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싫은 사람과는 말도 섞지 않던 맹자
2b-6. 맹자가 제나라에 경(卿)이라는 높은 지위에 올랐다. 그래서 국 사의 자격으로 등(滕) 나라의 국상(國喪)에 조문을 떠났다. 제선왕은 자기가 총애하는 개읍(蓋邑)【산동성 기수현(沂水縣) 서북 80리】의 대부인 왕환(王驩)으로 하여금 맹자의 부사로서 맹자를 보좌하게 하였다. 여행 내내 왕환은 정사(正使)인 맹자에게 아침저녁으로 문안인사를 드렸지만. 제나라와 등나라를 왕복하는 기나긴 여로에서 맹자는 왕환과 더불어 단 한 번도 행사에 관하여 상담하거나 친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2b-6. 孟子爲卿於齊, 出弔於滕, 王使蓋大夫王驩爲輔行. 王驩朝暮見, 反齊滕之路, 未嘗與之言行事也. 수행의 일원으로서 같이 간 공손추는 이러한 맹자의 태도가 석연치 않아 여쭈었다: “제나라의 경(卿)이라는 지위는 결코 국제적으로도 만만치 않은 자리올시다. 그리고 제나라와 등나라를 왕복하는 여로도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닙니다【제나라 임치(臨淄)로부터 곡부의 동남에 있는 등나라까지는 280km 정도 된다】. 선생님께서는 대사(大事)의 사명을 띠신 신분으로 왔다갔다 왕복하는 여로 내내 단 한 번도 부사인왕환과 행사에 관해 상담을 하지 않으신 것은 도대체 뭔 까닭이오니이까?” 맹자는 골이 난 표정으로 내뱉었다: “그 녀석이 지맘대로 다 알아서 혼자 말아먹는데, 내가 뭔 말을 한단 말이냐?” 公孫丑曰: “齊卿之位, 不爲小矣; 齊滕之路, 不爲近矣. 反之而未嘗與言行事, 何也?” 曰: “夫旣或治之, 予何言哉?” |
이 장은 내가 보기에는 실로 엄청나게 재미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장이다. 뿐만 아니라, 『맹자』라는 문헌이 얼마나 리얼한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기록한 문헌인지를 입증해준다. 이 장은 맹자라는 인간의 감정이나 생활태도를 아주 극명하게 표현해준 걸작이라 할 것이다.
왕환은 개(蓋)라는 읍(邑)의 대부이지만 실제로는 제왕의 엄청난 총애를 받는 인물이며, 개의 지사 자리도 아주 가까운 왕의 친족이 아니면 못 가는 자리였다. 그러니까 왕환이 겉으로는 맹자에게 실례를 범한 것도 없지만 맹자는 근본적으로 왕환이라는 놈이 제선왕이 왕도를 구현하는 것을 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인간이라고 판단하였던 것이다. 왕환은 매우 호화스러운 생활을 했고 돈을 잘 썼던 것 같다. 그러니까 오늘날에도 우리는 청와대에 앉아있는 인간의 친척이나 아들이나 형님 따위의 인간들이 국정을 말아먹는 사례를 너무도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그러한 한 인물을 연상하면 왕환에 대한 맹자의 감정이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왕환은 아침ㆍ저녁으로 문안하는 형식적 예의를 갖추었지만 맹자에게 친근하게 그리고 겸손하게 행사의 디테일을 상의하는 그런 인간적 자세를 갖추지 않았고, 좀 거만한 낌새가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맹자의 태도는 이성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매우 감정적인 것이다. 처음부터 나쁜 놈이라고 판단해놓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달갑게 쳐다볼 여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부사로 따라붙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 기나긴 여로를 단 한 번 말도 하지 않고 내내 뚱하고 가는 맹자의 인품을 생각해보면 매우 재미있다. 심통이 많고 감정의 폭이 좀 좁은 인간이라고 볼 수도 있고, 한 번 시비를 정확히 가리면 추호의 타협도 없는 서슬퍼런 기상의 인간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여튼 맹자는 재미있는 캐릭터이다.
이 장의 해석에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이 사건이 언제 일어났냐 하는 것인데, 나는 이 사건이 맹자가 제나라에 체재하고 있었던 7년간의 시기의 초기에 일어난 사건으로 본다. 이 등나라의 국상을 등문공의 장례로 보는 견해가 많은데 그것은 넌센스이다. 등문공은 맹자가 제나라를 떠난 이후에 만나는 어린 인물이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그만큼 크로놀로지가 엉크러져 있어 제멋대로 사건의 선후를 배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국상이 누구의 국상인지는 확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지막의 구문인 ‘부기혹치지(夫旣或治之), 자하언재(子何言哉)?’의 ‘부(夫)’를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왕환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지 않고, 그냥 ‘대저’로 해석하면, ‘대저 행사에 관해서는 그것을 처리하는 자가 이미 있는 이상, 내가 뭘 따로 말할 건덕지가 있겠느냐?’ 정도의 의미가 된다. 그러나 ‘부(夫)’를 왕환을 가리키는 말로서 해석하면, ‘그 녀석이 이미 모든 행사를 독단적으로 처리하고 있으니, 내가 또 무엇을 말하리오?’ 정도의 뜻이 된다. 나는 후자의 해석을 취해야 다이내믹한 의미가 살아난다고 본다.
왕환은 자(字)를 자오(子敖)라 하고, 제나라의 우사(右師)의 지위에 오른다. 맹자는 제나라에 있을 동안 내내 왕환을 특별히 감정적으로 싫어하였다. 그의 ‘별 이유 없는 증오심’ 같은 것이 「이루」 상24ㆍ25, 「이루」 하 27에 잘 드러나고 있다. 아마도 우리가 『맹자』라는 문헌을 통해서는 알 수 없지만 특별히 그를 미워할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맹자에게 인간적으로 한번 밉보이게 되면 도저히 돌이킬 방법이 없다는 맹자의 특이한 성격이 왕과의 관계를 통하여 잘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여기 ‘맹자위경어제(孟子爲卿於齊)’라는 말의 정확한 의미내용에 관하여 나는 상술(詳述)할 수가 없다. 맹자는 왕의 신하로서 자신을 규정한 적이 없기 때문에 여기 ‘위경(爲卿)’의 의미는 경(卿)에 준하는 작위나 그리고 실무와는 관계없는 어떤 대우, 그러면서도 그 지위를 가지고 경의 행사를 치를 수 있는 특수한 위치를 말한다고 보아야 한다. 행정관료의 우두머리로서의 경(卿)은 아닐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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