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심리학인가?
“어제 말씀 중에서 기독교는 사건중심이고 불교는 법중심이라고 하셨는데, 그 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연기(緣起, 산스크리트어: pratītya-samutpāda, 팔리어: pa ṭicca-samuppāda)입니다.”
나는 이 한마디에 온 전신에 전율이 감도는 것을 느꼈다. 그의 대답은 너무도 간결했고, 내가 원시불교에 관하여 깨달은 총체적 결론을 한마디로 요약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그는 대스승이었다.
“연기(緣起)란 무엇입니까?”
“연기(Dependent Arising)란 모든 것이 서로 의존하여(paṭicca) 함께(sam) 일어난다 (uppāda)는 뜻입니다. 즉 이 우주의 어떠한 이벤트도 절대적인 독립성을 갖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연기를 인과(causation)라는 말로 바꾸어도 되겠습니까?”
“상관 없습니다.”
“이 우주의 모든 사태는, 정신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모두 시간과 공간 안에서 다 일어나는 것이겠군요.”
“그렇습니다.”
“시공간 밖에서 일어나는 사태는 연기론에서는 인정이 안 됩니까?”
“인정될 수 없습니다.”
“공간적인 동시적 인과는 있을 수 없습니까?”
“있을 수 없겠지요.”
“그렇다면 티벹스님들이 동시적으로 다른 장소에서 일어났던 일을 영매를 통해 보고왔다든가 하는 것은 무슨 일입니까?”
“저는 그런 신비스러운 일은 잘 모릅니다만, 그런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해도 반드시 혼이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은 걸릴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공간적으로 격절되어 있는 두 개의 사태가 인과 관계를 가지려면 반드시 그 사태는 시간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최소한 빛으로 연결될 수 있는 시간이라도 필요합니다. 북극성에서 일어난 일이 지구에 영향을 미치려면 적어도 1,000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시간차이가 500년 밖에 안 된다면 인과관계는 성립할 수 없겠지요. 그러기 때문에 모든 연기의 사태는 시ㆍ공간을 동시에 요구하는 것입니다.”
“연기는 과학입니까?”
“그렇습니다. 불교는 과학입니다.”
달라이라마는 계속해서 서슴없이 이야기했다. 그는 과학에 대해 깊은 생각이 있었다. 나는 계속 물었다.
“불교는 마음의 과학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불교는 심리학(Psychology)이라고 해도 좋겠군요.”
“심리학이라 말 못할 것이 아무 것도 없지요. 요즈음의 얄팍한 행동과학적 심리학에다가 그 개념을 국한시키지 않는 한 말이죠. 불교는 심리학입니다.”
비그뱅, 절대적 진리는 없다
달라이라마의 어조는 단호했고 간결했다. 어제 단 하루의 만남이었지만 우리는 그 만남을 통하여 서로에게 깊은 신뢰감을 주고 받았다. 사실 그가 내뱉고 있는 말들은 거대한 종교계의 현실적 지도자로서는 몸을 좀 사려야할 그런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어마어마한 말들을 그는 거침없이 내뱉었다. 나는 그의 그러한 정직한 태도가 너무도 좋았다. 어느 샌가 나는 그의 한 친구로서, 제자로서 한없는 경복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무엇보다도 진실한 인간이었다. 나는 그의 과학에 대한 생각을 집요하게 파고 들어갔다.
“비그뱅(Big Bang)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연기론에 위배되는 것이 아닙니까? 원인이 없이 시작되는 사건이니까요.”
“비그뱅(Big Bang)이라는 사건을 단순히 원인없는 결과로 볼 때에는 연기론에 위배됩니다. 그리고 비그뱅이라는 이론 속에 숨어있는 형이상학(metaphysics)적 가설도 항상 검증의 대상이 되어야겠지요. 그러나 비그뱅은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의 시작이라는 상식적 이벤트가 아니라, 가장 근원적인 문제, 우리가 목격하는 모든 현상의 기저인 시간과 공간 그 자체가 그로부터 생겨났다는 이야기이므로 그것은 연기론적 논의를 벗어난다고 하겠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연기론적 논의는 모두 시공간내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관한 논의입니다.”
“비그뱅 이전에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다른 차원의 우주가 있었고, 그 우주의 결과로서 비그뱅이 태어났다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불교에서 말하는 끊임없는 억겁년의 순환구조를 말하면 그런 얘기는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시공간의 세계 이전에 어떠한 세계가 있었다 할지라도 이미 그것은 인과적 관계로서 연결될 수는 없다는 주장이 비그뱅이론의 특성입니다. 그러니까 연기적 세계는 현실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공간 내에서 우리가 유추(reasoning)할 수 있는 사태와 관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달라이라마의 물리학적 세계관에 관한 인식은 매우 정확했다. 사계의 많은 훌륭한 학자들과의 토론을 통해서 얻은 통찰일 것이다. 나는 말을 계속했다.
“우리가 상정하고 있는 우주는 계속 변화하고 있으므로, 그 변화의 거대한 방향성을 결정짓는 사태들로부터 비그뱅(Big Bang) 이론은 유추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우주는 계속 팽창하고 있다는 가설을 제시했다면 이미 비그뱅(Big Bang) 이론은 그 가설 속에 내포되어 있었다고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비그뱅이론의 타당성은 현재 우리가 우주로부터 관찰하는 사태로부터 유추된 가설체계로서의 타당성일 뿐이며, 또 그것이 현실적으로 많은 다른 우주의 현상들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타당한 가설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현실적인 타당성이나 유용성의 체계가 바뀔 때에는 비그뱅(Big Bang)가설 자체에도 불가피한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과학적 진리도 구극적으로는 상대적 진리일 뿐입니다. 성하께서는 절대적 진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절대적 진리는 없습니다.”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또 한번 그의 단도직입적인 언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정말 절대적 진리란 없는 것입니까?”
“절대적 진리는 없습니다. 물론 불경에 보며는 절대적이고 영원한 진리, 이따위 말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들을 사람들이 매우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타의 깨달음이 연기(緣起)인 한에 있어서 절대적인 진리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어로 ‘앱솔루트 트루쓰’(Absolute Truth)라고 말할 때 이미 우리는 그 말이 지닌 역사적 인식의 포로가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마치 절대적 진리가 없으면 살 수 없는 것처럼, 그리고 이 우주에는 절대적인 그 무엇이 꼭 있어야만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어떤 공포감이나 중압감의 포로가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유일신론적 사유가 지어낸 서구적 발상의 일대 오류라고 생각합니다. 어저께 말씀하신 그노시스(Gnosis)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만, 그러한 영지주의 발상의 배면에도 거대한 착각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이 우주에는 절대적 진리가 있으며 그 절대적 진리를 매개하는 절대적 지식이 있다. 이 절대적 지식 즉 그노시스(영지)를 얻기만 하면 우주의 모든 신비를 풀 수 있는 열쇠를 얻을 수 있다. 이런 따위의 사유는 이미 절대적 진리나 절대적 지식을 실체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류의 절대론이 모든 신비주의의 함정입니다. 이것이 서구 신비주의의 한계이지요.
도대체 ‘절대적 진리’라는 말 자체를 곰곰이 생각해보지도 않고 그냥 절대적이라는 말을 우상화해버린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진리라는 것이 모든 상대적 관계를 단절시키는 절대독립적인 실체일 수가 있습니까? 이것은 저에게는 설일체유부의 삼세실유론(三世實有論)을 연상시키지만, 바로 나가르쥬나의 공론은 이러한 사유를 부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의 찰나일 뿐인데, 이 잠깐동안의 삶에 있어도 뭐 그다지도 애타게 절대에 집착을 해야만 한단 말입니까? 『대반열반경』에 나오는 석가여래의 마지막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 한마디가 그의 전 생애를 마감하는 최후의 일성이었습니다【‘諸行は壞法なり.’ 『남전』7-144, ‘만들어진 것은 모두 변해가는 것이니라.’ 강기희역, 『대반열반경』, p.152.】.
불교에 있어서 구태여 절대적 진리를 말하자면 ‘공’(śūnya)이라는 한마디 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공이라는 것을 또 하나의 절대적 실체로 생각하면 그것은 공이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면 불교는 현상적 일원론입니까?”
“물론입니다. 모든 일원론은 현상론일 수밖에 없습니다. 서양철학의 한계는 애초로부터 현상 그 자체를 무시하고 들어간다는 데 있습니다. 이것 또한 기독교와 관련된 사유체계가 파생시킨 뿌리 깊은 오류이지요. 다시 말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상은 허깨비 같은 것이며 가치 없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뿌리깊은 경시가 모든 오류를 파생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현상 그 자체의 이해를 심도있게 해야하는 것입니다. 유식론도 결국은 현상의 심도 깊은 이해방식이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일원론은 현상적 일원론밖에는 성립할 수가 없습니다. 본체론적 일원론이라는 것은 도무지 성립불가능한 것입니다. 본체론적 일원론, 본질적 일원론은 또 다시 이원론으로 환원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불교의 핵심은 ‘아드바야’(advaya), 즉 ‘불이’(不二)입니다.”
참으로 명쾌한 답변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물었다.
“중론적 세계관(Mādhyamika world-view)을 깔고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불교의 연기론적 세계관은 고전물리학적 세계관에 더 가까울까요? 현대물리학적 세계관에 더 가까울까요?”
“모든 사태에는 정확한 인과관계가 성립하는 시공간적인 장이 있다고 말하는 측면에서는 거시적인 맥락에서 고전물리학과 상통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태가 실체적으로 파악될 수 없으며 관계론적 기멸(起滅)에 불과하다는 측면에서는 현대물리학과 상통합니다. 퀀텀 물리학자들이 불교에 친근감을 느끼는 것도 아마 이런 연유때문이겠지요.”
