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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15장 이집트인들의 종교관념 - 야훼교의 창시자 모세는 이집트종교전통속에서 성장 본문

고전/성경

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15장 이집트인들의 종교관념 - 야훼교의 창시자 모세는 이집트종교전통속에서 성장

건방진방랑자 2022. 3. 4.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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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훼교의 창시자 모세는 이집트종교전통속에서 성장

 

 

한마디로 유대교전통은 이집트종교전통과의 교섭 속에서 탄생하고 성장한 것이다. 모세는 어떤 의미에서 이집트인이었다. 이방의 사도인 바울이 이방에서 성장한 것이나, 애굽(이집트)으로부터 이스라엘민족을 구원하기 위한 지도자가 애굽인으로서 성장한 것이나 다 그 나름대로 필연적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민족의 유일신앙은 오로지 모세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모세는 야훼교의 창시자라 해도 매우 적확한 표현이다. 모세 이전에는 야훼에게만 예배해야 한다는 관념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근원적으로 결여되어 있었다(대한기독교서회, 그리스도교大事典, 323). 모세의 야훼교 창시는 어떤 의미에서 이집트종교전통에 대한 반동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다양한 이집트종교사상의 뿌리는 그 근저에 있고 다양한 지혜의 교류가 있었다. 그 유대교의 뿌리에서 새롭게 자라난 기독교가 또다시 이집트의 종교문화와 접합되었을 때 매우 자유로운 종교적 사유가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이러한 종교적 사유의 홍류를 우리가 대체적으로 영지주의(Gnosticism)라고 부르는 것이다.

 

요한복음의 성립 이후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c. 293~373)27서정경 성립 때까지의 3세기의 초기기독교 역사는 영지주의의 전성시대였다. 물론 우리가 영지주의라고 말하는 대상영역에 속하는 사람들은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을 영지주의자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다. 영지주의의 어떤 문헌도 영지주의를 자처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우리가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규합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매우 방편적인 개념일 뿐이다.

 

 

 구 카이로(Old Cairo)에 있는 콥틱 박물관(Coptic Museum)의 입구, 로마시대의 폐허 건물이 보인다. 나그 함마디 문서를 수집ㆍ보관하는데 가장 큰 공헌을 세운 토고 미나(Togo Mina)는 이 박물관의 관장이었다. 토고 미나는 나그 함마디 문서를 둘러싼 치졸한 게임판에서 가장 순수한 영혼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1949년에 요절했다.

 

 

인용

목차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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