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장 에필로그
절차탁마 대기만성: 쿰란과 나그 함마디의 연속성
나는 사실 1982년 귀국 후 얼마 안 있어 『절차탁마대기만성』이라는 책을 통해 이 나그 함마디 도서관 문헌을 소개했다. 그때 나의 이 작은 책자는 이미 우리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수십만 부가 팔렸다. 그런데도 20년이 넘도록 우리나라의 신학계는 상기의 체노보스키온 문서에 관한 연구성과를 내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아마도 단순한 느낌에서 출발하고 있을 것이다. ‘영지주의 이단의 서’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마치 상기의 책을 깊게 연구하면 2천 년을 버티어온 기독교 교회의 정통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부지불식간에 깔려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는 매우 단순한 무지의 소산이다. 체노보스키온 문서는 결코 영지주의 이단의 문헌들이 아니다. 그것은 이단이라는 개념이 성립하기 이전의 기독교의 실상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매우 소중한 역사적 문헌이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쿰란문서에 관한 연구는 많은데 체노보스키온 문서에 관한 연구는 거의 전무하다는 것이다. 쿰란문서는 성서의 일부로 간주할 수 있으나 체노보스키온 문서는 성서의 일부로 간주될 수 없다는 것인가? 쿰란은 구약시대와 더 밀접히 관련되고 나그 함마디는 신약시대와 더 밀접히 관련되지만 양자는 정확하게 하나의 동일한 연속적 사상 물줄기를 이루고 있다. 성서와 관련된 20세기 양대 고고학적 발굴 성과인 쿰란과 나그 함마디를 같은 시공에서 연속적으로 파악할 때만이 우리의 성서이해는 풍요로운 모습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도마복음서의 중요성
상기 나열한 52서 중에서 가장 소중한 문헌을 나보고 하나 뽑으라고 한다면 도마복음서 1서를 주저없이 선택할 것이다. 도마복음서는 현 우리가 알고있는 4복음서의 형성과정을 정확하게 알려줄 수 있는 많은 생각의 실마리와 기준을 제공하는 순수한 예수의 말씀집이다. 그것은 114개의 내러티브가 없는 로기온(logion)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마복음서 속의 상당 부분의 자료는 Q자료보다도 더 오리지날한 성격이 있다. 현재,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의 신학계에서는 도마복음서와 Q자료와 4복음서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수백 편의 논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리고 Q자료의 연구를 보다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도마복음서는 기독교나 예수의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잡스러운 언어가 하나도 없다. 도마복음서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살아있는 예수를 인식케 해주는 너무도 소중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한국신학계에서는 체노보스키온문서를 다루지 않는다 하더라도, 최소한 도마복음서에 대해서 만은 깊은 연구를 진행시켜야 할 것이다.
아주 사소한 예를 하나 들어보자.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2:9에서 이와 같이 말하고 있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여기서 ‘기록된 바’라는 것이 반드시 구약의 출전만을 의미해야 할까? 보통 이 구절의 출전으로 이사야서 64:3이나 52:15를 인용하지만 맥락이나 문체로 볼 때 그리 적합한 인용이 아니라고 성서학자들은 말한다. 일찍이 오리겐과 암브로스는 이 말이 엘리야 비서(Apocalypse of Elijah)에서 온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클레멘트1서 34:3에도 고린도전서의 이 인용문이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바로 이 인용문의 출전이 도마복음서 제17에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을 우리는 그냥 도외시할 수만 있을까? 사도 바울이 직접 도마복음서를 인용하였다고는 말할 수 없어도, 사도 바울시대에 이미 초대교회에서 예수말씀을 간략히 기록한 로기온집(sayings collection)이 존재했다는 가설은 충분히 성립가능하다. 도마복음서의 예수님 말씀의 3분의 1이 Q자료와 직접적으로 겹칠 뿐 아니라, 그 대부분의 말씀이 복음서의 말씀의 성립경로와 관련되어 있다.