나는 그의 말을 다음과 같이 매듭지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조차도 고전물리학에 속합니다.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라는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말은 그의 고전물리학적 사유를 대변한다 할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고전 물리학의 시간과 공간의 개념은 바꾸었지만 물리현상의 기술방식을 바꾸지는 않았습니다. 힘이니 운동이니 가속도니 하는 그러한 기본개념장치를 바꾸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양자역학에 오면 위치와 속도 그 자체가 불확정적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물체에 대한 이해자체가 파동함수의 기술로 바뀌게 된 것이죠. 아마도 불교적 사유는 이러한 불확정적 세계관에 더 가깝게 올 것 같습니다. 궁극적으로 비존재는 없지만 실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공입니다.”
과학적 가치의 정립
그리고 나는 최근에 나의 EBS 노자강의에서 21세기의 인류의 당면과제로 제시한 세 가지 문제를 거론하면서 다시 과학의 주제를 접근해 들어갔다.
“저는 최근 우리 한국사람들을 위한 테레비강의에서 21세기 인류가 당면한 과제로서 세 가지를 들었습니다. 그 첫째가 인간과 자연환경의 화해고, 그 둘째가 지식과 삶의 화해고, 그 셋째가 종교와 종교간의 화해였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주제는 이미 우리가 어제 심도있게 토론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인간과 환경의 문제, 그리고 인간의 지식이 인간의 삶으로부터 유리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인간의 지식이 과도하게 인간의 삶의 본연을 제어하고 있는 상황, 이런 것들은 모두 과학이라고 하는 세계사적 주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과학의 발전이 인간을 자연을 파괴하는 정복자의 모습으로 만들고, 인간의 지식이 삶의 본연 위에 군림하는 엉뚱한 결과를 자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종교적 진리를 생각할 때에 있어서도 너무 지나치게 과학에만 의존해서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과학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문제와 관련된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말해서 19세기부터 20세기 전반까지의 과학의 대체적 동향은 말씀하신 대로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만 파악했으며, 인류문명의 증진을 위하여 개발되고 파괴되어야 할 대상으로 파악했습니다. 즉 자연에 대한 인간의 우월성을 의심할 바 없는 것으로 받아들였고, 인간이 자연과 조화됨으로써만이 살 수 있는 존재라고 하는 인간과 문명의 한계 상황을 깊게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인류는 과학과 기술(science and technology)의 진보가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리라는 지나친 신뢰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부터 과학의 이러한 태도가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인류는 과학과 기술의 진보에 대한 한계를 자각하기 시작했으며, 과학 자체도 인간문명의 물질적 충족만이 지상의 과제가 아니라고 하는 새로운 방향성을 획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과학 자체가 직선적 진보사관의 한계를 인식하기 시작했으며, 자연의 불확정적 제상황을 고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물질적 세계에 대한 관심만이 과학의 대상이 아니며 정신적 세계에 대한 새로운 탐구도 물질과 더불어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물질 자체가 궁극적으로 인간과 독립해서 고독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새로운 인식론적 상황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어쩌면 현대첨단과학에서는 물질 자체가 정신화(spiritualized)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인간은 궁극적으로 자연에 군림하는 오만한 존재가 아니라 자연과 타협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인식이 새롭게 태동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생각하기에는 인류가 이제 과학과 기술문명이라고 하는 충격을 통과하면서 성숙한 단계로 진입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제 우리가 과학과 불교를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분위기를 배경으로 해서만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는 그러한 성숙한 과학인식이 문명의 현실태를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특히 문제는 과학을 생산한 서양에서 심각하다기보다는 과학문명을 흡수하면서 뒤따라가는 개발도상국가의 경우 더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서양에서 이미 20세기 전반의 과학에서 20세기 후반의 과학으로 전환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는 과학과 기술의 진보가 인간세에 바람직하지 못한 많은 현상들을 야기시켰기 때문입니다. 인간소외, 범죄, 이기주의, 도덕의 해이, 물질적 풍요 속에 퇴락되는 인간의 가치, 소박한 심미성의 상실, 이러한 비극적 상황들을 뼈저리게 체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비극을 체험한 서양인들은 때로 동양에서 지혜를 구하려고 하지만, 이미 동양은 그들의 비극을 이제 반복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아이러니의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구루(guru)라고 찾은 동양인이 때로는 본질적으로 그들보다 더 타락한 물질주의자일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동양인(반드시 지역적인 개념으로 쓰고있는 말은 아님)들은 서양의 위기상황을 앞서 파악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서양의 제국주의는 그러한 후진국가들의 주체적 인식이나 행동을 허용하질 않습니다.”
“물론이지요. 그러나 그러한 현상적 상황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아시아의 제국들은 점차 그러한 한계상황을 감지할 때까지 죽으라고 개발은 하겠지만, 결국은 그 한계를 깨닫게 되겠지요.”
“그러나 그러한 식의 한계상황인식은 비극입니다. 이미 때가 늦으니까요. 그전에 인류의 파멸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전통적 가치와 근대과학적 가치 사이에 어떤 방식으로든지 현명한 타협점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러한 타협점을 발견하지 못하는 문명은 생존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달라이라마는 어떠한 문제에 오든지 포괄적인 세계사인식을 가지고 정확하게 대처했다. 그는 문명첨단의 모든 문제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티벹과 중국의 미래
“저는 티벹의 문제를 매우 가슴아프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지금 성하께서 지적하신 그 타협의 문제와 관련하여 티벹이야말로 이상적인 어떤 인류문명의 기준을 제시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한 문명이었습니다.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며, 지식과 삶이 화해하며, 모든 종교적 신념이 관용되며, 전통적 가치가 서구적 물질문명 앞에 일방적으로 무릎을 꿇지만은 않는 그러한 인류문명의 본보기로서 존속될 가치가 있는 문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소중한 독자적 문명을 강압적인 수단에 의해 일방적으로 파괴하고 서구문명의 모든 병폐의 쓰레기더미로 만들어버리는 중국정부의 소행은 인류의 공동의 미래를 위하여, 그리고 중국자신의 미래를위하여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지난달에 저는 홍콩에서 활약하고 있는 어느 중국학자와 이런 문제에 관해 깊은 토론을 했습니다. 그는 중국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다음의 세 방면으로 나누어 고찰했습니다. 첫째는 경제문제입니다. 어찌되었든 중국은 지금 경제발전을 지고의 목표로 삼고 매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장경제(market-oriented economy)를 도입했고, 또 공산치하에서 이룩한 경제적 토대를 활용하여 그런 대로 새로운 시대에 잘 적응해나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과거의 리지드한 경제상황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죠. 둘째는 정치적 상황입니다. 공산당정권은 경제적 문제와는 달리 정치적 문제에 있어서는 매우 보수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으며 보다 개방적인 정치체제를 허용하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파우어의 기반이 흔들리는 것을 감당키 어려운 것이지요. 그러나 거시적으로 보면 이러한 정치적 상황도 분명히 개선될 것입니다. 보다 개방적인 정치체제로 서서히 이행해 나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의 진정한 문제는 세 번째 방면에 있습니다. 그것은 도덕방면이며 문화방면입니다. 그것은 중국문명의 총체적 위기상황(cultural crisis)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중국공산당은 1949년 10월 1일 페킹에 인민정부를 수립한 이래 맑시스트 이데올로기에 대한 완벽한 믿음의 기초 위에서 완벽하게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신념에 불타있었습니다. 이러한 중국적 신념을 마오이즘이라 불러도 좋고 맑스레니니즘 혹은 콤뮤니즘이라 불러도 상관 없습니다. 이들은 이러한 공산주의 신념 때문에 자신들이 지녀왔던 모든 전통적 가치는 신중국을 건설하는 데 모조리 방해가 될 뿐이라는 성급한 판단을 실행에 옮겼던 것입니다. 더 이상 유교적ㆍ불교적ㆍ도교적 가치가 새로운 사회건설을 위하여서는 타당성이 없다고(irrelevant) 판단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난 50여 년 동안 새로운 중국의 인민들에게 계급투쟁만을 가르쳤고, 전통적 가치의 타도를 가르쳤습니다. 그들이 가르친 것은 ‘증오’(hatred)였습니다. 전통적 인(仁)의 가치, 서로의 인간성을 존중할 줄 알며, 또 약한 자를 도와줄 줄 아는 마음씨, 온유와 사랑, 양보와 희생, 이런 것들이 갑자기 무용지물이 되고 악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홍위병과 같은 어린애들 장난의 파괴적 광대짓을 보면 얼마나 그 가치전도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었는지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중국의 노력의 결과로 공산주의가 소기하는 바 ‘무계급의 평등사회’(classless equal society)가 도래했다고 한다면, 그러한 가치전도조차도 그 나름대로의 역사적 효용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이 지구상의 공산주의의 모든 실험, 무계급사회의 건설은 하나의 춘몽이었다는 사실이 너무도 여실하게 입증되었습니다. 그들은 꿈을 꾸고 있었던 것입니다. 실현될 수 없는 목표를 실현시킬려고 너무 무리한 짓들을 한 것입니다. 그들의 이데올로기의 목표 그 자체가 현실성이 없는 것이라면 그 이데올로기의 정당성 그 자체가 의미를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진보주의의 기준처럼 생각되었던 시절에는 ‘자유’라는 가치는 서구 제국주의에 복무하는 비열한 사치ㆍ태만인 것처럼 간주되어 왔지만, 사실 아시아제국에 있어서 ‘자유’라는 가치의 최대의 의미는 저는 전통문화의 보존과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어떻게 살려나가느냐 하는 문제와 관련된 창조적 혼돈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은 여태까지 그러한 창조적 혼돈이 허용되지 않는 50여년 반세기의 세월을 살아왔기 때문에 생긴 정신적 공백을 메꿀 길이 없습니다. 경제적 발전과 정치적 상황이 개선되면 개선될수록 도덕적 상황은 악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정신적 공백 때문에 범죄, 마약, 이기주의, 물질만능주의, 관료들의 부패, 도덕적 해이, 이러한 문화의 총체적 위기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도 한때는 신중국 건설의 박력있는 모습을 관람하고 무엇인가 새로운 역사의 방향이 생겨나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티벹국민의 미래를 위하여 부디즘과 맑시즘을 창조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가 하는 고민까지도 심각하게 해보았습니다. 불교는 공산주의 이념을 배타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인간의 평등이나 신이 없는 세속적 가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가능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모두 한 시대의 유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미 지나가버린 폐허의 황량한 모습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맑시즘의 종언은 곧 서구적 계몽주의의 낙관론의 종언을 의미합니다. 이제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계는 더 이상 계몽주의적 가치의 일방적 우세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서방과학문명의 강점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강점과 우리문명의 전통적 가치의 강점을 창조적으로 결합하는 새로운 작업을 해야하는 것입니다. 이 새로운 작업의 진정한 바탕은 자유입니다. 중국과 같이 자유가 없는 곳에서는 그러한 작업이 불가능합니다. 자기 자신의 파멸도 부족해서 티문화까지 근원적으로 파멸로 몰아가려는 그들의 태도는 정말 인류의 비극이요 인간의 비극입니다.”
