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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도올선생 중용강의, 7장 - 1. 누구나 함정에 걸린다 본문

고전/대학&학기&중용

도올선생 중용강의, 7장 - 1. 누구나 함정에 걸린다

건방진방랑자 2021. 9. 17.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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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누구나 함정에 걸린다

 

子曰: “人皆曰予知, 驅而納諸罟擭陷阱之中, 而莫之知辟也. 人皆曰予知, 擇乎中庸, 而不能期月守也.”
공자가 말하기를 사람들이 모두들 나는 지혜롭다고 말하지만 그물과 덫과 함정 가운데로 휘몰아 넣어도 피할 줄을 알지 못하고,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나는 지혜롭다고 하면서도 중용(中庸)을 택하여서는 일개월도 지키지 못한다.”
 
, 網也. , 機檻也. 陷阱, 坑坎也. 皆所以掩取禽獸者也. 擇乎中庸, 辨別衆理, 以求所謂中庸, 卽上章好問用中之事也. 期月, 匝一月也. 言知禍而不知辟, 以況能擇而不能守, 皆不得爲知也.
()는 그물이다. ()은 덫이다. 함정(陷阱)은 구덩이를 판 것이다. 다 짐승을 불의에 잡는 것이다. ‘중용을 택한다는 것은 모든 이치를 판별하여 중용이라 불리는 것을 구하는 것이니, 윗장의 묻길 좋아하는 것가운데를 쓴다와 같은 일이다. 기월(期月)은 한 달을 꽉 채우는 것이다. 재앙임을 알되 피할 줄을 모른다고 말하여, 중용을 택하나 지키질 못하는 것에 견주었으니, 다 지()가 될 수 없는 것이다.
 
鄭玄曰: “, 我也. 言凡人自謂有知, 人使之入罟, 不知辟也. 自謂擇中庸而爲之, 亦不能久行, 言其實愚又無恒.”
정현이 ()는 나라는 뜻이다. ‘보통 사람들이 스스로 안다고 말하나, 사람들이 그를 덫에 빠지게 하여도 피할 줄을 모른다. 스스로 중용을 택하여 그것을 실천한다고 말하나, 또한 오래도록 행하질 못한다를 말한 것이고, 그 실제로 어리석고 또한 항상성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右第七章. 承上章大知而言, 又擧不明之端, 以起下章也.
윗 장은 제7장이다. 윗장의 대지(大知)’를 이어 말하였고 또한 밝지 못한 단서를 들어, 아랫 장을 일으켰다.

 

()는 휘몰다, ()은 넣다, ()는 그물, ()은 덫의 의미이고 벽()은 피()와 같습니다.

 

보통 동물들이 길을 다닐 때 함부로 다니는 게 아니고 그들이 다니는 길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길목에 구덩이를 파고 살짝 나뭇가지 같은 걸로 덮어 놓아서 함정을 만들면 맹수들까지도 잘 걸려들죠. 내가 어렸을 때 산에 함정이 많았는데 어른들이 산등성이가 교차되는 곳에 만들어 놓았던 것을 본 기억이 있어요.

 

이 말을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여러분들 인생을 살다보면 반드시 함정에 빠지는 일이 생긴다는 거죠, ‘암에 걸린다이런 것도 좋은 한 비유입니다. 문명 속에서 산다는 것은 항상 자신을 함정으로 휘몰아 가는 삶이거든요. 그래서 항상 자기의 몸의 컨디션을 보고 내가 어디로 가는구나 하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런 때는 만사를 제쳐 두고 잠을 잔다든가 쉰다든가 하면서 몸을 조절을 해야 되는데 그런 감각이 없는 사람들이 많죠. 젊을 때는 그런 느낌이 섬세하게 안 오거든요. 아까까지도 멀쩡했던 사람이 갑자기 병석에 눕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사실 별안간의 사태가 아니라 그전에 이미 싸인을 받았으면서도 몰랐던 데서 비롯된 갑작스러움일 뿐입니다. 몸이 와병의 함정으로 가는 싸인을 충분히 표시하는 데도 그 싸인을 간파하지 못할 뿐이예요. 그러다 함정에 빠지고 나서야 거기서 헤어날려고 몸부림을 치는데 결국 중용(中庸)이란 건 사전에 조절을 하는 데에 그 핵심이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모든 의학의 기본은 치료의학이어서는 안 되고 예방의학이어야 합니다. 예방의학과 치료의학의 그 비율이 한 ‘90:10’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근데 사람들은 대개 그걸 거꾸로 생각해요. 치료의학은 불가피한 상황에서 사용되는 것일 뿐입니다. 치료의학의 결론이 뭔 줄 압니까? 뒈질 놈은 뒈지게 만들고 회복 가능한 사람만 건강한 상태로 가도록 도와주는 겁니다. 방법이 없어요! 따라서 인간이 병을 예방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고 인생의 함정에 빠지지 않게 하는 지혜를 가르쳐 주는 것이 의학입니다.

 

이제마가 계속 부르짖는 게 바로 이거에요. 여태까지는 약리만을 의학의 종주로 삼을 뿐 희노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이란 것이야 말로 치료의 가장 근본이란 걸 깨닫지 못했다는 게 이제마가 끊임없이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건강한 사람이 병 안 걸리게 하는 의학은 거의 없고 죽을 사람 살려내는 것만 기적적인 의학인 줄 알잖아요. 그게 아니라 죽을 사람을 만들지 않는 의학이 더 위대한 의학입니다.

 

중용(中庸)의 원문, ‘여지막지피야(予知莫之知辟也).’라는 말의 함의는 인생이 이러한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한다는 지식[]은 평소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막상 현실적 삶의 과정에서는 그런 상황이 닥치면 피할 줄을 모른다는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암세포에 대한 냉철한 지식을 소유한 의학박사도 허무맹랑하게 암에 걸려 죽는 예가 허다합니다. 이것은 후대에 논의된 지(), ()의 문제와도 연결되겠지만 유교 중용(中庸)론의 핵심이 개념적 지식의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 삶의 과정(Process of Life)에서 닥치는 현실적 판단(Urteilskraft)에 내재한다는 것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중용(中庸)은 개념적 지식이 아니라 상황적, 심미적·실천적 판단입니다.

 

그 다음을 보면 또 사람들이 지혜롭다고 말하면서도 중용(中庸)을 택해서 만 일 개월[期月]도 지킬 수가 없다.”고 했는데, 이 문장을 보면 아까 3장에서 민선능구의(民鮮能久矣)’의 내 해석이 맞죠? “중용(中庸)을 택한다는 것()’은 지()의 문제이고 ()’는 행()의 문제인데 지행합일의 관점에서 말하면, ()는 되지만 그걸 한 달이라도 지속적으로 실천(實踐)하는 것은 못하면서 지네들이 지혜롭다고 뻐긴단 말이야. 여기에 지혜롭다고 말하는 것의 자기기만성이 있다는 겁니다. 중용(中庸)의 핵심은 듀레이션(duration,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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