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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대담 2일차 - 윤회하는 것은 미세마음이다 본문

고전/불경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대담 2일차 - 윤회하는 것은 미세마음이다

건방진방랑자 2022. 3. 2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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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하는 것은 미세마음이다

 

 

그러나 나의 추궁은 집요했다.

 

앞서 말씀드린 영혼의 동일성의 지속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도 도올선생님은 적절한 질문만을 골라 던지시는지 참 놀랍군요. 도올선생께서 지적하신 문제야말로 흔히 불교에 대해서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애매하고 막연하게 생각하기만 해서 오해가 많은 핵심적 주제이지요. 우선 영혼의 동일성의 지속’(the continuation of the identity of soul)이라는 말 자체에 대한 세밀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우리 티벹에서는 윤회의 과정에서 전생의 존재가 확인된 사람들을 뚤꾸(trulku)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화신(化身, nirmāṇa-kāya)의 뜻이지요. 저는 제 전대 13대 달라이라마의 뚤꾸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과연 무슨 뜻인가? 나는 아무런 자유의지도 없는 13대 달라이라마의 지속체인가? 그의 영혼, 그의 의식, 그의 마음의 모든 것이 나에게 고스란히 옮겨져 온 것인가? 저는 결코 동일성의 지속이라는 말을 포기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보통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그러한 동일한 인간의 지속이라는 현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무아의 이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비불교적인 생각입니다.

 

윤회를 하는 것은 우리의 신체가 아니고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조차도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마음이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매우 특수한 마음의 상태인 것입니다. 우선 상식이라는 말을 생각해봅시다. 상식(常識)이란 가장 항상적인, 그러니까 가장 흔한, 가장 보편적인 의식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상식의 마음의 상태에서는 우리의 모든 기관들(organs)이 쉬지않고 온전하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상식적 마음의 차원이라고 합시다. 그러나 우리가 수면을 취할 때는 다른 마음의 차원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우리가 수면을 취하고 있을 때는 누가 칼로 찔러 죽여도 모를 수 있으니까 우리의 안식이나 전5식이 모두 작동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상식의 레벨에서와 같은 기관들이 다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얘기지요. 그러나 잠잘 때도 꿈을 꿀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꿈을 꾸는 의식은 때때로 색깔까지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잘 모르지만 어떤 미묘한 기관이 작동하고 있다는 얘기지요. 그런데 꿈이 전혀 없는 깊은 수면의 상태로 몰입할 수가 있습니다. 이 상태는 마음의 또 다른 차원입니다. 점점 우리의 상식에서 느끼는 의식의 상태가 백지화되어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또 기절이나 졸도하는 상태(faint)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때 호흡이 멈추고 가사상태를 유지할 때 인간에게는 더욱 더 깊은 내면의 마음상태로 내려가겠지요. 이것은 마음의 또 하나의 깊은 차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최후적으로 죽어갈 때, 죽음의 직전의 상태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때는 우리의 맥박이 멈추고 심장의 대순환이 멈춥니다. 그리고 모든 세포에로는 혈액공급이 그칩니다. 그렇게 되면 몇 찰나에 뇌의 기능이 멈추게 되겠지요. 이런 뇌사의 상태를 우리는 임상적으로 죽음이라고 부릅니다. 이때 우리는 이 사람이 죽었다는 표현을 쓰게 됩니다. 그런데 매우 최근에 우리 티벹스님이 돌아가셨는데 일주일 동안 그의 몸이 산몸처럼 프레쉬하게 유지되었습니다. 그리고 작년에는 또 한 스님의 신체가 3주 동안 완전히 산사람처럼 유지되었습니다티벹스님들의 좌탈사례에 관한 이야기는 과장된 기술이 많다. 예를 들면 반년 동안을 꼿꼿이 전혀 썩지 않고 앉아 있었을 뿐 아니라 그 기간 동안에 수염도 자란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 달라이라마의 말씀은 비교적 그런 식의 과장된 표현이 없어 좋았다. 뇌사로부터 그 다음 환생의 기간을 보통 49일로 잡는데 그 기간의 상태를 바르도(Bardo)라고 부른다. 중유(中有), 중음(中陰)이라고 번역된다. 바르도의 여행에 관한 유명한 책이 에반스 벤츠가 편찬한 티벹 死者이다. 밀교수행의 핵심은 살아있는 동안에 이 바르도의 상태를 체험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환생의 기회에 당황치 아니 하고 보다 좋은 조건의 선택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W, Y. Evans-Wentz, The Tibetan Book of the Dead, Varanasi : Pilgrims Publishing, 출판연도 불표시. 이 책은 1927년 옥스퍼드대학 출판부를 통해 처음 소개되었다.. 이것은 뇌의 기능이 멈춤으로써 이승에 속한 마음은 종료되었지만, 어떤 순수하고 미묘한 마음, 즉 미세마음(Subtle Mind)이 그 몸과 아직 더불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미세마음이 그 몸에서 떠나게 되면 구규(九竅)로부터 진액이 흐르고 부패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미세마음은 너무도 미묘한 것이래서 우리 인간이 분별적으로 인지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윤회를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미세마음 (Subtle Mind)이다. 그런 말씀이시군요.”

 

이그잭틀리(Exactly)! 윤회를 하는 것은 미세마음(Subtle Mind)이지, ‘라고 하는 개체(Self)가 통째로 이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미세마음이 새로운 신체와 결합하게 되면 그 마음은 새롭게 자라고 성장합니다. 그러면 그것은 다른 의식의 상태를 가지게 되는 것이지요.”

 

미세마음은 동일하지만 인격체로서는 전혀 다른 개체가 태어난다는 그런 말씀이시군요.”

 

나는 급한 호흡을 가다듬고 계속 말을 이었다.

 

전혀 다른 인격체라고 한다면 미세마음의 동일성을 무엇 때문에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까? 아예 그런 꼬리표를 떼어버려도 좋지 않습니까?”

 

인간이 살아있을 때는 이런 상황은 종종 경험됩니다. 어렸을 때의 나와 지금의 나가 경험의 체계가 너무도 달라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을 때에도 역시 그 마음의 동일성은 승계되고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신병자가 되었다든가, 뇌의 충격을 받아 전혀 다른 인간이 되었다고 한다면 그 마음조차도 전혀 다른 것으로 간주 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미세마음이라는 것 자체가 고정불변의 동일체계가 아니고 찰나찰나 생멸 속에서 계승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미세마음에도 인간의 업장은 묻어가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그러한 카르마의 문제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환생의 윤리적 조건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평소에 아무리 의식적으로 좋은 일을 하고 살았다 할지라도 무엇인가 마음에 꺼림직한 일들을 마음구석에 무의식적으로 숨겨두었다고 한다면, 뇌사와 더불어 상식적 의식은 소멸되어도 그러한 매우 심오한 업장은 바르도상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악업으로 인해 좋은 환생의 길을 선택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중유(中有, antarā-bhava)앞서 말한 바르도(Bardo)의 다른 이름, 중음(中陰)이라고도 번역된다. 사유(死有)와 생유(生有)의 중간으로서의 중유(中有)이다.의 상태에도 아라야식(阿賴耶識, alaya-vijñāna)의 업장은 유지된다는 말인가요?”

 

우리 티벹불교에서는 유식의 표현은 직접 활용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렇게 이해하셔도 대차는 없습니다.”

 

 

 

 

인용

목차

금강경

반야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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