인간의 마음에 달렸다
“아시아 역사에 있어서 정치적 리더십의 도덕성 그 자체도 항상 문제가 되겠지요.”
“그렇습니다. 아시아역사의 현실적 대세는, 비록 그것에 대한 정확한 가치판단을 유보한다 할지라도, 그 나름대로의 필연성이 있는 것입니다. 즉 아시아의 인민들은 힘이 없었고 배가 고팠던 것입니다. 그래서 근대화ㆍ서구화라는 문제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빵으로만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 삶의 존재이유에 대한 정신적 가치가 충족되어야만 사는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존재입니다. 이러한 정신적 가치를 정치적 리더들이 제공해야 하는데, 불행하게도 아시아제국의 근대정치사는 탐욕적 개인들에 의하여 지배되어온 역사였습니다. 전 국가의 정신적 가치가 그 국가를 리드하는 리더십의 도덕성 하나로 좌우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도덕적 위기상황이 결국 정치적 리더 개인의 탐욕 때문에 생길 때가 비일비재합니다. 그러니까 탐욕스런 마음 하나 다스릴 줄 모르는 사람들이 권력을 쥐게 되면 그 부패와 해이는 그 국가에 속해있는 모든 사람의 부패와 해이를 조장합니다. 그러니까 결국 인간세의 문제는 인간의 마음에 달렸다고 하는 부처님의 말씀이 어찌 헛된 말이겠습니까? 우리 티도 예외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난을 통하여 진실하게 사는 법을 배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1948년 1월 30일 오후 5시 17분, 뉴델리에는 세 발의 총성이 있었다. ‘헤 람(He Ram), 오~ 신이여!’ 위대한 영혼의 소유자 마하트마 간디의 최후의 일성이었다. 그가 이 소리를 발했을 때, 그의 몸무게는 100파운드였고, 그의 전재산은 100루삐였다. 지금 환율로 계산하면 2달러 정도 되는 돈이다. 사티야그라하(Satyagraha), 아힘사(Ahimsa), 그리고 시민불복종(Civil Disobedience)운동으로 대영제국을 흔들었고 인도라는 거대한 대륙을 근대국가로 새롭게 탄생시킨 한 정치적 지도자의 최후의 모습인 것이다.
요즈음 택시를 타면, 운전사아저씨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한마디가 있다. “누가 해먹어도 좋으니까 단 한번만이라도 법대로만 하는 대통령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서 법이란 법률(law)일 수도 있지만 그 내용인즉 다르마(Dharma)인 것이다.
▲ 간디가 사티야그라하(진리파지)운동을 펼친 뭄바이 주거지, 마니 바완(Mani Bhavan)의 모습.
열반이 해탈을 보장하지 않는다
나는 너무 정치적인 문제로 깊게 들어가고 싶질 않았다. 그것은 시간이 나면 뒤에서 다시 다루기로 하고 화두를 틀었다. 마음이라는 이야기가 나온 김에.
“아까 불교를 심리학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그 심리학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마음의 평화입니다.”
달라이라마의 대답은 정말 정갈했다. 그는 될 수 있으면 어려운 불교용어를 피해가며 말한다.
“마음의 평화란 열반(涅槃, nirvāṇa)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존재가 아닙니까?”
“그것은 분명 존재가 아닙니다. 열반에 들었다고 하는 표현이 열반이라는 존재가 있고, 그 존재 속으로 내가 들어간다는 의미는 아닌 것입니다. 열반은 어떠한 경우에도 서양철학에서 말하는 존재론적 실체(ontological entity)일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열반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마음의 상태(state of mind)입니다【Actually, nirvana is completely the purified state of one's own mind. It is the ultimate nature of mind that has removed all afflictive emotions. His Holiness the Dalai Lama, The Transformed Mind (New Delhi : Penguin Books India, 1999), p.181.】.”
“열반이 마음의 상태라고 규정하신다면, 우리가 열반적정(涅槃寂靜)의 마음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면 번뇌도 곧 보리가 되는 것이므로, 윤회도 사라져버릴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어떠한 마음의 상태에 이르든지 간에 그 마음의 상태가 윤회하는 것입니다. 윤회하는 것은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열반이 해탈(解脫, mokṣa)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말씀이십니까?”
“열반이 해탈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열반은 무주처열반(無住處涅槃, apratiṣṭhita-nirvāṇa)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그것은 깨달음의 세계에도 미망의 세계에도 안주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대승 보살의 정신을 말씀하고 계시군요!”
“그렇습니다.”
“성하께서는 해탈을 원하십니까? 윤회를 원하십니까?”
“나는 해탈을 원하지 않습니다. 해탈이 마음의 모든 것의 완전한 종지이며 무(nothingness)라고 한다면 나는 그런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삼사라(윤회)가 더 좋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것보단 훨씬 더 재미있으니까요!”
그러면서 그는 크게 너털웃음을 지었다. 나도 또 다시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 붓다는 재미없는 사람이겠네요?”
“그렇습니다. 붓다는 이미 다르마 그 자체입니다. 어떤 구체적 형상으로는 다시 구현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우주에 충만한 어떤 에너지로 남아있습니다. 개별적인 나라는 의식이 없을 뿐이지요.”
윤회는 과학이다
이런 부분에 오면 그의 이야기는 알 듯 말 듯했다. 그러나 그 자신은 매우 명료한 논리를 가지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열반이나 해탈(解脫, mokṣa)과 무관하게 윤회는 있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윤회라는 것은 인간의 선업과 악업의 과보를 정당하게 만들기 위해서 논리적으로 설정된 하나의 문화적 전통(cultural convention)이 아닙니까? 그것은 성하나 티벹사람들의 세계인식의 한 방법이지 그것을 사실로서 강요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성하와 같이 과학에 사리가 분명하신 분이 윤회를 정말 사실이라고 믿고 계신 겁니까?”
“윤회는 사실입니다.”
“문화적 사실이나 심리적 사실이나 논리적 사실이 아닌, 물리적 사실이며 과학적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윤회는 과학적 사실입니다.”
나는 이런 대목에 오면 솔직히 말해서 수긍이 가질 않는다. 역시 나는 유교전통의 상식인에 불과한 모양이다. 난 정말 달라이라마의 기묘한 의식체계에 두 손 들고 항복을 하거나, 얼씨구 지화자를 외치면서, 술 호로 하나 꿰찬 취선(醉仙)이 되어 멀리 도망가버릴 생각밖에 나질 않았다. 그러면서 나는 또 짓궂게 다그쳤다.
“성하의 말씀대로 윤회가 과학적 사실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과학적 검증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과학적 검증을 통하여 윤회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입증이 된다면 성하께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러면 물론 윤회가 사실이 아니므로, 윤회에 대한 모든 생각을 바꿔야겠지요. 불교의 연기적 세계관은 허황된 것을 믿음으로서 강요하지 않습니다.”
무아와 윤회의 모순
나는 정말 할 말이 없어지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두 손 들고 항복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나는 당초에 과학적 검증 운운했지만, 이러한 영역은 영원히 과학적 검증의 대상이 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렇게도 정정당당하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아마도 나의 이런 질문에 감춰져 있는 논리적 함정을 이미 간파를 하고 계셨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솔직히 윤회를 사실로서 믿는 세계관에는 익숙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러나 윤회를 사실로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불교의 많은 교설들이 논리적으로 성립불가능해진다. 임마누엘 칸트는 아예 그것을 요청(postulation)으로 말해 버렸지만 달라이라마는 그것을 사실(fact)로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칸트는 역시 합리주의적 철학자였고, 달라이라마는 종교적 지도자임이 분명했다. 더 이상 쑤시고 들어가 봤자 나만 손해볼 게 분명했다. 나는 묘책을 하나 또 생각해냈다.
“원시불교, 대승불교를 막론하고 불교의 최고의 법인 중의 하나가 제법무아(諸法無我)라는 것을 인정하시죠?”
“물론이지요.”
“그렇다면 제법무아라는 것은 모든 존재에 아트만(ātman)이 없다는 것입니다. 맞죠?”
“댓스 라이트, 오케이.”
나는 잔뜩 긴장하면서 그를 쑤시기 위해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하였다. 그는 나의 긴장한 태도가 좀 의아스러운 듯하면서도 아주 코믹하게 ‘오케이’를 연발하는 것이었다.
