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1. 창시자가 아닌 인간으로
공자(孔子)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요? 하긴 중·고등학교 윤리 교과서에도 수차례 등장하고 있으니,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잘 알고 있겠지요?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것을 보니, 공자라는 인물의 행적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공자는 몇몇 전문가들을 제외하고는 단지 이름만 알려진 2500여 년 전의 중국 사상가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 그는 예수, 부처와 함께 세계 3대 성인으로까지 추앙받는 인물이긴 합니다. 흥미롭게도 이 세 사람들은 모두 동일한 가르침을 이야기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예수가 ‘사랑(love)’을 말했다면, 부처는 ‘자비 (karuṇā)’를 이야기했고, 공자는 ‘인(仁)’을 강조했다는 것이지요. ‘사랑’이든 ‘자비’이든 아니면 ‘인’이든, 이것들은 모두 타인에 대한 동정이나 아낌없는 애정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한때 『성경(聖經)』을 번역할 때 예수를 인자(仁者)로 번역했던 것도 단순한 우연의 일치로만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부처와 동등한 성인으로 공자를 묶는 순간, 공자라는 인물이 종교의 후광 속으로 사라져버리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와 부처가 각각 기독교와 불교의 창시자인 것처럼, 똑같이 공자도 유교(儒敎)라는 종교의 창시자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보통 종교를 일상적인 삶에서 벗어나 있는 초월적 가치들에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나 부처와 마찬가지로 공자도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어떤 초월적 진리를 설파한 인물이라는 인상을 받기 쉽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먼저 공자라는 인물을 우리와 같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는 자신이 직면한 삶의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평범한 인간이었지요. 그러나 공자의 위대함은 그가 당면했던 문제들을 회피하지 않았고, 더 나아가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했다는 데 있습니다. 이 점에서 공자의 위대함은 종교적인 데 있다기보다 철학적인 데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공자의 가르침은 그의 제자들에 의해서 기록되어 『논어(論語)』에 전해옵니다. 이 책의 「선진(先進)」편을 보면 흥미로운 기록이 하나 등장합니다. 어느 날, 제자 자로(子路)가 공자에게 귀신과 죽음에 대해 묻습니다. 그러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반문합니다.
“삶도 아직 알지 못하면서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未知生, 焉知死]?”
그렇습니다. 만약 공자가 유교라는 종교의 창시자였다면, 그리고 종교가 삶을 넘어서는 어떤 초월적인 가치를 다루는 것이라면, 그는 실패한 종교 지도자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공자는 죽음에 대해 어떤 확실한 언질도 내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 점이 인간 공자가 가진 장점이 아니었을까요? 그가 ‘유교’라는 종교의 창시자가 아니라 유학(儒學)'이라는 철학 사상의 창시자라는 점이 부각될 수 있었으니까요.
공자는 ‘삶[生]’을 알려고 했으며, 삶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던 사상가이자 철학자였습니다. “삶도 아직 알지 못하면서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라는 그의 반문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삶의 방법 하나를 제안합니다. 그런데 공자의 유학 사상은 종교와는 달리 항상 검증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공자가 제안했던 것처럼 살아간다면, 그의 가르침이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해주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쉽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공자의 가르침이 유학이 아니라 유교라는 종교였다면, 우리에게는 그것을 검증할 방법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을 테니까요. 이 경우, 모든 종교가 흔히 그렇듯이 공자의 가르침도 맹목적으로 신봉되거나 아니면 전적으로 거부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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