도마복음서는 여러분들이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외경’이라는 개념과 거리가 멀다. 그것은 외경이 아닌 정경의 오리지날한 형태이다. 이제 공관복음서의 주석을 다는 데 있어서 도마복음서자료를 참고하거나 인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단지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진 눈먼 인간의 소행일 뿐이다. 현실적으로 모든 성서주석학 학자들이 도마복음서를 활발하게 활용하고 있다. 한국의 신학자들만 국제적 포럼에서 고루한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다면, 그것은 한국기독교의 세계적 위상을 생각할 때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은 『요한복음강해』의 서문
본서 『기독교 성서의 이해』는 본래 『요한복음강해』라는 나의 책의 서문으로 기획되었다. 한국교육방송공사(EBS)에서 인터넷방송을 나에게 의뢰했는데, 그것은 도올이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프로그램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제안이었다. 아니 영어뿐만 아니라, 도올 선생의 어학실력이 좋으니까, 영어, 중국어, 일본어 이런 것의 강독시간을 만들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발상이 매우 참신하다고 생각했다. 어학은 결코 어학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학을 통해 우리는 인간과 문명에 관한 모든 것을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교재가 영 마땅하질 않았다. 그래서 내가 이런 말을 불쑥 했다. “영어성경을 강독하면 어떨까? 우리 어려서부터 영어는 바이블로부터 시작한다는 전통이 있질 아니 한가?”
교육방송관계자들은 처음에는 나의 이런 말을 매혹적으로 생각하면서도 두려워했다. 도올은 종교문제에 관해서도 말을 거침없이 하는 사람이니 공연히 기독교계에 소요를 일으키면 방송국이 좀 곤욕을 치르게 될 것이 아닌가? 한국의 방송국들이 도올 때문에 곤혹스러움을……
이러한 문제에 관한 대답은 이미 여러분들에게 내가 이 책에서 충분히 토로했으므로 이제 나의 손을 떠난 것 같다.
나의 부모
나는 독실한 기독교집안에서 태어났다. 우리 아버지ㆍ어머니 모두 개화기 때 기독교에 헌신한 청년ㆍ처녀로서 짝지어졌다. 한국기독교의 오늘의 모습이 있기까지 일각에서 혼신의 기여를 다하신 분들이다. 그리고 나 역시 모태신앙을 거쳐 유아세례를 받았고 목사가 되기 위해 한국신학대학에 들어갔다. 사람들은 나를 동양철학자, 한문고전의 학자로만 알고있지만 나는 1967년 한국신학대학 전교수석 입학생이다. 수석 발표를 보고 나는 천안 부모님께 ‘신대톱금일하천’이라는 전보를 쳤다. 그때는 전보의 글자수가 10자 이내라야 가격이 저렴했기 때문에 가까운 수유리 우체국에서 그렇게 쓴 것이다. 그런데 우리 부모님은 앞의 세 글자를 해독하지 못했다. 아마도 성은 신씨고 이름은 대톱인 사람이 오늘 천안에 내려온다고 고개를 갸우뚱 거리기만 하셨던 모양이다.
나는 열 살 전후에 이미 신약성서 전체를 암송했다. 우리 어머니는 나에게 성구를 차례로 암송하면 용돈을 주셨고 그렇지 못하면 회초리를 주셨다. 오늘 내가 이 책을 쓸 수 있는 것도 그 어린시절의 어머니 교육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 책을 쓰기 시작한 것이 2006년 10월 28일인데 오늘 탈고일자가 12월 28일이다. 두 달 동안 어찌 나의 육신이 수고했다고만 말할 수 있으리오? 어머니의 신앙이 나의 붓을 흔드셨을까? 아마도 성령의 감화가 있었을 것이다.
