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13명의 유학자들로 살펴본 가능성과 한계
이 시점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중국의 입장에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호응하는 일련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2007년 공영방송인 KBS에서 아시아 문명기획 ‘인사이트 아시아’라는 기치로 다큐멘터리를 방송한 적이 있습니다. 그 다큐멘터리 제목은 유교, 2500년의 여행이었지요.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 프로그램을 시청했을 것입니다. 방송뿐만 아니라 그 기획은 곧바로 책으로도 출간되어 나왔습니다. 『유교, 아시아의 힘』(예담, 2007)이라는 책입니다. 물론 KBS 측에서 방영한 <유교, 2500년의 여행>은 최근에 일고 있는 한류 분위기에 편승하여 단순히 상업적 이윤을 얻으려는 의도에서 제작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다시 말해, 어떤 심각한 정치적 의도나 은밀한 목적을 위해서 마련한 프로그램은 아닐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방송과 책에서는 중국, 한국, 일본 심지어 서양 학자들까지 동원하여 유교를 21세기의 비전이자 새로운 가능성을 가진 사상으로 선전했습니다. 이러한 관점과 평가는 2002년 <공자연구원>이 제안했던 것을 거의 그대로 반복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과연 2000년도 더 지난 공자의 사상이 중국이나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인들에게 장밋빛 미래를 약속한다고 볼 수 있을까요? 방송과 책에서 설파한 것처럼 유학(儒學)은 서양 문명으로 망각된 전통적 삶의 지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을까요? 이 물음에 대답하기에 앞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점을 솔직히 고백해야만 합니다. 우리 대부분은 유학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무엇인가를 정확히 알아야만 우리는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판단의 대상이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을 때 어떻게 그것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평가할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우리는 유학을 그저 낡은 골동품인 양 방치하고 내버려두었습니다. 그것을 음미해볼 기회를 제대로 갖지 못했던 것이지요. 사실 조선시대를 풍미한 유학에 대해 오늘날의 우리는 그다지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전통 유학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는 뜻입니다. 급작스런 서구화를 거치면서 유학을 너무나 낡은 것으로, 심지어 동아시아 세계를 서양에 비해 뒤처지게 만든 주범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학(儒學)을 미래의 가치로 긍정하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낡은 사유로 비판하는 우리는 먼저 유학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이루어지는 긍정이나 부정은 우리의 삶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위험한 일이 되겠지요.
이 책의 의도는 유학 사상의 정수를 알리려는 것입니다. 2500년 전 공자에게서 시작된 유학 사상은 불변의 형태로 유지되었던 것이 결코 아닙니다. 사상사적으로 살펴보면 유학은 새로운 정치적인 환경이나 이질적인 사상의 도전에 맞서 지속적으로 변화되어 왔습니다. 다시 말해, 공자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유학의 역사는 계속 발전한 변화의 역사였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유학 사상의 핵심을 파악하기 위해 다양한 유학자들의 사유를 점검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2500년 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았던 유학자들의 사유를 일일이 점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이 책에서 중국, 한국, 일본, 즉 동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유학자 13인만을 선택하여 다루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여기에서 다루는 13인의 유학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중국에서 활동했던 유학자 공자, 맹자, 순자, 장재, 정호, 정이, 주희, 왕수인을, 한국에서 활동했던 유학자 이황, 이이, 정약용을, 마지막으로 일본에서 활동했던 유학자 이토 진사이와 오규 소라이를 살펴볼 예정입니다. 이 13인의 유학자들을 선택한 이유는, 시대나 지역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유학 사상이 그 가능성을 어떻게 실현했는지를 이들이 잘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물론 공자를 제외한 12인의 유학자들은 모두 공자의 사유를 절대적으로 긍정하면서 자신들의 고유한 사유를 전개합니다. 그들은 한편으론 공자에 의존하면서도 각기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공자의 정신을 구현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공자와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유학자들이 펼쳤던 사유의 향연을 살펴보려 합니다.
개성 있게 전개되었던 동아시아 13인 유학자들의 사유를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독자들은 아마도 유학(儒學) 사상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나름대로 입장을 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각 유학자들의 지엽적인 사유에 대해서는 가급적 배제할 예정입니다. 중요한 것은 다른 유학자들과 구별되는 그들만의 고유한 사유를 정확히 짚어내는 일일 테니까요. 여기에서 다룬 13인의 유학자들의 전모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고 싶은 독자들을 위해 각 장 말미에 ‘더 읽을 것들’이라는 항목을 마련하여 참고가 되도록 했습니다. 자, 그럼 13인의 유학자들이 어떤 이야기를 펼치는지 살펴보도록 할까요?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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