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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한글역주, 양화 제십칠 - 3. 상지(上知)자와 하우(下愚)자는 변하질 않는다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양화 제십칠 - 3. 상지(上知)자와 하우(下愚)자는 변하질 않는다

건방진방랑자 2022. 12. 14.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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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상지(上知)자와 하우(下愚)자는 변하질 않는다

 

 

17-3.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오직 상지(上知)와 하우(下愚)는 쉽게 움직여지지 않는다.”
17-3. 子曰: “唯上知與下愚不移.”

 

이 장도 양천여 년 동안 온갖 속유(俗儒)들이 벼라별 추저분한 오석(誤釋)을 다 달아놓고, 지저분한 부연설명을 펼쳐놓은 장으로서 유명하다. 그 천만 언설이 다 무의미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 장의 의미는 이 장이 말하고 있는 언어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의 배면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고주는 23장을 합하여 한 장으로 하고 있는데 내 생각으로도 23장은 연속된 하나의 파편으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그 해석도 23장을 통관하는 논리구조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앞서 내가 16-9주해할 때, 나는 생이지지(生而知之)’를 불필요한 말이라고 했지만, 문제는 자꾸만 생지에 특별한 고정적ㆍ실체적 의미를 부여하려 는 데에 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상지(上知)와 하우(下愚)의 고정적 인간종 자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실체론적 사유가 문제인 것이다. 인간에게 불변의 절대악과 절대선이 있는 것처럼, 불변의 악인(惡人)과 선인(善人)이 있는 것처럼 본 장을 결정론적으로(deterministically), 숙명론적으로(fatalistically)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장의 메시지는 그러한 본질론적 규정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매우 소박한 경험명제일 뿐이다. ‘불이(不移)’도 절대불변이라는 규정이 아니 라, 단지 쉽게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소박한 상식적 기술일 뿐이다. 즉 교육시키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사람을 교육시키다보면 확실히 교육시키기 어려운 소수의 대상이 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여기 명제의 위대성은 상지(上知)ㆍ하우(下愚)에 대한 규정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지ㆍ하우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쉽게 움직여진다, 즉 쉽게 교육된다, 쉽게 강화된다, 쉽게 학습하여 향상된다는 뜻이다. 앞에서 성상근(性相近), 습상원(習相遠)’이라고 한 명제를 다시 반복하여 천명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렵게 학습된다
Hard to inculcate
상지(上知)  
  대중(大衆) 쉽게 학습된다
Easy to inculcate
  하우(下愚) 어렵게 학습된다
Hard to inculcate

 

결국 상지와 하우는 불이(不移)라는 측면에서는 같은 것이다. 상지가 하우보다 나을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모든 보편주의(universalism)는 대중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다. 수학적 보편은 인간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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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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