대적 개혁을 위해 조선이 시급하게 시행해야할 정책으로 이 혁명가가 내세운 것은 뜻밖에도 위생(衛生)이다. 서구적 관점에서 볼 때, 조선의 미개함은 사람과 짐승의 똥오줌이 길에 가득하다는 바로 그 사실에 있었던 것이다. 이후 독립신문, 대한매일신보등 계몽정론지들에는 똥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이 가해진다. 졸지에 문명개화의 적이 되어버린 ’! 똥의 입장에서 보면, 참 신세 처랑하게 된 셈이다.

 

세계제국의 중심인 청문명의 토대를 똥부스러기에서 찾은 연암과 똥이야말로 개화자강의 걸림돌이라고 본 김옥균, 이 둘 사이의 담론적 배치의 차이를 규명할 수 있다면, 우리는 분명 역사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열쇠는 어디까지나 이 쥐고 있다.

 

 

 베이징의 자금성

명나라 때 지어진 자금성은 지금도 여전히 화려하고 장엄하다. 헌데, 연암은 특이하게도 자금성에 대해서는 별반 언급이 없다. 화려한 궁성이 아니라 기와나 말똥, 수레 따위에서 문명의 지혜를 찾았던 연암. 모두가 자금성의 규모에 눈 빼앗기고 압도당할 때, 그만은 거기에서 권력의 무상함을 감지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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