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1. 묻길 즐기다
子曰: “舜其大知也與! 舜好問而好察邇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순(舜)은 크게 지혜로운 자로다. 순(舜)은 묻기를 좋아하고 평소의 일상적인 가까운 말을 곰곰히 살피길 좋아한다. 舜之所以爲大知者, 以其不自用而取諸人也. 邇言者, 淺近之言, 猶必察焉, 其無遺善可知. 순임금이 크게 지혜로운 자가 된 까닭은 자기에게 있는 것을 쓰지 않고 남에게서 취하였기 때문이다. 이언(邇言)이란 일상적이고 지근한 말로 순임금은 오히려 살펴 버릴 선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
공자가 말하기를 “순(舜)은 참으로 위대한 지성이다. 순(舜)은 묻는 걸 좋아하고 가까운 말을 살피기를 좋아했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순(舜)’이라는 인물이 등장했는데, 공자는 요(堯)와 순(舜)이라는 성왕을 명백히 인식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요(堯)·순(舜)은 역사적인 인물로만 공자의 머리에 들어 있는 게 아니죠. 요ㆍ순은 공자에게 있어서 중국 문명의 이상적 덕목을 구현한 하나의 파라곤(Paragon, 화신), 즉 아이들 피규어(Ideal figure, 이상적인 인물)입니다.
원래는 본문처럼 우제사장(右第四章)·우제오장(右第五章)이란 말이 없이 문장들이 쭉 붙어 있었던 것인데 주자가 장(章)을 나눴다고 첫 시간에 설명했었죠. 만약 문장들이 주자 이전처럼 다 붙어 있을 때 어떻게 끊어 읽어야 할까 하는 것도 생각해 보세요. 본문의 지(知)는 지혜라는 뜻으로, 명사화되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與)는 감탄사로 동시에 의문의 어감이 있어요(かなお). 여(歟)와 같은 겁니다. 그러면 순(舜)이 왜 대지(大知)냐? 그 대지(大知)의 내용이 호문(好問)과 호찰이언(好察邇言)이죠.
엊그제 어느 한의과 학생이 나랑 같이 점심을 하면서 내 강의가 재미있느냐 했더니, “선생님 강의는 다른 강의에 비해 다릅니다. 한의과대 선생님은 기존의 지식체계를 전달하는 데만 급급해서, 어제 저녁까지 부지런히 사전에서 베껴다가 그 지식을 학생에게 덮어 씌울려고 애를 쓰는 데 반해, 선생님은 비록 일방적으로 말씀하시고는 있지만 순간순간 끊임없는 질문이 저에게 생기기 때문에 재미있습니다”라고 하더군요.
여러분, 물을 줄 아는 것이 학문하는데 중요한 것입니다. 흔히 학문(學問)을 중고생들이 학문(學文)으로 잘못 쓰는데, 학문은 “사이언스(Science, 과학)를 배운다(learning)”라는 현대적 의미가 아니고 고전에서 그대로 따온 말입니다. 중용(中庸)에도 뒷부분에 많이 나와요. 보통 문학(問學)이라고 하는 데 학문이란 학(學)과 문(問), 즉 문장을 짓고 그런 게 아니라 ‘묻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하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것이 바로 ‘학문’이지요. 질문이 없으면 지식이 생겨날 수 없습니다.
우리 대학 다닐 때는 지식 자체가 흔하지 않은 시절이었어요. 원서도 번역서도 없었고 사전도 제대로 없어서 궁금한 게 많았죠. 책방에도 책이 없었을 때니깐 지식 흡수가 쉽지 않았던 겁니다. 그래서 어떤 놈이 무슨 책을 하나 보고 구라를 치면 그게 그렇게 부러운 거야. 그래가지고 맨날 다방에 앉아서 그놈이 지가 읽은 책에 대해 구라치는 걸 들어주는 낭만이 있었어요. 요새는 책이 많이 보편화되었고, 또 함부로 뭐라고 떠들기도 위험해서 그런 낭만은 없을 거예요. 그래서 나도 그때 공부한 레토릭을 좀 써먹었는데, 레토릭을 사용해서 구라를 치면 좋은 게 뭐냐면 여학생 꼬시는데 유효하거든요. 덕분에 나에게도 여자들이 안 꼬이는 편은 아니었어요. 어쨌든 그런 식으로 얻은 지식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결국 내 것이 되는 지식은 물어서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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