“나라는 존재가 결국 무아라고 한다면 실체로서의 나라는 존재 그 자체가 해소되어 버린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윤회라는 세계관이 의미를 갖는다는 것은 윤회의 주체로서 자기동일성을 갖는 어떤 실체의 지속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즉 윤회에는 아트만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제법에는 아(我)가 없는데 윤회에는 아(我)가 있다. 제법무아(諸法無我)란 분명 붓다의 세계관을 의미하는 것인데 어떻게 무아의 세계관과 아를 지속시켜야만 하는 윤회의 세계관이 동시에 가능한 것입니까? 무아와 윤회는 불교이론의 모순되는 두 측면이 아닙니까?”
나는 이제 달라이라마가 나의 공세에 디펜스가 좀 난처한 입장으로 몰렸다고 생각했다. 의기양양하게 질문을 마치자마자 달라이라마는 반갑게 기다렸다는 듯이 다음과 같이 외치는 것이었다.
“댓스 굳 퀘스천! 정말 좋은 질문입니다. 그것은 불교를 생각할 때, 많은 사람들이 가장 오해를 잘하는 대목이며, 또 많은 사람들이 애매한 상념에 빠져 불필요한 고민에 빠지거나 어려운 해결책을 시도하는 그러한 문제이지요. 그러나 붓다가 무아를 말했을 때의 아는 변하지 않고 상주하는 아며, 절대적이며 타에 의존치 않는 독립적인 아며, 또 집적태로서의 분할이 불가능한 단일한 아인 것입니다. 이렇게 자립적(自立的)이며 독립적(獨立的)이며 단일적(單一的)인 성질을 구비하는 존재를 우리는 스바브하바(svabhāva), 즉 실체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불교의 무아론은 실체로서의 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체로서의 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아론은 결코 윤회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즉 무아의 세계관은 전혀 윤회와 모순되지 않습니다. 실체적 자아는 연기적 자아와 대립되는 개념이며, 실체적 자아가 없어져도 연기적인 자아는 분명히 있는 것이므로, 그 연기적인 자아가 윤회를 계속하는 것입니다.”
나는 어퍼커트를 살짝 멕일려다가 스트레이트를 된통 얻어맞은 꼴이 되고 말았다.
윤회란 인간마음의 역사
그러나 쉽게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연기적 자아라는 표현에 대해서 좀더 설명을 해주시죠?”
“연기란 한마디로 무자성(無自性, niḥsvabhāva)이라는 뜻입니다. 무자성이란 자성(自性)의 법(法, dharma)이 인정이 되지 않는다는 말인데, 그것은 결국 모든 존재는 서로 의존하고 있으며(interdependency), 상호관련되어 있다(interconnectedness)는 뜻입니다. 이러한 상호의존성ㆍ상호관련성을 불교에서는 공(空, śūnya)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불교에서 말하는 공은 아무 것도 없다는 뜻의 무(無, Nothingness)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무엇인가 항상 거기 있는 겁니다(something there). 그러니까 무아라고 하는 뜻은 아라는 존재의 소멸을 의미하거나 나의 완전한 무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아에 대한 이해방식의 근원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그것은 마음의 소멸이 아니라 마음의 혁명입니다. 혁명이란 마음이 새로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의 혁명을 불교는 지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좋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무아적 나의 본연으로 돌아왔다 할 지라도 그것이 윤회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면, 윤회의 굴레로부터의 해탈(解脫, mokṣa)이라고 하는 불교의 지상명제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마는 것이 아닙니까? 아(我)들의 영원한 윤회만 존속하는 것이 우리들의 우주가 아니겠습니까?”
“지금 너무 지나치게 ‘해탈’이라고 하는 말에 집착해서는 아니 될 것 같습니다. 원시경전에서부터 부처님 자신이 열반(涅槃, nirvāṇa)이나 해탈이라는 말을 그렇게 엄밀하게 윤회로부터의 온전한 벗어남이라는 의미로 쓰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번뇌로부터 벗어남이라는 의미로 가볍게 쓰였던 말입니다.”
“그렇다면 번뇌로부터 벗어난다면 윤회도 곧 사라져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윤회라고 인식했던 세계 그 자체가 깨달음의 세계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 이것이 곧 대승이 말하는 ‘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이요,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라고 하는 말의 참 뜻이 아니겠습니까? 왜 또 다시 달라이라마께서는 윤회라고 하는 세계의 모습 그 자체를 실체화 하고 계신 것입니까?”
“윤회의 실체화, 그것은 참 강력한 표현이군요. 그런데 도올선생님께서는 저의 말을 근원적으로 오해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도올선생님은 윤회를 부정하고 나는 지금 윤회를 긍정하는 각도에서 서로의 변론을 쌓아가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되겠는데요, 불교에서는 근원적으로 윤회라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보거나, 가치적으로 옹호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즉 ‘번뇌즉보리’라는 혁명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해탈(解脫, mokṣa)하지 못한 인간의 마음이 존재하는 한 윤회는 존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인간에게 있어서도 너무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을 현재적 순간의 절대적 경지로서 파악하는 것은 연기적 세계관에 있어서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선승들의 그러한 주장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모든 현재라는 찰나는 과거의 업의 결과이며 또 미래의 지향성과 반드시 관계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 그 자체가 하나의 승계적인 흐름인 것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내가 현세에서 대단한 각(覺)을 이루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기나긴 과거세의 업장을 다 소멸시키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아무리 대단한 깨달음을 얻었다 할지라도 인간이라는 존재성의 관계그물이 있는 한에 있어서는 또 다시 업이 쌓이게 마련입니다.
윤회란 이러한 인간의 마음의 역사입니다. 인간의 허약하고 집착하고 치우치는 변계소집(遍計所執, parikalpita)의 마음이 있는 한 윤회의 굴레는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굴레에서 벗어나시는 것은 도올선생님 자신의 노력에 의한 경지에 따라 이루어질 것입니다.”
아무리 윤회의 문제를 정면으로 쑤시고 들어간들 승산이 있을 턱이 없었다.
영혼의 동일성에 대해
그래서 나는 작전을 변경했다. 공세의 방향을 대전환시키기로 작심했다. 그러나 윤회의 문제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좋습니다. 사실 윤회의 문제란 불교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도아리안족의 세계관의 공통분모였으며 그들은 그러한 윤회의 생각을 통해서 카스트의 고착성을 정당화시킬려고 노력했습니다【힌두이즘과 카스트의 관계, 그리고 카스트 자체에 대한 정치ㆍ종교ㆍ사회적 의미를 아주 명료하게 잘 해설한 것으로 킨슬리의 저서를 들 수 있다. David R. Kinsley, Hinduism ― A Cultural Perspective, New Jersey : Prentice Hall, 1993. 제5장과 제8장을 참고할 것.】. 그리고 또 희랍의 올페이즘에도 완전히 동일한 윤회의 생각이 있습니다. 피타고라스도 영혼의 불멸을 믿었으며 그 영혼은 끊임없는 환생의 과정을 반복하며 따라서 모든 의식있는 생물들은 인간과 동일하게 취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피타고라스가 동물들을 앞에 놓고 설교하곤 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Bertrand Russell, A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New York : Touchstone Book, 1972), p.32.】?”
“재미있군요.”
“그리고 기독교도 윤회를 믿지는 않지만 부활을 믿으며 영혼의 불멸을 믿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도적 세계관이 되었든, 희랍적 세계관이 되었든, 유대교 기독교적 세계관이 되었든, 인간의 영혼이 사후에 지속된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이 영혼의 사후지속이라는 의미맥락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한 영혼의 동일성(identity)의 지속입니다. 이 동일성의 지속의 보장이 없다면 윤회는 무의미한 것입니다. 내세에 대한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지 않은 문명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 패러다임에 가장 중요한 디프 스트럭쳐는 영혼의 동일성이 보장되느냐 안되느냐에 달린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중국문명은 그러한 영혼의 동일성의 체계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이란 기의 집합태이며, 인간의 죽음이란 곧 기가 흩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덤으로 들어간 백(魄, 신체적 부분)은 흙이라는 기로 흩어지며, 하늘로 날아간 혼(魂, 정신적 부분)도 공중의 대기로 흩어질 뿐입니다. 흩어진다고 하는 뜻은 거기서 다시 새로운 조합이 이루어진다 할지라도 그 흩어지기 전의 동일성(identity) 체계가 전혀 반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흩어지면 그것으로 끝나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영혼의 동일성은 인간의 기억의 흐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역사 속에서만 보장받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도인들이 역사를 경시한 것과는 달리 중국인들은 역사를 중시했습니다. 그래서 이미 전한(前漢)시대에 사마천의 『사기』와 같은 위대한 실증주의적 역사서가 쓰여졌습니다. 우리 한국사람들도 이러한 중국적 문명의 패러다임에 더 친숙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영혼의 윤회를 운운하는 것보다는 이러한 역사적 인과를 말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고 보다 상식적이고 보다 과학적이라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도올선생님은 지금 저하고 중국철학적 세계관을 토론하기 위하여 오신 겁니까? 우리는 지금 불교를 말하기 위해 만난 것이 아닙니까?”
종교의 본질적 주제는 죽음
나는 갑자기 숨이 콱 막히고 말았다. 사실 난 중국철학적 세계관에 오며는 너무도 할 말이 많다. 그것은 나의 언어영역이기 때문에 나는 세세하고도 권위있는 답변을 끝없이 늘어놓을 수가 있다. 그러나 성하의 말씀도 일리가 있었다. 전혀 다른 평행선의 신념체계를 맞부닥뜨려 본들 거기서 설득이나 타협이란 실제로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종교적 가치의 문제가 개입되고 있는 이상! 달라이라마는 말씀을 이었다.
“유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그것은 세속적 윤리(secular ethics)입니다. 그것은 바람직한 삶(good life)에 관한 것이며, 좋은 사회, 좋은 군주, 좋은 시민에 관한 담론일 뿐입니다.”
