쿰란과 엣세네
‘세례를 통하여 죄사함(forgiveness of sins)이 이루어진다(사 5:31)’는 발상은 전혀 유대교적인 전통이 아니다. 불트만과 같은 석학도 그것을 동방종교의 영향으로 보고 있다. 페르시아나 바빌론의 고대신화 제식의 영향으로 간주한다. 후대의 만대아교(Mandaeanism)의 세례제식도 요한의 운동이 발전해나간 것이다. 그런데 세례 요한 공동체와 쿰란공동체 사이에는 세례라는 제식의 공통성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종말론적 기대, 즉 메시아 대망사상이나, 우주의 종말, 마지막 심판, 그리고 회개 등등과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공통점 때문에 세례 요한을 엣세네파의 한 사람으로 간주하는 학자들도 있으나 나 도올은 그렇게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세례 요한의 사상과 쿰란공동체 사상 사이에는 ‘세례’를 둘러싼 제식적 의미에 관해서도 매우 래디칼한 차이가 있다【이 차이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나의 요한복음강해 126~127을 보라】. 아마도 굳이 세례 요한을 엣세네파와 관련지어 설명하려고 한다면 세례 요한이야말로 엣세네파의 제식주의나 종말론적 사유의 편협성을 과감하게 탈피해버린 매우 혁명적인 사상가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예수는 그러한 혁명적 발상을 더 한 발자국 앞으로 밀고 간 인물이었다. 예수는 ‘물에 의한 세례’를 믿지 않았다. 그는 ‘성령에 의한 세례’라는 새로운 영적 차원을 도입했던 것이다.
예수(성령) |
↑ |
세례 요한(물) |
↑ |
엣세네파 쿰란공동체(율법) |
세례 요한에 대한 기사도 모두 예수제자들이나 초대 크리스챤교회 조직의 입장에서 찬술된 것이기 때문에, 그 독자적 성격에 관한 정보가 매우 빈약한 상태에서 쿰란공동체의 내부사정을 알려주는 고고학적 발굴과 문헌들은, 세례 요한과 그 집단의 역사적 성격을 재구성하는 데 엄청난 도움을 준다. 그 뿐만 아니라 세례 요한에 대한 풍요로운 이해는 당연히 예수라는 역사적 실존에 관한 우리의 이해를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다. 예수의 청년시절에 관한 정보부재, 그리고 40일간의 광야의 고투로 상징되고 있는 그의 광야유혹은 많은 사람들이 그가 인도를 다녀왔다는 등 황당한 이야기를 지어내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는 최소한 예수가 젊은 시절에 쿰란공동체와 유사한 어떤 공동체에서도 생활해본 적이 있는, 광야에서의 어떤 고행(苦行)을 체험하고, 그 체험으로부터는 인간의 구원이 생겨날 수 없다는 절망감을 자각한 인물, 그리고 그 자각과 동시에 전혀 새로운 발상과 비젼을 획득하고 구세의 공생애로 자기 삶을 던진 어떤 인물이라는 매우 안전한 상상을 해볼 수 있다. 최소한 쿰란은 문학적 상상이나 신화적 픽션이나 문헌적 날조가 아닌, 고고학적 사실이며 물리적 근거가 있는 역사적 현실이다. 그리고 그러한 역사적 현실은 쿰란에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라 당대 팔레스타인 광야에 널려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에게 신약시대 배경사에 관한 많은 구체적 사유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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