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스톨리콘과 누가복음의 선택
마르시온(Marcion, ?~160)의 ‘구약과의 단절’이라는 테제와 관련하여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독교의 모습을 결정케 만든 교회사의 가장 중요한 사실은 구약에 대립되는 신약의 실체에 관한 것이다. 마르시온은 자기의 주장을 확고히 신도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유대인들의 성경에 비견할 수 있는 크리스찬들의 성경을 문헌적으로 확정지을 필요를 느꼈다. 사방에서 쏟아져 나오는 문헌들을 제한하여 교회 성경(ecclesiastical scriptures)으로 그 권위를 확립해야만 그의 신약사상을 확고히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그가 가장 관심을 가진 것은 우선 바울의 서한이었다. 그가 바울에게 경도된 것은 바울의 반율법사상(antinomianism)이었다. 그는 사도 바울이야말로 기독교를 유대교전통에서 분리해낸 인물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가 선택한 바울의 편지는 10개였다. 이것을 아포스톨리콘(the Apostolikon)이라고 부른다.
1) 갈라디아서 2) 고린도전서 3) 고린도후서 4) 로마서 5) 데살로니카전서 6) 데살로니카후서 7) 라오디케아서(=에베소서) 8) 골로새서 9) 빌립보서 10) 빌레몬서
재미있게도 아포스톨리콘 속에는 3개의 목회서신, 즉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는 들어가 있지 않다. 그의 시대에 이 목회서신은 존재하지 않았거나, 그에게 인식되지 않았거나, 있었는데 일부러 빼버렸거나, 이 셋 중에 하나의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아마도 의식적으로 제거시켰을 것이다. 이 목회서신은 그의 비판자였던 폴리캅(Polycarp)이 마르시온을 의식하여 작성한 문헌이라는 설도 있다. 하여튼 마르시온에게 바울 본인저작성이 확실한 문헌으로 이 10개의 편지가 선택되었던 것이다. 바울의 편지가 오늘 우리에게 전달되게 된 데는 마르시온의 공로가 크다. 마르시온은 문헌학적으로도 견식이 탁월한 학자였다.
그리고 그는 아포스톨리콘 앞에 복음서로서 누가복음 하나를 붙였다. 타복음서가 그의 시대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누가복음이 선택된 것은 그의 바울선호사상과 관련이 있다. 바울의 서신 속에서 바울이 ‘복음’이라는 말을 쓸 때 대체적으로 구원의 복된 소식에 관한 구두적 선포(oral proclamation)를 의미했다. 바울의 시대에는 문헌화된 복음서가 없었다. 그런데 마르시온(Marcion, ?~160)은 바울이 어떤 복음서를 암암리 지칭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전통적으로 누가는 바울의 전도여행을 동반한 의사였고 그에게 끝까지 인간적으로 충실했던 신앙의 동역자였으며 누가복음의 집필자로 지목되어왔다. 따라서 마르시온은 바울이 지칭하는 복음이 누가복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바울 시대에 누가복음이 존재했다는 마르시온의 생각은 성립하기 어렵다. 누가복음의 저자가 바울을 동반한 의사 누가였다는 설은 그동안 신학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 설의 타당성을 다시 주장하는 학자들도 많다】. 그리고 누가복음의 세계적인 성격, 이방인을 위한 성격이 강하다는 측면도 마르시온에게는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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