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노스틱스와 리터랄리스트의 대립
나는 달라이라마의 날카로운 질문에 좀 충격을 받았다. 그에게 나의 언변은 매우 생소한 것들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장황할 수도 있는 나의 이야기를 매우 진지하게 경청했을 뿐 아니라, 중간에 이해가 안되는 대목이 있으면 반드시 되묻고 이해를 하고서야 넘어갔다. 나의 이야기를 막는 법이 없었으며 나의 이야기가 소기하고자 하는 의미맥락이 완벽하게 드러날 때까지 나로 하여금 이야기를 계속하게 만들었다. 내가 대화의 초장부터 받은 달라이라마의 인상은, 그는 매우 이지적인 사람이었으며, 무한한 지적 호기심의 소유자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방을 홀대하는 자세가 전무했다. 그는 자비와 지혜의 상징이었다. 나는 곧 편안하게 이야기를 계속했다.
“현대사회에 있어서도 어떤 추상적 정신운동이 구체적인 현실적 사례의 모델이 없이도 크게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그노스티시즘의 영적 운동이 예수에 해당되는 어떤 역사적 실체로부터 연유된 것일 수도 있지만, 이때 중요한 것은 그러한 역사적 실체는 당시 로마의 압제 속에서 신음하던 유대인 식민지 사회에서 수없이 존재할 수 있는 사례의 한 계기에 불과한 것이며, 그것의 역사성은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사도바울이나 초대교회인들의 비젼은 그러한 역사성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며, 더 더욱 중요한 것은 예수라는 사건을 역사적으로 해석함으로써 그들의 신앙의 의미를 발견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힌두교도들이 시바와 파르바티, 카마, 강가의 이야기나 비슈누의 일곱번째 화신인 라마의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로서 해석하기 때문에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전기를 만든 사람들은 점점 예수를 신빙성있는 역사적 인물로서 꾸미게 되었고, 또 그러한 예수의 생애를 역사적 사실로서 이해함으로써 그 구속사적 사건 속에서 강력한 신앙의 의미를 발견하려고 한 사람들의 부류가 점차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부류를 프레케와 간디는 리터랄리스트(the Literalists, 직역주의자)라고 부르는데, 결국 초대교회의 역사는 이 영지주의 기독교인과 리터랄리스트 기독교인의 대립과 투쟁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영지주의 신화론자에 대한 리터랄리스트 사실론자들의 승리를 기록한 사건이 바로 콘스탄티누스 대제(Flavius Valerius Constantinus, 280~337)가 주재한 니케아 종교회의(Council of Nicaea, 325년에 열림. 니케아는 현 터키의 이즈니크İznik다)였습니다.
니케아 종교회의의 목적은 매우 단순합니다. 그것은 ‘아리우스 죽이기’ 였습니다. 그것은 알렉산드리아 주교 아리우스(Arius, c. 250~336)로 인하여 동방교회에 야기된 아리아니즘(Arianism)의 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인데, 아리아니즘의 핵심은 예수는 인간일 뿐이며, 따라서 성부ㆍ성자ㆍ성신의 삼위일체는 본질적으로 인정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아리우스의 주장은 외면적으로 보면 매우 역사주의적이고 사실주의적이고 과학적인 주장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실상은 그 정반대입니다. 아리우스의 주장은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규정한 대로 성부와 성자가 하나의 실체(homoousios)라고 한다면, 성자는 인간일 수밖에 없으며, 성자의 성부와의 절대적 동일성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곧 인간이 신이라고 하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통파의 삼위일체론은 실제로 예수에게서 인성을 제거시키려는 것이며 로고스로서의 예수를 격하시키려는 것입니다. 예수는 인간일 수밖에 없다는 아리우스의 주장은 무신론의 주장이 아니라, 오히려 네오플라토니즘(neo-Platonism)적인 신성의 일체감을 표현하는 말이며, 리터랄리스트의 주장보다 훨씬 더 신비주의적이며 기나긴 영지주의 전통을 구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니케아 종교회의는 아리우스가 예수를 인간구원의 능력이 없는 허약한 피조물로 타락시켰다고 몰아쳤고, 이단으로 정죄했습니다. 이로써 리터랄리스트들이 삼위일체론의 정통파가 되었고 로마교회의 주류가 되었으며, 영지주의자들은 하루아침에 이단으로서 철저히 왜곡되기 시작됐고, 모든 문헌으로부터 말살되는 수난을 겪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한국에서는 조선왕조의 말기에 카톨릭교리를 서양에서 들어왔다고 해서 서학이라고 했고, 그 서학은 인간을 옥황상제 밑에 예속시키는 굴종적인 샤마니즘적 종교라고 보았고, 이에 대하여 우리의 본래적인 사상을 표방하는 혁명적인 민중운동으로서 동학이라는 종교가 대립했습니다. 그런데 이 동학은 인간이 하느님께 예속되는 것이 아니며 인간과 하느님은 하나일 수밖에 없다는 인내천(人乃天)사상을 주장했습니다. 사실 우리 동학의 인내천사상은 그노스틱스의 로고스사상과 더 잘 통할지도 모르겠습니다【바울이 말하는 ‘우리 몸 안의 그리스도’와 ‘우리는 하느님을 모시고 있는 시천주(侍天主)의 존재’라고 하는 동학의 사상은 상통되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侍者, 內有神靈, 外有氣化, 一世之人, 各知不移者也. 「論學文」, 『東經大全』.】.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우리나라 동학과 서학의 대결의 정신사적 디프 스트럭쳐가 니케아 종교회의 속에도 똑같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로마교회가 아리우스를 이단으로 몰았습니까?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신앙을 공인하면서【AD 313년 밀란칙령(the Edict of Milan)으로 기독교는 공인되었다.】 아리우스 같은 사상가의 입장을 포용할 수도 있었던 것 아닙니까?”
▲ 동네 서낭당 같은 곳에 모셔진 미니 링감과 요니, 시바의 성기 링감을 그의 충직한 시종 난디(황소)가 무릎끓고 쳐다보고 있고, 시바의 큰아들 가네샤(코끼리)가 같이 지키고 있다. 사람들은 여기 오면 위에 매달려 있는 종을 쳐서 신들을 부른다. 때로 요니의 홈에 우유를 부어 성교의 생생한 느낌을 나타내기도 한다. 정말 코믹한 성소의 모습이었다. 요니는 시바(남성) 속에 내재하는 여성적인 성적 에너지일 수도 있다. 아그라 시장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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