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흄 : 근대철학의 극한
과학주의에서 회의주의로
근대철학을 그 극한으로까지 몰고 갔던 사람은 누구보다 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흔하 알다시피 흄의 철학은 ‘회의주의‘로 불려지는데, 대개는 회의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그의 사상에 대한 평가를 일축합니다. 그러나 진리를 추구한 근대철학에서 그러한 회의주의가 나타난 것은 무엇 때문이며, 그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근대철학 전반을 이해하는 데 오히려 매우 역설적인 중요성을 갖습니다.
흄의 출발점은 로크와 비슷합니다. 그 역시 엄격한 과학적 지식을 추구합니다. 그에 따르면 “자연과학의 성과를 빌려 인간학을 구성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는 과학의 일종으로 간주되던 심리학에 기초해서 ‘경험적 인간학’을 구성하려고 합니다. 여기서 경험과 관찰이 일차적 위치를 차지함은 물론입니다. 이런 점에서 흄이 경험주의의 전통에서 출발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 역시 불확실한 것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확실한 과학을 구성해야 한다는 근대적 과학주의를 공유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흄은 여러 가지 관계들을 구분한 다음 그 중 과학이란 이름에 걸맞는 확실한 게 무언가를 찾아나섭니다. 마치 데카르트가 그랬듯이 말입니다. 그에 따르면 철학에는 일곱 가지 관계가 있는데, 이 중 ‘유사관계’ ‘양적 관계’ ‘질적 관계(성질의 등급)’ ‘반대관계’는 확실하지만, ‘동일관계’ ‘시간/공간상의 관계’ ‘인과관계’는 확실하지 않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쌍둥이가 서로 닮았다는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동일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는 확실하게 확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중 특히 문제가 되는 게 인과관계입니다. 인과관계는 예컨대 손을 비비면 따뜻해진다든지, 나무를 비벼대면 열이 나고 이를 오래 지속하면 연기가 나며 불이 붙는다든지, 물건을 놓치면 떨어진다든지 하는 것처럼 두 개의 현상이 연속해서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이때 앞의 것을 원인, 뒤의 것을 결과라고 하지요.
그러나 홈은 인과관계란 ‘연접된,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붙어 있는 두 인상(현상)의 관계에 대한 습관적인 판단’이라고 합니다. 예컨대 나무를 비비면 불이 붙는다는 것은 그런 경우를 자주 보다보니 생긴 습관이라는 겁니다. 그렇지만 그게 언제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영화 「불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이 배운 대로 나무를 맞대 세워 비벼대지만 불은 붙지 않습니다. 그를 따라온 여인이 비비자 불은 다시 붙지만, 어쨌거나 나무를 비비면 불이 붙는다는 건 언제나 반드시 타당한 결론은 아니라는 겁니다. 다만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서, 불이 붙을 것이란 판단을 하는 습관이 형성되어 있을 뿐이라는 거지요.
따라서 그는 확실한 네 가지 관계는 과학에 합당하지만, 인과관계를 비롯한 나머지 세 가지는 과학을 구성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알다시피 모든 법칙은 인과관계에 의해 표시됩니다. 인과성 없이는 어떠한 법칙도 생각할 수 없으며, 법칙 없이는 어떠한 과학도 생각할 수 없습니다. 결국 그는 애초의 뜻과는 반대로 과학의 불가능성을, 진리의 불가능성을 입증하고 만 것입니다. 이로써 근대철학의 목표는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이란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회의주의’란 이러한 도달 불가능성을 표현하는 말인 셈입니다.
▲ 모네, 루앙 대성당 연작
그리스의 전통적인 광학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사물을 보는 것은 눈에서 시선이 나가 그것이 대상과 접촉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한다. 다만 데모크리토스나 루크레티우스는 반대로 사물의 형상이 우리 눈에 들어오는 것을 ‘본다’고 보았다. 19세기 후반에 물리학자 헬름홀츠는 본다는 것은 빛의 입자가 사물에 반사되어 눈의 망막에 상을 그리는 것이라고 했다.
인상주의자들은 헬름홀츠의 이 이론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그 이론에 따라 과학적으로 사물을 재현하려고 했던 이들은, 자신의 눈에 들어오는 빛이 어떤가에 따라 사물은 다르게 보이며, 따라서 다르게 그려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아침에 본 성당과 한낮에 본 성당, 저녁의 어스름한 빛에 본 성당은 모두 다른 형상으로 그려져야 했다. 그래서 모네(Claude Monet)는 루앙 대성당을 이렇게 각기 다른 모습으로 그렸다. 그가 연작들을 많이 남긴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사물의 인상은 빛의 속도에 따라 달라지는데, 그림을 그리는 속도는 아무리 빨라도 그럴 수가 없었다. 인상주의의 딜레마. 그렇다면 이들이 그린 그림은 과연 과학적인 재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 그림은 꼭 그렇게 과학적인 재현이어야 하는 것일까?
버클리는 “존재하는 것은 지각된 것이다”라고 했고, 흄 또한 존재하는 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인상’들일 뿐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모든 존재하는 것은 다른 ‘인상’을 가질 때마다 다르게 존재하는 것이다. 세상은 오직 그렇게 우리가 갖고 있는 표상으로서만 존재할 뿐이며, 표상 뒤에 어떤 사물이, 불변의 대상이 있다고 보는 것은 습관에 의한 착각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영국 경험주의자들의 철학은 후세의 인상주의 화가들과 매우 유사한 것처럼 보인다. ‘철학적 인상주의’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이는 ‘대상’이니 ‘실체’니 하는 불확실한 것을 철학에서 내몰기 위해 오직 확실한 것만으로 철학을 수립하려는 생각에서 시작한 것이었는데, 결론은 오직 불확실하고 일시적인 인상들밖에 없다는 것으로 끝이 나고 만다. 인상주의의 딜레마가 이미 철학적 아이러니로 예견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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