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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굴뚝청소부, 서론 - 철학의 경계 본문

책/철학(哲學)

철학과 굴뚝청소부, 서론 - 철학의 경계

건방진방랑자 2022. 3. 22.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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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경계

 

 

저는 예전에 쓴 책에서 철학은 의심하기에서 출발한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철학이란 이런 방법으로 기존의 지배적인 사고방식, 지배적인 철학과 투쟁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칸트는 철학사는 전장(전쟁터)’이라고 말한 적이 있지요.

 

치고받는 이 투쟁을 통해 철학자들이 얻어내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때까지 지배적이던 철학 밑에서 사고되지 못했던 것, 또는 가려져 보이지 않던 것을 찾아내고 열어젖히는 것입니다. 이로써 이전에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지금의 지배적인 사상 때문에 오히려 보이지 않고 사고되지 않게 된 것을 찾아내고 확보하는 투쟁이 바로 철학인 셈입니다.

 

사실 철학에선 다른 사상가들과 자신이 어떤 점에서 다르며 어떤 점에서 새롭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하면 독자적인 사상가로 남아 있기 힘듭니다. 즉 철학자들은 다른 사상가와의 차이를 통해서만 철학사에서 자기 자리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낼 수 있고 보편성을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보편성이 있으면서도 남과는 뭔가 다른 사상이어야만 철학자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결국 철학은 앞서 있던 것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런데 넘어서는 것에도, 무엇을 어떤 수준에서 넘어서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최소한 세 가지 수준의 넘어서기를 구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당시에 지배적인 어떤 사상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이는 자기 앞의 지배적인 철학과 자신이 제시한 철학 간의 차이를 정립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앞선 사상을 넘어선다고 할 때 최소한의 필요조건인 셈입니다. 기존의 지배적인 사상 안에 머무는 게 아니라, 혹은 기존의 지배적인 사상 안에서 그것을 발전시키는 게 아니라 새로운 사상을 형성해내는 것이라면 최소한 자기의 앞선 시대를 지배하던 사상을 넘어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칸트의 사상이 지배적이던 시대에 새로운 사고영역을 개척하려는 사상은 칸트의 사상을 넘어서야 합니다. 즉 칸트의 것과는 다른 철학으로 자신의 철학을 세우지 않는다면 새로운 사고영역을 열었다고 하기는 힘들겠지요.

 

물론 칸트의 사상을 넘어섰다고 해서 그 사상이 칸트 것보다 나은 것이라거나 발전된 것이라고 평가하기는 곤란합니다. 여기서 넘어선다는 말이 어떤 발전이나 진화를 뜻하는 게 아님을 분명히 합시다(기존의 것에 가려져 안 보이던 새로운 사고영역을 연다는 것이 반드시 발전일 이유는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는지 모릅니다). 예를 들어 헤겔의 사상이 칸트를 넘어섰다고 해서(이건 사실이지요) 반드시 칸트 것보다 발전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측면에선 발전이란 평가도 가능하겠지만, 다른 측면에선 정반대의 평가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과학에서와는 달리 철학에서는 아직도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고대철학자가 살아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 새로운 사상은 하나의 흐름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철학에는 몇몇 철학자나 사상가들의 생각을 묶어주는 흐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대륙의 이성주의니 영국의 경험주의니 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생의 철학이니 실존주의구조주의니 하는 것 역시 마찬가집니다. 새로운 사상은 때론 이같은 의미를 갖는 하나의 흐름을 넘어섭니다. 즉 어떤 흐름을 특징짓는 전반적 사고방식을 넘어서는 것이지요.

 

이처럼 하나의 흐름을 넘어선다는 것은 당연하게도 또 다른 흐름을 만들어냅니다. 예컨대 로크가 데카르트를 넘어선다고 할 때, 이는 단지한 철학자의 사상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사상을 열었다는 의미만 갖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다른 다수의 사상가들을 포괄할 새로운 사조,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냅니다. 과학혁명의 구조로 유명한 토마스 쿤(Thomas Kuhn, 1922~1996)의 용어를 빌면, 일종의 패러다임 변혁으로 비유할 수 있겠지요. 중요한 것은 이런 변혁을 통해 새로운 사고방식에 인간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입니다.

 

이런 넘어서기역시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고 경계선을 만들어내는 것이지만 발전이나 진화 또는 진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과학과는 달리 얼마든지 역전 가능하고, 얼마든지 반전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하나의 시대를 지배하는 특정한 사고방식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성주의니 경험주의니 하는 것들은 모두 다 근대철학으로 묶입니다. 이처럼 개개의 사상뿐만 아니라 흐름들을 하나로 묶는 사고방식이 있을 수 있는 것이고, 철학이 무엇을 넘어선다고 할 때 가장 넓은 차원에선 이런 시대적 사고방식을 넘어서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데카르트가 중세철학을 넘어서 근대라는 새로운 시대를 연 사상을 세웠다고 할 때, 그것은 바로 이런 의미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이런 차원의 넘어서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것은 사실 시대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것이며, 그것이 철학자들의 입을 통해 말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시대의 변화라고 할 수 있는 거대한 변화가 철학자들에게 지각됨으로써 나타납니다. 이런 의미에서 헤겔 말대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질 무렵에야 비로소 날개를 편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철학사를 연구한다는 것은 철학의 역사 안에 그어진 경계선들을 찾아내고, 그 경계선마다에 새겨진 의미를 읽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걸 통해서 우리가 사고할 수 있는 다양한 영역들을 체계적으로 살펴보고, 나아가 자신의 그리고 인간의 사고를 극한’(limit)으로까지 밀어붙여 보는 것입니다. 이래서 위대한 철학자는 알튀세르의 말처럼 극한에서 사고하고 극한을 넘어서려고 감행한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L'Unique tradition matérialiste”, Ligne, n° 18, Janvier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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