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요한과 쿰란공동체
이 쿰란공동체는, 예수시대의 유대인 역사가인 프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 AD 37~100년경)의 엣세네파에 관한 상세한 기술과 일치하는 많은 문서적 근거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재의 연구결과는 쿰란을 대강 엣세네파 공동체로 간주하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복음서에는 바리새인(the Pharisees)이나 사두개인(the Sadducees), 열심당원(the Zealots) 등은 언급되고 있지만 엣세네파(the Essenes)는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엣세네파도 세례 요한이라는 역사적으로 그 실존성이 확실히 인정되는 인물과의 관련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신약성서의 한 시대배경으로 등장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세례 요한이 엣세네파의 한 사람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세례 요한의 행태나 신념의 상당부분이 이 쿰란 엣세네파 공동체와 유사하다는 논지가 있다. 세례 요한도 광야에서 살았고,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두르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으며 살았다(막 1:6, 마 3:4). 그리고 독자적인 제자들이 있었다. 그러니까 광야에서 매우 검약한 금욕주의적 삶을 살아가는 어떤 커뮤니티에 속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마가복음은 세례 요한의 활동지역을 갈릴리지역의 요단강으로 기술하고 있는데, 아마도 갈릴리바다의 남단에서 요단강으로 흘러 내려가는 지역이었을 것이다. 누가복음은 요르단강 부근의 모든 지방을 두루두루 다녔다고 쓰고 있다(눅 3:3), 요한복음만이 세례 요한의 활동지역을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Bethany, 요 1:28)와 살렘(Salim)에서 가까운 애논(Aenon)으로 수량이 풍부한 지역이라고 구체적으로 쓰고 있는데( 요 3:23), 지금 이 지명으로는 확실한 지점을 비정키 어려우나 쿰란으로부터 멀지 않은 여리고 지역의 요단강가로 사료되고 있다. 하여튼 세례 요한은 쿰란공동체에서 멀지 않은 곳에 또 하나의 공동체를 리드하고 있었으며, 쿰란공동체를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직·간접적인 접촉이 있었다고 생각되고 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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