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온의 가합일 뿐인 나는 좆도 아니다
나(我, Ego)는 색ㆍ수ㆍ상ㆍ행ㆍ식이 다섯 가지 오온(五蘊, 다섯 가지 집적태)의 가합(假合, 일시적 조합)입니다. 그런데 가합의 요소인 색ㆍ수ㆍ상ㆍ행ㆍ식 하나하나가 또다시 공입니다. 리얼하지 않은 것이지요.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라미(RAMI)만년필도 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 자체가 영속할 수 없는 가합입니다. 튜브에 들어있는 잉크만 말라도 만년필은 제 기능을 못합니다. 펜촉은 순간순간 닳아 없어지고 있어요. 이 글을 쓰고 있는 200자 원고용지도 몇 년이면 바스러집니다. 이 만년필을 쓰고 있는 내 손도 1ㆍ20년 후면 쓸 수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것을 쓸 수 있게 만드는 나의 팔이 아닌 나의 식(識)도 곧 고혼(孤魂)이 되어 태허(太虛)로 흩어져버릴 것입니다.
도대체 아(我)가 어디에 있습니까??
아(我) II 오온의 가합 |
색(色) = 공(空) | 오온개공 (五蘊皆空) |
나[我]는 공(空)이다 |
수(受) = 공(空) | |||
상(想) = 공(空) | |||
행(行) = 공(空) | |||
식(識) = 공(空) |
시중에 나와있는 책들을 보면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해석하여 색의 물질세계에 반하여 공의 세계는 영성계(靈性界)라고 하는 다양한 구라가 많아요. 이런 개똥같은 담론이 또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또다시 공(空)을 실체화 하고, 불교의 근원을 왜곡하여 얄팍한 장사를 해먹으려는 수작일 뿐이지요. 다시 말해서 공(空)을 빙자하여 예수쟁이들 구미에 맞는 불교를 만듦으로써 새로운 영성을 운운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더더욱 한심한 일은 적지않은 스님들이 이런 엉터리 담론에 귀가 여리다는 것이지요.
달타가 보리수 밑에서 깨달은 것은 ‘연기’ 하나입니다. 연기라는 것은 이 우주의 모든 사태(event, occasion)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무수한 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관계망 속에서만 이벤트, 해프닝(=가합假合)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연(因緣)이라는 것도 인(因)은 주원인이고, 연(緣)은 그 주변에 묻어있는 수없는 보조원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연이 사라지면 존재(사태)는 소리 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그것이 공(空)입니다. 공은 철저히 공일 뿐이지요. 이러한 우주론적 의미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아요. 그래서 나의 오도송은 이러한 명제를 외쳤던 것입니다.
나는 좆도 아니다.
이것은 ‘나는 공(空)이다’라는 우주론적 명제를 일상적 윤리명제로 바꾸어 표현한 것입니다. 막말로 나는 좆도 아니라는 것이지요. 좆이나 된 것처럼 폼 잡고 살지 말자는 것이지요. 나는 아버지 덕분에 물질적 풍요 속에서 자라났습니다. 부족한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성격을 닮아 매사에 꼼꼼하고 철두철미했습니다. 내가 스무 살 전후에 이 『반야심경(般若心經)』을 접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매우 자신 있고 오만하고 융통성 없는 인간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심경』을 만나, 관세음보살의 가르침을 얻어 ‘나는 좆도 아니다’라는 공의 진리를 터득하여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사회를 생각하고, 타인의 고액을 동감하고, 진리에 대하여 개방적 자세를 유지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묵묵히 공부하고 끊임없이 배우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나는 좆도 아니다’라는 진리를 터득하기만 한다면 한 인간으로서의 무한한 가능성을 쉽게 발현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이 책을 읽는 사람 중에서 미래의 대통령이 나온다면, 그는 반드시 ‘나는 좆도 아니다’라는 생각 속에서 과감하게 혁명적인 진리를 이 사회, 이 민족에게 펼쳐야 할 것입니다. 자기를 버리면 무서울 것이 없지요.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