“성하께서는 이미 불교도 엄밀한 의미에서는 종교가 아니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불교와 유교를 하나는 종교이고 하나는 종교가 아니다라는 식으로 양분시킬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물론 엄밀한 의미에서 불교도 종교가 아니라고 한 나의 말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내가 불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말한 뜻은, 종교가 서양에서처럼 창조주나 이 우주의 모든 운행을 관할하는 지배자로서의 초월신의 존재를 전제로 해야만 한다면, 그러한 맥락에서의 종교는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한 것뿐입니다. 즉 종교의 성립요건에 창조주나 초월신의 개념이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종교에 가장 본질적인 주제는 ‘신’이 아니라 ‘죽음’입니다. 즉 인간의 유한성의 문제이지요. 그러니까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반드시 죽음과 죽음 이후의 세계(Afterlife)에 대한 상념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최근의 생철학이나 실존철학도 삶의 철학이지만 죽음의 문제로부터 발전한 사상체계가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중국사람들이 아무리 이러한 내세의 문제를 등한시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고등한 사유의 세계에서만 이루어진 담론일 뿐, 민중의 실제적 관심은 내세에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왜 진시황제가 자기 무덤 속에 그렇게도 거대한 지하궁전을 만들었으며, 왜 모든 귀족들의 무덤이 그렇게도 내세적인 심볼로 가득 차 있겠습니까? 바로 우리 불교는 이러한 내세의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문명에도 깊게 침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죽음의 공포와 영혼불멸에 대한 갈망, 이것은 인간의 가장 본원적인 문제입니다. 우리 불교는 이러한 문제를 매우 근원적으로 해결했던 것입니다. 대승불교만 하더라도 윤회의 비관론(the pessimism of saṃsāra)을 반야의 낙관론(the optimism of prajñā)으로 전환시킨 일대 정신혁명(spiritual revolution)이었습니다.”
나는 또 한 번 그의 웅변에 압도되고 말았다. 그는 모든 주제에 대해 매우 명료한 답변을 다 준비해놓고 있는 것 같았다.
윤회하는 것은 미세마음이다
그러나 나의 추궁은 집요했다.
“앞서 말씀드린 영혼의 동일성의 지속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도 도올선생님은 적절한 질문만을 골라 던지시는지 참 놀랍군요. 도올선생께서 지적하신 문제야말로 흔히 불교에 대해서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애매하고 막연하게 생각하기만 해서 오해가 많은 핵심적 주제이지요. 우선 ‘영혼의 동일성의 지속’(the continuation of the identity of soul)이라는 말 자체에 대한 세밀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우리 티벹에서는 윤회의 과정에서 전생의 존재가 확인된 사람들을 뚤꾸(trulku)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화신(化身, nirmāṇa-kāya)의 뜻이지요. 저는 제 전대 13대 달라이라마의 뚤꾸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과연 무슨 뜻인가? 나는 아무런 자유의지도 없는 13대 달라이라마의 지속체인가? 그의 영혼, 그의 의식, 그의 마음의 모든 것이 나에게 고스란히 옮겨져 온 것인가? 저는 결코 ‘동일성의 지속’이라는 말을 포기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보통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그러한 ‘동일한 인간의 지속’이라는 현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무아의 이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비불교적인 생각입니다.
윤회를 하는 것은 우리의 신체가 아니고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조차도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마음이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매우 특수한 마음의 상태인 것입니다. 우선 상식이라는 말을 생각해봅시다. 상식(常識)이란 가장 항상적인, 그러니까 가장 흔한, 가장 보편적인 의식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상식의 마음의 상태에서는 우리의 모든 기관들(organs)이 쉬지않고 온전하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상식적 마음의 차원이라고 합시다. 그러나 우리가 수면을 취할 때는 다른 마음의 차원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우리가 수면을 취하고 있을 때는 누가 칼로 찔러 죽여도 모를 수 있으니까 우리의 안식이나 전5식이 모두 작동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상식의 레벨에서와 같은 기관들이 다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얘기지요. 그러나 잠잘 때도 꿈을 꿀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꿈을 꾸는 의식은 때때로 색깔까지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잘 모르지만 어떤 미묘한 기관이 작동하고 있다는 얘기지요. 그런데 꿈이 전혀 없는 깊은 수면의 상태로 몰입할 수가 있습니다. 이 상태는 마음의 또 다른 차원입니다. 점점 우리의 상식에서 느끼는 의식의 상태가 백지화되어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또 기절이나 졸도하는 상태(faint)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때 호흡이 멈추고 가사상태를 유지할 때 인간에게는 더욱 더 깊은 내면의 마음상태로 내려가겠지요. 이것은 마음의 또 하나의 깊은 차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최후적으로 죽어갈 때, 죽음의 직전의 상태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때는 우리의 맥박이 멈추고 심장의 대순환이 멈춥니다. 그리고 모든 세포에로는 혈액공급이 그칩니다. 그렇게 되면 몇 찰나에 뇌의 기능이 멈추게 되겠지요. 이런 뇌사의 상태를 우리는 임상적으로 죽음이라고 부릅니다. 이때 우리는 이 사람이 죽었다는 표현을 쓰게 됩니다. 그런데 매우 최근에 우리 티벹스님이 돌아가셨는데 일주일 동안 그의 몸이 산몸처럼 프레쉬하게 유지되었습니다. 그리고 작년에는 또 한 스님의 신체가 3주 동안 완전히 산사람처럼 유지되었습니다【티벹스님들의 좌탈사례에 관한 이야기는 과장된 기술이 많다. 예를 들면 반년 동안을 꼿꼿이 전혀 썩지 않고 앉아 있었을 뿐 아니라 그 기간 동안에 수염도 자란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 달라이라마의 말씀은 비교적 그런 식의 과장된 표현이 없어 좋았다. 뇌사로부터 그 다음 환생의 기간을 보통 49일로 잡는데 그 기간의 상태를 바르도(Bardo)라고 부른다. 중유(中有), 중음(中陰)이라고 번역된다. 바르도의 여행에 관한 유명한 책이 에반스 벤츠가 편찬한 『티벹 死者의 書』이다. 밀교수행의 핵심은 살아있는 동안에 이 바르도의 상태를 체험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환생의 기회에 당황치 아니 하고 보다 좋은 조건의 선택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W, Y. Evans-Wentz, The Tibetan Book of the Dead, Varanasi : Pilgrims Publishing, 출판연도 불표시. 이 책은 1927년 옥스퍼드대학 출판부를 통해 처음 소개되었다.】. 이것은 뇌의 기능이 멈춤으로써 이승에 속한 마음은 종료되었지만, 어떤 순수하고 미묘한 마음, 즉 미세마음(Subtle Mind)이 그 몸과 아직 더불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미세마음이 그 몸에서 떠나게 되면 구규(九竅)로부터 진액이 흐르고 부패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미세마음은 너무도 미묘한 것이래서 우리 인간이 분별적으로 인지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윤회를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미세마음 (Subtle Mind)이다. 그런 말씀이시군요.”
“이그잭틀리(Exactly)! 윤회를 하는 것은 미세마음(Subtle Mind)이지, ‘나’라고 하는 개체(Self)가 통째로 이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미세마음이 새로운 신체와 결합하게 되면 그 마음은 새롭게 자라고 성장합니다. 그러면 그것은 다른 의식의 상태를 가지게 되는 것이지요.”
“미세마음은 동일하지만 인격체로서는 전혀 다른 개체가 태어난다는 그런 말씀이시군요.”
나는 급한 호흡을 가다듬고 계속 말을 이었다.
“전혀 다른 인격체라고 한다면 미세마음의 동일성을 무엇 때문에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까? 아예 그런 꼬리표를 떼어버려도 좋지 않습니까?”
“인간이 살아있을 때는 이런 상황은 종종 경험됩니다. 어렸을 때의 나와 지금의 나가 경험의 체계가 너무도 달라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을 때에도 역시 그 마음의 동일성은 승계되고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신병자가 되었다든가, 뇌의 충격을 받아 전혀 다른 인간이 되었다고 한다면 그 마음조차도 전혀 다른 것으로 간주 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미세마음이라는 것 자체가 고정불변의 동일체계가 아니고 찰나찰나 생멸 속에서 계승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미세마음에도 인간의 업장은 묻어가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그러한 카르마의 문제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환생의 윤리적 조건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평소에 아무리 의식적으로 좋은 일을 하고 살았다 할지라도 무엇인가 마음에 꺼림직한 일들을 마음구석에 무의식적으로 숨겨두었다고 한다면, 뇌사와 더불어 상식적 의식은 소멸되어도 그러한 매우 심오한 업장은 바르도상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악업으로 인해 좋은 환생의 길을 선택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중유(中有, antarā-bhava)【앞서 말한 바르도(Bardo)의 다른 이름, 중음(中陰)이라고도 번역된다. 사유(死有)와 생유(生有)의 중간으로서의 중유(中有)이다.】의 상태에도 아라야식(阿賴耶識, alaya-vijñāna)의 업장은 유지된다는 말인가요?”
“우리 티벹불교에서는 유식의 표현은 직접 활용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렇게 이해하셔도 대차는 없습니다.”
윤회는 마음을 기준으로 한다
“말씀하시는 것을 모두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도 저에게는 몇가지 의문이 남습니다. 우선 말씀하시는 이러한 모든 것이 과학적 사실이라고 한다면, 우선 미세마음이 물리적 근거가 있는 것입니까? 없는 것입니까? 그것이 전혀 없는 것이라면 이 모든 이야기는 환상에 그치고 말수가 있습니다.”
“도올선생께서는 인간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 그것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은 물리적 조건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물질로부터 현현(emergence)되는 그 무엇일 뿐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니까 신체적 조건을 떠나 독립적으로 떠다니는 존재로서의 마음은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런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살아있는 조건하에서의 이매지내이션의 기능일 뿐입니다.”
