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투파와 차이띠야
『마하승기율』(摩訶僧祇律) 권33에 보면 이런 재미있는 말이 있다.
부처님 뼈가 들어있으면 그것을 스투파라 부르고, 부처님 뼈가 들어있지 않으면 그것은 차이띠야라고 부른다.
有舍利者名塔, 無舍利者名枝提. 『大正』22-498.
이러한 『마하상기카 비나야』(Mahāsāṃghika Vinaya, 摩訶僧祗律)의 언급이 정확한 구분기준으로 지켜졌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이것은 부처님의 뼉다귀를 얻지 못한 많은 탑들이 생겨나게 된 역사적 사실을 방증해 주는 것이다. 즉 이것은 탑의 성격이 부처님의 무덤이라고 하는 구체적인 의미로부터 점점 추상화되고 형식화되고 상징화되어 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시 스투파(stūpa)는 승가와 특별한 관련이 없이, 평신도들에 의하여 자연스럽게 독자적으로 유지된 오픈 스페이스였다. 그런데 이 스투파신앙이 보편화되고 성행하게 되자 스투파를 승가(출가자집단 생활공간)내로 끌어들이게 되었다. 그래서 생겨나는 것이 차이띠야(caitya, 法堂)다【차이띠야(caitya, 法堂)는 중국문헌에서 支提, 枝提, 制多, 制底, 脂帝 등으로 음역된다.】.
차이띠야는 우리 감각으로 이야기하자면 불상 대신 부처님의 부도(浮屠)【부도(浮屠)는 부도(浮圖), 부도(浮都)라고도 음사된다. 부도(浮屠)는 본시 ‘붓다’(Buddha)에서 와전(訛轉)된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고승들의 사리탑을 특칭하는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 그런데 이 부도야말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스투파(stūpa)를 이해시키기에 가장 적합한 개념이다. 스투파는 곧 부처님의 부도인 것이다. 즉 탑을 부처님의 부도라고 생각하면 가장 정확한 이해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를 모신 법당이라고 생각하면 가장 쉽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영묘(靈廟), 사당(祠堂) 등으로 의역되는 것만 보아도 그 성격을 잘 알 수 있다. 이 초기 차이띠야의 원형들은 아잔타의 석굴사원에 잘 보존되어 있다. 그리고 나중에는 이 차이띠야와 승려들의 생활공간이었던 비하라(vihāra, 僧坊. 僧房, 精舍, 寮舍)와의 접합이 일어나고 그렇게 해서 가람이 형성되어 갔던 것이다【인도의 석굴사원에는 한 공간 안에 차이띠야(caitya, 法堂)와 비하라가 융합되어 있는 형식도 발견되지만, 우리나라에도 법당과 요사채는 구분되듯이 차이띠야(법당)와 비하라(승방)는 공간적으로 분할되며, 양자는 다른 전통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것이 큰 토지를 기증받게 되면서 각기 분할되는 건물군을 형성하면서 가람(saṃghārāma)이 이루어진 것이다. 가람의 형성은 또 다시 승가의 역사에 있어서 비상주 걸식(遊行)과 상주(常住)의 문제와 관련되고 있다.】.
▲ 아잔타의 차이띠야. 19번 석굴, 통돌을 파들어간 것이지만 그 구조는 목재 돔 형식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니까 정말 초기 차이띠야는 목재의 공포형식으로 지은 것임을 알 수 있다. 홀의 끝에 스투파가 있다. 그리고 스투파(stūpa)에 또 불상이 조각되어 있다. 이 불상조각으로 미루어 이 차이띠야는 대승시대에 조성된 것이 분명하다. 19번 석굴 차이띠야의 17개의 석주에 새겨진 정교한 조각. 부처의 화려한 생애와 득도의 고행(苦行)이 감실과 주변에 묘사되어 있다. AD 500~550년 경으로 추정.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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