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관념에서의 탈피와 기분 전환
다른 체질의 독행(獨行)에 대해서는 다 스스로 노력해서 얻는 경지라고 하면서, 유독 소양인에 대해서만 주위에서 격려해주면 재간(才幹)이 발휘될 여지가 높다고 하는 것은 좀 문제가 있어 보인다. 필자는 왜 소양인만 편애하느냐고 독자들의 야단을 맞을 것도 같고, 결국 재간(才幹)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도 근본은 소양인 자신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그 노력을 발휘하는 방향은 자신의 장점을 살리는 쪽이라는 것도 마찬가지고.
소양인의 나심(懶心)이 발동되기 쉬운 순간, 즉 일을 벌여놓고 마무리를 못하는 순간을 생각해보자. 주변 사람들 중에 “꼴좋다, 벌여놓고 마무리도 못하고…….” 이렇게 나오는 사람이 더 많을까? 그렇지 않다. 나심(懶心)의 문제는 주로 가까운 사람과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진짜 가까운 사람이라면 오히려 이렇게 생각한다. ‘휴, 다행이다. 이제 좀 한숨 돌리자’라고, 즉 그렇게 마구 일을 벌여도 잘 마무리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막상 소양인 본인뿐이다. 주변에서는 이미 무리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중간에 멈춘다고 해서 크게 실망하는 일이 없다. 오히려 그 일 때문에 휘둘릴 일이 줄어들었다는 안도감이 앞선다.
주변 사람이 안도감을 더 느끼느냐 실망감을 더 느끼느냐를 누가 가장 잘 파악할까? 감성이 예민한 소양인이다. 처음 자신이 생각했던 마무리를 고집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이 만족할 만한 마무리를 생각하면 방법은 여러 가지가 찾아진다. 문제는 ‘마무리’에 대한 강박관념이 그런 감성 능력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완벽한 마무리’는 원래 태음적인 영역이다. 원래 시작한 방식으로 꾸준히 밀고 나갔을 때나 가능한 방식이기도 하고, 소양인에게 어울리는 것은 ‘재치 있는 마무리’이고 그것을 재간(才幹)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대학생 동아리에서 여행을 떠나는 장면을 생각해보자. 요즘처럼 배낭여행도 많이 다니는 시절 말고, 한 70년대 중반쯤을 생각해보자. 신입생 대원의 반 이상이 태어나서 부모와 떨어져 여행하는 것이 처음이다(그때는 정말 그랬다). 2,3학년들이 선배랍시고 이들을 이끌고 여행을 떠난 것이다. 그런데 리더가 소양인이어서 일정을 좀 욕심스럽게 잡았다. 너무 여러 곳을 들르다보니 산에서 해가 슬슬 지는데,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든 것 같다. 요즘이야 팻말도 많고 길도 좋지만, 그 당시는 리본 매어 있고 다른 곳보다 풀 높이가 조금 낮으면 ‘이쪽이 길이구나’라고 생각하던 시절이다. 산에 다니려면 지도와 나침반 없이는 길 잃기 십상인 시절이었다. 산장? 대피소? 그런 것은 아주 유명한 산에만 있었다.
슬슬 신입생들의 동요가 느껴지는 상황이다. 리더인 소양인이 평소에 순발력 있다고 생각했던 2학년을 하나 불러서 귓속말을 좀 하더니, 주변의 2,3학년들에게 눈을 찡긋한다. 그러고는 전체를 불러 모은다.
“여행의 진짜 맛을 느끼려면 노숙을 해봐야 합니다. 그런데 서울에서 그 일정을 발표하면 겁먹고 안 따라올 회원이 있을 것 같아서 선배진에서만 의논하고 비밀로 했습니다. 지금부터 오늘밤 노숙 일정을 발표하고 해가 떨어져도 그냥 하산할 것인지 노숙을 할 것인지 투표로 결정하겠습니다.” 미리 준비시킨 2학년이 즉석에서 급조한 일정을 발표한다. “일단 노숙의 요령에 대한 ‘ㄱ’ 선배의 강의가 있고, 배낭에 비상식량 준비한 정도를 평가해서 시상과 약간의 벌칙을 하고, 천문학과 ‘ㄴ’ 선배의 별자리에 대한 강의가 이어질 것이며…….”
산에서의 사고는 항상 당황하고 겁먹었을 때 일어난다. 산에서 사고를 안 당하는 요령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철저한 준비, 두 번째는 겁먹거나 당황하지 말 것, 소양인이 첫 번째는 좀 서툴다. 그러나 두 번째는 가능하다. 자기 혼자뿐만이 아니라, 전체를 대상으로도 가능하다. 결국은 대중의 정서적 반응을 파악하는 능력이 기본이니까.
위의 기막힌 재간(才幹)이 발휘된 순간이 이해가 되는가? 최초의 일정에 따른 마무리에 대한 강박관념을 버렸다. 그 일정을 못 지키면 대원들이 자신을 비난할 것이라는 생각에서도 벗어났다. 무엇보다 자신의 기분을 먼저 바꿨다. 그리고 대원들의 기분을 돌릴 방법을 생각한 것이다. 소양 기운으로 도저히 안 되는 것을 시도한 것은 없다. 그런데 그 결과는 곤란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멋진 마무리로 나타났다. “자신의 능력을 키워서 자신이 약한 영역에 도달하도록 하라.” 이것이 계속 반복되는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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