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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3장 헬레니즘의 사유 - 헬레니즘의 로고스를 격파한 기독교 본문

고전/성경

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3장 헬레니즘의 사유 - 헬레니즘의 로고스를 격파한 기독교

건방진방랑자 2022. 2. 27.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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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니즘의 로고스를 격파한 기독교

 

 

사도 바울이 헬라문명권에서 성장한 헬라화된 유대인이며 헬레니즘이 유창한 희랍어를 통하여 체화된 인간이라 할지라도 그가 펼친 논리를 헬레니즘적 사유체계 속에서만 규정해 들어가는 것은 위험하다. 헬레니즘의 인본주의적 합리성의 암벽을 뚫고 들어가는 유대전통의 독특한 사유체계와 믿음체계, 그리고 그러한 초합리적 사태를 해석하는 바울 자신의 독특한 논리체계를 독자적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것은 바울 자신의 독창적 창안이 아니라 예수라는 실존체의 말씀과 뚜렷한 내면적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지해야 한다예수는 신화다의 저자는 초대교회의 성립사에 관하여 보다 면밀한 고찰을 했어야 했다. 도대체 예수의 실존성을 전제로 하지 않고서는 최초의 팔레스타인의 신앙공동체들의 성립과정을 설명하기 어렵다. 단지 그의 논리는 콘스탄티누스대제의 기독교공인 이후의 기독교 발전 상황을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 영지주의자들(Gnostics)과 문자주의자ㆍ사실주의자(Literalists)의 대결의 틀은 현경 교수의 말대로 참고할 가치가 있다.

 

이러한 문제들에 관한 전반적 인식이 없으면, 인본주의사상으로 깊게 단련된 조선조의 문명체계가 어떻게 그렇게 대규모적으로 전혀 황당한 듯이 보이는 신화적 논리 앞에 무릎을 꿇었는지, 그것은 단순히 당쟁으로 얼룩진 권력의 장 속에서 소외되고 핍박받은 남인(南人)들의 정치적 상황이라는 구실만으로는 설명되기 어렵다. 춘추(春秋)시대에 이미 공자괴력난신(怪力亂神)을 거부하는 경원(敬遠)의 인문주의를 표방했고 전국시대에 들어오면서 (()의 성론(性論)으로 발전하여 그러한 인문주의는 이론적 깊이를 더해갔다. 한초(漢初)에는 금고문경학(今古文經學) 논쟁을 거치면서 방대한 경전 해석학을 성립시켰고 동시에 제자백가(諸子百家)를 누르고 독존(獨尊)의 국교로서 자리잡았던 것이다. 그후 위진남북조를 거쳐 수(()에서 만개한 대승불교(大乘佛敎)의 도전을 거치면서도 송()대에는 다시 이기론(理氣論)의 무기를 들고 나와 불교를 파출(罷黜)하고 다시 정통(正統)의 위치를 공고히 하면서 심성론(心性論)의 다양한 논쟁을 유발시켰다.

 

이러한 합리적이고도 인본주의적인 심성론으로 오백년의 사직의 기초를 다져온 조선조문명이 예수의 복음으로 이토록 처참하게 무너진다는 것은 19세기말기까지만 해도 상상키 어려운 일이었다. 지금 현재 우리나라의 종로통에서 아무나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무작위적으로 물어보라! 퇴계성학십도(聖學十圖)율곡성학집요(聖學輯要)의 내용을 아는 사람이 더 많겠는가, 마태복음이나 요한복음의 구절을 줄줄 암송해대는 사람이 더 많겠는가? 정약용의 방대한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의 위용을 생각할 때, 그 안의 중용자잠(中庸自箴)의 몇 구절 속에 도사려 있는 기독교적 하느님(上帝)의 빈곤한 논리가 오히려 그 전서의 위용을 무색하게 만든 새시대의 논리로 전개되어나갔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기독교에 대한 우리의 논의는 결코 단순한 논리적 반박으로 끝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다시 말해서 유교문명권 내에서 성장한 오늘 한국기독교의 문제를 상고하는 것이나, 헬레니즘문명권 내에서 성장한 초기 크리스챤의 문제를 천착하는 것에는 모종의 공통된 논리의 핵이 들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뮈토스(Mythos)를 탈출한 헬레니즘의 로고스를 기독교라는 새로운 뮈토스가 다시 격파해버린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인간의 실존과 관련된 영원한 문제상황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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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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