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옛 사람을 벗하다
5b-8. 맹자께서 그의 수제자 만장에게 간곡히 다짐하며 말씀하시 었다: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도 있듯이 결국 같은 수준에서 놀 수밖에 없다. 일향(一鄕)의 뛰어난 인재는 같은 일향의 뛰어난 인재와 벗할 수밖에 없으며, 일국(一國)의 뛰어난 인재는 그 나라의 뛰어난 인재와 벗할 수밖에 없으며, 천하(天下)의 뛰어난 인재는 천하의 뛰어난 인재와 벗할 수밖에 없다. 5b-8. 孟子謂萬章曰: “一鄕之善士, 斯友一鄕之善士; 一國之善士, 斯友一國之善士; 天下之善士, 斯友天下之善士. 그런데 천하의 뛰어난 인재와 벗해도 만족감이 오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는가? 그래도 길은 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옛 성현들을 추론하면서 벗삼으면 되는 것이다. 그들이 쓴 시를 읊고, 그들이 쓴 책을 읽으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쓴 시를 읊고 그들이 쓴 책을 읽는다 하면서, 그 인간을 모른대서야 말이 되겠는가! 그리고 그 인간을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인간이 산 시대를 구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상우(尙友), 곧 역사를 거슬러 고인을 벗삼는다는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以友天下之善士爲未足, 又尙論古之人. 頌其詩, 讀其書, 不知其人, 可乎? 是以論其世也. 是尙友也.” |
「만장」이라는 희대의 공들인 문헌을 편집해가는 끝머리에 이런 위대한 훈계가 나오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만장집단과 맹자 사이의 교학상장(敎學相長)의 교류와 신뢰감, 그리고 그 총체적인 위대한 풍모를 엿볼 수 있게 한다. 만장은 위대한 학자였고, 위대한 제자였고, 위대한 학 도였다. 역사에 능통한 만장에게 맹자는 간곡히 호학, 치학(治學)의 방법론의 요체를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맹자의 위대한 논설을 접할 때마다 20세기에 가장 위대한 철학사를 쓴 럿셀(Burtrand Russell, 1872~1970)의 『서양철학사』 서두를 머리에 떠올린다.
철학의 많은 역사기술들이 이미 존재한다. 그러나 나는 지금 그 많은 숫자에 하나를 더하기 위하여 이 책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이 철학사를 쓰고 있는 목적은 명료하다. 철학을 위대한 인간들의 고립된 사유의 체계들로서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ㆍ정치적 삶의 유기체 총체의 한 부분으로서 철학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다른 사유의 체계들이 번영한 다양한 인간 커뮤니티들의 성격을 지배하는 원인, 그리고 또 결과 그 모든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Many histories of philosophy exist, and it has not been my purpose to add one to their number. My purpose is to exhibit philosophy as an integral part of social and political life: not as the isolated speculations of remarkable individuals, but as both an effect and a cause of the character of the various communities in which different systems flourished.
철학사는 이미 죽은 시(詩)나 논저(論著)의 논리적 구조를 밝히는 작업이 아니다. 그 시(詩)와 그 서(書)를 쓴 사람, 그 살아있는 인간을 투시하도록 만드는 것이 철학사 혹은 사상사의 작업이라는 것이다. 그 인간을 모르고서는, 그 인간이 만들어낸 작품을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그 살아있는 인간을 알려면 반드시 그 인간이 산 시대를 의식 속의 장으로서 펼쳐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시대를 알고, 그 시대 속에 산 인간을 알고 난 연후에나 비로소 그 인간이 만들어낸 위대한 작품들이 이해된다는 것이다. 살아있는 인간이 항상 모든 논리에 앞서는 것이다. 이러한 학문방법론은 서구에서도 20세기에나 비로소 개화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확한 논점을 맹자가 그의 수제자를 타이르는 간곡한 훈계 속에서 발견한다는 것은 전국시대의 학문의 수준이 어느 지경에 이르렀는가, 그 문명의 심도를 헤아리게 만드는 것이다.
나의 제자 중 한 사람이 만들어준 자그마한 서안(書案)의 한 편에 ‘독기서부지기인가호(讀其書不知其人可乎)’라고 내가 쓴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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