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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3장 헬레니즘의 사유 - 회의학파 본문

고전/성경

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3장 헬레니즘의 사유 - 회의학파

건방진방랑자 2022. 2. 27.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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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학파

 

 

회의학파(Skeptics)는 실천론이 아닌 지식론에 있어서 아타락시아(ataraxia)를 추구했다. 일체의 이론의 정당성에 대한 판단을 중지시킴으로써 마음의 평정을 누리고자 했던 것이다. 우리의 지각은 결코 외물(外物)의 진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며, 어느 시대 어느 장소를 막론하고 승인하지 않을 수 없는 보편적 진리란 존재할 수 없다. 궁극적 실재에 관하여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명제에 대하여 확실한 진위 판단을 내려서는 아니 된다. 이러한 판단 중지를 이들은 에포케(epochē)라고 불렀다. 절대적인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결정하지 말고, 어떤 것에도 동의하지 말라!

 

신플라톤주의자로서는 플라톤철학에 의하여 유대교를 해석하고 신학의 체계화를 꾀한 유대인 사상가, 예수와 완벽하게 동시대의 사람인 필로(Philo, BC 15-10~AD 45-50)가 있다. 필로의 로고스사상은 플라톤의 이데아를 인격적으로 해석한 것이며, 그것은 요한복음 로고스사상의 선구적 사상으로서 많은 학자들의 탐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사도행전 17에 보면 아테네를 방문한 사도 바울이 에피큐로스학파(Epicurianism)스토아학파(Stoicism)의 여러 철학자들과 쟁론을 벌이는 장면이 나오고 있다. 신약성서를 읽을 때, 우리는 이러한 장면을 아주 가볍게 간과해버릴 수 있지만(17:16~34) 헬레니즘세계에 관하여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헬레니즘의 심장부인 아테네에서 헬레니즘의 주류철학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는 좀 무모하고도 용감한 사도 바울의 모습을 동정적으로 연상하는 것은 참으로 스산한 느낌을 자아낸다. 물론 사도행전의 이러한 기사는 사도 바울의 입장에서 기술되었기 때문에 바울의 쟁론에 대한 에피큐리안들이나 스토익들의 구체적인 반론이나 비판은 기술되어 있지 않다. 사도 바울은 마치 아고라에서 소피스트들과 변론하고 있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의도적으로 그렇게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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