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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맹자한글역주, 만장장구 하 - 9. 두 경우의 경(卿) 본문

고전/맹자

맹자한글역주, 만장장구 하 - 9. 두 경우의 경(卿)

건방진방랑자 2022. 12. 28. 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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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두 경우의 경()

 

 

5b-9. 제선왕이 경()이라는 존재에 관하여 질문을 했다.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왕께서는 어떠한 경에 관하여 물으시는 것이오니이까?”
5b-9. 齊宣王問卿. 孟子曰: “王何卿之問也?”
 
왕이 말하였다: “아니, 어떠한 경이라니요. 경에도 다른 종류가 있단 말입니까?”
王曰: “卿不同乎?”
 
맹자께서 대답하시었다: “, 다르고말고요. 크게 대별하면 경()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임금님과 같은 성을 가진 귀척지경(貴戚之卿)이고, 또 하나는 임금님과 다른 성을 가진 이성지경(異姓之卿)입니다. 이 둘 중 어느 쪽을 물으시는 것입니까?”
: “不同. 有貴戚之卿, 有異姓之卿.”
 
제선왕은 말하였다: “그럼 귀척지경(貴戚之卿)에 관하여 묻겠소.”
王曰: “請問貴戚之卿.”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임금이 대과(大過)나라를 망해먹을 정도의 큰 과실를 저지르게 되면 간()하지요. 그리고 계속 반복해서 간해도 임금이 듣지 않으면, 왕을 갈아치우고 동족의 현자를 임금으로 세웁니다.” 제선왕은 발끈 화를 내면서 얼굴에 핏대를 세웠다.
: “君有大過則諫, 反覆之而不聽, 易位.” 王勃然變乎色.
 
그러자 맹자는 왕을 진정시키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다: “왕 이시여! 제발 내가 하는 말을 딴 뜻이 있다고 생각치 마소서! 왕은 저에게 물으셨고, 저는 왕을 사랑하기 때문에 바른 말로써만 솔직히 대답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외다.”
: “王勿異也. 王問臣, 臣不敢不以正對.”
 
제선왕은 얼굴의 붉은 기를 가라앉히고 난 후에 이성지경(異姓之卿)에 관하여 물었다.
王色定, 然後請問異姓之卿.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임금께 과실이 있으면 간합니다. 반복하여 간하여 듣지 않으면 떠나버리고 맙니다.”
: “君有過則諫, 反覆之而不聽, 則去.”

 

여기 맹자의 발언은 정치사적으로 혹은 사회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여기 경()이라는 것은, 왕을 제외하고 나면, 국정(군정을 포함)을 전담하는 수상 같은 최고급 관리직이다. 이 직책은 매우 중요하다. 대부는 세습되는 채읍(采邑)을 갖기 때문에 토착적 성격이 강하지만, 경은 지위상 대부보다 위이며 보다 왕에게 밀착되어 있다. 춘추시대까지만 해도 경은 대체로 왕과 동성의 사람이 맡는 것이 통례였다. 그러니까 춘추시대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제후국은 씨족국가의 형태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춘추오패의 시기로부터 전국시대에 걸쳐서 이미 그런 씨족국가적인 안온함은 사라졌다. 전국의 상황에서는 동족의 수상만으로 나라가 유지되기 어려웠다. 그래서 혈연과는 관계없는 능력이나 덕성만으로 수상자리에 오르는 사람이 생겨났다. 이것은 곧 행정직이 점차 왕권으로부터 분리되는 성격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귀척지경(貴戚之卿)’에 관하여 조기는 내외친족(內外親族)’이라는 막연한 해설을 달았으나, 여기 귀척(貴戚)’이성(異姓)’에 상대되는 말이므로 동성(同姓)’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외척세력은 포함되지 않는다. 맹자는 동족세력이 실권을 잃어버리고, 이성의 수상이 국민을 잘 통치하여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 힘을 이용하여 실권을 장악하는 그러한 전국시대상을 배경으로 대화의 실마리를 꺼낸 것이다

 