“참 명료하시군요. 저도 물체와 정신의 이원론적 구분을 싫어합니다. 물체와 정신이 실체로서 따로따로 노는 데카르트적인 이원론은 저도 싫어합니다. 그래서 저의 모든 논의도 심ㆍ신을 하나의 장 속에서 얘기하는 맥락을 결코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물체를 꼭 형상을 지니는 존재 즉 공간적 점유로 생각치 않는 것이 가능하다면, 우리의 의식이나 마음도 그러한 에너지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러한 마음의 에너지가 이동하는 것이죠.”
“그 이동현상을 이렇게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통장의 번호는 똑같은데 끊임없이 출납의 내역이 달라진다, 이런 식으로 말이죠?”
“무방합니다.”
“그런데 그런 통장번호를 인정해버린다면 이 우주의 미세마음의 개수가 정해져 있다는 얘기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이런 결정론은 좀 억지스러운 이야기가 아닙니까?”
“한 사람의 미세마음이 바로 다음 사람의 미세마음으로 연결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위대한 마음은 여러 화신을 가질 수도 있을 뿐 아니라, 또 환생의 기회를 전혀 얻지 못하고 돌이나 나무에 붙어있는 미세마음도 있습니다. 또 윤회는 인간세의 윤회만 있는 것이 아니라 6도(六道, ṣaḍ-gati)윤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천계(天界)에 태어난 마음은 수천년을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정한 개수의 마음만 윤회한다는 이론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계산능력으로 다 헤아릴 수 없는 세계입니다.”
“참 자세히도 대답을 준비해놓으셨군요. 6도윤회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왜 윤회에는 꼭 동물만을 집어넣었습니까? 식물로는 윤회를 하지 않습니까? 식물도 정교한 생명체가 아닙니까?”
“윤회는 마음을 기준으로 한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식물에는 의식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윤회의 자리에서 제외시킨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과학에서는 식물도 저급하지만 훌륭한 의식적 행동을 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마음의 영역이 식물에까지 넓혀질 수 있다면 당연히 윤회의 영역도 식물까지 포괄할 수 있게 될 지도 모르지요.”
▲ 카필라성의 왕자 싯달타는 보습에 버혀지는 지렁이의 아픔에 몸서리쳤다. 자전거 여행 중 바퀴를 막아선 사마귀. 우린 다른 자전거에 깔릴까봐 길 옆으로 날려주었다.
근대적 인간, 합리성, 불교
나는 몇년 전에 읽은 애튼보로의 『식물의 사생활』이라는 책이 생각났다【David Attenborough, The Private Life of Plants, Princeton :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5. 과학세대 옮김, 『식물의 사생활』, 서울 : 까치, 1995.】. 식물의 행태에 관한 수준높은 보고서였다. 그런데 나는 더 이상 윤회문제로 머뭇거릴 수가 없었다. 오늘 나와 달라이라마의 예정된 시간은 매우 제한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달라이라마의 대답은 매우 명료했다. 그것은 이미 오랜 논전을 거쳐 성숙된 정연한 이론체계일 것이다. 이제 나는 감잡기 어려운 형이상학의 세계로부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형이하학의 세계로의 착륙을 시도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었다.
“이것은 좀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좀 더 구체적인 현실문제에 관해 몇 말씀만 여쭙고 싶습니다.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근대사회로 이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티벹도 아무리 불교문화 전통 속의 사회이지만 보편적인 근대사회로 이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근대사회의 핵심은 근대적 인간(Modern Man)이며, 근대적 인간의 핵심은 합리성(Rationality)이며, 합리성의 핵심은 이성(Reason)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성적 사회의 건설 그 자체가 서구에 있어서조차도 하나의 위기상황에 봉착해 있습니다. 오늘날 이성이라는 것 자체가 과거처럼 인간이 그 실현에 참여해야할 목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임의적으로 설정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적합성을 따지는 형식적ㆍ기술적 ‘도구’(Instrumental Reason)로 전락해버렸다는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의 비판이론(Critical Theory)으로부터 시작하여【Max Horkheimer and Theodor W. Adorno, Dialectic of Enlightenment, New York : Seabury, 1972. Max Horkheimer, Critical Theory, New York : Seabury, 1972. Max Horkheimer, Eclipse of Reason, New York : Seabury, 1974.】 이성 그 자체가 제기하는 많은 문제들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버마스(Jürgen Habermmas, 1929~)같은 사상가는 이성 그 자체를 해체시키는 것 보다는 이성의 다변화로 인해 나타나는 생활세계 속에서 새롭게 소통의 장을 건설함으로써 근대가 진행되면서 나타나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보자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근대사회 그 자체가 하나의 미완성의 프로젝트라는 것이지요【Jürgen Habermas, Theory and Practice, Boston : Beacon, 1973. Jürgen Habermas, Knowledge and Human Interests, Boston : Beacon, 1971. Habermas and the Unfinished Project of Modernity, ed. by Maurizio Passerin d'Entrèves and Seyla Benhabib, Cambridge : the MIT Press, 1997.】.”
“저는 말씀하시는 그런 문제에 관한 서양학계의 구체적 논의의 맥락은 잘 모릅니다. 그러나 합리성(Rationality)의 문제는 비단 서양 근대사회의 특수담론이 아니라 인류사의 보편적 과제상황이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도 합리적 인간의 과제는 영원히 다각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문제이며, 근대라고 하는 산업사회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성에 관한 졸렬한 논의의 대부분이 이성을 초월적 신에 대하여 대자적으로(antithetically) 설정하는 데서 유래되는 것입니다. 붓다는 이미 이천오백년전에 신을 부정했습니다. 그 이상의 강력한 합리성의 예시가 어디 있겠습니까? 불교는 어떠한 경우에도 합리성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서양은 이성이라는 것을 신에 대항하는 것으로 생각했고, 자연을 지배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성은 도구화되어 버리고만 것입니다. 그러나 불교에서 말하는 이성은 신을 비실체화시켰으며 자연을 나의 존재내부로 끌어들였으며 그 모든 것을 무분별의 자비로 감쌌던 것입니다. 그리고 불교는 나의 주관적 정신의 프로젝션(투사)으로서의 대상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서양식의 관념론은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나가르쥬나도 그러한 유식론의 관념성을 철저히 비판했습니다. 이성이 알아야 할 것은 사실이며 현실이며 여여(如如, tathatā)의 궁극적 실상입니다. 그래서 붓다는 자기의 제자들에게 내 말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에게 항상 자신의 이성과 논리를 따라 검증해보고 또 검증해볼 것을 권유했습니다. 이러한 자유로운 탐색과 논의와 컴뮤니케이션, 이런 개방적 마음이 바로 날란다대학(Nālandā University, 기원 후부터 서서히 형성되어 4세기~7세기경에 눈부시게 발전, 13세기 초에 무슬림침공으로 쇠락한 거대한 불교대학, 라즈기르의 북쪽 11km에 위치)의 전통이었습니다. 따라서 불교는 어떠한 도그마도 검증없이 받아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붓다가 신을 거부했다는 것, 그것부터가 강력한 합리성의 전통이라는 말씀은 정말 서구인들이 깊게 깨우쳐야 할 명언 같습니다. 서양의 가장 큰 문제는 이성이 제기한 문제들을 논의하는 데 있어서도 너무 난해한 자기개념들의 울타리에 갇혀 담론을 일삼는다는 것입니다. 프랑크후르트학파의 논의를 일별해 보아도 아무 내용도 없는 몇마디 이야기를 가지고 그렇게 어렵게 논의하기 때문에 또 다시 그러한 담론이 사회의 생활세계로부터 격절되어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소기하는 문제를 보편적으로 인식시키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시 실천없는 수의 이론적 마스타베이션을 위한 이론으로만 전락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서양의 이성과 불교의 이성
나의 이야기를 바톤받아 달라이라마는 이성에 관하여 매우 중요한 언급을 하였다.
“이성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는 죄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성에 관한 모든 논의는 그 논의가 되고 있는 맥락이라는 어떤 삶의 장을 떠나서 이야기될 수가 없습니다. 이성은 절대적으로 논의되어서는 아니되며 반드시 그것은 어떤 필드(Field) 속에서의 이성에 관한 논의로 규정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이성 자체가 천수관음처럼 무한히 다른 모습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서양에서는 이성을 너무 수학적인 것으로만 생각했으며, 그리고 그것이 적용되는 대상을 지나치게 물리적 세계에 한정시켰습니다. 그러니까 계산이 가능하고 진ㆍ위의 분별이 정확한 그런 물리적 세계만을 이성의 영역으로 설정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수학적ㆍ연역적 사유에 의하여 개발한 물리적 세계의 변혁은 참으로 놀라울 만한 문명의 성과를 이룩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이성 자체가 매우 폭력적이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인간을 소외시키고 인간속에 내재하는 자연을 소외시켰으며 인간과 신의 긴장감을 대적적으로 유지시켰습니다.