▲ 1954년 도올 선생 가족사진, 뒷줄에서 시계방향 큰누나 숙희(전 교육부장관), 광주홍안과 사촌누나 영자, 아버지 김치수, 어머니 홍희남, 도올 선생(초등 2학년), 누나 용주 / 사진 출처 : 해남우리신문(http://www.hnwoori.com)
시온성의 처녀
우리 어머니는 평생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 교회를 다니셨다. 천안 대흥동 231번지에서 중앙장로교회에 이르는 길의 사람들은 우리 어머니가 새벽에 콧소리로 조용히 찬송가를 부르시고 가는 소리를 듣고 이부자리를 거두었고 쌀뜨물을 버렸다. 그것은 임마누엘 칸트의 산보 시간보다도 더 정확했다. 당시 천안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다. 겨울철 눈이 소복이 쌓인 신작로에 엄마의 고무신이 꼬드득 꼬드득 소리를 낼 때도 나는 꼭 따라나섰다. 여섯일곱 살 때부터 나는 엄마와 함께 새벽기도를 다녔다. 그때 우리 엄마가 제일 많이 부른 찬송이 64장(당시 찬송가)이었다.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밤낮 불러서 찬송을 드려도
늘 아쉰 마음뿐일세
내가 가장 아름답게 기억하는 것은 제4절이다.
시온성에 사는 처녀들이여
사랑하시는 내 주를
빈들에서나 그 장막 안에서
만나뵈인 일 없는가
새벽의 푸른 여명을 가르고 엄마 입에서 울려 퍼지는 찬송가의 아름다움이란 이루 형언키 어렵지만 항상 내 머릿속에 각인된 나의 어머니 모습은 ‘시온성에 사는 처녀’였다. 그렇게 고귀하고 고결한 처녀, 시온성의 처녀가 뭔 뜻인지도 몰랐지만, 나에겐 나의 엄마는 항상 시온성에 사는 처녀였다.
그런데 그 처녀는 찬바람이 쌩쌩 부는 교회 마루바닥에 엎드려 매일 새벽 우시는 것이었다. 기도하시며 통곡을 하시는 것이었다. 엄마는 오른쪽 여자석에 엎드리고 나는 건너편 왼쪽 남자석에 엎드렸는데 엄마가 우는 것을 보면 계속 나도 덩달아 눈물이 났다. 엄마를 힐끗힐끗 쳐다보면서 울고 또 울었다. 엄마는 왜 울었을까? 왜 그토록 교회에 가서 엎드리기만 하면 우셨을까?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엄마 생각을 하면 눈물이 이 원고를 적신다. 그렇다고 어머니의 눈물에 대하여 어떠한 이론적 해석을 내린들, 그것은 불경으로 그치고 말 것이다. 그토록 눈물이 많을 수밖에 없었던 조선의 아낙들! 개화기부터 맺힌 조선풍진의 모든 한이 나의 어머니의 일거일동에는 찬란한 이슬처럼 매달려 있었다. 우리 어머니는 천수를 다하시고 하늘나라에 가셨다. 그렇지만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어머니는 나의 불신앙을 탓하시고 근심스러운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나는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엄마와 함께, 엄마 손을 꼭 잡고 교회를 같이 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만 그런 기회가 오기도 전에 어머니는 영면하셨다. 16살 시집올 때 입고 오신 다홍치마 연두저고리를 고이 간직해 두셨다가 수의로 지어 입으시고 거룩하게 돌아가셨다. 내가 기독교인인지 아닌지, 내가 참 신앙인인지 아닌지, 인간인 나로서는 판단할 수가 없다. 단지 이 한 권의 책으로라도 하늘에 계신 나의 어머니께서 나를 바라보시는 눈에 평온함과 안도감이 깃들기만을 빌고 또 빈다. 어머님! 하나님나라에서 편안히 주무시옵소서. 아멘.
2006년 12월 28일 오후 6시 45분 탈고
인용
'고전 > 성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마복음한글역주 - 제목 & 해독 기초자료 & 로기온 주제 상관 도표 (0) | 2022.02.27 |
---|---|
도마복음한글역주 - 탐방 보고서 (0) | 2022.02.27 |
기독교 성서의 이해 - 제17장 사바크의 저주와 축복 (0) | 2022.02.27 |
기독교 성서의 이해 - 제16장 나일강 유역의 수도원 문화 (0) | 2022.02.27 |
기독교 성서의 이해 - 제15장 이집트인들의 종교관념 (0) | 2022.0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