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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한글역주, 양화 제십칠 - 5. 등용이 된다면 동쪽의 주나라로 만들 수 있을 텐데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양화 제십칠 - 5. 등용이 된다면 동쪽의 주나라로 만들 수 있을 텐데

건방진방랑자 2022. 12. 14.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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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등용이 된다면 동쪽의 주나라로 만들 수 있을 텐데

 

 

17-5. 계씨의 가신이며 양호의 동조세력이었던 공산불요(公山弗擾)가 비읍(費邑)을 거점으로 또 모반(謀反)하였다. 그는 정식으로 공자를 초빙하였다. 그러자 공자는 공산불요에게 가담하려고 하였다.
17-5. 公山弗擾以費畔, , 子欲往.
 
이때 자로(子路)가 되게 기분나뻐 하면서 말하였다: “가실 곳이 없으면 그만두실 것이지, 하필이면 공산불요 그 녀석에게 가신단 말씀입니까?”
子路不說, : “末之也已, 何必公山氏之之也.”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대저 나를 정식으로 초빙하는 자가 어찌 하릴없이 날 데려가겠느뇨? 누구라도 나를 써주는 자가 있다면 나는 동주(東周)를 새로 창조하리라!”
子曰: “夫召我者而豈徒哉? 如有用我者, 吾其爲東周乎.”

 

공산불요(公山弗擾)는 공산(公山)이 성이고 불요(弗擾)가 이름이다. 이 름을 불뉴(不狃)라고도 쓴다. ()를 자설(子洩)이라고 한다. 노나라의 대부이며 계씨의 가신(家臣)이었고, 비읍(費邑)의 읍재(邑宰)였으며, 양호의 동조세력이었다. 양호가 실각하고 망명하자 그를 뒤이어 반란을 일으킨다. 정공 8, 공자 50세 때의 사건이었다. 공자가 벼슬하기 직전의 사건이므로, 당시 공자는 노나라에서 누구든지 정치적으로 탐내는 사람이 되어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본 장의 기사에 나타나있는 공자의 태도를 의아하게만 읽어왔다. 그리고 자로(子路)의 지적이 백번 옳은 것으로만 해석해왔다. 물론 자로의 공자사랑은 도덕적으로도 정당한 것이고, 공자 생애에 없어서는 아니 될 소중한 우의였고 보호막이었다.

 

자로불열(子路不說)’논어에 딱 두 번 나오는데, 여기와 공자가 남자(南子)를 만났을 때였다(6-26).

 

아니, 갈 데 없다고 그 형편없는 자식한테 가오?”

 

이것이 진짜 자로 말투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에 대답하는 공자의 어투는 너무도 진지하다. 왜 그럴까? 우리는 여태까지 이런 기사를 읽을 때 항상 지배자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오류를 범해왔던 것이다. 왜 공산불뉴가 반역도로서만 인식되어야 하는가? 그가 과연 나쁜놈인가? 일례를 들면 지금은 우리가 역사기술을 할 때 동학란(東學亂)’이라는 말을 쓰지는 않는다. 그러나 황매천(梅泉 黃玹, 1855~1910) 같은 올곧은 지사도 철저히 동학혁명을 폭도들의 비란(匪亂)’으로만 규정했던 것이다. 대원군이 만약 전봉준과 정말 구체적 음모를 꾀했다면 오늘날 대원군의 평가는 어떠할까? 과연 그를 비적으로 휘몰아칠 것인가?

 

논어의 편집자들의 위대성은 바로 이러한 우리의 편견을 거부하고 다양한 담론을 있는 그대로 제시했다는 데 있다. 공산불뉴는 분명 정식으로 공자의 재능을 평가하였고 정식으로 국가대사에의 참여를 요청했던 것이다. 이러한 요청에 공자가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또 숙고했다는 것은 공자의 진취적 측면, 세속적으로 말하자면 반역적 과감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다. 공자의 일생은 시대에 항거하고 반역한 일생이었다.

 

마지막의 오기위동주호(吾其爲東周乎)’는 고주가 다음과 같이 주석을 달았다.

 

 

이상적인 주나라의 도()를 다시 동방(東方)에 일으키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동주(東周)’라고 말한 것이다.

興周道於東方, 故曰東周也.

 

 

여기 고주는 동주(東周)’를 하나의 개념으로 보지 않고 주나라는 서쪽 낙읍지역에 있는데 반해 노나라는 지역이 동쪽(東方)에 있으므로 이상적인 주나라의 문물제도를 동쪽에 다시 일으키겠다는 뜻으로 풀이한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는 평왕(平王)이 낙읍(洛邑)으로 천도한 이후를 동주(東周)라고 부른다. 그 동주가 쇠하였으므로 그 동주를 다시 일으키겠다는 뜻으로 푸는 주석도 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것은 잘못 해석하면 참월이 될 수도 있다. 고주의 뜻이 정확할 것이다. 주나라의 이상적 질서를, 나를 부르는 자가 있다면, 어디에서든지 실현시킬 자신이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왕필(王弼)은 이러 한 논지를 매우 명료하게 천명하고 있다.

 

 

만약 나를 기용할 수 있는 자가 있다고 한다면 땅을 가리지 아니 하고 주실의 도()를 일으킬 자신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言如能用我者, 不擇地而興周室道也.

 

 

이러한 공자의 입장을 청말에 새롭게 해석한 사람이 강유위(康有爲, 캉 여우웨이, Kang You-wei, 1858~1927)이다.

 

자로 말 중에 말지야이(末之也已)’의 마지막 ()’그만두다라는 동사이다. 다음의 하필공산씨지지야(何必公山氏之之也)’지지(之之)’의 앞의 가다라는 동사이고 뒤의 는 공산씨를 받은 지시대명사이다.

 

 

 

 

인용

목차

전문 / 본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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