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속에 사는 인도인
우리나라 석굴암의 본존불의 상호에서 감지하는 고요한 적막 속에 살포시 눈썹을 내리감은 영원한 평화의 느낌, 그러한 느낌의 보다 장쾌한 깊이를 엘레판타의 마헤사(위대한 주, the Great Lord)의 모습에서 저는 발견했습니다. 영원한 명상 속에 살포시 내리감은 눈, 육감적인 도툼한 입술, 기다랗게 내려뜨린 귀, 날카로운 눈썹의 선율, 얼굴보다 더 높게 땋아올린 머리카락의 화려한 더미, 찬란한 목걸이 장식, …… 인도의 어느 곳에서 본 조각의 상호보다 이 시바의 얼굴은 뛰어난 세련미와 웅혼한 느낌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카일라사 산에서 파르바티와 성교를 하고 있는 시바를 저주하기 위해서 카일라사 산을 번쩍 들어버릴려고 용솟음 치는 랑카의 마왕 라바나(Ravana)를, 부인을 껴안은 채 가볍게 발꼬락 하나로 지긋이 누르고 앉아있는 여유로운 시바의 모습【라바나(Ravana)는 라마(Rama)의 부인 시타(Sita)를 유괴한, 서사시 『라마야나』의 한 주인공으로도 유명하다. 이 조각은 북쪽입구에서 동쪽면으로 두 번째 남면하고 있는 벽에 조각되어 있다. 가슴 아프게도 파손이 너무 심하여 그 원형을 제대로 알아보기 어려울 지경이다.】 , 아~ 그리고 너무도 짓궂게 바람 피우는 남편 시바를 바람 못피우게 만들게 하기 위하여 파르바티 자신이 시바의 몸 속으로 들어가 창조했다는 시바의 자웅동체의 모습(Shiva Ardhanarishvara)【이 자웅동체(the Androgyne)의 시바의 모습에는 여러가지 신화적 설명이 얽혀 있다. 나는 그 중의 하나의 설만을 취한 것이다. Carmel Berkson, Elephanta ― The Cave of Shiva (Delhi : Motilal Banarsidass Publishers, 1999), pp.34~5.】 , 그리고 파르바티와 주사위노름을 하면서 우주를 희롱하고 있는 시바의 모습(Uma-Mehesvara-murti) 등등, 끊임없이 펼쳐지는 신화의 잔치에 저는 인도사람들에게 신화라는 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 듯했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신화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자웅동체의 한 몸뚱이에 표현된 터질 듯이 볼룩한 왼쪽의 젖가슴과 히프 위로 기다랗게 내려뜨린 슬림한 팔뚝의 보드라운 선율, 그것과 대비되는 오른편의 우직한 남성의 젖통없는 가슴과 난디(Nandi, 시바가 타고 다니는 황소)를 지긋이 누르고 있는 강력한 굽은 팔뚝의 남성적 표현, 너무도 너무도 저의 심미적 감성을 자극하는 명품중의 명품이었습니다.
▲ 영원한 춤꾼 시바(Shiva Nararaja).
시바의 춤은 우주의 창조와 유지와 파괴를 상징한다. 춤추는 시바의 이미지는 아리안 이전의 토속신앙과 관련있다. 춤은 인간을 변화시키며 황홀경으로 인도한다. 춤과 요가는 같은 차원에서 이해되었다. 춤은 불이다. 불은 우리의 아집과 환상과 악업을 다 불살러 버린다. 시바의 춤은 우주의 리듬이며 중심이며 해탈(解脫, mokṣa)이다. 윗사진은 엘레판타의 시바. 머리는 해골과 뱀으로 덮여있으나 얼굴은 평온하다. 파르바티, 인드라, 브라흐마, 비슈누가 지켜보고 있다. 아랫사진은 뉴델리 인도국립 박물관 소장의 12세기 작품.
우리나라의 석굴암은 8세기 중엽의 작품인데 이 엘레판타의 석굴은 그보다 한 두 세기 빠른 6.7세기 찰루캬스 왕조시대(The Chalukyas)의 작품으로 간주되는 것입니다【이 엘레판타섬의 석굴에는 그 건조의 시대성을 추정할 만한 하등의 단서도 남아 있지 않다. 이 지역에 성립했던 찰루캬스 왕조(the Chalukyas, 543~744)시대에 조성된 것인지, 그를 이은 라슈트라쿠타스 왕조(the Rashtrakutas, 752~982)시대 때 완성된 것인지를 확정할 길도 없다. 그러니까 크게 보면 우리나라 석굴암과 동시대의 작품이다. Owen C. Kail, Elephanta, pp.2~3.】.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모든 힌두사원의 석조예술이 바로 대승불교의 불상운동으로부터 자극받고 영향을 받아 생겨났다는 사실입니다. 엘레판타의 석굴만 해도 그 주변의 까네리 불교사원석굴(Kanheri Caves)【까네리사원(Kanheri Caves)은 뭄바이의 북쪽 산제이 간디 국립공원(Sanjay Gandhi National Park) 중심부의 울창한 숲속에 자리잡고 있다. 이 석굴들도 차이띠야(caitya, 法堂)와 비하라로 조성된 것이며, BC 2세기경부터 AD 9세기경까지 소승ㆍ대승ㆍ금강승의 불교승려들이 꾸준히 지켜온 중요한 승려주거집단이다(one of the larger monastic settlements in India). David Collins, Mumbai (Melbourne : Lonely Planet Publications, 1999), p.155.】과 동일한 연계선상에 있습니다.”
“도올선생은 정말 다각적으로 사물을 관찰하시는군요. 미술사방면에서도 탁월한 견식을 가지고 계신 것 같군요.”
▲ 엘로라의 한 석굴 앞에서 시바춤을 추고 있는 여인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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