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사심(邪心)과 박통(博通)
1. 교심(驕心)과 주책(籌策) / 태음인의 태양 기운
직관과 감각의 차이
그냥 ‘사심(邪心)’ ‘태행(怠行)’ ‘박통(博通)’ ‘독행(獨行)’ 하니까 좀 딱딱해 보이지만, 각 체질별로 이야기하게 되면 그렇게 딱딱한 이야기는 아니다. 계속 태양, 소양, 태음, 소음의 순서로 다루었으니, 이번에도 그 순서대로 하자. 즉 태양 기운과 관련된 이야기부터, 그러니까 사람을 기준으로 보면 태음인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태양인을 설명할 때, ‘태양인의 귀가 천시(天時)에 밝아 사람들이 서로 사기 치는 것을 잘 듣는 것이 태양인의 애성(哀性)의 근본이다’라고 했다. 또 ‘태양인은 직관이 강하다’는 말과, ‘양인(陽人)은 부정적 요소를 줄이는 것에, 음인은 긍정적 요소를 늘리는 것에 각각 더 관심을 둔다’는 말도 했다. 이 말들을 함께 생각해보면, 결국 태양인의 직관은 천시(天時)에 맞지 않는 부정적인 내용에 대한 직관적인 파악이다.
따라서 태양인의 직관이 가장 강한 영역은 틀린 점의 배제다. 물론 틀린 점을 다 배제하고 나면 옳은 것만 남을 것이다. 그래서 직관을 ‘옳은 것을 찾아내는 직관’으로 국한시켜도, 역시 태양인이 다른 체질보다 강하다. 하지만 배제하고 남은 것을 추리는 방식으로 건지는 것은 아무래도 좀 앙상할 수밖에 없다. 잘못된 것을 쳐나가는 중에 살려야 할 것들도 딸려서 버려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태양인의 직관으로 찾아낸 옳은 것이란 핵심 몇 마디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물론 이 몇 마디가 보편의 토대가 될 만하기에 가치는 있다. 부분에 치우쳐 틀린 것들은 다 잘려나갔기 때문이다.
반면 태음인의 세상에 대한 기본 접근 자세는, 주변에서 부딪히는 구체적 사례를 중심으로 긍정적인 면을 하나씩 추려 모으는 방식이다. 태음인이 직관에 약해지기 쉬운 이유가 이와 관련된다. 주관/객관을 설명할 때 이야기한 적이 있다. 정답이 있는 문제의 경우 ‘정답은 하나지만 옳지 않은 답은 무수히 많다’라고, 즉 잘못된 답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직관으로 느끼기가 쉽지만 정답을 직관으로 바로 찍어내는 것은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따라서 맞는 것을 쌓아가는 방식은 직관으로는 접근하기가 어렵다.
태음인이 태양인을 볼 때 접근 방법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 겉만 보면, 몇 마디 안 되는 앙상한 논리에 쓸데없이 힘을 주어가며 말하는 모습만 눈에 보인다. 그런데 그 말이 그럴듯하고 화려해 보인다. ‘좋아, 까짓것 누군 못해!’라며 흉내를 내기 시작한다. 자신의 몇 가지 구체적 경험을 개념화시키고 화려한 말로 포장한다. 그래서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을 주어서 대단한 명제처럼 내뱉는다. 이것이 바로 태음인의 사심(邪心)인 교심(驕心)이 드러나는 모습이다. 한 마디로 사람이 교만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보통 태양인은 다른 체질보다 훨씬 드물다고 한다. 그러니 태양인을 흉내 내다 잘못될 일은 상당히 드물지 않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다행이겠는데, 그렇지가 않다. 태양인은 드물어도 태양인이 남긴 말들은 도처에 흔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설명하는 기본 명제로 쓸 만하고, 게다가 멋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가도 말은 남게 된다. 차라리 사람을 직접 접하고 느끼면 그래도 낫다. 그런 말들이 나오는 과정을 옆에서 보고 느끼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느낌조차 없이 태양인이 남긴 말만 접하고,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도 이해 못한 채 ‘나도 저런 식으로 말할 수 있어’라고 나서는 바로 그 순간 교심(驕心)의 함정이 발밑에서 입을 쩍 벌리게 된다.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