만장이라는 인류사상 유례를 보기 힘든 역사철학담론의 마지막 장을 장식한 이 대화는 맹자라는 텍스트를 기록한 사람들의 지적 수준과 문학적 감성을 단적으로 표출해주는 위대한 프라그먼트라 할 것이다. 마지막의 ()’ 이 한마디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는 맹자의 전 생애를 압축하고 있는 무거운 하중을 느끼게 한다. 이 장의 전체적 느낌으로 볼 때 만장은 역시 제나라 사람이었을 것이다. 함구몽의 질문에 대해서 제동야인(齊東野人)’(5a-4)이라는 말을 쓰는 것을 보아도 만장집단은 제나라 사람들로 구성되었을 것이다. 만장편에 실린 대화 자체는 은퇴 후에 이루어진 것일지 몰라도, 그 담론의 프로토타입은 이미 맹자가 제나라에 머물러 있을 때에 형성된 것이다. 따라서 만장편의 제일 마지막 대화를 제선왕과의 대화로 장식함으로써 그 전체 역사철학드라마에 묘한 분위기를 싣고 있다. 맹자 또한 제나라의 경()이었으며, 떠나기 전 2년 전부터, 그러니까 제선왕이 무리하게 연나라를 점령할 때부터 이미 경에 해당되는 녹을 받지 않았다(2b-14).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경의 지위를 반납하고 떠났다.

 

왕이시여! 당신의 친족들은 당신을 갈아치우려고 할 것이고, 나 같은 이성의 경은 떠날 뿐이외다! 부디 당신 스스로를 돌보소서!’ 뭔가 애절 한 메시지가 담겨있는 듯한 감회가 서린다.

 

본 장의 담화구성의 강렬함은 역시 현장성에 있다. 그 대화를 감돌고 있는 기묘한 감정이 교차하는 기운을 이토록 절절하게 표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제선왕의 발끈한 핏기 서린 얼굴, 그를 진정시키는 맹자의 충정, 그곳에는 오랫동안 정든 두 우인(友人)의 치고받음이 있다. 그리고 (), 떠난다그 한마디로 모든 것을 마무리 지은 이 대화야말로 맹자문헌 편찬자들의 문학적 수법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 만장편의 해설이 끝났다. 나로서는 해독이 가장 어려웠고 가장 많은 시간이 걸린 한 편이었다. 맹자, 7편 중에서 가장 편집체계가 완정하게 갖추어진 편이라고 확신하며 그 사상적 밀도 또한 가장 짙게 농축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만장이라는 탁월한 제자와 그 그룹에 의하여 성립한 하나의 독립논설이었음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리고 맹자라는 전 텍스트는 만장을 만든 사람들에 의하여 종편되었다는 것도 확언할 수 있다. 우연의 일치일지는 모르겠으나, 만장상편은 거의 만장문왈(萬章問曰)’ 되어있고, 하편은 거의 만장왈(萬章曰)’로 되어 있어 ()’자가 없는데, 이러한 차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단정지을 특별한 실마리가 없다. 필록자가 다른 데서 오는 것인지, 동일한 필록자라도 필록의 연대가 다른 데서 생겨난 차이인지 확언할 수가 없다.

 

다음으로 우리가 접하게 될 편은 실제로 조선유학사에서 가장 많이 거론된 편으로 송명유학의 심성론(心性論)’의 모든 논쟁과 학설을 유발시킨 프로토타입이 되는 고자편이다. 나도 철학과를 다닐 때 대강 맹자강독이라 하면 고자상편의 강독에서 몇 발자국 더 나아가질 못했다. 맹자라는 텍스트에 대한 전체 인상이 고자상편으로 도배질된 것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맹자의 성선(性善)’에 관한 주장은 반드시 고자편에 수록된 몇 개의 대화를 넘어서서 맹자라는 텍스트 전체의 맥락 속에서 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그의 성선론은 그의 왕도론의 총체적 가치관 속에서 재해석되어야 하는 것이다.

 