서양에서 말하는 이성의 가장 큰 문제는 마음의 계산적 기능을 말하는 주관적 이성(Subjective Reason)이든지, 전 우주를 지배하는 원리로서의 객관적 이성(Objective Reason)이든지 모두 실체화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실체화된 이성의 역사는 계속 다른 실체와 대적하거나 대치되거나 할 뿐이라는 것이죠. 그런 방식의 이성의 이해는 끊임없는 대립과 기만과 극복, 이런 투쟁의 자취만을 남깁니다. 그러나 불교에서 말하는 이성은 어떠한 경우에도 실체화될 수 없으며, 그것은 궁극적으로 마음에 관한 논의입니다. 마음은 식(識)이며, 식은 인간의 의식작용의 총체적 측면들을 포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성도 인간의 마음의 다른 기능과의 단절 속에서 논의될 수는 없습니다. 이성 자체가 감정이나 본능, 신체적 단련이나 질서의 감각, 그리고 윤리적 가치등의 복합적 측면을 포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의 실체로서가 아니라 주관ㆍ객관을 통일하는 장의 끊임없는 관계로서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한편으로 불교에 있어서의 이성적 탐색은 반드시 자비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성적 깨달음의 궁극에는 모든 것은 결국 연기적으로 관계되어 있는 존재며 실체성을 가질 수 없다고 하는 공의 체험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러한 공의 체험은 이성적 자각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 이성적 자각의 절대적 가치가 따로 보장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자비의 실천입니다. 즉 이성이란 연역적인 사유 영역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곧 감정의 세계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인간이라는 존재에 있어서 이성과 감정을 양분시킬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이성적 깨달음을 얻는다고 하는 것은 바로 무한한 이타(infinite altruism)의 자비행의 실천을 위한 것입니다. 자비야말로 불교의 최상의 과제인 것입니다. 서양의 이성주의나 과학주의는 바로 이러한 자비의 가치를 배제시켰던 것입니다. 과학적 법칙을 왜 발견합니까? 그것은 궁극적으로 자비를 실현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종교인의 호소나 독단이 아닙니다.
과학 그 자체가 이미 가치를 배제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 가치의 본질은 보살의 정신이 구현하려는 바와 같이, 모든 사람이 같이 공영하고 같이 구원을 얻는 사회를 실현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얄팍한 의무감이나 규범적 도덕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무아의 지혜에서 스스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허망한 자아의 주체성이 상실되고 진실한 실상으로 전환되는 것, 그 자체가 이미 반야의 실천인 것입니다. 불교의 이성은 반야에 포괄되는 것이며 반야는 실천이며 실천은 곧 행위입니다. 이성적 깨달음이 곧 자비의 행(行)이지요.”
나는 현대사회적 주제를 불교이론과 관련시켜 자신있게 말하는 그의 정연한 논리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저는 지금 이 자리에서 성하의 말씀을 들으면서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정말 성하께서 말씀하시는 이성에 대한 논의가 보다 본질적으로 서양의 사회과학을 논의하는 사람들에게 이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자기들의 레토릭의 편견을 떠나 성하께서 말씀하시는 진리의 단순한 논리뿐만 아니라 거기에 묻어있는 문화적ㆍ심미적ㆍ윤리적 분위기랄까, 냄새 같은 것까지도 좀 깊게 이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누가 보든지 가장 이성적인 깨달음을 많이 얻은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분명히 매우 강렬한 이성의 감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순간순간 매우 파괴적인 감정의 노예가 되어 버리고, 이성적으로 이래서는 아니되겠다는 감정의 행위 속으로 저를 휘몰아 버리곤 합니다. 참 가련한 존재이구나 하고 나 자신을 관조하게 될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나를 짓밟으려 하는 자들을 편안히 용서하지 못하고…”
이 때 달라이라마는 지긋이 나를 쳐다 보다가 내 손을 따스히 잡았다.
“도올선생님! 인간이라는 게 본시 그렇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은 너무도 거대한 우주입니다. 너무도 복합적이지요. 저도 어느날에는 무한한 확신이 들어서 매우 야심적인 인간이 됩니다. 그러다가 다음날에는 다른 생각이 들면서 풀이 죽곤합니다. 그러면 매우 겸손해지고 매우 부드러워집니다. 이런 감정의 기복이 저에게도 있습니다. 힘내십시요! 한국사람들은 무엇이든 잘 해내는 패기(覇氣)로 유명한 민족이 아닙니까?”
그는 또 쾌활하게 웃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나는 따라 웃지를 못했다. 그의 그러한 인간적 태도가 나를 너무도 감동시켰기 때문이었다
나는 중이요
나는 사실 그에게 묻고 싶은 불교학의 전문적 주제들이 너무도 많았다. 나는 일평생 ‘불여구지호학야’(不如丘之好學也)라는 공자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살았다. 호학(好學)이란 끊임없이 배우는 것이다. 끊임없이 배우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런데 배우기를 좋아한다 하는 사람일수록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다. 그래서 독단에 갇혀 버린다. 사실 공자가 말하는 호학도 자기를 비울 줄 아는 마음의 공부가 없으면 이루어질 수가 없다. 자기를 비우는 마음의 공부가 곧 공의 지혜다. 내가 생각하기엔 공자도 그러한 공의 지혜를 터득한 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작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이십일세기에 현실적으로 존속하고 있는 왕입니다. 왕 노릇하기가 좋습니까? 싫습니까? 어떠하신지 개인적 소견을 듣고 싶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대화의 벽두에서 비슷한 얘기를 했습니다. 달라이라마는 하나의 제도일 뿐이라고요. 왕이니 달라이라마니 세계 지도자니 하는 것들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것(man-made)입니다. 그것은 모두 세속적인 명칭입니다. 티벹의 국민들이 내가 달라이라마라는 제도적 사실을 받아들이면 나는 달라이라마이고 그런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게되면 나는 달라이라마가 아닙니다. 티벹국민들은 16세기 이전에는 달라이라마가 없이도 아주 잘 살았습니다【달라이라마라는 제도는 실제적으로 제3대 달라이라마 소남갸초(bSod nams rgya mtsho, 1543~1588)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제1대와 제2대는 제3대로부터 추증된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사람의 여하에 따라서 기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도 나는 법복을 입고 보리수 밑에 앉아 제식을 행하였습니다. 고요하게 앉아 명상을 하면서 나에게 다가온 느낌은 이것이 나의 운명이구나 하는 양심의 속삭임 같은 것이었습니다. 나의 운명은 내가 승려(monk)라는 사실, 그것 하나입니다. 내가 승려라는 사실은 누구도 변경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승려의 계율을 받았고 그 계율을 지키고 있는 한에 있어서는 내가 승려라는 사실을 누구도 나로부터 뺏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중국정부는 나를 비난하여, 분열주의자(splitist), 봉건주의자(feudalist), 거짓말쟁이(Big Lier), 도둑놈(thief), 살인자(murderer), 겁탈자(rapist), 중옷을 뒤집어 쓴 늑대(the wolf in monk's robe)라는 말을 서슴치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도 다 인간이 만든 말일 뿐입니다. 내가 승려라는 사실을 조금도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들 자신의 멘탈 프로젝션(mental projection)일 뿐입니다. 나를 누가 신이라 부르는, 생불이라 부르든, 관세음보살이라 부르든지 그러한 것은 모두 그들 자신의 멘탈 프로젝션일 뿐입니다. 나는 여전히 도올선생님과 같은 단순한 인간입니다. 그리고 나는 중입니다. 그 이외의 어떠한 것도 아닙니다. 이것만이 진정한 나의 운명입니다.”
여기 어찌 나의 사족을 첨가하리오? 또박 또박 공들여 말씀하시는 성하의 어조는 너무도 소박하고 진실했다. 나는 마지막 한 질문을 던졌다.
“성하께서는 어려서부터 어려운 불경공부를 하셨고 많은 요가ㆍ밀교수행을 하셨고 또 세계를 다니시면서 폭넓은 지식을 흡수하셨습니다. 달라이라마 당신은 분명히 우리시대의 훌륭한 사상가이며 정신적 지도자입니다. 그런데 단 한가지 제가 정말 인간적으로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해서 좋을지 모르겠는데, 정말 너무 어리석은 질문 같습니다만, 정말 성하의 내면 속 깊은 정직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성하! 당신은 정말 깨달으셨습니까? 정말 깨달으셨다면 그것을 저에게 전달해 주실 수 있습니까?”
나는 떨리는 가슴으로 잔뜩 긴장 속에서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지금 내 몸은 예순하고도 일곱해가 된 몸입니다. 그런데 나의 정신, 나의 생각은 항상 맑고 깨끗합니다. 저는 자라나면서 어느 순간엔가 공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갑자기 세계가 넓어지더군요. 뭔가 이 우주와 인생에 대해 조금 알 듯했습니다. 그러면서 시야가 넓어지고, 공이라는 진리는 내가 살아가는 데 매우 유용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물 전체를 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자비를 깨달았습니다. 깨달음을 물으신다면, 이 공과 자비를 통해 무엇인가 조금 이 우주와 인생에 대해 통찰을 얻었다는 것, 그런 것을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그의 답변은 내가 기대한 모든 언어를 초월한 매우 진솔한 한 인간의 이야기였다. 이때 나의 목에는 카타가 걸렸다. 나는 어떠한 종교적 제도와도 타협하고 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류에 대한 자비감의 동포애적 표현으로서 나는 내목에 걸리는 카타를 감사히 받아들였다.
드디어 우리는 기나긴 대화의 자리를 털었다. 궁의 널찍한 홀을 같이 걸어나올 때 달라이라마는 나를 쳐다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음에는 북경에서 만납시다!”
순간 왜 북경에서 만나자고 하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나는 의아스럽게 그를 쳐다보았다. 내가 중국통이라는 것을 배려했음일까? 혹은 서울에서 북경이 가깝기 때문이었을까? 혹은 세계가 하나로 통하는 티벹의 주권이 확립될 수 있다는 신념을 표방하는 것일까? 계속 그를 의아스럽게 쳐다보자 달라이라마는 좀 당황한 듯 어조를 바꾸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라사에서?”
나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힘주어 말했다.
“포탈라에서 만나죠!”
나의 발자국 소리는 그에게서 멀어져 갔다. 나는 뒤돌아보질 않았다. 찬란한 정오의 햇살 속에 보드가야 대탑이 빛나고 있었다. 인도는 나에게 있어서 끊임없는 미로였다. 인도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하나의 대륙이 아니었다. 그것은 끝이 없는 나의 삶의 미로였던 것이다. 인도로 가는 길은 깨달음을 향해 가는 나의 삶의 여정이었다.
