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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5장 삼위일체 논쟁 - 기독교는 황제교도, 존재론도 아니다 본문

고전/성경

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5장 삼위일체 논쟁 - 기독교는 황제교도, 존재론도 아니다

건방진방랑자 2022. 2. 28.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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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황제교도, 존재론도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기독교와는 전혀 무관한 철학적 사유의 장난이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후에 종교권력과 정치권력이 융합된 가톨릭교회의 권위가 강요하는 교리에 의하여 기독교를 접근하면 그것은 기독교가 아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현금(現今)의 우리나라 가톨릭교회의 교리를 전면부정한다는 말은 아니다. 지금의 가톨릭은 정치권력과 분리된 종교조직이며 과거의 가톨릭이 아니다. 가톨릭이란 원래 초대교회사에서 로칼한 지방교회들의 분열이나 이단의 발호를 막기 위해 신앙의 공통성을 기준으로 하여 자연적으로 형성해간 보편적 교회(Universal Church)란 뜻이다.

 

가톨릭이란 말 자체가 희랍어의 카톨리코스(katholikos)에서 온 말이며 보편적이라는 뜻이다. 그 보편교회의 무형의 중심이 처음에는 예루살렘교회였지만 세속정치권력의 중심을 따라 점점 로마교회로 옮겨갈 수밖에 없었다. 그 로마교회가 교황청으로까지 발전하여 오늘의 장대한 세계보편조직을 형성했지만, 나는 그 조직의 유지의 필요에 의하여 강요된 교리의 역사를 기독교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354~430)의 신학도 플라토니즘을 변형시킨 것이고, 스콜라철학의 왕이라고 부르는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74)신학대전(Summa theologiae)의 전 체계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빼버리면 그 골격이 지탱될 수가 없다. 신의 존재증명을 운운하는 이러한 스콜라철학의 명제들은 더 이상 기독교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유의미한 명제들이 아니다. 기독교는 존재론이 아니다. 헬레니즘의 철학적 탐색의 연장태로서 발전한 로마가톨릭의 이론체계를 기독교로 이해할 수는 없다. 우리는 성서 그 자체로 항상 되돌아가야 한다.

 

요즈음의 가톨릭교회내에는 이러한 스콜라철학의 질곡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성서 그 자체를 깊게 탐구하는 사제나 사상가들이 많다. 그래서 가톨릭(구교)은 프로테스탄트(개신교)보다 보수적이라는 식의 막연한 인상을 가지고 접근하면 안 된다. 교회나 교리의 사회적 병폐를 운운한다면 오히려 개신교 사람들이 반성해야 할 테마를 더 많이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도 바울의 본명은 사울이다. 예수와 동시대 사람으로 소아시아 길리기아 다소에서 태어났다. 동ㆍ서의 무역교통요새였으며 국제적인 대학 도시였으며 스토아학파(Stoicism)의 본거지였다. 바울은 고등한 희랍어를 구사했으며 히브리교육에도 정통한 바리새인이었고, 율법에 정통한 랍비였고, 로마시민이었다. 당대 유대인으로서는 최고의 학식을 소유한 사람이었으며, 베냐민지파의 정통혈손으로서 자부했다. 그는 키가 크지는 않았고 못 생겼고 말도 그리 유창하지는 않았지만 강렬한 인상과 함께 영적 감화를 주었다. 모든 거친 환난을 견딜 만큼 신체적으로 강인했으며 또 사소한 일에도 새로운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매우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였다. 이방인교회는 그를 통하여 만들어졌지만, 요즈음의 성직자와는 달리 텐트 제작 등의 생업 기술로 스스로 생계를 유지했고 교회로부터 일체의 금전을 취하지 않았다. 신비로운 능력이 있었지만, 그는 인간의 상식과 인간의 연약함에 오히려 하나님의 은총이 깃든다고 확신했다. 평생 고질병으로 시달리기도 한 그는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의 실존적 의미를 끊임없이 발견해 나간 위대한 삶을 살았고, 그의 삶과 더불어 기독교는 세계종교로 발돋음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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