고자편이라고 하지만 고자와 맹자, 두 사람의 문답은, 상편 20장 하 편 16, 도합 36장 중에서 상편 제1234, 4장에 불과하다. 그리고 제562장은 고자의 학설을 비판하는 맹자와 문인의 문답이다. 고자의 학설을 비평하는 내용이 담겨있는 공손추와의 장문의 대담이 이미 공손추2에 실려있었다. 공손추2호연지기장고자1~6과 같은 시기에 이루어진 논의가 분명한데 그것은 심성론적 측면보다는 실천적 측면, 즉 수행론적 측면이 강한 것이라서 공손편으로 그 자연스러운 맥락을 따라 편집된 것이다. 공손추편이 제나라 체재기간 동안의 기록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최소한 고자상편은 제나라 체재기간 동안에 이루어진 논쟁과 기온자료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고자라는 인물을 많은 사람이 맹자의 제자급의 인물인 것처럼 생각하는데, 고자는 맹자보다 한 세대 위의 인물이며, 따라서 자로써 존칭된 것이다. 대화의 양식도 4장이 모두 맹자왈(孟子曰)’ 시작하지 않고 고자왈(告子曰)’로 시작하는 것만 보아도 맹자편찬자들에게 있어서도 고자(告子)라는 사상가에 대한 존경심이 보지(保持)되고 있다 할 것이다. 단지 고자라는 사람의 사상이 맹자에 의하여 비판적으로 검토되었기 때문에 충분히 그 전후맥락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있다. 그렇게 고자의 사상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맹자의 논박 또한 치밀한 논리를 결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공자는 ()’이라는 수수께끼를 던졌다. 그리고 의 실현가능성 을 인간의 심성 속에서 근거 지우려는 노력이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최근에 발견된 성자명출(性自命出)』 『오행등의 죽간자료로 볼 때 그 정황이 쉽게 규탐되는 것이다. 이러한 논쟁에 가담한 많은 사상가들 중에서 직하에 살고 있던 거목 중의 하나가 고자였고, 맹자는 이 고자와의 대립적 논쟁을 통하여 자신의 성선론(性善論)’의 핵심을 보다 치열하게 다져 나갔을 것이다. 맹자의 제나라 체재 7년간의 최대의 업적은 그의 정치사적 행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고자와의 논쟁을 통하여 성선의 구상을 구체화시켰고 또 그러한 성선의 핵을 통하여 다채로운 사상과 논리를 심화시켰다는 데 있다.

 

맹자의 성론은 본질주의(essentialism)를 추구하는 어떠한 실체론(substantialism)이 아니며, 그것은 매우 일반적인 심론(Philosophy of Mind)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성()이 심()의 본체로서 이원화되지 않는다. 심론의 한 측면으로서 성선이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성()은 심지단(心之端)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것이며 따라서 어떤 고정적 실체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자체가 어떤 고정적 실체의 성격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심단의 확충을 의미하는 과정(Process)일 뿐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그의 성선론을 파악해야 한다.

 

고자상편은 심성론에 관한 논쟁과 수양론에 관한 맹자의 로기온자료를 묶은 것으로서 매우 단일한 주제의식을 가진 완정한 성격의 편집 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상편의 내용은 모두 제나라에서 체재할 기간 동안에 이루어진 파편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하편은 보다 다양한 주제를 포섭하고 있으며(), 효제(孝悌), 시설(詩說), 인의(仁義), 왕도(王道), 교제(交際), 용현(用賢), 패도 배격, 민중의 적(), 경세(輕稅), 치수(治水), (), (), 사관(仕官), 고난 극복, 교육 등, 그 발언지점도 위()ㆍ제()ㆍ송()ㆍ노()ㆍ추() 등지에 펼쳐져 있으며 맹자가 활동한 전역을 포함한다. 따라서 이 하편은 양혜왕」 「공손추」 「등문공」 「만장」 「고자상편이 편집된 후에 남은 파편 중에서 심도있는 것들을 습유(拾遺)하여 편한 것으로 보여진다. 구체적인 문제들은 실제적으로 텍스트를 접해가면서 다시 논의하기로 한다.

 

牧爲民有乎, 목민자가 백성을 위해서 있는 것인가,
民爲牧生乎? 백성이 목민자를 위해서 있는 것인가?
民出粟米麻絲以事其牧, 백성이 쌀과 삼베를 생산하여 목민자를 섬기고,
民出輿馬騶從以送迎其牧, 또 수레와 말과 마부를 내어 목민자를 전송도 하고 환영도 하며,
民竭其膏血津髓以肥其牧, 또는 고혈과 진수를 짜내어 목민자를 살찌우고 있으니,
民爲牧生乎? 백성이 과연 목민자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일까?
: , . 牧爲民有也. 아니다! 그건 아니다! 민자가 백성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 -다산의 원목(原牧)

 

 

화성 용주사(龍珠寺)에 주석하고 계신 정호(正乎) 큰스님과 함께 다산초당에 오르다. 정호스님은 나와 고려대학교 입학동기이다. 정호 큰스님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사도세자와 정조의 묘역(健陵)의 원상보존을 위한 처절한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무차별한 대단위 아파트 건립에 반대하며 그 일대를 세계적인 효() 테마공원으로 만드는데 진력하고 있다. 정호스님의 구상은 인류문명사의 한 획기적 전환점이 될만한 발상이다. 정부는 정호스님의 안을 지원해야 할 것이다.

 

 

인용

목차 / 맹자

전문 / 본문

중용 강의

논어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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