이 글은 2002년 5월 7일 탈고 되었습니다.
감사의 말씀
이 책이 완성되기까지 나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얻었다. 내가 도움을 청한 모든 사람들이 헌신적인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먼저 나의 인도여행의 모든 여정을 기획해주고 인도의 유적에 관한 정보와 자료를 제공해준 이춘호군에게 감사한다. 도올서원 제1림 재생이며 현재 델리대학 인도미술사과정에서 박사공부를 하고 있다. 탁월한 언어능력으로 매우 소상한 정보를 제공해주었다.
그리고 나의 인도여행을 도와준 메타(Mr. Bharat Mehta)와 그의 가족에게 감사한다. 뭄바이 베이스로 다이아몬드무역에 종사하는 가문의 사람인데 원광대학교 재학시절에 우연히 이리에서 알게되어 훌륭한 우정이 지속되었다. 아주 독실한 자이나교도인데 자이나교의 현실적 종교관행에 관하여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대한항공(Korean Air)의 조양호회장님과 나의 여행을 잘 보살펴 준 모든 대한항공직원께 감사한다. 대한항공을 위하여 아주 사소한 조언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보답으로 나의 여행티켓이 제공되었던 것이다. 대한항공이 우리민족의 국위를 선양하는 훌륭한 기업으로 계속 발전하기를 빈다.
그리고 주한인도대사 산토쉬 꾸마르씨(Mr. Santosh Kumar)에게 감사한다. 여행전 인도문명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많은 정보를 제공하여 주었다.
나는 이 책을 준비하고 집필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한 인간의 정보수집능력은 한계가 있는 것이다. 각 분야에 정통한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서 그 방면으로 천착해 들어갈 수 있는 생각의 실마리를 얻는 것은 매우 중요한 학문의 방법이다.
우선 나는 원시불교에 관하여 가산불교문화연구원의 현원(玄元)스님의 지대한 도움을 얻었다. 내가 필요로 하는, 원시불교에 관한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들을 아낌없이 내어주었다. 그리고 연구의 방향도 친절히 지도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우리시대에 가산(伽山) 지관(智冠)스님과 같은 큰 스승님을 모시고 살 수 있다는 것을 무상의 인연으로 생각한다. 궁금한 것이 있어 문의할 때마다 빙그레 웃으시면서 장경을 펼쳐가며 소상히 가르쳐주셨다. 가산불교문화연구원에서 나오고 있는 가산불교대사림(伽山佛敎大辭林)은 한국불교의 정맥(正脈)이다. 이 사전이 완성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지관스님께서 건강하시기만을 빈다.
팔리어장경에 관한 정보는 주로 고익진선생님의 제자인 최봉수 선생으로부터 습득하였다. 정확한 팔리어 원전의 지식위에서 매우 명료한 해석을 나에게 제공해주었다. 시도 때도 없이 궁금한 것이 있을 때마다 전화로 문의해도 한번도 싫어하는 내색이 없이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하여 대답하여 주었다. 그 호학의 열정을 격려한다.
그리고 밀교에 관하여 나는 두 분의 도움을 입었다. 일본 밀교에 관하여는 허일범선생님과 토론의 기회를 가졌다. 들어가기 어려운 밀교의 세계를 자신의 체험을 통하여 매우 정직하게 펼쳐주었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티벹밀교에 관하여는 주민황선생의 도움을 크게 입었다. 주민황선생은 티벹불교의 각방면에 정통한 지식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이 깊은 수련의 체험이 있기때문에 내가 궁금하게 생각했던 많은 미묘한 문제들을 아주 명료하게 설명해주었다. 서양철학의 단단한 배경이 있어서 그런지 사고가 매우 명료하고 애매한 구석이 없었다.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티벹불교 전반의 이해에 관하여서는 한국에 체류중인 티벹학승 쵸펠(Chophel)스님의 도움을 얻었다. 쵸펠스님은 힌디어, 티벹어, 한국어, 영어가 유창한 학승으로서 쫑카파의 사상에 정통한 사람이다. 그와의 대화, 그의 저술을 통하여 나는 티벹불교의 정수에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슬람과 중앙아시아의 역사에 관하여 정수일선생님과 깊은 토론의 기회를 가졌다. 정선생님을 통하여 얻은 체험적 정보는 이슬람문화를 근원적으로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었다. 세계문명교류사에 천착하고 계신 정수일선생님의 정신세계에 이 자리를 빌어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동국대학교 역경원에서 나온 한글대장경에 관한 나의 감사를 이 자리를 빌어 표시하고자 한다. 내가 아무리 한문의 대가라 할지라도 한문원전을 읽는다고 하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인 과정이고, 정보습득의 정확성이 오히려 보장되지 않을 때가 많다. 타인이 일단 번역해놓은 것을 놓고 반추적으로 원전을 들여다보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인 방법이다. 한글은 쉽게 읽을 수 있어 좋다. 동국대학교 역경원에서 나온 한글대장경은 해인사 고려대장경을 기준으로 그 종(種)과 판본을 선택한 것이며, 318책에 이르고 있다. 1965년부터 출간이 시작되어 2001년 4월에 완간되었다. 물론 한글대장경판의 번역이 불비한 경우도 많다. 그러나 나는 한글대장경의 존재로 인해 너무도 소중한 나의 시간들을 절약할 수 있었다. 동국대학교 역경원의 번역작업은 20세기 한국불교의 위대한 역사로서 기념되어야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한글대장경을 사볼 것을 권유한다. 대장경을 일단 우리말로 읽어볼 수 있다는 것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기쁨이다. 그리고 318책이래야 큰 돈이 아니다. 불자들이 진정으로 보시를 하고자 한다면 이런 책 한질을 사서 자신의 집 벽을 장식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하면 두고두고 후손들이 그 복업을 받을 것이다.
끝으로 티벹문화와 관련된 경이로운 사실을 여기 하나 소개하려한다. 1949년 중공이 티벹에 지배의 마수를 뻗치기 시작한 이래 너무도 참혹한 사건 중의 하나는 종교를 인민의 아편으로 규정하는 공산주의 이념아래 6천여 개에 이르는 유서깊은 티벹사원들이 훼멸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원이 훼멸되는 과정에서 많은 고미술품들이 파괴되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졌다. 그리고 망명하는 티벹인 자신들과 또는 약탈하는 중국인들에 의하여 티벹의 유서 깊은 문화재들이 세계로 반출되기 시작했다. 이 반출된 작품들 중 수준높은 고미술품들은 이미 5ㆍ60년대 구미수집가들에 의하여 소장되었다. 그러나 문화혁명의 열기 속에서 더 많은 훼멸과 반출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한국의 수장가 한광호(韓光鎬)씨는 일찍이 기마민족설로 유명한 동경대 학자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 1906~)선생의 권유로(당시 동경고대 오리엔트 미술관 관장) 세계로 흩어지고 있는 티벹 예술의 가치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한광호씨는 주식회사 한국삼공ㆍ서한화학ㆍ한국 베링거 잉겔하임의 회장으로 건실한 기업의 경영자이다. 한광호씨는 1970년대로부터 구미ㆍ중국으로부터 티벹의 탕카ㆍ불상ㆍ불구ㆍ불경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는데 그 수집품이 2,500여 점에 이르고 있다. 1992년 한빛문화재단이 설립되었고 1999년에는 화정박물관이 개설되었는데, 여기에 수장된 작품은 한국ㆍ중국의 고미술을 포함 만여 점에 이르고 있다. 화정박물관의 티벹미술 소장품은 18ㆍ19세기 작품을 위주로 한 것이며 15ㆍ16세기에까지 소급되는 작품을 포함하고 있으나,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 수집품들을 통하여 우리는 티벹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티벹인들의 삶과 예술의 향기를 물씬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우리나라에 소장된 작품을 통하여. 내가 일별한 느낌으로 만다라, 조사도, 여래도, 촉싱, 보살도 등 상당히 정교한 좋은 작품들이 다수 포함되어있다. 그 양과 질에 있어서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보기 힘든 티벹예술의 향연이라 할 것이다. 2001년 일본에서 5개도시 순회전시를 하여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으며 2003년 9월에 대영박물관에서 권위있는 전시회를 개최할 예정으로 준비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그리고 소장품들을 매우 훌륭한 도록으로 만들어 1997년부터 『탕카의 예술』(Art of Thangka from Hahn's Collection)이라는 제목으로 출시하여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는데 현재 3권에 이르고 있다. 시중에서 사볼 수 있다. 인쇄의 질이 양호하고 매 그림마다 상세한 설명이 붙어있어 티벹의 종교와 예술을 이해하는 데는 빼어놓을 수 없는 훌륭한 도록이다. 독자들의 관심을 요망한다. 시대를 앞지른 형안으로 스러져가는 티벹예술의 향기를 이 조선 땅에 모아주신 한빛문화재단 한광호 이사장님께 이 자리를 빌어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티과 한국 양국의 미래에 심원한 영향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경서원의 이규택사장님께 감사드린다. 필요한 서적을 구입하는 데 성심성의껏 나를 도와주셨다.
마지막으로 동경의 자툴 린포체(Zatul Rinpoche)대사에게 감사하며 달라이라마 방한준비위원회의 제현께 격려의 뜻을 보낸다. 스바하.
인용
'고전 > 불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금강경 강해 - 서문 (0) | 2022.06.13 |
---|---|
김용옥 -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목차 (0) | 2022.03.20 |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 대담 1일차, 3. 석굴과 성상주의 (0) | 2022.03.14 |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 대담 1일차, 2. 과학적 불교 (0) | 2022.03.14 |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 대담 1일차, 1. 불교와 기독교 (0) | 2022.0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