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주관 / 객관
이성의 한계
이제 주관과 객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할 때가 되었는데, 이 이야기는 사전 설명을 충분히 하고 시작해야 할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현대 문명이 상당히 발전했다고 생각한다. 과학은 거의 대부분의 영역에서 비밀을 밝혔다고 생각하고, 철학, 사회학, 경제학은 개인이나 사회가 취해야 할 적절한 행동에 대해 대부분 밝혀놓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성의 힘과 사고 능력, 그리고 거기에서 유도되는 합리적 태도는 물론 중요하고 가치가 있다. 그런 능력들이 동물과 인간을 구분하는 중요한 능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이 알고자 하는 모든 것에 도달하기에는 여전히 터무니없이 부족한 능력이다.
의사들은 사람의 생리, 병리에 대해서 일반인보다는 훨씬 많이 알고 있다. 그러나 인간에 대해서 말하자면 아직은 밝혀지지 않은 것이 밝혀진 것보다 훨씬 더 많다. 아직도 원인과 정확한 치료법을 모르는 병이 아는 병보다 훨씬 더 많다. 그저 이렇게 하면 호전되는 경향이 높다는 정도를 알고 있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남들은 다 좋아지는데, 내 가족만 안 좋아지면 의료인의 실수나 업무 태만이라고 단정하고 가서 따지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은 따져야 소용이 없다. 의료인도 왜 그 사람만 치료가 안 되는지를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과학이니 의학이니 하는 것들이 대단히 발달한 것처럼 떠들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일반인들이 그나마 따라주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환자가 의사의 주장을 따라와주고, 대중이 과학자의 견해를 따라와줄 때, 좋은 결과가 나올 확률이 조금이라도 높아진다. 그런데 확실하면 따라가고 아니면 말겠다고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상대의 불안감을 줄여주려고 거의 확실한 것처럼 이야기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또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면 솔직하다고 평가해주지 않고 실력이 없다고 평가를 한다는 것이 문제다. 자본주의의 최대 병폐의 하나인 지나친 광고가 모든 사람을 과장에 익숙하게 만들어놓았다.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하면, 듣는 사람은 그 내용보다도 한두 수쯤 낮춰서 평가한다. 그런 경향에 맞춰주려다 보니 모든 학자들은 어쩔 수 없이 모르는 것이 없는 신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처럼 가장을 하게 된다.
세 번째는 추가 연구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 받으려면 거의 다 알고 있고, 이것만 해결되면 다 될 것처럼 말해야 하니까 또 그런 부분이 부추겨진다. 자본을 쥐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세한 과학적 내용을 설명하고 가치를 이해시키는 것은 어렵다. 게다가 요즘은 그 투자자본이 대중을 상대로 주식 공모를 해서 만든 자금인 경우도 많다. 인간 유전자 지도만 만들어지면 인간의 모든 질병이 순식간에 정복될 것처럼 과장이 되었었다. 하지만 연구 결과를 임상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기술로 바꾸는 데는 아직도 수십 년을 기다려야 될 것이다. 게놈 프로젝트가 엄청난 수준의 돈 먹는 하마였고 수십 년 후에나 이윤이 나온다는 사실을 미리 밝히고서는 필요한 자금을 모을 방법이 없었기에 과장이 되었던 것이다.
이른바 논리에 대한 환상에서 좀 벗어날 필요가 있다. 논리란 중요한 가치이고 중요한 능력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신의 영역을 넘볼 만한 것은 아니다. 그건 그렇고, 여기에서 논리의 한계를 언급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보편과 특수가 일반화, 구체화와 관련되어 있듯이, 주관과 객관의 이야기는 직관과 논리에 관한 이야기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그런데 논리에 대한 그런 선입견이 해결되지 않으면 주관과 객관에 대한 편한 접근이 어려워진다. 이야기가 좀 길어지는 것을 감수하고, 아무래도 여러분의 머리를 좀 흔들어야 할 것 같다. 그동안 해오던 이야기는 접어두고, 새로운 이야기들을 들으며 교양의 폭을 넓힌다는 기분으로 읽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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